[중앙일보 조우석] 인체 시장 (원제 Body Bazaar)

로리 앤드류스·도로시 넬킨 지음

김명진·김병수 옮김, 궁리, 389쪽, 1만3800원

필리핀계 미국인 호르헤 부부는 불임 치료를 위해 캘리포니아대 생식보건센터를 찾았다. 세계적 명성의 리카드로 애쉬 박사에게 임신의 희망을 건 것이다. 애쉬 박사는 배란촉진제를 사용해 다수의 난자를 뽑아 남편 정자와 수정한 뒤 아내에게 착상(着床)했다. 끝내 임신에는 실패했지만, 그때 뽑은 호르헤 부인의 난자 일부가 다른 여성의 몸에서 착상에 성공했다. 쌍둥이까지 낳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우선 아이를 낳은 여성. 그는 철썩처럼 믿었다. "난자 제공자는 난자 제공에 동의를 했겠거니…". 그건 사실과 달랐다. 의사는 멋대로 난자를 제3자에게 준 것이다. 몇 년 뒤 호르헤 부부는 쌍둥이를 만나는 권리를 얻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피해사례는 많았다. 이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난자 등 유전물질 도둑 사건의 84건 이상을 둘러싸고 소송이 진행했다.

"마치 강간 당한 느낌 같다. 매우 사적인 자신의 일부를 강탈당한 마음이다." 피해자들의 하소연이 그랬다. 1997년 이 병원이 소송한 부부들에게 건네준 배상 합의금은 1900만 달러. 생명공학 시대의 감춰진 어젠더를 다룬 훌륭한 읽을거리 '인체 시장'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이제 돈이 된다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골드러시'의 대상으로 찢기고 있으며 활발히 유통 중이다.

병원.군대.교도소 같은 공공기관도 DNA.세포주.혈액.장기 같은 유전물질 데이터 유통에 알게모르게 한몫을 한다. 미국의 경우 1억7600만명에게서 뽑아낸 2억8200만개 이상의 병리학 자료들이 보관 중이다. 에이즈, 알츠하이머병 등의 연구 명목이다. 한 국가가 국민 전체의 지놈을 경매에 부친 일도 있다. 디코드 지네틱스사는 아이슬랜드 전 인구의 유전자를 조사.저장.상업화할 수 있는 권리를 사들였다.(12쪽)

과연 "오늘의 상황은 19세기의 악명높은 신체 강탈 열풍을 연상시킨다"(256쪽). 해부학이 막 발달하던 그때 의대는 시체 한 구에 최고 35달러를 주고 사들였다. 35달러는 당시 노동자의 한 달 봉급 수준. 심지어 시신을 얻기 위해 묘지를 파헤치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인체 장기들이 부위별로 나뉘어 정교한 유통망을 타고 국제적으로 거래 중이다. 이식과 연구 등의 명목으로. 99년 터키 대지진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 책이 의미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황우석 파문으로 몸살을 겪었기 때문이다. 애초 난자 채취의 윤리문제로 시작돼 한 국민과학자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보면서 법적.사회윤리적 틀에 대한 합의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옮긴이의 지적처럼 "아인슈타인의 작은 뇌 조각을 전시한 인체의 신비전 같은 데 무비판적으로 관람객들이 몰리는" 경향 역시 다분히 한국적 상황이다.

"사람의 몸은 누가 소유하며,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387쪽)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라도 비껴갈 수 없는 텍스트가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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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 (상·하)

원제 From Dawn to Decadence

자크 바전 지음, 이희재 옮김

민음사, 각권 869쪽, 각권 3만3000원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줄 아는 두 사람을 나는 안다. 컴퓨터 게임 '페르시아 왕자'해본 사람? 위기에 빠질 때마다 왕자는 '시간의 단도(短刀)'라는 신비한 무기로 시간을 손쉽게 과거로 되돌린다. 또 한 사람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다. 과거의 시간을 발 밑에 쌓아 놓고 그는 말한다. "내 발 밑에 마치 몇 천 길의 골짜기를 굽어보듯, 무수한 세월을 바라보자 어지러웠다."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는 이런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가히 문화사의 페르시아 왕자라 할 만한데, 시간의 단도를 쥔 사람처럼 무려 500년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이중 5분의 1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시간이다(그는 올해로 100세다). 나머지 400년은 그가 불면의 밤 독서를 통해 알게 된 시간이다. 불면증과 장수(長壽)가 만나 500년을 한 권의 책 안에 잡아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왜 꼭 500년인가? 바로 500년 전의 종교혁명부터 근대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류가 집어탔던 배들 가운데 미친 고래의 위장처럼 출렁거리며 가장 심한 멀미를 일으킨 근대라는 특수한 시간이 어떻게 탄생해서 융성하고 변화했는가를 그린 벽화다.

이 벽화는 근대인들이 터트린 네 개의 폭죽을 맞아 네 조각으로 잘라진 독특한 형태를 취한다. 16세기의 종교혁명, 17세기의 군주혁명, 18세기의 프랑스혁명, 20세기의 러시아혁명이 그것이다. 혁명을 기점으로 삼는 까닭은 혁명의 현기증만이 인간의 머리를 뒤흔들어 매번 새로운 문화를 토악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혁명은 문화를 뒤바꾸어 놓는다."(상권, 29쪽)

물론 '혁명의 문화사'를 부르짖는 이 대명제는 결코 사변적인 주장으로 그치는 법이 없다. 저자는 성실하게 모아들인 자료의 징검다리가 놓이지 않은 곳으로는 결코 발을 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지난 500년 동안 출현한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헌들의 직접 인용을 한 권의 책 안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부터 셜록 홈즈바그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까지 각 시대의 정신을 대표하는 목소리들이 생중계된다.

