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유물은 상당수 가짜다’ ‘유명한 고고학자들의 발굴 작업은 조작이었다’ ‘이 모두는 국가적, 사상적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조작되었다’

현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세계 역사가 조작되었는지 밝혀낸 <조작된 역사>(생각하는 백성. 2006) 가 제기한 문제적 발언들이다.

30년 넘게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일에 매달려 온 저자 우베 토퍼는 수십 년간 유럽의 역사 서술을 바꾸려는 연구를 거듭해왔다. <거인족의 유산> <부활 : 민족 고유의 지식> <마지막 책> <거대한 음모> 등은 주목받는 그의 저서 목록이다.

저자는 <조작된 역사>를 통해 실제 있었던 역사를 의식적으로 바꾸어 놓는 행위 자체, 조작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나는 잘못된 역사 이해와 역사 조작을 구분하려고 한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은 학자라도 마찬가지인 만큼 학계에서 벌어지는 실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를 잘못 이해하게 만든,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역사 조작들이다”

책에 따르면 역사 조작은 항상 어떤 악의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 뒤에 이데올로기적 혹은 종교적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한다. 오늘날 우리의 세계관과 학문 그리고 믿음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 졌고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인지 추적해 나간다.

세계적인 고대 문명과 10세기까지의 가톨릭 문헌 자료, 아이작 뉴턴의 연대기 논쟁, 성경 그리고 게르만족과 로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동한 저자의 호기심이 조작된 역사의 흔적을 뒤쫓는다.

국내 정세와 세계정세의 흐름 속에 있는 민족, 지역, 국가 이기주의적인 정보 공세를 통해 "현대의 역사는 어떤 방식으로 조작될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도록 돕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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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소민 기자]
 
▲ <전라도 우리 탯말> 겉그림
ⓒ2006 소금나무
그간 탯말(사투리)의 중요성이나 활용을 적극 주장하는 책들은 많이 나왔으나 정작 그것 자체의 모양과 쓰임에 대해서 근접한 책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 정도가 될까. 간혹 생소한 탯말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해당 지역 토박이들이나 주위 어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감으로 지레짐작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탯말의 뜻과 의미를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변변한 길라잡이 하나 없었던 게 우리네 현실.

이러한 분위기에 이번에 출간된 <전라도 우리 탯말>은 전라도 탯말에 궁금증을 가졌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희소식임이 분명하다. 탯말을 연구하는 모임인 '탯말두레' 회원들이 지난 1년여동안 발품을 들이면서 모은 전라도의 주옥같은 탯말이 하나의 결실로 태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사전에서만 존재하는 죽은 언어로서가 아닌 실생활에서 부대끼고 팔딱팔딱 살아숨쉬는 생명력있는 언어로서의 탯말 모음집인 것이다. 봄날 산자락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이름도 없고 화려하지 않지만 원시적 순수함을 가득 품은 들꽃을 하나하나 거두는 마음으로 전라도 탯말을 수집했을 저자의 정성어린 노고가 그대로 가슴에 전달되는 책이기도 하다.

즌라도 사투리요? 일단 한번 맛보시랑께요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이 참 재미있다. 전라도 탯말의 성격과 특징, 발달이나 변천사와 같이 어렵고 머리 아픈 이론은 건너뛰고 곧바로 한상 가득 푸짐한 잔칫상을 벌려놓듯 전라도 탯말의 성찬을 '턱허니' 보여준다. 일단 맛부터 보라는 것이다. 말맛은 직접 말하고 읽어보아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입말일 때야 더 말할나위 없다. 이 책은 따라서 소리 내어 읽어야 제 맛이다.

제1장 '문학 작품속의 우리 탯말'에서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우뚝 솟은 두 작품,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최명희의 <혼불>에서 전라도 탯말이 어떻게 쓰였고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살펴보았다. 그 외 전라도 맛 말이 구성지게 드러난 김영랑 시인의 작품 몇 편과 차범석의 '옥단어'에 나타난 전라도 탯말을 통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작품의 읽는 기쁨을 한층 더 해준다.

2장 '탯말 예화'는 전라도 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소박하고 재미있는 풍경을 드라마 형식으로 꾸민 것이다. 걸쭉하고 구수한 전라도 탯말로 쓰인 이 단락은 반드시 소리 내어 장단과 고저를 알맞게 구사하며 읽어야한다. 그 밑에는 전라도 탯말에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부가로 설명을 해놓았다.

