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권혁범 외 지음 / 삼인 / 2000년 5월
구판절판


1997년 일본 사이타마 현의 공립고등학교, 졸업식 행사에서 일장기를 게양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할 것을 지시한 교장의 조치에 반발한 학생들은 학생회 권리장전을 선포하고, 일제히 식장에서 퇴장했다. 일본의 이 학생들은 국가 권력에 의해 추상화된 민족의 권리를 거부하고 구체적인 개인의 권리를 택했다. 자율이 규율을 구축한 것이다. '자유주의사관연구회'를 비롯한 일본의 신보수 세력들은 학생들의 애국심이 땅에 떨어졌고, 그 책임은 자유주의적 학교 교육에 있다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만약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언론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자유주의사관연구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종군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사관연구회'는 한국 사회의 일반 여론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양자는 동일한 담론 구조를 갖고 있다.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코드화하는데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쪽

전통의 이름으로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아니면 민중의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린 일상적인 파시즘을 고사시키지 않는 한, 진정한 변역은 불가능하다. 독재 권력을 타도하는 싸움에 그친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수직적인 '지배'의 아비투스를 수평적인 '우애'의 아비투스로 대체하는것,그것이 혁명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는 사회의 객관적 구조와 아비투스(habitus)라는 내재화된 구조의 변증법적 매개를 통해 나온다고 한다.

여기서 아비투스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내면화된 성향의 체계로서, 인간 행동의 생산자이며 인지와 평가와 행동의 일반적 모습이다.

위의 아비투스는 '사회화된 주관성'으로 행위자로 하여금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도록 허락해주는 '행동의 연결원칙'이다. 여기서 다양한 상황이라는 것은 사회공간의 하위공간인 '장(champ)'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해석된다. 장이란 기존 행위자들간의 관계를 변형하거나 유지하려는 갈등이 일어나는 힘의 '상징적 투쟁' 공간이다.
-.쪽

이러한 반공주의의 렌즈에서는 분홍색, 주황색, 빨간색의 구분이 없다. 모두 다 '빨갱이'인 것이다. 더구나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어기는 '좌'에 대한 정치적 공간 박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좌익' '좌경'은 '위장' '폭력' '불순' '혼란'의 담론과 동일시된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전혀 좌파나 공산주의와 관계없는 영역에서의 지배적 담론에 대한 도전도 반공ㆍ용공의 이분법에 걸려 들기 쉽다. 왜냐하면 반공주의처럼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자를 순식간에 완전히 수세에 몰아넣는 좋은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 수상한 데가 있어서……' '그 사람 사상이 좀 이상한 게……'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면 그 당사자는 아무런 근거 없이도 자신을 열심히 방어해야 하는 수세적 위치에 저절로 놓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대한 혐의가 풀려도 여전히 그를 의심하는 주변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물론 과거에는 이런 혐의를 받으면 상당한 물리적 폭압의 대상이 되는 일이 빈번했다.) 당사자의 사상이나 행위가 '친북 용공' '좌경'이냐에 관계없이 이런 낙인 찍기의 효과는 발휘된다.

(중략)

「밝아오는 선진조국 자수하여 동참하자」, 「속은 인생 어제까지 밝은 생활 오늘부터」라는 구호는 그것을 읽는 주체인 '나'를 간첩으로 가정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간첩이 분명히 아닌 우리도 그것을 읽는 순간 자신이 언제고 간첩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부담을 스스로도 모르는 새 갖게 된다.-.쪽

자유보다 규율과 복종을 훨씬 더 선호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의 위협'이라는 무서운 카드가 언제든지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병역 분야까지 비판과 토론에 개방시키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와 전두환의 파시스트적인 정권이 지탱해 오는 데 크게 기여한 군대가 과거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한다면, 시민 사회가 전체주의적 국가를 완전히 개혁하였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땅에서 한 사람이라도 내무반에서 발로 차이고 주먹 세례를 당한다면, 이 나라가 자유주의 국가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개인 인간성의 황폐화, 전체 사회의 폭력화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때리고 맞는' 의무 군대는 하루빨리 사라져야하지 않겠는가.

