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우리 속담에 '신발 속에 똥을 넣고 다니나, 키도 잘 큰다'는 말이 있다. 한창 자라는 아이에게 던지는 덕담이다. 똥을 감나무 밑동에 묻으면 잎이 텁텁한 색깔로 바뀌면서 감이 주렁주렁 잘 영근다. 그러니 똥 담은 신발을 신으면 아이가 그만큼 튼실하게 자랄 것이라는 재치 있는 비유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똥은 더없이 고마운 존재였다. 밭일을 하다가도 뒤가 마려우면 헐레벌떡 집에 가 똥을 누고 나갔다. 내 똥을 헛되이 버리지 않고 내 집 안에 잘 챙겨두기 위해서였다.

아장아장 걷는 서너 살 배기부터 예닐곱 살 어린이까지 맘에 드는 책을 골라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똥이야기가 들어간 이른바 '똥그림책'을 집는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사계절)로 똥의 세계에 입문한 어린이들은 '똥이 풍덩'(알로나 프랑켈 지음, 비룡소), '밤똥참기'(이춘희 글, 심은숙 그림, 언어세상)과 함께 배변 훈련을 하고, '누구나 눈다'(고미 타로 글.그림, 한림출판사)를 읽으며 각양각색의 똥을 그리는 데 탐닉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강아지똥'(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을 선물 받고 똥의 설움에 함께 눈물지으며 마음의 키를 키운다.

아이들은 왜 똥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독일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유아기의 어린이들은 이른바 '항문기'로서 배설의 기쁨을 이해하고 배설과 관련된 행위를 즐긴다고 한다. 그들이 똥과 만나고 똥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신적 성숙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린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믿고 똥에 관한 동화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경향이 있다. 똥이 서사의 중심에 있지 않은 데도 일부러 '똥'을 강조한 제목을 지어서 어린이들의 눈길만 잡아두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 연이어 출간된 '똥'과 '방귀'에 대한 몇 편의 책은 '똥'의 재미와 더불어 굵직한 이야기의 힘까지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똥장군'(김정희 글.그림, 한림출판사)은 똥지게 지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는 영재의 이야기다. 영재네 식구에게 똥 푸는 일은 소중한 밥줄이지만 영재는 왜 하필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일을 해야 하는 지 속상할 따름이다. 특히 짓궂은 병호는 앞장서서 영재를 놀린다. 하지만 큰 비가 지나가고 병호네 집 마당에 똥물이 넘치면서 영재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가 한 명 더 늘게 된다. 똥의 소중함을 크게 외치지 않지만 똥도, 똥을 다루는 직업도, 똥 냄새 나는 친구도 모두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탄탄한 그림책이다.

'아니, 방귀 뽕나무'(김은영 글, 정성화 그림, 사계절)는 말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는 '뽕' '뿌웅''질펀한' 같은 낱말이 얼마나 멋진 시어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유쾌한 동시집이다. 변비에 걸려 헛방귀만 푹푹 뀌는 기분, 남은 오줌이 바지에 찔끔 묻었을 때의 찜찜함, '구린내 나는 똥구슬'인 은행알이 후두둑 떨어지는 날의 강렬한 후각적 경험까지 마치 '내 똥 얘기'를 하는 것처럼 친근하다. 그밖에 '방귀 대장 버티 네가 뀐 거니?'(데이비드 로버츠 글, 미디어2.0)에는 방귀의 책임을 피하려는 점잖은 어른들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다. '긴급출동! 춤추는 악어, 알베르토를 찾아라'(리처드 워링 글, 중앙출판사)는 실수로 변기에 빠진 악어가 하수관을 통해 세상을 떠돌며 변기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색다른 모험담이다.