여기에 중간중간 전라도 탯말의 특징도 함께 소개해놓았다. 음운현상과 같은 언어학적 특성이야 그만두고 전체적인 특징을 크게 잘라보면 '강조'(허벌나게, 겁나게, 징허게, 환장하게, 당최 등)의 표현의 다양성과 걸쭉한 입담 표현이 그 대표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3장 '탯말 독해'에서는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잊혀져가는 탯말들을 발굴해내어 소개했다. '독해'라는 작업이 꼭 필요할 만큼 생소하고 낯선 낱말들이 많다. 전라도 토박이인 기자가 읽어보아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 그러나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이 흔하게 쓰던 우리말이다.

술취해서 아모에게나 개기던 짓꺼리가 개덕도 안나냐

(독해) -> 술취해서 아무에게나 시비 걸던 짓거리가 생각도 안나냐

공거래 장시가 고벵이에 앙근 포리를 쫓고 있다

(독해> -> 소의 내장과 뼈의 장사가 소 무릎뼈에 앉은 파리를 쫓고 있다

쪼깐 해찰하믄 져태있는 것도 돔바간에 징해서 못살긋소

(독해) ->조금 정신 팔면 곁에 있는 것도 훔쳐가니까 징그러워서 못살겠소


이쯤이면 아무리 전라도 토박이라도 독해가 필요한 지경이다. 4장 '탯말 사전'에는 이러한 탯말 초보자를 위한 전라도 탯말이 ㄱ,ㄴ,ㄷ 순서로 등재되어있다. 가끔 모르는 전라도 탯말을 마주했을 때 찾아보기도 쉽고 그냥 책읽듯 한번 쭉 훑어내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탯말, 우리 말살이의 원천

책을 다 읽고나서 독자는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왜, 뭣 때문에 이렇게 고집스럽게 탯말을 보존해야 하는 것일까. 그나저나 '탯말'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이 책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책뒤에' 잘 나타나 있다.

'탯말'이란 단어는 우리 '탯말두레'가 만든 신조어로서 각 지방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언, 이른바 어머니의 태속에 있을 때부터 듣고 배우며 사용해온 사투리를 말한다. 따라서 이 방언이야말로 그 지방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혼이 담겨있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고향이 정해지며 그 뱃속에서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고향의 말을 듣고 자란다. 따라서 탯줄을 달고 배우기 시작한 말, 그것이 탯말이다. 고향의 언어이자 어머니의 언어인 것이다.(329쪽)

KBS <해피투게더 프랜즈>란 프로그램이 있다. 연예인들의 어릴 적 친구들을 찾는 것인데 방송에선 한결같이 표준어를 쓰던 연예인들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구수한 사투리를 사용한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푸근하게 만든다.

비단 그뿐이랴.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났을 때 절로 나오는 사투리는 멀고 힘든 나그네 길에서 돌아와 제 집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준다. 이것이야말로 탯말이 지니고 있는 가장 강한 힘이며 그것을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유난히 구성지고 표현이 풍부한 전라도 탯말"
[인터뷰] 탯말두레 간사 박원석

이 책은 '탯말두레'의 회원 5명이 주축이 되어 쓴 것이지만 더욱 엄밀히 말한다면 오늘도 전라도 시골 한곳을 묵묵히 지키는 순박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탯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누리꾼(네티즌)들의 공동작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제보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은 그 비중을 짐작케 한다.

이 책을 쓴 5인의 지은이는 한새암('탯말두레' 회장), 조희범(시인), 최병두(시인), 박원석(방송작가), 문틈 (시인)이다. 이중 탯말두레의 간사직을 맡고 있는 박원석씨와 인터뷰를 했다.

- 왜 하필 전라도인가?

 
ⓒ2006 박원석
"우선 이 책을 쓴 저자들이 모두 전라도 출신이다.(웃음) 또한 전라도는 탯말의 고향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감성이 유난히 뛰어난데 이는 판소리나 그 밖의 노동요나 문학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가사문학이 태동한 곳도 전라도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라도 탯말이 한때 우리 현대사에서 왜곡되고 은폐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전라도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탯말이 점차 애써 잊혀지고 자취를 감추게 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러나 각 지방의 탯말을 연구하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비단 전라도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

- 자료수집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어떤 방법으로 취재를 했나?

