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유부남 이야기/마르셀로 비르마헤르 지음·김수진 등 옮김/328쪽·9000원·문학동네

“여자들 중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가슴이 처지는 사람과 여전히 봉긋한 사람 두 부류가 있다. 나이가 들며 퍼지는 등 변화를 겪은 둔부가 시간이 흐르면서 무슨 기적이 일어났는지 상당히 농염하고 매력적이고 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리나는 그렇게 변해 있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소화기관을 혹사시키며 짜증스러운’ 저녁 식사를 하던 ‘나’는 화재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출동한다. 그런데 길에서 옛 여자친구 ‘리나’를 발견한 ‘나’는 화재 진압도 잊은 채 차에서 내려버린다.

유부남들이 한 번쯤 마음에 품어봤을 법한, 더욱 매혹적이 된 옛 애인과의 재회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르셀로 비르마헤르(40)의 단편집 ‘유부남 이야기’ 중 ‘마차’의 한 대목이다. 비르마헤르는 ‘유부남 이야기’ 시리즈로 ‘우디 앨런과 서머싯 몸을 합쳐 놓았다’는 평을 받은 소설가. 평범한 중년 가장들의 속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으면서, 애잔한 뒷맛을 남겨 놓는 방식이 돋보인다.

소설 속 유부남들은 하나같이 왜소하고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짧은 분량의 단편들에 극적인 구조를 짜 넣고 사실적인 심리 묘사를 하는 작가의 솜씨도 좋다. 몰래 웃고 무릎을 칠 독자들이 꽤나 많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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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호랑이/스티븐 밀스 지음·이상임 옮김/167쪽·2만3000원·사이언스북스

눈 덮인 시베리아에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빽빽한 열대우림까지, 100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곳곳의 숲 속에는 10만여 마리의 호랑이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밀렵으로 인해 현재 살아남은 호랑이는 5000여 마리에 불과하다. 영국 BBC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카메라맨인 저자는 지난 30년 동안 인도와 네팔 등지에서 야생 호랑이를 뒤쫓아 왔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관찰해 온 호랑이의 사냥법, 짝짓기, 가족애 등 호랑이의 생태와 습성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사냥감을 쫓는 수컷 호랑이와 새끼를 핥아 주는 어미 호랑이 등 저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찍은 100여 컷의 컬러사진은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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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배고픔의 자서전/아멜리 노통브 지음·전미연 옮김/219쪽·8500원·열린책들

오세아니아의 섬 바누아투(실제로 있는 섬이다)는 풍요롭지만 고립된 곳이다. 부족한 것도, 동시에 식욕도, 배고픔도 없는 그곳의 주민들은 다정다감하고 공손하다. 하지만 무기력하며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끝없이 유유자적하며, 뭔가에 대한 추구가 빠져 있는 삶이다.

소설적 묘사는 여기까지다. 바누아투는 작가와 반대되는 존재의 지리적 표현일 뿐이다. 도무지 식욕이 없는 바누아투 사람들과 달리 작가는 ‘배고픔이라는 유일무이한 힘으로 작동’하는 사람이다. 작가에게 배고픔이란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다.

벨기에 출신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는 국내에 열혈 독자 군을 거느린 몇 안 되는 외국 작가 중 한 명. 그녀의 열세 번째 소설인 이 책은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에 걸쳐 있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 책은 굶주린 자, 즉 무언가를 찾는 사람의 성장기이다. 작가가 즐겨 써온 자전적 성장소설의 완결편 같기도 하다. 전작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과 같은 시점에서 시작해 ‘사랑의 파괴’를 거쳐 성인이 된 이후의 이야기인 ‘두려움과 떨림’ 직전에 끝난다.

줄거리랄 것도 없이 서너 살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도 작가의 신랄한 말투,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눈은 여전하다.

끊임없이 초콜릿에, 물에, 인간에, 사랑에 대해 배가 고팠던 작가는 자아도취와 자기혐오를 오가는 격렬한 성장기를 보냈고, 배고픔이 있던 자리에서 쾌락을 촉발하기 위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책읽기, 글쓰기도 그렇게 시작됐다.

속내를 들여다보는 그 독설이라니…. 자카르타 나환자 수용소에 봉사하겠다고 온 프랑스 수녀 두 명이 끔찍할 정도로 살이 찐 것을 보며 작가는 싸늘하게 일갈한다.