'똥'이라고 하면 눈살부터 찌푸리기 일쑤인 어른들로서는 소리 내어 읽기도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그러기에 알려드리는 비법 한 가지. 평소에 근엄하기 짝이 없던 '리모콘 박사' 아버지가 가정의 달을 맞아 생생한 의성어를 발음하며 신나는 똥 얘기를 읽어줘보자. 똥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지닌 우리 아이들이 똥 냄새보다 몇 배 더 진한 아빠의 정을 담뿍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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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선민] 개구리와 뱀

도토리 글, 이주용 그림,

보리, 92쪽, 2만5000원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 엄마라면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 시리즈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세 권짜리 다섯 세트로 된 이 시리즈는 동물.식물.곤충 등을 세밀화로 그린 것으로, 아동 도서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이 시리즈를 냈던 보리출판사가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한 '보리 어린이 첫 도감' 첫 번째인 '개구리와 뱀'을 내놨다.

일단 '세밀화로…' 보다 훨씬 판형이 커져 시원시원한 느낌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양서류 14종, 파충류 18종을 세밀화로 담았다. 대상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세밀화는 초점이 한 군데로 집중되는 사진과 달리 생명체의 여러 측면을 골고루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의 선과 색도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 한 몫 거든다. 각 페이지에 곁들인 관련 상식도 충실한 편이다. 우리가 도마뱀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대부분 아무르장지뱀이라든지, 청개구리는 '개골 개골' 우는 게 아니라 '깩 깩 깩 깩'하고 운다든지 하는 얘기를 학자, 환경운동가, 현지 주민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알기 쉽게 정리했다. 그림을 맡은 이주용 화백은 강원도 산골부터 제주도까지 3년간 전국을 누비며 살아있는 동물을 보고 그렸다. 자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막상 자연에 나가서도 동물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보면서 공부할 만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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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형모] 가로세로 세계사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36쪽, 1만1900원

가로 5㎝, 세로 4.7㎝. 이 작은 직사각형이 그의 무대다. 성냥갑만한 크기라고 비웃지 마시라.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의 삶이 그 속에서 술술 흘러나오고 있으니. 이원복(60)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로 교양만화의 새 장을 개척한 그다.

지난해 1월 총 12권으로 20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 지은 그가 1년여 만에 신간을 들고 돌아왔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속편 격인 '가로세로 세계사'다.

전작이 미국.일본.유럽 등 잘 사는 나라를 둘러보고 우리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는 의도를 담은 강대국 위주의 세계사였다면 신작은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나머지 반쪽의 세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권 '발칸반도, 강인한 민족들의 땅'에서는 민족주의를 집중 조명했다.

그리스.루마니아.불가리아의 분쟁의 역사를 각종 자료와 답사를 통해 느낀 경험을 녹여 정리했다.

페이지마다 직사각형 12개가 촘촘하게 만들어내는, 그 속을 꾹꾹 눌러 채운 정보의 양은 여전하다. "그냥 죽 훑어볼 수 있는 책은 만들고 싶지 않다"는 각오 때문이다.

백인의 시각으로 보는 세계사가 아닌, 우리의 관점에서 따지고 분석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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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선민] 올림픽 인사이드 (원제 Olympic Turnaround)

마이클 패인 지음, 차형석.최욱상 옮김

베리타스북스, 445쪽, 1만8000원

'올림픽은 4년마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1980년대 초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기는커녕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79년 이란 과격파 학생들의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이듬해 미국을 비롯한 65개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했고, 소련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84년 LA 올림픽에 공산권 국가들을 참가시키지 않겠다고 으르렁댔다.

비둘기가 날아다녀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살얼음판이 된 것이다. 게다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현금성 자산이 20만 달러밖에 안 되는 초유의 재정난에 몰려 있었다. 국제연합(UN)이 능력 없는 IOC 대신 올림픽을 직접 주관하겠다고 나서는 판국이었다. '올림픽 인사이드'는 세계 각국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을 자살 행위로 받아들였"을 정도로 사면초가에 몰려 있던 올림픽과 IOC의 드라마틱한 부활 이야기다.