"전라도의 판소리와 민요는 물론, 토박이말 사전과 여러 인터넷 사이트나 홈페이지, 블로그 등을 오가며 정리를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수시로 광주와 목포, 화순 등지를 오가며 나이 드신 어른들을 만나 수집했고 향우회와 동창회 등 고향사람들과 만나 자리를 함께하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누리꾼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내 고향이 전남 보성인데 보성과 벌교, 해남은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그 언어가 전부 다르다. 이러한 미묘하고 세세한 차이를 네티즌들이 지적해주었고 또 나도 미처 모르고 있던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아마 미처 발굴하지 못한 탯말을 수집하는 작업에도 누리꾼들의 역할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 이러한 시도가 자칫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시대역행적이라는 우려는 없는지?

"작은 나라에서 탯말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고 마뜩해할 지 모르지만 지역특산물이 특산품으로 사랑받는 것처럼 탯말 또한 그런 맥락에서도 이해되고 존중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방언'이니 '사투리'니 하는 것은 중앙 집권적 사고체계의 소산이다. 서울말은 표준어이고 그 밖의 말은 사투리라는 사고를 전화시켜야 할 때다."

-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경상도 탯말을 위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를 위해 경상북도 안동과 대구, 밀양 등지의 탯말과 문화를 연구 중이다. 특히 안동의 제례문화는 제주 사투리와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기에 충분한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경상도 뿐 아니라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탯말에 대한 책도 준비할 예정이다.

또한 5월 9일에는 표준어 일변도의 음운정책에 반대하는 헌법소원을 신청할 예정이다. 그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우리 민족의 숨결과 얼이 담겨있는 탯말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한편 우리의 언어생활이 보다 풍성해지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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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 <하늘의 박꽃> 겉그림.
ⓒ2006 샘터사
짝사랑에 빠졌다면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설사 상대방이 내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혈압이 오르고, 머릿속이 멍해지고 만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슴 한편에 공허함이 자리 잡는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고통스러운 때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짝사랑에 괴로워하는 이라면 베르테르와 자신을 동일화하는데 일말의 거부감도 생기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나카가와 요이치의 <하늘의 박꽃>의 주인공 남자는 달랐다. 정말 베르테르처럼 미칠 듯이, 죽어도 좋을 정도로 연상의 유부녀를 짝사랑했던 주인공은 베르테르처럼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감정을 딛고 '여자를 위해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고단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베르테르처럼 짝사랑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짝사랑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충만하게!

<하늘의 박꽃>의 '그'가 '그녀'를 만난 건 하숙집에서였다. 그녀는 하숙집의 딸이었는데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즉 누군가의 '부인'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고 사랑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도 그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느꼈는지 그 접근을 구태여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이별을 통보해온다. 자신이 힘든 일이 있었기에 우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말을 하면서.

그것은 말이 좋아 우정이지, 실상은 서로 영원히 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는 가슴이 아프다. 원통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뜻을 십분 이해해 그녀 곁을 떠난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몇 년에 한번씩 그녀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난날의 창피함을 딛고 그녀에게 고백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냉랭한 대답을 전해온다. 그럼에도 그는 기다리겠다는 말을 한다. 그녀가 할머니가 되더라도 변함없이 사랑할 것이라는 뜻을 전하며. 그리하여 그는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게 된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 그것은 거짓말 같은 말이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 비록 짝사랑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한 것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를 만난 이래, 처음 거부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저는 오늘에 이르는 20 몇 년 동안 그녀를 가슴에 새기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애를 걸었습니다. 뭐라 말씀드리면 좋을지. 저는 그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지금도 견디기 어려운 생을 살고 있습니다." - 책속에서

짝사랑은 공허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이 된다. 가슴 속에 공허함이 커질수록 짝사랑으로 인한 고통은 그 크기를 더해간다. 이미 이때는 보는 것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애당초 그것이 불가능하다. 가슴만 쓰라릴 뿐이다.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렸으나 결국 이루지 못한 고뇌를 안고 저는 이 세상을 떠나려 한 것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저 자신의 광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실수 탓인지 원인은 분명히 알 수 없었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지상의 운명을 만나지 못한 짜증스러움이 저를 끝내 그쪽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 책속에서

