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심경호 지음/346쪽·1만3000원·한얼미디어

‘저는 외곬이라서 아무리 궁해도 구걸을 못합니다. …관원의 초청을 기대한 적도 없고 내 편에서 나아가 뵙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다 제 천성이 도도하여 그런 것입니다. …안주와 술을 보내 주시고 또다시 쌀을 보내 주시니 멀리 바라보며 이제 축수하여 덕을 기리고, 찬미하는 시 몇 편을 적어 별지에 올립니다.’

1487년 설악산 자락에 은둔해 있던 김시습이 양양 부사 유자한의 벼슬살이 권유를 거절하며 쓴 편지다. 일체의 속박을 거부한 김시습, 그를 안타깝게 여겨 세상에 끌어내려 한 유자한의 격의 없는 우정은 김시습이 계속해서 쓴 거절의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자한의 따뜻한 관심에 감사하면서도 끝까지 속세에 섞이길 거부한 김시습은 ‘깔깔대며 웃는다’라는 시를 지었다.

‘나는 알지, 나는 알지/손뼉 치며 깔깔 한바탕 웃노라/고금의 잘난 이 모두 양(본질)을 잃었나니/시냇가에 초가지어 사는 것만 못하리/험한 길에 발붙이려 분주하다만/편히 앉아 아침 햇볕 쪼임만 못하리.’

간찰(簡札)은 두껍고 질긴 한지(韓紙)나 비단에 쓴 옛 편지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한국 지성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선인들의 간찰 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만을 골라 번역하고 편지가 오간 상황과 심정 등을 해설했다. 정몽주 등 고려시대 3명, 이황 등 조선시대 선비 24명의 간찰이 책에 실렸다. 학문적 고독, 정치적 불안감을 토로하거나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는 간찰과 저자의 해설을 읽다 보면 선인들의 표정과 태도, 성격이 눈앞에 만져질 만큼 생동감 있게 떠오른다.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인 이황과 조식은 동갑에 같은 지역에서 명성이 높았지만 평생 대면하지 못했다. 이황이 조식에게 교유를 청하며 쓴 장문의 편지는 늘 사정을 두루 살피고 조근조근 말하는 이황의 태도를 보는 듯하다. 반면 관직에 나가기를 거부한 조식이 계속 벼슬살이를 해 온 이황에게 ‘(내겐) 세상을 바르게 보는 능력이 부족하니 안약을 보내어 눈을 밝게 열어 달라’고 쓴 답장에서는 조식의 다소 매몰차고 칼칼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이덕무가 박지원에게 마지못해 ‘이목구심서’를 빌려준 뒤 책을 돌려달라고 채근하면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해학적인 편지에는 ‘산해경’을 패러디한 유머와 ‘다빈치 코드’의 암호처럼 글자를 해체하고 조합하는 장난기가 듬뿍하다.

옛 편지의 정중한 형식 안에 감춰진 ‘한 영혼이 다른 영혼과 관계를 맺기 위해 모색하는 긴장’을 드러내 보여 준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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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행복한 우리 가족/한성욱 글 그림/40쪽·8800원·문학동네 어린이(6세 이상)

“오늘은 엄마 아빠랑 미술관으로 봄나들이를 나갔다…”로 시작하는 그림일기 형식을 띤 그림책. 흔히 볼 수 있는 ‘행복한 가족’을 통해 ‘가족 이기주의’를 꼬집는다.

문을 나서자마자 휴대전화를 놓고 온 걸 깨달은 엄마. “아차, 엘리베이터 좀 잡고 있어!” 물을 사기 위해 들른 마트. 계산대 앞에 아빠와 딸이 미리 줄을 서고, 엄마는 그 틈을 타 물을 집어 온다. “엄마, 얼른 가져 와!”

드디어 출발. 아빠의 곡예운전. “와! 우리 차가 더 빨라요.” “여보, 단속 카메라!” “괜찮아, 저거 가짜일걸∼.”

