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2006 도솔
“잡초처럼 강하게 살자”

어려울 때, 우리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잡초는 작은 틈만 있어도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워 씨앗을 맺는다. 흙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시멘트 건물 틈, 보도블록 작은 틈에서 사람의 발에 치이면서도 꿋꿋하게 자란다. 화마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까만 잿더미 속에서 제일 먼저 싹을 틔워 생명을 알리는 것 또한 잡초다. 정말 강한 생명력이다.

그런데 잡초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억세고 강하기는커녕 약하디 약한 존재라고 한다. 오히려 잡초를 강하게 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상황, 즉 역경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연약한 잡초들이 어떻게 역경을 이겨낸다는 말인가?

<풀들의 전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잡초, 가장 잡초다운 잡초 50가지를 면밀하게 연구 관찰, 잡초생태학 박사가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흥미롭게 풀어 쓴 글이다.

<풀들의 전략>에서 관찰하는 잡초들은 제비꽃, 괭이밥, 냉이, 민들레, 큰개불알꽃, 쇠비름, 개여뀌, 방동사니, 별꽃, 부들, 갈대, 도꼬마리, 쇠뜨기, 망초, 쑥, 질경이 등 그야말로 잡초다운 잡초들이요,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너무 흔한 잡초들이다. 우리들이 단지 '강하다' 라고 스치기 일쑤였던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영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잡초의 대명사 질경이가 세운 전략을 볼까?

견디기 힘든 환경을 과감히 받아들여 역이용하는 잡초들, 그래서 아름답다

밟히고 밟혀도 꿋꿋이 살아가는 잡초의 대명사 질경이는, 어찌나 밟혔는지 자세히 보면 잎사귀는 구멍이 송송 뚫려있기 일쑤다. 굳이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만 골라 자라는 질경이는 오히려 사람의 발길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정말 그럴까? 만약 질경이가 사람의 발길이 없는 편안한 곳에 자란다면?

그런데 질경이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을 택하면 금방 다른 식물들에게 쫓겨난다고 한다. 질경이는 다른 잡초들과의 경쟁 대신 사람의 발길을 당당히 받아들여 역이용하는 방법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질경이는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의 모진 발걸음을 이겨 낼 수 있는 걸까?

부드러워서 나물은 물론 쌈으로도 먹을 수 있는 질경이 잎에는 다섯 가닥의 강한 실이 들어 있어서 잎을 찢어도 이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뿌리째 뽑혀 나온다. 잎이 밟히는 경우에 이 실은 잎을 지탱해줄 것이다. 그런데 꽃줄기는 이와는 반대로 겉은 강하게, 안에는 유연하게 만든다. 그래야 밟히는 순간에 유연함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질경이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일수록 꽃줄기를 비스듬히 하여 꽃을 피운다. 그래야 밟혀도 꺾일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인데 쓸데없이 줄기를 키우면 밟히면서 꺾이기 쉽기 때문에 줄기를 최대한 절약하여 자란다. 그래서 잎은 땅속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최대한 아낀 줄기에 붙어 자란다. 그것도 모자라 밟히기를 반복하면서 땅에 바짝 엎드려 자라는 것, 그러고도 밟히면 잎은 구멍이 송송 뚫린 채로 자란다.

이젠 씨앗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퍼뜨려야 한다. 보통의 씨앗들처럼 바람을 이용하면 낮게 자라는 질경이로서는 불리하다. 낮은 곳에 있으면서 이동하는 것은 무엇일까?

"길을 따라 질경이는 자란다. 질경이의 학명은 'Plantago asiatica' Plantago는 발바닥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질경이의 씨앗에는 종이 기저귀에 사용하는 것과 흡사한 화학 구조를 가진 젤리 모양의 물질이 있어 물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며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

-책 속에서.


잎에서부터 줄기, 꽃대까지 철저한 방법으로 사람의 발에 몇 번이고 밟히어도 당당히 살아낼 준비를 한 질경이는 씨앗에까지 수분을 머금는 순간 젤리형태로 바뀌고 마는 방법을 택하여 사람의 발길 따라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질경이로서는 화려한 꽃을 준비하거나 꿀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다. 바람을 계산할 필요도 없다. 사람의 발만 있으면.