최근 25년간 올림픽에 얽힌 사건과 비화가 궁금하다면 이 책부터 뒤적여봄직 하다. 마침 한 달 뒤는 독일월드컵 개막. 월드컵과 함께 지구촌의 대표적인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는 그만큼 뒷얘기가 많이 숨어있다. 대표적인 것이 "올림픽을 멸종 위기에서 구한 인물"인 사마란치가 IOC 재정 확충을 위해 도입한 방송중계권 입찰이다.

IOC는 입찰 장소를 미국이 아니라 스위스 로잔으로 정해 시차 탓에 방송사 협상팀이 본사와의 연락을 긴밀히 할 수 없도록 하거나, 입찰 순서를 동전 던지기로 정하게 해 방송사들의 허를 찌르는 식으로 치밀한 전략을 세운다. 저자가 '전갈전쟁'이라 부르는 NBC.ABC.CBS 등 미 3대 방송사의 불꽃 튀는 입찰 경쟁은 마치 첩보소설처럼 묘사된다.

막대한 광고 수입을 포기하기 힘들었던 세 마리의 '전갈'은 IOC의 '농간'에 휘말렸다는 찜찜함을 애써 무시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결국 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방송중계권 협상에서 ABC는 4년 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때보다 무려 337% 오른 2억1750만 달러에 중계권을 따낸다. ABC는 "미국 스포츠 방송 사상 가장 실망스럽고 분노스러운 터무니없는 협상"을 끝내고 쓴 입맛을 다시며 비행기에 오른다. 이후 TV중계권 협상은 "고액의 판돈을 건 포커놀음"이 돼버렸다.

이 책에는 이렇듯 흥미진진한 뒷얘기들이 줄을 잇는다. 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비둘기들이 하도 오랫동안 갇혀 있다 풀려나는 바람에 입장하던 선수들 머리 위에 '실례'를 해버렸다거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기간 중 NBC가 스태프의 '마실 권리'를 존중해 스타벅스 커피 7264㎏을 본국에서 공수했다는 일화 등은 지엽적인 예에 불과하다. LA 시민의 83%가 반대하는 바람에 LA 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최초로 시와 정부가 아닌 피터 위버로스라는 개인의 영리단체가 개최했다는 '올림픽 상식'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와 함께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 중 하나는 세계의 유수한 대기업들과 '올림픽 마케팅'에 얽힌 갖가지 사례다.

'TOP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올림픽 마케팅은 IOC가 방송중계권 입찰과 함께 재정 회복을 위해 꺼내든 회심의 카드였다. 각국의 올림픽위원회들을 단일화하고 모든 마케팅 권한을 4년간 독점 패키지로 묶는 식의 스폰서 프로그램을 만든 뒤 대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한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교차되는 기업들의 명암은 마케팅 참고서라고 해도 될 만큼 생생하다. "아멕스의 가슴에 비수를 꽂겠다"는 각오로 달려든 비자 카드, 발빠른 의사결정으로 코닥이 다 따놓은 올림픽 후원권을 낼름 가로챈 후지, 가격 조정을 하려 머뭇거린 모토롤라의 자리를 파고들어 결국 수 년 후 세계 이동통신시장 2위로 급부상한 삼성 등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마케팅 기법들이 당시 어떻게 성공적으로 적용됐는가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저자 마이클 패인은 사마란치 위원장 밑에서 올림픽 마케팅 프로그램 개발을 실무 지휘했다. 핵심 관계자여서인지 올림픽의 속내(인사이드)를 마치 영화 보듯 세세한 대목까지 파고 들어가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지루한 '올림픽 연대기'를 예상했다면 멋지게 배반 당할지 모른다.

저자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 비즈니스 이야기"라고 소개했듯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 그를 통한 인류 평화의 구현 등보다는 올림픽의 숨은 메커니즘과 작동 원리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더 걸맞는 책이다. 한 마디로 돈 냄새가 물씬 난다. 그래서인지 꽤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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