빈틈없는 자료들이 동원될 때 지금껏 확인해 보지 않고 믿어 왔던 정설들이 얼마나 맥없이 꼬리를 내리는지 목격하는 일 또한 이 책의 재미다. 가령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부르짖지 않았으며,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하지 않았음을 자료와 정황에 대한 주도면밀한 검토를 통해 설득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고정관념과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비판적 사고 훈련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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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정동] 박제가와 젊은 그들

박성순 지음, 고즈윈, 247쪽, 1만2000원

박제가(1750~1805)는 급진 개혁가였다. 북학(北學), 즉 중국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경세서 '북학의(北學議)'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의 분노에 찬 육성이 생생하다. "중국의 도자기는 정교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청나라의 문물을 찬양하던 그는 "우리나라 의술은 믿을 수 없다"며 탄식한다. 종국에는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며 절망한다.

조선의 식자층은 중국을 배우라고 외치는 이 키 작은 고집불통을 당괴(唐魁)라 불렀다. '중국에 미친 놈'이라는 뜻이다. 스승 박지원조차 '북학의'에 서문을 써 주기는 했지만 "책의 내용을 남에게 말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며 그의 과격함을 우려했다. 어디 물러설 박제가이던가. 정조 22년 농업진흥책을 국왕에게 올리는 글에서 그는 "놀고 먹는 유생부터 도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유생을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 것이다.

박제가의 일대기를 다룬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천재였지만 서얼 신분. '북학의'의 격한 목소리는 가슴 속의 응어리 탓일까. 하지만 다행히도 박제가는 자신을 알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을 만난다. 개혁군주 정조가 바로 그다. 정조는 서얼 중에서 능력있는 자들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하도록 했고, 박제가는 이덕무.유득공 등과 함께 최초의 검서관이 되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게 된 박제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경세관을 펼쳤다.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중국과 통상할 것, 서양 사람을 초빙하여 과학기술을 배울 것, 젊은 인재를 중국에 유학시킬 것 등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제목에 나오는'젊은 그들'은 '열하일기'라는 걸작을 남긴 박지원, 선구적 과학자이며 국제학자였던 홍대용, 평생 책만 읽어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보는 바보라 불린 이덕무, 협객 백동수 같은 인물들이다. 전편에 걸쳐 박제가와 그들이 종로 백탑 주변에서 밤을 밝혀 토론하고, 공부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가는 모습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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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후남] 것츠!

케빈 & 재키 프라이버그 지음

황금부엉이, 328쪽, 1만2800원

"직원들에게 당신이야말로 왕이자 주인임을 각인시켜라." 이 책의 메시지는 월급쟁이들에겐 꿈같은 얘기다. 경영자들도 콧방귀를 뀔지 모른다. 말이야 쉽지만 그래서야 성과가 나겠냐면서…. 그에 대한 이 책의 답변은 배짱.용기.결단력 등을 뜻하는 제목(guts)에 들어 있다. 한마디로 배짱 두둑한 리더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런 배짱은 혁신형 리더의 최고 덕목이라는 얘기다.

경영컨설턴트로 활동중인 저자 부부는 유머경영으로 유명한 미국의 저가항공사 사우스웨스트의 기업문화를 해부한 '너츠'를 썼던 이들. 이 책에서는 한결 다양한 미국기업을 실례로 삼는다. 소프트웨어회사 SAS에는 연로한 부모 돌보기 등을 도와주는 '가정생활부'가 있는가 하면, 식료품 유통업체 홀마켓은 직원 전체의 연봉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경영정보를 공개한다.

해당기업의 경영실적 역시 훌륭하다. 이유는 인재가 모여들고, 창의력이 발휘된 데 따른 결과라는 것을 이 책을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상식을 뒤집으라''재미있게 일하라'같은 원칙론과 인재채용의 주안점 등 실용기술을 소개하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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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선민]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

조애너 콜·브루스 디건 지음

비룡소, 1999년 첫 출간

괴짜 선생님과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신나는 과학여행을-.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자녀를 둔 20~30대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가 '신기한 스쿨버스'시리즈다. 전 세계적으로 5200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최근 국내 판매부수 600만을 넘어섰다. 국내에서는 10권으로 된 시리즈를 시작으로 '테마 과학 동화 시리즈'(전10권), '키즈 시리즈' (전6권), '베이비 시리즈'(전30권)가 잇따라 나왔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책을 한 번 펴면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이야기 솜씨다. 선생님을 따라 종횡무진 공간이동을 하다보면 어느새 과학 원리가 쏙쏙 들어온다. 아이들의 끝간 데를 모르는 호기심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엄마 입장에서도 이 책은 구원투수 역할을 한다. 호수.강.바다에서 물이 증발해 구름이 되고 비가 내리고 이것이 결국 정수돼 가정에서 수돗물을 쓸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엄마가 사실 얼마나 되겠는가. 교사 출신인 저자들은 책 한 권을 낼 때 2년 넘게 걸릴 정도로 철저한 사전 답사와 자료 준비 등을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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