꽃마다 다른 꽃의 모양과 독특한 향기는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물로 해먹는 것, 약으로 쓰는 것, 독을 품고 있는 것 등 잡초마다 독특한 성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 역시 우리들을 배려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 꽃을 피우고 자손을 퍼뜨려야 하는 잡초가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다보니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진화한 결과다.

덩이뿌리를 가진 참나리는 자신의 덩이뿌리를 멧돼지 등에 먹혀 버릴 위험에 처하면 자폭해버린다.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쑥은 수분이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잎에 수많은 솜털을 붙여 통기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제비꽃은 꿀벌이 오지 않는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자가수분을 하는데 애써 벌을 불러 모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도 않고 꽃가루도 준비하지 않는다. 골프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세포아풀은 그 골프장의 잔디 깎는 방식에 따라 키를 다르게 하여 자라나면서 유전자에 잔디 깎는 높이를 주입하여 다른 곳에 옮겨 심어도 원래 싹틔운 골프장 성격대로 자란다.

책 속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렇다. 흔한 잡초 50가지의 특성을 세세히 관찰, 그들이 살아가는데 저마다 다른 특성을 자세히 들려주고 있는데 50 가지 잡초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상식을 웃돌고 있어 책을 보는 내내 잡초에 감탄을 하게 된다.

들꽃을 좋아하다보니 관심 있게 보던 내게 그간 더러 궁금하기도 했던 것을 많이 알려준 책이었다. 수많은 꽃들의 모양이 다른 이유와 조그만 제비꽃 등이 꽃대가 긴 이유. 밤이면 꽃잎을 오므리는 꽃들의 비밀, 별꽃처럼 그 작은 꽃잎에도 보송보송 솜털을 붙인 이유 등 책 속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그간 모르고 있던 잡초들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잡초들의 생존전략은 우리 인간에게도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동물에게 먹히거나 밟히는 경우를 맞아들여 유리하게 바꾸는 위기관리, 필요 없을 때 쓸데없는 꽃을 피우지 않는 폐쇄화들과 근검, 질경이처럼 밟히는 경우 치명타가 될 줄기를 최대한 줄이는 절약, 개미와 식물들의 아름다운 공생과 은혜 갚기, 도주, 대규모의 비용 삭감 등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잡초의 생존전략이었다. 저자의 면밀한 관찰이 또한 놀랍다.

<풀들의 전략>은 지금이라도 당장 허리를 굽혀 지구 위의 가장 낮은 풍경을 살피게 만드는 책이다.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큰 야망을 품은 잡초가 있는가 하면 소박하게 작은 크기로 살기를 꿈꾸는 잡초가 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도 하고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자기만의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크게 성공을 하기도 하고, 밑바닥을 기면서도 행복한 잡초도 있다. 경쟁이 싫어서 사람의 발에 밟히는 고생을 참아가면서 홀로 사는 잡초도 있다. 그래서 '이건 잡초가 아니라 마치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잖아!'하는 느낌을 받는 독자도 많으리라."

-머리글에서


외국 저술 생태관련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
역자 최성현(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저자)

자연생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몇 년 새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쓴 생태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온다. 이중에는 외국저술가에 의해 씌어진 번역서도 많다. 그런데 외국과 우리 나라의 자연 환경은 물론 문화나 사회 관습도 다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단풍잎 돼지풀이 있는데, 목초국가에서는 젖소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우리 나라는 위해식물로 지정하였다. 사료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잡초로서만 자라면서 가을철 꽃가루 알레르기 주범으로 천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단풍잎 돼지풀의 사료로서 가치를 부각한 외국 저술의 책을 읽은 사람들 중에는 우리 나라의 생태자연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단풍잎 돼지풀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옳지 않다. 외국에서는 가치 있는 잡초도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생태관련 외국 저술을 읽을 때는 우리의 자연환경이나 문화 풍습을 충분히 고려하여 비교해보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겠다.

<풀들의 전략>은 일본에서 명망 있는 잡초생태학 박사 저술, 일본과 우리는 기후조건이 비슷하지만 생태 환경이 분명 다르다. 또한 내용 중에는 우리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소지가 있는 내용도 약간 보인다. 역자는 자연생태운동을 하는 사람, 그렇다면 어떻게 걸러냈을까? 지난 4월 20일 전화를 통하여 이점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이 책에 소개되는 잡초가 우리 나라에서도 가장 잡초다운 잡초인 것만은 분명한데 일본과 우리 나라는 자연환경과 문화풍습이 많이 다릅니다. 따라서 그대로 번역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었습니다. 가급이면 원저작을 살리면서 소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의 정서에 전혀 맞지 않는 일본의 꽃관련 전쟁설화나 일반적인 꽃전설은 모두 뺐습니다. 그 양은 원 저작의 20분의 1에 해당합니다.

