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버지니아 울프를 가리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라고 한다. 지난 세기 초에 발표된 작품들이지만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의 의미와 성별과 경제력에 의해 존재가 규정되는 현실을 직시한 문제의식은 오늘날에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없으며,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꿰뚫는 통찰력과 그것을 풀어낸 섬세하고 생생한 표현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신선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신이 태어나 살아가야 했던 그 시대가 갑갑하고 불편하진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급진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 저항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시대의 맹목적인 믿음에서 탈피할 대안을 추구하고, 20세기 초반의 세계가 통과했던 힘겨운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새로운 실험과 색다른 표현으로 낡고 무신경한 구시대의 공식과 관습을 거부했을 것이고, 모두가 똑같이 존재하고 사고하고 획일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강요된 순응을 갑갑해했을 것이다. -.쪽
시대를 앞서간 새로움, 등장인물의 세밀한 초상이나 맥락을 파악할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는커녕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의 흐름 속으로 독자를 밀어 넣고는 독자 스스로 파악하고, 느끼고, 깨닫기를 바라는 울프의 스타일은 그녀에게 "난해하다"는 꼬리표를 달아 주었다.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지나치게 어렵다는 평가는 지금까지도 그녀가 대중들과의 거리를 충분히 좁히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 선입견을 버리고 울프의 작품을 접하고 나면 그녀가 얼마나 매혹적인 실험주의자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이 아닌,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에 담긴 섬세한 결을 내부자의 시각으로 포착해내는 솜씨는 그만큼 탁월하고 매력적이다.
울프는 페미니즘의 사상적 토대가 된 여러 에세이와 소설을 발표했지만, 그러면서도 성별의 차이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출 경우 글의 내용과 그것을 쓰는 방식이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경고했으며, 작가는 남녀양성의 특징을 고루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남과 여, 선과 악, 백과 흑의 대립과 분리를 강요하고 타인의 패배로부터 승리를 추수하려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거부했다. 가부장적인 시대의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평생 모더니스트이자 평화주의자로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 시대를 앞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동시대로부터 엇갈린 평가를받고, 시대의 이해를 넘어선 지점으로 나아감으로써 "난해하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던 버지니아 울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울프를 새롭게 읽고 조명할 적기일지도 모른다.-.쪽
울프는 플롯에 얽매이기보다 사건을 따라가며 재창조하고, 그것을 통해 삶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녀의 글이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쪽
울프의 작품과 인식은 수많은 페미니즘 계열의 위대한 사상가와 소설가, 그리고 시인들이 활약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울프의 글이 페미니즘의 토대가 되긴 했어도, 차이에 대한 울프의 발언을 페미니즘으로만 국한해서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실제로 울프는 우리가 성별의 차이에만 집중하면 우리가 쓰는 내용과 그것을 쓰는 방식이 비틀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성 독자들, 특히 사고방식이나 관계 맺기, 삶의 의미와 세월의 영향, 그리고 변하지 않는 가치처럼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성찰하고자 하는 남성들은 여성 독자와 다름없이 울프의 작품에 매료된다. 울프는 이런 생각과 질문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제기한다. 일례로 램지 씨(≪등대로≫)는 우리가 성취한 모든 업적들 중에 영속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램지 부인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계속 사랑하고 함께 사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또 버나드(≪파도≫)는 사람은 누구나 지나온 경험과 교우하는 친구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울프는 다른 작가들에 대해 대단히 정확하고 명쾌한 비평과 분석의 글을 쓰기도 했다.-.쪽
우울의 수렁
1929~1931년에 쓴 ≪파도≫에서 울프의 실험은 새로운 정점에 도달한다. 사회참여와 맞물린 시점에 쓴 일기에서 그녀는 자아와 현실의 규정, 자아와 외부 세계를 언급하는데, 이는 후에 소설에서 더 깊이 다뤄진다. 여성봉사단체의 런던 지부에서 연설을 하며 평화주의적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질을 발현하기 시작하고, 여기서 나온 것이 <3기니>와 ≪세월≫이다. 울프는 평화주의자였고, 2차대전이 일어나자 세계가 직면하게 된 가치의 박탈을 안타깝게 토로했다. 그녀는 소설을 탈고하면 우울증에 빠질 때가 많았는데, ≪세월≫이 끝났을 땐 전쟁의 두려움까지 겹쳐지면서 결국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과중한 무게가 되고 말았다.