이 순간 많은 이들은 가슴 아픈 사랑을 잊거나 외면한다. 아니면 베르테르처럼 극단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늘의 박꽃>의 그도 그랬다. 그는 그녀를 피해 산 속으로 들어간다. 고행을 하듯, 그녀를 잊기 위해서 그곳에서 고립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 생각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받아준다면 다 보상받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짝사랑의 위기를 생과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거부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신념이라도 지닌 듯 생을 밝게 만들어간다. 그렇기에 그는 베르테르와 달리 '그녀를 위해 산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사랑을 보상받게 된다.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나는 그 어떤 고생을 치르더라도 그녀 곁에서, 한순간이라도 평화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비록 한순간이나마 그녀와 함께 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슬픔도 어떤 외로움도 모두 다 보상될 것이다…." - 책속에서

현실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짝사랑은 슬픈 것으로 통한다. 일방적이기에, 그래서 삶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누구도 과감히 짝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지 않았다. 모두가 베르테르의 이미지에 잡혀있었다. 하지만 <하늘의 박꽃>은 그것을 과감하게 떨쳐냈다. 그리하여 짝사랑을 인간이 살아가는 힘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이 발표된 지 벌써 60년 이상이 지났다. 그럼에도 이 지고지순한 사랑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무엇 때문일까? 사랑하는데 이유가 없듯 이 또한 굳이 논리적인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저 작품에 담긴 사랑이 슬프지만 아름답기에, 특히 짝사랑을 경험한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기에 그렇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계속된 한 남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이 담긴 <하늘의 박꽃>, 아무리 세태가 변하고 시대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작품이 지닌 여운이 깊게 느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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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범죄에서 내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하나?

[오마이뉴스 장익준 기자]
 
ⓒ2006 랜덤하우스중앙
저녁 7시쯤 집에 가는 길이었다. 편도 2차선이긴 하지만, 차가 뜸하게 다니는 동네 길에 승용차 한 대가 인도 쪽에 붙어 섰다. 운전자는 조수석 쪽으로 창을 내리더니 마침 지나가던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을 손으로 불러 길을 물었다. 아이가 차 가까이로 다가서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가까이 가서 '어딜 찾으신다고요?'라면서 참견을 했더니, 운전자는 "됐다"며 차를 몰고 떠났다.

내가 좀 과민한가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요즘 세상을 생각하면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었으리라.

최근 검거된 '어린이 상대 성범죄' 피고인들의 수법을 보면, "교회까지 짐을 들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서 아이들을 유인하는 사례가 있었다.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어른을 믿는 아이들의 마음을 악용한 것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옆집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그 집은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끼리 있는 시간이 많은 집이었다. 모르는 어른이 전화를 해서는 부모님 친구인 것처럼 말을 둘러대면서 아이들의 이름과 학교, 집 주소, 부모님이 들어오는 시간 등을 캐묻더니, 급기야 전자자물쇠 번호까지 물었다는 것이다.

마침 우리 집에서 부침개를 했기에 옆집 아이들에게 전해 주려고 들린 아내가 전화 내용을 수상하게 여겨 전화를 받아들자 그냥 끊어 버렸다는 것이다.

세상이 여러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범죄가 늘고 있어 부모들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차마 입에 올리기도 힘든 사건들이 보도될 때마다 부모들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무조건 끼고만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행동 지침을 이끌어 주는 책이 있어 소개해 올린다.

<내 아이를 범죄로부터 지키는 65가지 방법>은 일본의 '아이 위험 예방 연구소'에서 펴낸 책이다. 65가지 상황이 문답식으로 되어 있어 궁금한 곳부터 펼쳐 보면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한 점이 많은데다 심각한 어린이나 청소년 관련 범죄를 먼저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 경험에서 배울 부분이 만다. 이런 내용을 '우리 아이지키기 시민연대'에서 감수를 맡아 우리 실정에 맞도록 적지 않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옆집 할아버지까지 가해자로 나서는 마당이어서 이전처럼 "어른 말씀 잘 들어라"거나 "다른 사람을 도와줘라"고 가르치지도 못하는 사정이다. 반면 경계심을 키워주는 나머지 세상을 너무 불신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들곤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손을 뻗쳤을 때 닿지 않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타인을 대하라는 것"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 적혀 있는 표현처럼 "아이를 지키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물론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분명 어른들에게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와 시민운동이 발전한 일본답게 이 책은 이웃이 협력하고, 지역 사회에서 일종의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은 우리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우리 실정에 맞는 대안을 세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소심한 편이라 어린 딸아이에게 모르는 어른과는 가급적 대화를 하지 않도록 좀 방어적으로 가르치는 편이다. 지하철에서 아이를 데리고 가다가 귀엽다고 말을 거는 경우 아이가 대꾸를 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하고는 얘기하지 말라고 배웠구나?"라고 하면서 이해하시고 그냥 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어른이 말하는데 버릇없다"며 야단을 치거나 굳이 손에 사탕을 쥐어주고는 "고맙습니다 해야지"라고 시키는 분들도 있다.