이 책을 번역해 놓고 아쉬운 점은, 내용마다 별도로 우리의 정서에 맞는 '주(설명)'를 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적하신 대로 다음에는 생태 관련 저작을 번역할 때는 우리의 자연환경을 고려하거나 자료를 찾아 독자들을 배려한 주(설명)을 달 필요가 충분히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이 책처럼 깊이 있는 책이 없어서 특별히 참고 삼아 비교해보고 설명을 달만한 책이 아직까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잡초 생태학이 중요한 과목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연구가 활발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잡초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필요하다는 바람입니다. 이런 책을 저술할 만큼 안정된 일본의 여건이 부럽습니다."


-이전에 <바보이반의 산 이야기>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요?

"4월중에 <별을 건드리지 않고는 꽃을 꺾을 수 없다>는 산문집이 나올 예정입니다. 조만간 나올 이 책은 제가 자연에서 생활하며 자연에서 얻은 교감을 바탕으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인 인내천 사상,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이야기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 전공은 잡초생태학. 2006년 현재 시즈오카현 농업시험장에 근무하며 자연 관찰회와 야외 체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좋아하는 잡초는 개불알꽃. 저서에 <농삿일을 통한 자연 체험><농업과 놀자-논, 밭, 숲, 목장에서 할 수 있는 놀이 72가지><잡초의 성공전략> 공저 <논의 교실>이 있다.

최성현 - 1956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동국대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조교로 일했고, 이후 산 속에서 농사일과 번역,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반'이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옮긴 책으로 <여기에 사는 즐거움>, <지렁이 카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공역)> 등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마이뉴스 이봉렬 기자] 옛날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별로 없어. 약한 사람을 도와 주고, 나쁜 사람을 물리치는 힘과 용기를 가진 영웅의 역할은 대개 남자가 독차지 하지. 여자가 주인공일 때도 어려운 처지를 잘 견뎌내다가 결국 남자의 도움으로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로 끝을 맺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심청이나, 절개를 지킨 춘향이, 왕자와 결혼을 하는 것으로 고생을 벗어나는 콩쥐가 다 그런 경우야.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처럼 외국의 옛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아. 남자는 힘 세고 용감하며, 여자는 착하고 오래 참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

 
▲ 책표지-긴머리 여자아이
ⓒ2006 청년사
그래서 아빠가 이번에는 여자가 주인공인 책을 골랐어. “강물처럼 찰랑이고, 샘물처럼 촉촉하고, 물방울처럼 반짝이는, 아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아이가 그 머리카락을 자르게 된 사연을 담은 <긴 머리 여자아이>라는 중국 먀오족의 설화야.

구름보다 더 높은 산꼭대기의 작은 마을에 긴 머리 여자아이가 살았어. 그 마을은 물이 아주 귀해서 아주 먼 강에서 물을 길어 썼어. 어느 날 여자아이는 들개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줬는데, 그 사슴은 산도깨비의 아들이었어.

사슴은 여자아이에게 물이 솟아나는 바위를 알려 주었지. 여자아이는 기쁜 마음에 마을 사람들에게 샘을 알리고 싶었지만, 사슴은 그렇게 되면 산도깨비가 가만 두지 않을 거라며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했어.

여자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물을 구하지 못해 고생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샘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할까, 아니면 산도깨비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할까?

그 해에는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강물마저 말라 버렸어. 할아버지 한 분은 어렵게 물을 길어 오다가 쏟아 버리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여자아이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바랠 정도로 고민을 했어. 결국 소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샘이 있는 곳을 알려줬어.

▲ 힘겨워 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여자아이는 자기 희생을 결정하게 된다
ⓒ2006 청년사
그 일로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만, 소녀는 산도깨비에게 잡혀 갔어. 화가 난 산도깨비는 여자아이를 “흐르는 물속에 눕히고 긴 머리카락이 영원히 물살에 씻기도록 만들어 버리겠다”고 했지.