추운 겨울, 그리고 작품에 대한 불만과 시골 생활에 대한 환멸까지 더해져서 이 모든 것이 그녀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느 추운 날 아침, 버지니아 울프는 주머니에 돌을 집어넣고 우즈 강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쪽
핵심개념
프랑스 페미니스트 _ 줄리아 크리스테바, 엘렌 식수, 루스 이리가리. 1970년대 이후에 활동한 프랑스 페미니즘 사상가와 비평가들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의 영향을 받아 그의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라캉 자신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추종하며 그를 재해색했다.
엘렌 식수(Helene Cixous)는 <메두사의 웃음>에서 세계가 이분법적 대립, 즉 선/악, 흑/백, 남/녀, 자아/타자의 양극적인 양상으로 비춰져왔으며, 이런 경직된 세계관이 분열과 적대감, 영역행태, 계층제, 경계선,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쟁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울프도 <3기니>와 두 성이 가진 특징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남녀양성론이라는 개념을 통해 거의 똑같은 주장을 전개했다. 식수는 기분과 흐름을 포착하고, 창의적이며 유기적인 여성의 글이 지닌 유연함과 유동성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거부하지만, 그걸 인식하기 위해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요소를 타인에게 투영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반감이나 혐오는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경향이 있으며, 우리는 자기 자신 속의 타자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한 엄밀한 연대기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느끼는 그대로의 '여성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기도 했다.
루스 이리가리(Luce Irigaray)는 ≪새로 태어난 여성≫에서 어머니와 자녀간의 관계의 중요성,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연결고리로서의 여성과 그들의 몸에 대해 이야기한다.-.쪽
내면에서 바라보는 인생
울프의 소설은 플롯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내면, 즉 생각과 감각을 통해 경험을 묘사해낸다. 예를 들어 애증이 얽힌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식사를 할 때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갖게 되는 뒤섞인 감정과 반응을 어떻게 표현하고 묘사하는지 잘 보여준다(≪등대로≫). 우리라면 과연 그런 감정에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하게 하는 한편으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또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지를 눈여겨보게 만드는 것이 작가 울프가 지닌 능력이다. 예를 들어 ≪등대로≫나 ≪파도≫에서는 배우자와 친구와 가족의 거슬리거나 정겨운 습관에 대한 반응을 접하게 된다. 현재를 경험하면서 미래를 내다보고 예측하는 동시에 과거의 생각과 경험과 느낌을 되돌아본다. 울프는 등장인물들의 현실과 경험, 그리고 느낌을 포착해내는 한편,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현실'이라는 말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한다. 울프의 글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 어떤 식으로 경험을 하며, 그 경험을 어떻게 반추하는지를 보다 또렷이 깨닫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런 경험을 어떻게 하면 새로운 형식으로, 이른바 실험적인 글쓰기라고 일컫는 방식으로 고찰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글은 의식의 경계를 넘나들고,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말과 이미지, 생각의 패턴과 각각의 고유한 행동으로 이루어지며, 주관적인 생각과 실제의 사건들을 들고 난다. -.쪽
아무래도 여성 독자들이 울프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여성들이 동질감을 느낄 만한 삶을 다루고, 그에 대해 대단히 분명한 발언을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울프의 동시대 작가들-웰스, 베넷, 골즈워디 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고, 로렌스나 조이스(이들도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경향이 짙었다) 같은 위대한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통찰력이 두드러지는 몇몇 부분에서나 접할 수 있는 특징이다. 울프의 발언, 그리고 여성의 의식과 가치, 체험과 믿음에 대해 쓰는 방식은 이후 여성들의 글쓰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온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인생에서 취하는 서로 다른 우선순위가 강조된다. 그리고 단순히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을 성찰하고 표현하는 작업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이 중시하는 경험이 남성과는 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걸 나타내고 묘사할 때에도 다른 종류의 언어와 표현과 이미지를 사용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쪽
버지니아 울프는 매혹적인 실험주의 작가다. 그녀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내부자의 관점에서 다룬다. 뿐만 아니라 오만과 위선과 어리석음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기분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그렇게 볼 때 울프의 작품을 난해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놀라운 노릇이다. 그녀의 작품은 끝까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데, 그에 따른 성취감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일단 울프의 문체와 통찰력, 그리고 정형적인 패턴을 따르기보다 상념의 흐름에 맞는 문장을 구성해내는 그녀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나면 왜 이걸 그토록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의아해질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난해하다는 명성을 얻게 된 까닭은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세밀한 초상과 맥락, 배경 또는 무대와 관련된 사실적이고 역사적인 소품들을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의 기분을 맞춰 주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기는커녕 이야기의 한복판, 또는 어떤 문장이나 경험의 끝부분으로 느닷없이 독자들을 밀어 넣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울프는 독자들이 소설에 대해 갖는 기대에 부응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생생한 체험'을 포착하고자 했던 동시대의 모더니즘 작가들-조이스, 포스터, 맨스필드 등-과 궤를 같이 한다.-.쪽
≪등대로≫는 울프의 방식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를 이해하려면 적극적인 독서가 요구된다. 주어진 정보와 견해를 잘 맞춰서 이야기와 인물을 조합하고, 주제와 논점을 해석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울프는 어떤 구체적인 순간에 한 개인이 갖는, 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갖는 경험과 느낌, 상념과 감정을 기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후자의 경우를 상호주관성이라고 칭한다.
