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란 대저, 한평생 제 영혼을 헹구는 사람 ”(임영조 시인)

“병이 나으면 시인도 사라지리라”(진이정 시인)

시인의 존재는 일생을 고통 속에서 영혼을 다듬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럼 시인이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문학평론가 최동호 교수는 최근 평론집 <진흙 천국의 시적 주술>(문학동네.2006)에서 디지털시대의 황폐에서 인간을 구하는 것이 ‘시’라고 얘기한다.

최 교수는 “시인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인간에 대한 각성도 사라지고,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과연 시와 시인은 살아있는 것일까.

“최근 국문과 대학원생들의 전공은 압도적으로 소설이 차지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의 흥미가 소설 쪽으로 기운 것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요구하는 서사적 구성이 그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시가 더 이상 정치적 ‘무기’가 되지 않는 시대에 시의 자리를 판타지가 있는 소설이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란 존재 그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시인은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인간은 노예가 아니다(식민지 해방운동 시대),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민주화 노동운동 시대), 인간은 양이고, 원숭이다(디지털적 생명공학 시대)”

노예와 기계의 시대에 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존재였지만, 복제의 시대에 시는 디지털의 속도에서 오는 쾌감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시의 위기를 말하곤 한다.

“단군이 개국하여 신시를 연 이후 한민족의 가장 행복했던 체험이었던 월드컵은 시가 할 수 없었던 그러나 시가 도달해야할 극치의 한순간을 우리는 경험했다.”

월드컵의 감동 자체가 ‘시’인 시대에서 그럼 시인의 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일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야성적 추동력인지도 모르지만, 자기 확인이 없는 일방적 전진은 그 속도감만큼이나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최 교수는 “시를 읽는 시간은 인간의 삶에 풍요로움을 되살려줄 것이다”고 감히 주장한다.

삶이 힘들수록 오히려 시인의 존재는 척추처럼 든든하게 세상을 받쳐줌을 최 교수는 이성복 시인의 시를 통해서 들여다본다.

“매점 앞에서 보초 설 때는, 단팥빵/맛이 조금만 이상해도 바닥에 던지고/가는 녀석들이 있었다 달려드는 중대장의/세퍼드를 개머리판으로 위협하고, 나는/흙 묻은 빵을 오래 씹었다 비참하고 싶었다/내 생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이성복 ‘내 생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중에서)

세계를 개혁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한 언어를 가졌지만, 스스로 비참해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 시인임을 역설하고 있다.

진흙으로 뒤덮인 세상이 천국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자만이 등뼈 있는 슬픔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의 미래가 없다면 인류의 미래가 없는 것이고, 시인은 진흙 세상에서 희망의 올실을 짜는 사람이리라.

(사진=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 National Gallery, London)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fargo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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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으로 말 잘 들을께, 제발 가지마~”

오는 25일 개봉예정인 영화 <호르비츠를 위하여>에 나오는 대사다.

아버지 덕택에 피아노를 전공한 지수(엄정화)는 아부할 줄 모르는 깐깐한 성격 탓에 변두리에 음악학원을 차린다

.

이사 온 첫날, 지수는 메트로놈(음악의 템포를 나타내는 기계)을 훔쳐 달아나는 경민(신의재)을 만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경민의 절대 음감을 발견한 지수는 그를 뛰어난 지도자로 만들려고 하지만 콩쿠르에 출전한 경민이 피아노 앞에서 주저앉아 버리자 둘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지수는 경민을 내치지만 어린 제자를 잊지 못하여 피아니스트 친구의 도움으로 경민의 독주회를 열어준다.

콘서트에 초대된 날, 경민은 스승이자 엄마 같은 지수를 위한 독주회를 펼친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오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의 의미가 점점 빛이 바래가고 있는 현실에서 진정한 스승의 모습은 어머니와 같은 따스함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페스탈로치가 “어머니는 하늘이 내린 교사”라고 했듯이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선생님은 바로 어머니이다.

동화작가 안순혜씨가 지은 <무릎 위의 학교>(샘터.2006)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도도’가 엄마 없이 자란 ‘반이’라는 친구를 사귀면서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동화다.