‘이제 너도 알겠지, 스스로에게 진짜 어떤 문제가 있지 않고는 선의를 위해 통째로 인생을 바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노통브의 책이 늘 그렇듯 순식간에 읽힌다. 열혈 독자에겐 좀 더 가깝게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노통브를 모르는 독자에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입문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의 내부에만 탐닉하려는 것일까.

원제 ‘La Biographie de la Faim’(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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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마띠유 드 로비에 등 글·까뜨린느 프로또 그림·김태희 옮김/51쪽·7500원·푸른숲(6∼8세)

“저 아저씨는 왜 우리랑 피부색이 달라요?” “저 애는 다리가 없는데 어떻게 살아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아이는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똑같지 않음’을 발견하면서 아이들은 대개 놀라움과 불안함 같은 복잡한 감정을 겪는다. 저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습관도 다르고, 행동도 다른 사람들. 왜, 어떻게 다른지 묻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 줘야 할까.

이 책은 아이들이 만나게 될 여러 가지 ‘다름’을 짚어 보고,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책은 꼬마 가스똥이 어른들에게 묻는 질문과, 그에 대한 어른들의 답으로 구성됐다.

“선생님, 우리는 왜 모두 다르게 생겼어요?”라는 가스똥의 물음에 선생님은 모두가 똑같이 생겼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공장에서 찍어 낸 물건들처럼 다 똑같다면 가스똥이 누구인지 찾아낼 수 없을걸”이라는 선생님의 상냥한 대답.

왜 피부색이 다르냐고? “태어난 곳이나 자라난 환경에 따라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다르니까. 심지어 형제자매끼리도 조금씩 다르지 않니.” 이럴 땐 이렇게 답해야 한다는 딱딱한 지침을 알리는 게 아니라, 아이가 넓고 깊게 사고하도록 이끌어 주라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무섭고 두려운 걸 싫어하는 아이들의 습성에 대처하는 방법도 덧붙여졌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데 가기 싫어하고 호랑이가 나타날까 봐 잠을 못 자겠다는 둥 아이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책은 두려움이 개인의 약점이 아니라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5권으로 구성된 어린이 인성교육 시리즈인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학교’ 첫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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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지음·이덕형 역음/334쪽·7000원·문예출판사

“하나를 알면 열을 꿴다.” 똑똑한 사람을 일컬어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막막하게 느껴지는 ‘통합교과적 사고’도 사실 이 말이면 족하다. 암기에 머무르지 말고, 현상 하나로도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끓는 주전자를 본 데서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은 떨어지는 사과에서 우주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다른 것에서 같은 것을 꿰뚫는 능력이 바로 창의력의 원천이다.

지식의 칸막이를 넘나들려면 문학작품을 가까이하자. 좋은 소설은 현실의 벽을 넘어 주제 하나로 세상을 재구성한다. 조지 오웰의 ‘1984’는 텔레스크린에서 개인을 감시하는 권력의 눈을 포착했기에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약은 육체를 치료하지만, 스티븐슨은 선과 악의 본성을 약물로 분리시킨 덕분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낳았다. 예술과 과학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틀에 매이지 않는 ‘영역 전이’에서 비롯된다.

생명공학에 초점을 맞춘 ‘멋진 신세계’는 다양한 영역 전이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책이어서 눈길을 끈다. 인간을 대량 생산하는 사회에서 교육 종교 정치의 변화상을 입체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병에서 나온’ 인간들은 배아 시절부터 화학적으로 능력이 조절된다. 이들은 능력에 맞게 사회 계급 구조에 편입되며, 수면학습법에 의해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각자는 역할이 분명하고 분업의 결과물을 공유하기 때문에 사회는 안정되어 있다.

인간적 고통이 생기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소마’라는 약물이 우울증을 잊게 하고 쾌락의 느낌을 갖도록 정신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종교나 문학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계발하기 때문에 사회에 해가 된다. 그래서 ‘결혼’ ‘셰익스피어’ ‘신’과 같은 말은 불쾌한 금기어다.

이 책의 주제는 ‘육체와 정신이 통합된 자유로운 인간 추구’에 있다. 세계 총통 무스타파와 존이 나누는 대화는, 사회를 통제하는 과학기술과 인간적 삶을 중시하는 현대인 간의 대화로도 볼 수 있다.

‘멋진 신세계’는 이제 문명 비판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상상이 공상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원리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이 책에서 사고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주제의 무게에 힘을 싣는 방법을 섬세하게 배워 보길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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