=>병역문제는 우리사회가 해결해야하는 문제중에 하나라고 봅니다.-.쪽

'외국인'이란 상대적 개념이다. 미국인에게 한국인은 외국인이며, 한국인에게 미국인은 외국인이다. '절대적'인 외국인이란 있을 수 없다. 외국인이란 그 나라의 '국민'을 전제로 타자화된 개념일 뿐이다. 이처럼 외국인이란 그 나라의 '국민이 아닌 사람'으로서 상대화된 존재라면, 결국 '외국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국민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국민'의 존재 방식이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의 존재 방식을 규정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쪽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 '국민'이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땅에 와 있는 외국인의 삶과 인간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의미 있는 변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단일 민족 사회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우리의 의식 근저에는 단일 민족=단일 문화=단일 국가로 등치된 도식이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자연적 존재(혈통)인 민족이 인위적인 정치 공동체인 국가와 병렬되는 구도에서, 한국민의 정체성은 당연히 한민족의 정체성과 동일시된다. 같은 혈통,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단일성의 인식에서 비롯되는 강렬한 민족 의식이 한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외국인의 존재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단일 민족 의식의 본질은 한 마디로 '우리'라는 동류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한국인들의 유별난 '우리'에 대한 애착, 최준식의 표현에 따르면 "유난히 우리를 밝히는 우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한국 문화의 특성으로서 지적된 바 있다. '나의 마누라'가 아니라 '우리 마누라'라 불리며, 아는 사람에게는 인정스럽고 친절하지만 모르는 남에게는 냉담하다. 최재석은 이러한 한국인의 성향은 그 뿌리를 유교 윤리의 혈연 중심적 가족주의에 두고 있다고 파악한다.
말하자면 한국인의 '우리' 의식의 기초는 가족주의라는 이름의 혈연적 집단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의(情誼)의 집단주의이며,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한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같은 핏줄을 나눈 사이에서 형성된 집단주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혈통의 순수주의에 의하여 한층 더 강화된다. 예컨대 양자(養子)는 동족에서만 구해야 한다는 이성불양(異姓不養)의 원칙은 그러한 혈통 순수주의 한 예다.

파시즘이란 단어의 쓰임 속에서도 이러한 산재를 발견할 수 있다. 파시즘의 원어인 파시스모(fascismo)는 고대 로마 근위병의 장식인 파쇼(fascio)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무솔리니 체제의 사상적 근간인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스탈린이 혁명에 대항하는 무장 자본주의자들을 적대적으로 지시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그 쓰임이 범람하여 모든 권위주의적인 것이 이 말로 표상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파시즘에는 전체주의로부터 반혁명적 반동 의지, 그리고 권위주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이데올로기적 개념들이 집적되어 있는 셈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파시즘이란 말은 개인을 억압하고 배제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적대적으로 개념화하는 메타 언어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파시즘을 얘기할 때 그 개념은 이러한 모든 흔적들이 입회함으로써 형성되는 의미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쪽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현실이란 상징 체계를 통해서 축조해 낸 질서적 세계로서 이를 흔히 노모스(nomos)라고도 부른다. 이 노모스가 상징 체계에 의해서 축조되는 것이라면 언어는 세계와 질서를 만드는 가장 주요한 도구가 된다. 파시즘 역시 전체주의를 근간으로 이루어지는 이데올로기적 세계라고 할 때, 언어의 구조와 그 사용 습관은 파시즘의 욕망을 형성시키는 대문자 타자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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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저희 아이는 이제 여섯 살입니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불 화!’ 하고 외칩니다.…맞아요. 화로구이집의 간판을 보고 내는 소리지요.’

인터넷서점에서 한자학습 만화책 ‘마법천자문’의 독자 리뷰에 한 엄마가 올린 서평이다. 엄마들이 ‘중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책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3월 30일 11권이 출간된 지 2주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순위 1, 2위로 뛰어올랐다. 또 11권 출간을 계기로 이전에 나왔던 1∼10권이 모두 어린이책 베스트셀러 20위 내에 진입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2003년 11월 1권이 나온 이래 10권까지 합해 모두 500만 부가 팔렸고 20권이 나올 2008년에는 2000만 부도 돌파할 것으로 출판사 측은 내다보고 있다. 아무리 만화 학습도서가 인기가 있다 해도 이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공이 가능했을까. 기획의 이면을 들춰 봤다.

○ 공부도 놀이로

모든 일은 출판사 아울북 김진철(47) 상무의 ‘늦장가’에서 시작됐다. 2002년에 모기업인 ㈜북이십일은 사업분야 확장을 위해 한자학습 만화를 낸다는 방향만 잡고 진척이 없던 상태였다.

“기존의 어린이 한자교재는 어른이 봐도 재미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획수, 제자 원리를 꼭 다 알아야 하는지가 의문이었죠.”

김 상무는 “늦게 결혼해 당시 7, 5, 2세이던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데 지루해해서 별 진척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난감 칼이 레이저빔이라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다 한자를 갖고 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감전되듯” 떠올랐다.

‘바람 풍!’을 외치면 ‘우아아∼’ 하고 쓰러지고 ‘막을 방!’을 외치면 바람을 막는 놀이를 아이들과 같이 해 봤다.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책 기획의 길이 보였다.