'아이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요즘 사정을 고려해 보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안전 지침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고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를 대할 때 아이들에게 일관된 지침을 줄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접촉을 자제해 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귀엽다고 사탕을 주려 하거나 쓰다듬으려 할 때 옆에 있는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예의 정도는 확실히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처음 보기로 들었던 승용차 운전자의 경우도 굳이 아이에게 길을 묻기 보다는 다른 어른들에게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도 어렵고 어른들의 어깨에 짐이 너무 무거운 시대지만 웃고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라나는 아이들 때문이리라. 밖에서 고된 일과 중에 동료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얼굴에 번져 나가는 미소를 보면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기도 싫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안전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고, 아이들에게 정확한 행동 지침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학교와 사회, 그리고 정부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확고한 의지와 분명한 노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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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성호 기자]
 
▲ 책 겉표지.
ⓒ2006 황소자리
지폐 속에서 세상 밖을 응시하는 인물들의 눈빛을 들여다보자. 혹시 그들의 홍채 속에 머물러 있는 작은 역사가 보이지 않는가. 암울하고 고단했던 시간과의 싸움을 거쳐 끝내 삶의 승리를 거머쥔 그들의 눈빛은 오늘날 많은 이들의 땀내 나는 손을 거쳐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각국의 지폐 속에 새겨진 인물들의 열전인 <지폐, 꿈꾸는 자들의 초상>은 작은 위인전이다. 전 세계 22개국 39명의 지폐 초상 인물들의 모노드라마를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1인이지만 그들이 빚어낸 역사는 장대한 뮤지컬 이상으로 생동감 있고 역동적이다.

한 나라 경제력과 집약된 역사의 결정체라 일컫는 화폐. 특히 지폐에 초상으로 얼굴을 올린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개인만이 만족한 삶이 아닌 인류공영과 문화인류를 지향한 업적을 남기고 사라지거나 현존한 인물들이다.

또한 지폐에는 인물뿐만 아니라 각국의 전통과 문화, 기술력이 총체적으로 담겨있다. 지폐의 역사는 위폐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 지폐 속에 촘촘히 담겨 있는 인물, 역사, 위폐방지 기술, 그리고 전통과 문화 등을 한 권의 책으로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15㎝ 세상에 촘촘히 담겨 있는 역사

책이 제공하는 정보는 짧지만 유익하다. 개인의 간략하지만 뚜렷한 삶의 궤적을 동행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또 인물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만나는 것은 봄비 같은 단맛이 난다.

아르헨티나 의학도 출신이면서 쿠바혁명에 가담해 임무를 완수한 체 게바라가 카스트로의 질문을 잘못 들어 쿠바중앙은행 총재가 된 일화, 자습을 시키기 위해 1에서부터 100까지 모두 더하라는 덧셈문제를 내고 돌아 서는 선생님에게 즉답을 내놓은 10살의 가우스(독일 수학자), 자국에 오면 부귀영화를 보장하겠다는 스페인 국왕의 제의를 거절한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

이들 개인의 소사가 후일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는 표현만으로 모자라다. 어린왕자처럼 하늘로 날아간 생텍쥐페리, 인류에게 무상으로 라듐을 선사한 마리 퀴리, 동심에 정의를 심은 그림형제, 에베레스트 산 초등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 중국 인민의 붉은 별 마오쩌둥, 그리고 어린 백성을 긍휼히 여겨 눈과 귀를 열어 준 성군 세종대왕까지.

