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발생한 낙산사 화재로 국가 보물인 동종 하나를 잃었다. 이는 단순히 동으로 만든 조형물 하나가 불에 녹아내린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동종을 소실함으로써 ‘낙산팔경’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게 심금을 울려주던 종소리도 함께 떠나보낸 것이다.
한국의 종은 독특하다. 중국, 일본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모양도, 소리도 같지 않다. 한국 종은 특히 장중하면서도 청아한 긴 여음을 울려낸다. 중국 종 소리는 둔탁하고 잡음이 많다. 여음도 길지 않다. 일본 종 소리는 가슴속 깊이 울려퍼지는 맛이 없다. 한국 종이 심금을 울리는 원천은 맥놀이. 진동수가 다른 두 음이 겹쳤을 때 소리가 서로 간섭하여 주기적으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이다. 맥이 살아 뛰는 것처럼 끊어질 듯 되살아나는 것이 한국 종의 특징이다.
한국 종을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음통이다. 음관과 용통,
만파식적 등으로도 불리는 음통은 종 꼭대기에 원통이 솟은 모양으로 장식돼 있다. 음통 탄생의 일반적 가설은 둘로 나뉜다. 중국 주대 유행한 용종을 모방했다는 주장과 신라대 만파식적을 상징해 만들었다는 설. 저자는 음통이 대나무 형상인 점과 용이 바다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모습인 것 등이 만파식적 전설과 들어맞는다며 후자에 힘을 싣는다.
이 책은 ‘
선덕대왕신종(
에밀레종)’과 낙산사 ‘동종’,
상원사 ‘개원13년명동종’ 등 대표적인 한국 종의 탄생과 역사, 특징, 문화재적 가치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이 책에서는 종을 형성하고 있는 음통과 종유,
비천상, 당좌, 하대 등이 뛰어난 사진예술로 다시 태어난다. 이들은 종의 일부가 아니라 각각 개별 문화재 작품으로 착각할 만큼 조형미가 뛰어나 우리 종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현재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이자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제목인 범종은 불가에서 사용하는 종, 즉 불교의 종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