한자와 마법을 결합해 스토리만화로 만들자는 콘셉트가 확정되면서 기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기존 한자만화는 한 권에 100자가량 들어갔지만 ‘마법천자문’은 한 권에 20자 씩만 정해 계속 반복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 영상세대의 감각을 잡아라

게임, 컴퓨터 등 멀티미디어에 익숙한 영상세대에게 한자를 스펙터클화해 ‘보여 주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었다. 교육사업본부 김창욱 팀장은 “어른은 ‘믿을 신’을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라고 철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없어 한다”며 “마법천자문은 손오공이 모두가 의심하던 동자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을 때 없어졌던 ‘믿을 신’자가 달처럼 떠오르는 등 글자의 뜻을 모두 이미지로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영상세대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대지에 칸을 만들어 그리는 기존의 만화 작법 대신 배경과 캐릭터 효과를 모두 따로 그린 뒤 각 장면을 촬영해 컴퓨터로 합성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도입했다.

김규홍 씨 등 3명의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서포팅 팀이 꾸려져 1만5000자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한자 급수에 따라 난이도를 분류하는 등의 작업을 전담했다. 보통 만화책은 6개월이면 출판되는데 ‘마법천자문’은 기획부터 첫 출판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 역시 입소문은 힘이 셌다

그렇게 해서 1, 2권을 동시에 내놓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첫 2주 동안 교보문고 전 지점에서 판매된 책은 하루 10권에도 미치지 못했다. 마케팅 팀은 책을 들고 독자를 찾아 나섰다. 수도권의 초등학교를 돌며 카드와 샘플 북을 뿌렸고 카드로 게임하는 법을 설명했다. 엄마들의 독서모임 등 ‘얼리 어댑터’가 될 만한 사람들을 집중 공략했다. 조금씩 꿈틀대던 시장이 폭발적 반응을 보인 것은 새 학기가 시작돼 입소문이 급속하게 퍼져 나간 2004년 4월부터다. 기획팀은 각 권을 출판할 때마다 아이들에게서 아이디어를 받고 아이디어가 채택된 아이들 이름을 책에 게재한다.

하지만 권을 거듭할수록 점점 두께가 얇아지고 그림만 커져 내용이 부실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김 상무는 “그림 그리는 데 오래 걸리다 보니 담을 수 있는 한자의 양에 한계가 있다”며 “암기와 학습의 대상을 놀이의 대상으로 바꾼 기획의 기조를 유지하되 난이도를 올리는 등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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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권성권 기자]
 
▲ 책 겉그림
ⓒ2006 도요새
"닭은 잠시 이승에 나타났다 달이 차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지만 태초에서 지금까지 면면히 숨을 이어온 알속의 DNA야말로 진정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이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닭이라는 생명에게는 말이다."

이는 동물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쓴 〈알이 닭을 낳는다〉는 책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그는 동물생태학자이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보다는 DNA와 같은 동물들의 속내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다른 동물들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비교하는 일도 자주 한다. 이 책도 그런 틀 속에서 나온 것인데, 그만큼 여러 동물들의 특성들과 인간사회의 특성들을 대조하여 밝힌 것이다. 가히 동물사회를 통해 인간사회가 깨닫고 배워야 할 바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동물들의 성 역할에서 주도권은 여성에게 있는데 반해 인간들의 성 역할 주도권은 유독 남성에게만 국한돼 있다는 것, 자연생태계는 그만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데 반해 유독 인간 사회에서만은 획일성만을 획득하여 천하를 평정하려는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 동물들은 번식기 50년과 번식후기 50년을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는데 반해 유독 인간들만 특히 한국사회에서만큼은 번식기에 더더욱 힘을 쏟아붓는다는 것 등이다.

실로 그렇다. 성에 관한 한 궁극적인 결정권은 거의 예외 없이 암컷에게 있다. 자연계에서 수컷들은 모두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화려한 치장을 한다. 온갖 춤과 노래를 동원하여 교태를 부리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아무리 제 스스로 잘났다고 우겨도 암컷이 잠자리를 같이 해 주지 않으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재간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수컷의 운명이란 암컷의 자비에 좌우되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인간과 거의 99%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침팬지 사회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들 사회에서 앞에 나서서 힘을 과시하는 것은 수컷이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사실 암컷이 지니고 있다. 이는 해마나 해룡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교미를 마친 후 수컷이 수정란을 자신의 배 주머니 속에 키운다. 그만큼 수컷이 많은 투자를 하는데도 그 선택권은 어김없이 암컷에게 있는 것이다. 공작새의 수컷도 그렇다. 그들은 보기에도 거북할 정도로 버거운 깃털들을 몸에 붙이고 다닌다. 그만큼 암컷에게 아양을 떨고 잘 보이기 위함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유독 인간사회에서만큼은,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남성 중심·부계중심의 사회를 강조하고 있는 인상을 지을 수가 없다. 지금은 부계중심이었던 호주제를 그나마 뜯어고쳤지만 아직도 바꾸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이미 스웨덴과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장관의 반 이상이 여성이거나 후보 공천에서도 남녀 후보자를 동등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우리 나라만큼은 아직까지도 남성중심의 장관직을 떠받들고 있다. 그 숲 속에 언제까지 머물러 있어야 할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연생태계의 다양성 차원에서,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의 유명한 생태학자 페인 교수가 그런 실험을 했다고 한다. 바닷가 웅덩이 군집들을 두 부류로 나누고 한쪽 부류에서는 불가사리를 계속 제거했고, 다른 부류는 그대로 두었단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발견하게 된 것은, 불가사리를 제거한 곳에서 훨씬 적은 수의 종들만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나라 정부의 규제 모습이지 않나 싶다. 정부가 할 일이 있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불가사리의 역할일 것이다. 이른바 시장 속에서 다양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장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게 놔두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수한 기업이 독점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 모습이다. 너무 풀어놓아 황량한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지 않게 하고, 너무 월등한 우수 기업이 독점하여 소비자들이 골탕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생태계나 시장경제나 할 것 없이 다양성을 잃으면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불가사리는 결코 씨를 말릴 종들을 미리 결정하지 않는다. 정부의 간섭도 기업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확보하는 수준에서 멈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25쪽)

