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유석재기자]
“1927년, 미나마타에서 일당 1원 60전을 받던 일본인 쓰게 단조는 조선질소 흥남공장으로 파견된 뒤 ‘조선 수당’을 가산해 2원 60전을 받았다. 게다가 조선은 물가가 싸서 한 달에 20원 정도만으로도 귀족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20세기 한국현대사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사각지대에 대한 복원이다. 왜 여태껏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일제시대가 피침(被侵)과 저항의 역사였다면, 도대체 바로 그 ‘침략’의 주체는 누구였다는 말인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 그리고 그 지배집단의 내부구조에 대한 이해와 분석 없이 그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놀랍게도 이 부분은 일본사 영역에서도 그다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저자인 일본 쓰다주쿠대 국제관계학과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 교수의 이 책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풀뿌리 침략’이야말로 식민지배를 지탱한 근거라고 보고, 1876년 개항부터 1948년까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다양한 군상에 접근한다.
실로 그 스펙트럼은 넓었다. 식민지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군인과 경찰, 관료, 상인, 기업경영인, 지주, 그리고 교사·교수·문학자와 같은 지식인층, 회사원과 농민, 대륙낭인, 주부, 학생, 유곽에서 일하는 예창기(
게이샤)까지. 개항 당시 54명에 지나지 않았던 조선 내 일본인은 1905년 8만3315명, 1919년 34만6619명, 1930년 53만명, 1942년 75만명으로 급증했다. 광복 이후 북한 수용소에서 질병과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은 2만5000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온전한 상태로 1947년까지 일본으로 송환됐다.
그러나 조선 내 일본인 사회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조선총독부를 정점으로 조선인 위에 군림하는 사회구조였다. 그들의 직업 분포를 보면 항상 공무와 자유업이 20~40%를 차지했으며 농림·목축업은 10% 미만이었다. 고리대와 전당포는 통계수치를 웃도는 일본인에 의해 운영될 정도였다.
그들은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도시를 거점으로 생활하며 조선인과 직접 대면하지 않으려 했지만, ‘피침자’인 조선인은 어디까지나 착취의 대상이었다. ‘
야인시대’ 같은 드라마에서 익히 봐 왔던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멸시는 이제 실증자료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집에 ‘어머니’라 부르던 조선인 하녀를 데리고 있던 일본인은 74.2%였다. ‘어머니’는 인격이 없는 로봇과도 같은 존재였다.” “가난한 달걀장사 조선인을 여러 명이 에워싸고 눈에 띄지 않게 속여 훔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처음엔 불쌍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아아, 이 조선 놈들은 열등하다’ ‘이놈들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같은 의식은 식민 지배가 정당하며 조선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이 ‘제1유형’이라면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게 조선을 그리워하는 일본인이 ‘제2유형’,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본인이 ‘제3유형’이라고 저자는 분류한다. 성균관대 연구교수인 역자는 ‘제1유형’의 일본인들이 아직도 존재하며, 향후 급증하리라는 예감을 숨기지 않는다.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역사의 다른 쪽도 반드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