작가는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귀를 간질이는 솔바람 소리와 함께 옛이야기를 들으며 편안히 잠에 들던 시절이 사랑과 용서와 꿈을 배운 소중한 추억 이었다”고 회고한다.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갈등과 고민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면 더욱 뿌리 깊은 나무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책은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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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째 이름 없이 살던 참나무 한 그루/오늘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 되셨다/임학계 거목 김장수 씨 화장 유골이/살아 아끼시던 이 참나무 아래 묻혔으니/나무와 함께 살다 나무 곁으로 가셨으니/....../나도 죽어 자작, 나무 되어/별을 먹은 나무 되고 싶다//불힘 좋은 몸들,/나무들의 향기가 낯익다”(정끝별 ‘또 하나의 나무’중에서)

지난 2004년 9월 김장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장례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임학계의 거목’을 모신 굴참나무에는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간단한 표식 외에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이후 수목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어났다.

지난달 11일에는 목포의 눈물’의 가수 고 이난영 선생의 유해가 목포시 삼학도 ‘난영공원’ 안 ‘난영 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안장돼 타계 41년 만에 고향 땅에 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

스위스인 윌리 자우터는 영국인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죽으면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나를 스위스에 묻어다오”라고 한 친구의 부탁을 받고 고민하다 친구의 유골을 나무 아래에 묻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1993년 현대 수목장을 창안한 계기가 됐다.

‘나무 할아버지’ 김장수 교수의 제자인 변우혁 고려대 교수가 쓴 <에코-다잉의 세계 수목장>(도솔.2006)은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웰다잉’(well-dying)의 철학을 전해주는 인생경영서이다.

수목장은 매장이나 납골로 인한 환경 피해가 없으며 아름드리나무를 키울 수 있기에 환경 개선 효과까지 있어 장묘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는 국내에 도입할 수목장의 주류로 자연 그대로의 산림에서 기존에 식재된 교목을 활용하는 ‘산림형 수목장’을 추천한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

해바라기 소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의 비명(碑銘)이 가득한 숲에서 우짖는 새는 ‘잘 죽는 법’도 미리미리 생각해두라고 쉴 새 없이 푸른 하늘을 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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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서울, 젊은 작가들’ 축제에 참가한 해외작가 작품집이 잇달아 출간됐다. 국내에서 이미 두꺼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집 ‘센티멘털’과 이번에 처음 번역·소개되는 아르헨티나 유대인 소설가 마르셀로 비르마헤르의 ‘유부남 이야기’가 문학동네에서 나왔고, 해외작가 9명의 대표 단편을 담은 소설모음집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가 도서출판 강에서 출간됐다.

◇‘센티멘털’=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31)는 예사롭지 않은 지적 감수성으로 독자를 흡입한다. ‘청수(淸水)’는 우울한 문체와 환상적 분위기의 지적 소설이다. 아침에 맞는 태양빛, 식은 커피와 비스킷, 거리의 사람들…. 저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생성과 소멸, 실재와 환상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펼쳐보인다. ‘다카세가와’는 지금까지 그의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농밀한 성적 묘사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다. 촉망 받는 젊은 소설가가 여성 패션지 편집자와 교토의 러브호텔에서 보내는 하룻밤을 치밀하고 분석적으로 그리고 있다. ‘추억’과 ‘얼음 덩어리’는 파격적 형식으로 눈길을 끈다.

◇‘유부남 이야기’=기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인 마르셀로 비르마헤르(40)는 중년 남성의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유쾌하게 그린다. 소설 속 유부남들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옛 애인을 다시 유혹하고,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발견한 미모의 학부모와 불륜에 빠진다.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장난기 가득하며, 때론 치사하기까지 한 유부남의 모습들…. 그러나 유부남의 비행(非行)에도 변명은 있다.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하는 감정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 (……)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기한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인 양 행동해야 하나?”(‘세르비뇨 거리에서’ 중)

◇‘눈을 뜨시오, ~’=‘2006 서울, 젊은 작가들’ 참가 작가 가운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9명의 단편소설을 모은 책이다. 표제작은 폴란드 올가 토카르축의 작품으로 억압된 개인의 욕망을 그린다. 등단 이후 줄곧 장편소설만 써 온 크로아티아공화국의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예비치는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몬테네그로의 남자’라는 단편을 써 보내왔다. 이밖에 이탈리아 신세대 작가 마리오 데지아티는 ‘눈꺼풀 너머’에서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불안한 현대인의 모습을 포착해내며 칠레 작가 알레한드라 코스타마그나는 ‘추파’에서 시골 소년이 도시에서 겪은 ‘일장춘몽’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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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저편 3
히가와 쿄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5월
절판


책 겉표지
- 이자크와 지나예요.

이자크를 보호하는 모습의 지나

책속 일러스트

책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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