동물들의 번식기 50년과 번식후기 50년, 그것과 관련해서 그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책을 이미 펴낸 바 있다. 거기에서 강조한 것이 있다면, 유독 인간들만 번식기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번식후기는 그저 잉여시기나 되는 것처럼 엉거주춤 따라가도록 내버려두며 산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지 않았나 싶다.

이제 우리 나라도 2020년이 되면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5세 미만 어린이 인구를 앞지를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국정부는 최근 70세를 정년으로 연장하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번식 후기 50년을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가 말하는 '인생 이모작'을 지금부터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덧붙일 게 있다. 그것은 우리사회와 우리 나라가 위기관리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그것을 개미군락의 노동활동에 빗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언뜻 보면 개미사회에서 일을 하는 것들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을 뿐, 나머지 3분의 2는 놀고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 놈팡이 개미들은 단순히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방대원들과 같이 '대기조' 대원에 해당된다고 한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에 대비하여 늘 긴장 상태로 대기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개미사회는 그들이 가진 잠재노동력의 3분의 2를 위기관리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배워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을 가리켜 세계 어느 누구 하나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떠한가? 죽도록 일하여 많은 것을 쌓았지만 그 탑이 허물어지는 순간도 모를 때가 많지 않는가. 그만큼 위기관리에 투자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사회가 개미사회처럼 어떠한 위기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사회 구조를 탄탄하게 확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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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파헤치기’ 돌아온 댄 브라운


‘천사와 악마’에서 바티칸의 비밀을, ‘다빈치 코드’에서 성배의 진실을 파헤치며 전세계에 ‘팩션’ 돌풍을 일으킨 댄브라운이 이번엔 워싱턴의 충격적인 정치적 스캔들로 한국 독자와 만난다.

대교베텔스만에서 최근 출간된 ‘디셉션 포인트’는 2001년 발표된 댄브라운 최초의 정치 스릴러. 댄브라운 특유의 음모와 반전의 틀 속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워싱턴 정계의 추악한 파워게임의 이면을 담았다. 특히 최첨단 과학기술의 메카인 미항공우주국(NASA)이 정치적 음모의 핵심기지로 등장하고 북극 빙하지대에서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진다는 설정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NASA를 지지하며 우주에 미래가 있다고 믿는 현 대통령은 NASA가 그동안 여러 차례의 실패로 국민 혈세를 낭비했다고 지탄하는 대권 경쟁자 세지윅 섹스턴 때문에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시점에 NASA가 우주 생물의 화석이 담긴 거대 운석을 빙하 속에서 발견하면서 NASA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상승하고 덩달아 대통령의 입지도 굳어진다.

그러나 운석 검증을 위해 초빙된 민간 과학자들은 뜻하지 않게 운석에 얽힌 거대한 음모를 알게 되고 ‘금기’를 알아버린 과학자들은 ‘살인부대’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운석의 비밀과 그 뒤에 도사린 음모는 무엇이며 또 이 모든 정치극을 지휘한 배후 인물은 누굴까.

댄브라운은 이번 소설에서도 ‘팩션’의 강자다운 면모를 보인다.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원격조종 초소형 로봇, 지질 단층 분석과 해빙 관찰 등에 쓰이는 인공위성 EOS, 현장에 있는 자원으로 즉석에서 만드는 IM무기 등 소설에 등장하는 첨단 기기와 기술들은 모두 실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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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이사를 가니 대략 한달간은 책 읽기 힘들테니, 지금 읽어둬야할것 같아요.

이번 5월에는 만화가 대략 30권이니 왠지 100권을 읽을수 있을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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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