여자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설마 이야기가 이렇게 슬프게 끝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도 여자아이는 사슴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을로 내려 올 수 있었어. 강물엔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잘라 붙인 돌 인형이 누워 있게 되었지. 마을로 돌아 온 여자아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 걱정없이 행복하게 살았어. “여자아이 머리카락은 어떻게 됐냐고? 그야 물론 길고 탐스럽게 다시 잘 자랐지.”

긴 머리 여자아이에게 엄청난 힘이나 뛰어난 지혜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과 같은 물을 가져다 줄 수 있었던 게 아니야. 들개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 준 것과 벌을 받게 될 줄을 알면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샘이 있는 곳을 알려 준 걸 기억해 보렴. 여자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건 생명을 아끼는 마음과 나 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정신이었어.

희생이란 지금 당장은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다시 자란 긴 머리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처럼 결국은 더 크게 되돌려 받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야. 우리 살면서 그런 경험 자주 할 수 있어야겠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슬비 2006-05-0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제목이 '거머리 여자'로 보였어요. ㅎㅎ
 

 


티베트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나라 잃은 600만 티베트인의 정치적 지도자인 현 14대 달라이 라마를 다룬 평전이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실천하며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달라이 라마의 모습을 여러 분야의 필진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세계적인 석학, 신학자, 언론인, 작가, 승려 등 그를 가까이에서 수행하거나 접한 22인이 각각 기록한 글이 균형 잡힌 인식을 제공한다.

티베트불교학의 대가 로버트 서먼은 그의 영적 성장 과정을, 승려이자 달라이 라마의 영어 통역관 툽텐 진파는 1000여년의 불교 사상과 전통에 대한 그의 열정을 상술한다. 캘리포니아대 종교학과 교수인 R 파니카는 기독교적 사유를 통해 그의 세계관에 나타난 보편 책임의 의미를 성찰한다. 세포유전학 과학자에서 33세에 티베트불교 승려가 된 마티외 리카르는 새벽 3시30분부터 시작되는 그의 하루 일과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이 책의 편집자인 라지브 메흐로트라는 달라이 라마와 나눈 장시간의 대담을 말미에 덧붙였다.

“고통을 피하려 하고 행복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 상대가 친구이든 적이든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진부한 말도 달라이 라마의 실천적 설법 속에서는 힘을 얻는다. 증오에 찬 일상 속에서 직관의 힘을 기르고자 이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나의 행복을 얻는 효과적인 방법은 이타주의”라는 그의 한마디가 죽비처럼 어깨를 내리칠 것이다.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수렴되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은 ‘웃기를 좋아하는 소박한 승려’다. 후대 사람들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답한다. “그냥 인간요, 가끔씩 잘 웃는 인간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인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술이다. 한 병은 혼자 마시기에는 벅찬 양이지만 그렇다고 이미 딴 와인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도 없다. 와인이 공기와 닿으면 산화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함께 마실 사람이 필요해지고, 적당한 알코올은 대화를 부드럽게 해준다. 와인은 이야기가 있는 술이기도 하다. 포도 품종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생산 지역과 양조장에 따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어느 해의 포도로 담갔느냐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니 와인 한 병을 놓고도 할 얘기가 많다. 같은 이유로 초심자들이 좋은 와인을 골라내기란 쉽지 않다.