미술관 안에서 즐겁게 뛰어다니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 아빠. 작품 보호대를 살짝 넘고 들어가 멋진 조각품 옆에서 재빨리 ‘미니 홈피’에 올릴 기념사진을 찰칵. 폭신한 잔디 위에서(‘음식물 반입 금지’ 팻말이 있다) 엄마가 싸 온 맛있는 도시락을 먹는다.

피곤한 귀갓길. 아파트 현관에서 가까운 장애인 주차 공간에 차를 댄 아빠. “마침 빈자리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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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고바우 김성환의 편편상/김성환 글 그림/252쪽·8500원·인디북

일본에서 ‘바보’를 뜻하는 ‘바카(馬鹿)’는 어디서 나온 말일까. 중국 진(秦)나라 때 환관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고 얘기했는데도 주변 신하들이 조고의 위세에 눌려 감히 그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에서 나왔다.

‘고바우’ 만화로 유명한 김성환 화백이 이처럼 주로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역사 전설 등에 얽힌 이야기를 본인이 그린 익살스러운 그림과 함께 엮었다.

대개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저자는 미시적인 부분까지 파고들어 독자에게 의외적 사건을 새로 알게 하는 재미를 준다.

김 화백의 박학다식함이 느껴지는 대목이 많다. 책 제목 ‘편편상(片片想)’은 동화작가 마해송의 첫 수필집(1948년)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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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최숙렬 지음·윤성옥 옮김/256쪽·9000원·다섯수레(초등 고학년 이상)

1945년은 숙안에게 ‘떠나보낼 수 없는’ 시간이다. 광복 직전, 집안의 쇠붙이까지 전쟁 물자로 쓰겠다고 강탈해 갈 정도로 일제의 만행은 절정에 이르렀다. 할아버지의 생일잔치에 내놓을 수 있는 건 기장떡뿐, 그나마도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잔칫상을 뒤엎는 바람에 엉망이 된다.

이 책은 대학 때 도미해 중고교 역사 교사로 20여 년 근무한 최숙렬(68) 씨의 자전소설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에 일제 말기와 6·25전쟁을 겪은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겼다.

광복이 되면서 악몽 같은 날들이 끝난 줄 알았더니 이번엔 소련군이 마을에 들어온다. 감시와 선전,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가족들은 정든 평양을 떠나 월남하기로 결정한다. 어린 숙안은 무사히 38선 철조망을 넘을 수 있을까.

극적인 내용이지만 이야기는 차분하게 전개된다. 감정을 절제하는 작가의 어조에서 오히려 그 시절의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오롯하게 전달된다. 이 책은 세계 각국에 번역 출간됐고 전미도서관협회 최우수 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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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용과 사무라이의 결투/강성학 편저/512쪽·2만3000원·리북고

청일전쟁(1894∼95)에 대한 국내 학계의 연구는 주로 동학농민혁명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즉, 동학농민혁명 와중에 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청일전쟁을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동북아시아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이 지역에서 유럽 열강의 판도마저 바꾼 사건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한다.

이런 의미에서 명칭도 ‘청일전쟁’ 대신 중국 세력과 일본 세력의 전쟁이란 의미의 중-일전쟁으로 표기하고 있다. 전쟁의 전개 과정과 한중일의 외교 노선, 영국 러시아 등 열강의 움직임, 전쟁 후 처리 과정 등을 상세히 짚었다. 또 이 전쟁이 동학농민혁명의 노선을 계급 투쟁에서 반(反)외세로 변화시킨 점과 일본을 ‘동해 밖의 섬나라’로 깔보던 중국인들의 전쟁 후 인식 변화도 다뤘다. 고려대평화연구소의 프로젝트로 한중일 박사 10명의 논문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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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06-05-16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인지 몰라도 책 겉표지의 그림을 다른책에서 오늘 봤는데 또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