내면의 감정과 반응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울프는 그런 것들이 외부의 세계에 의해, 또는 외부 세계와 사회의 변화, 역사적이거나 정치적인 경향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촉발되는가를 언급한다. 그녀의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발표됐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한 가지 주제는 사회적 관계를 체험하는 남성과 여성간의 방식의 차이이다.-.쪽
울프는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의 태도에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보여준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명확히 이야기하지만 제임스의 마음, 말보다는 이미지와 감정으로 채워진 그 마음을 옮겨 적는다. 다음 문장에서는 '칼처럼 깡마른' 모습으로 서서 비꼬듯이 웃으며 오로지 제임스의 꿈을 깨는 것이 주된 목적인 램지 씨를 바라보는 제임스의 생각으로 넘어간다. 제임스의 눈으로 램지 씨가 묘사되는 동안 화자의 목소리는 슬그머니 램지 씨 본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과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모든 감정이 기록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할 법한 그런 문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를 자유간접화법이라고 부른다.
핵심개념
자유간접화법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제인 오스틴이다. 이는 누군가가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듯이 기록하는 형식으로, 해당 인물이 사용함직한 문구와 이미지로 상황을 묘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물의 생각에서 저 인물의 생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뚝뚝 끊어지지 않고 매끄럽다. 여기서의 관건은 그 인물이 사용할 만한 언어와 표현으로 행동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유간전화법을 이용하면 사람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오가며 경험의 공유를 형성할 수 있다.-.쪽
1925년에는 평생 서재로 사용한 몽크스 하우스에서 ≪등대로≫를 쓰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녀는 부모님의 삶과 자신의 어린시절을 탐구하고 표현해내면서 정신분석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램지 가의 가부장적인 가풍이 엿보이고, 릴리가 페미니스트라는 게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램지 씨는 영웅적인 독재자로 그려지는 데 반해 램지 부인은 카리스마를 지닌 대지의 어머니와 여족장의 이미지를 갖는다. 비평가 허마이오니 리는 ≪등대로≫를 상실과 비탄의 책이라고 얘기하면서, 이 책이 열 단어의 문장으로 시작하고 끝나는데, 두 문장 모두 으레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래'라는 말로 시작된다는 점을 지적한다.-.쪽
글쓰기의 불균형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언어와 표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무시되고 과소평가되었다는 게 울프의 주장이다.
여성들이 쓰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쓸 수 있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기법적인 어려움이 있다. 보기에는 너무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난감한 문제인 것이, 문장의 형식 자체가 여성들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문장이다. 여성들이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방만하고, 지나치게 묵직하고, 지나치게 거들먹거리는 문장이다. (울프, <여성과 소설>, ≪포럼≫, 1928)
여성의 글이 남성의 글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동안 여성의 경험과 표현이 문학으로부터 배제되거나 폄하되었으며, 이제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뿐이다.-.쪽
20세기 들어와서 의식의 흐름과 내면의 독백이라는 형식을 추구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말론의 죽음≫ ●도리스 레싱은 전쟁, 여성, 상상력 등 울프에게서 시작된 여러 논의를 이어갔다. 그녀의 ≪황금 노트북≫, ≪어두워지기 전의 여름≫, ≪지옥으로의 추락에 대한 짧은 보고서≫는 대단히 힘있는 소설이다. 레싱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 광기나 신경쇠약에 대한 해석에 집중하며, 그것을 돌파구로 이해한다. ●안젤라 카터의 ≪마법 장난감가게≫, ≪서커스의 밤≫ 그리고 재닛 윈터슨(스스로 울프의 문체와 관심을 상속했다고 이야기하는)의 ≪오렌지만 과일은 아니다≫, ≪체리 떼기≫ 등도 읽어보자. 우리 시대의 이런 여성 작가들 역시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주목하며, 울프처럼 대단히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한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같은 계보였군요. 이 책 읽고 얼마나 머리를 쥐어 뜯어댔었는데^^-.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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