어떤 와인이 좋은지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책에 나온 와이너리(양조장)에서 생산된 와인이라면 믿을 만하다. 저자는 500여곳의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하고 그 중 8곳을 꼽아 역사와 방문기를 책으로 엮었다. 로마 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해온 전통적인 와인 명산지인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샤토 무통 로칠드’와 ‘샤토 라피드 로칠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다. ‘메종 루이 라투르’와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는 한 가지 품종의 포도만으로 고집스럽게 맛을 지켜 나가는 부르고뉴를 대표한다. ‘샴페인’을 생산하는 샹파뉴 지방의 와이너리 ‘모엣 샹동’과 ‘루이 로드레’도 빠질 수 없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지방의 ‘안티노리’와 ‘가야와 라 스피네타’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나열된 와이너리에서는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들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최고급 와인을 맛보기 위해서는 책값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금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을 걷다 무심결에 침을 뱉었다. 누군가 뛰어와 면봉으로 침을 찍어 재빠르게 사라진다. “뭐야! 별 미친놈 다 보겠네….” 며칠 뒤,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알츠하이머와 조울증 등 발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조사돼 우리 회사 보험에 가입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법원에서 소환장도 날아 왔다. “친자 확인 소송이 접수됐으니, 법정에 출두하시기 바랍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컵에 묻은 침과 핏자국, 머리카락 등은 모두 DNA ‘지문’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DNA 지문에는 잠재적 질병 위험은 물론, 동성애나 범죄 성향 등 개인적인 비밀이 가득하다. 이 때문에 자칫 자신도 모르게 유출된 DNA 정보가 개인의 정체성은 물론 사회적 유대관계까지 파괴할 수 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몸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혈액과 DNA, 장기, 생식물질 등은 개인 정보의 원천인 동시에 신약 개발과 질병 치료의 재료도 된다. 신체의 수요와 공급이 늘면서 계약과 보상 같은 상업 언어가 의학과 과학 분야 깊숙이 파고들었다. ‘돈’이 개입하면 ‘인간성’은 희색되기 마련. 이 책은 생명공학 시대에 나날이 커져가는 ‘인체 시장’ 실태를 파헤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윤리적 문제에 경종을 울린다.

시장 형성은 병원과 연구소가 시작했다. 이들 기관은 오래전부터 환자와 신체, 유전 정보가 자본 원천임을 깨닫고 활용했다. 이 때문에 일부 환자는 자신도 모른 채 연구 대상이 됐다.

지난 30년간 많은 미국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술을 받기 위해 찾아온 여성으로부터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난자를 채취했다. 피임약 개발 회사에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백혈병 환자는 의사로부터 수시로 골수와 피부, 정액 샘플 등을 채취당했는데, 의사는 여기서 추출한 특이한 화학물질로 특허를 출원했다.

일반인 역시 자기 몸이 금전적 자원임을 깨닫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피와 정액 등 재생 가능한 신체조직은 생계 유지 수단이 된 지 오래다. 혈액은 이미 지구상 가장 가치 있는 상품 중 하나. 석유가 배럴에 40달러에 팔릴 때 같은 양의 혈액 제품은 6만7000달러(약 6700만원)의 가치로 거래될 정도다. 혈액에 희귀 항체라도 있는 경우 그 피의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신체는 이제 상품이다. 시장에 내놓고 특허가 출원되고 매매의 대상이 됐다. 사람의 몸은 ‘살아 있는 금광’으로 전락했다. 몸의 일부를 광물처럼 추출하고 작물처럼 수확하며 천연자원처럼 캐낸다. 치료 잠재력을 가진 세포와 배아, 조직 등은 냉동 은행에 저장되고 수집소에 맡겨진다.

문제는 신체가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더 이상 그 존엄성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인간은 실험용 ‘동물’로 취급되고 신체는 수집·거래되는 ‘물건’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전시된 아인슈타인의 뇌가 대표적인 예. 1955년 숨진 아인슈타인의 부검을 맡은 의사는 사전 동의도 없이 그의 뇌를 170여 조각으로 쪼개 병에 보관했고, 이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순회 전시되는 구경거리가 돼 버렸다.





인체시장/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 지음/김명진·김병수 옮김/궁리/1만3800원


‘인체 시장에 인간은 없다!’ 세계 곳곳에서 거래되는 출처 불명의 신체 기관은 심각한 문제다. 1999년 터키 대지진 때는 희생자 시체에서 훔쳐낸 장기가 이식용으로 대량 유통됐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묘지에서 파낸 뼈가 기름과 장식용 단추로 만들어진다. 서구에서도 여전히 장례식장이나 시체보관소에서 시체가 훼손되고 장기가 도난당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고된다. 이제 불법으로 거래되는 장기와 신체는 그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조차 힘들 정도다.

과학·법률 전문가인 저자들이 다양한 사례와 실제 인터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인체 시장의 실태는 충격적이다. 이들은 신체의 상업화를 막으려는 법정 소송과 입법례 등을 소개하고 보다 강력한 법적 규제가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책과 대안을 내놓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하게 와 닿는다. “금이빨 대신에 가치 있는 효소나 호르몬 같은 것들을 뽑아가는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같은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 원제는 ‘Bod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