나라마다 인물초상 선정에 독특한 차이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예술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는 유로화 사용 전까지 지폐에 정치인을 등장시키지 않고 문화예술인과 과학자를 새겨 넣었다. 생텍쥐페리(50프랑)를 비롯해 작곡가 드뷔시(20프랑), 화가 폴 세잔(100프랑),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200프랑), 그리고 500프랑에는 과학자 퀴리 부부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역시 유로화 이전인 1970년대에는 예술가, 탐험가를, 1985년 이후 발행권종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로 장식했다. 모차르트가 들어 간 오스트리아의 50실링 지폐는 1990년 유럽은행권 콘테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폐 디자인상을 받았다.

대통령 위주의 미국과는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멕시코, 쿠바, 칠레 등 남아메리카 지역 지폐들에는 유독 좌파지도자, 혁명가들이 많다. 제국주의 지배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들이 과거의 초상이라면 영란은행(BOE)의 모든 권종에 새겨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현존 인물이다. 골프로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필드의 신' 잭 니클로스는 스코틀랜드 5파운드 지폐를 장식했다. 인도네시아는 독재자 수하르토의 초상을 넣었다가 국민적 반감이 거세지자 통용중인 지폐를 회수하는 소동을 빚는 등 현존 인물에 대한 초상은 역사적 검증 부족으로 가급적 회피한다.

나라마다 인물 선정에 독특한 차이...남미는 혁명가 많아

모양새도 나라마다 특성을 보인다. 대부분 가로 도안를 채택한 데 반해 스위스, 이스라엘 등은 돈을 세는 시각(視角)을 기준으로 세로 도안을 사용하고 있다. 세로 도안은 은행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판단이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다. 다만 도안배치에 효과적이고 여백을 가득 메울 수 있는 장점은 있다.

▲ 독특한 세로 도안의 스위스 은행권.
ⓒ2006 스위스중앙은행
싱가포르 은행권은 가로 18㎝, 세로 9㎝로 세계 평균인 14.8㎝, 7.05㎝보다 2~3㎝나 크다. 우리나라도 새로 발권된 5천원권이 기존보다 작아졌다. 이는 지폐가 커서 지갑에 넣기가 불편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는데, 이 보다는 위폐방지를 위한 도안교체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지폐는 폴란드 은행권으로 가로 12㎝, 세로 6㎝이다.

지폐의 액면가는 소득수준, 지급결제 관행 등에 의해 결정된다. 최근 발행한 최고 액면가치는 싱가포르의 1만싱가포르 달러로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5799달러에 이르는 고액권이다. 또 이란의 1만리알은 1.3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액면단위가 가장 컸던 것은 1924년 독일이 발행한 100조 마르크. 1차 세계대전 후 전쟁배상금 마련과 경제부흥을 위해 무분별하게 고액권을 남발한 결과다.

이처럼 지폐 속에는 인물초상의 역사와 함께 한 나라의 정체성까지 엿볼 수 있는 쏠쏠함이 있다. 그리고 지폐 제조기술과 함께 발전하는(?) 위폐 범죄의 수법,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신기술의 개발은 컴퓨터와 컴퓨터바이러스 간의 전쟁을 보는 듯하다.

위폐기술은 지폐기술과 동반 발전(?)한다

미국의 대북 압박 수단으로 최근 이용하고 있는 슈퍼노트(100달러권) 위폐 논란에서 보여지 듯 위폐 제조와 유통은 한 나라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다. 그러나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위폐 제조는 '예술적 경지'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정교해 지고 있다.

12세기 영국에서는 위폐가 범람하자 헨리 1세는 조폐기관 직원들의 위폐제조 가담 혐의를 잡고 직원 100여명의 손목을 자른 일화가 있다. 위폐에 대한 응징이며 동시에 비극인 셈이다. 최근에는 인쇄기술의 발달로 전문가들도 위폐를 단박에 알아내기 힘들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14가지의 위조방지 장치가 들어 있는 스위스 지폐는 위폐범들이 몹시 싫어하는 돈인 셈이다. 지폐는 위폐에 의해 가끔 일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지만 그 속에 그려진 인물들의 역사는 어떤 위폐도 위조할 수 없는 영원불변성을 담고 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이유로 지폐에 인물 초상을 넣은 것이 아닐까.

경제부에 몸담았던 현직 기자가 엮은 책은 가장 세속적인 가치(돈) 속에서 철학과 문화적 가치(인물과 사상)를 끄집어냄으로써 '돈'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치게 한다. 매일 접하는 흔한 소재를 세계사와 버무림으로써 맛난 비빔밥이 됐다. 책을 다 읽을 무렵 느껴지는 포만감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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