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태훈기자]

이 소설집은 문학의 새로움 찾기를 위한 진지한 모색의 결과물이다.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과 경북 영주에서 열린 국제문학축전 ‘2006년 서울, 젊은 작가들’에 참가한 16개국 작가 가운데 올가 토카르축, 알레한드라 코스타마그나 등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9명의 단편들을 모았다.

소설집 제목인 ‘눈을 뜨시오…’는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축의 작품. 그녀는 구태의연함에 빠진 문학을 조롱하고 새로운 발상을 추구하는 자신의 소설쓰기를 추리소설 기법으로 절묘하게 설파한다. 주인공 C는 추리소설 애독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살인, 수사, 가해자의 정체 폭로로 이어지는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범죄와 형벌에 관한 모든 규칙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오로지 작가뿐이다. …바로 그 점이 C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졌다’.(9~10쪽)

C는 핏자국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빛깔의 추리소설을 골라 읽는다. 소설 속 무대는 프랑스 북부 플랑드르의 한 고성. 추리소설 작가들이 모였다. 작가 토카르축이 한국의 국제 문학축천에 참가했듯, 그들은 세계 추리소설의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작가들은 살인자 알아맞히기 게임을 시작한다. C는 도입부에서 흥미를 느끼지만, ‘뻔한 긴장 구도’를 강요하는 소설에 식상한다. 소설의 매너리즘을 참을 수 없게 된 그녀는 직접 소설 속으로 들어가 소설의 등장인물인 추리작가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추리작가들은 게임이 실제 살인사건으로 번지자 당황한다. 그들은 범인을 찾아 나서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살인자는 소설 밖에 있는 독자 C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소설로 뛰어들어 살인을 저지르는 구도는 필연적으로 현실과 상상의 공간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소설 말미에 C의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친다. C는 어쩌면 실제 공간에서도 살인을 저질렀을 수 있지만 소설은 거기서 끝난다.

유태계 아르헨티나 작가인 마르셀로 비르마헤르는 수록작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바람난 유부남을 등장시켜 삶의 부조리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대인 구역인 온세거리에 사는 40대 남자 하비에르는 늘씬하고 가슴이 풍만한 라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크리스마스날 밤, 그는 단티니스씨 집에서 파티를 하다가 그녀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그녀는 “전 단티니스 씨 집으로 갈 거예요. 당신은 거기서 왔지요?”라고 묻는다. 단티니스씨의 집에 그녀의 정부가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소설가 마리오 데지아티는 단편 ‘눈꺼풀 너머’에서 신경증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전복된 가치관, 평화를 향한 구호 이면에 전쟁을 선동하는 모순 등이 부각된다. 작가는 지진과 화산폭발로 문명이 파괴되고 오직 주인공만이 살아남는 장면을 통해 낡은 인류의 종말과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꿈꾼다. 그것은 새로운 문학에의 갈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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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석재기자]

“신(信)이란 음양이 합일해서 진실무망(眞實無妄)을 이룬 것이다. 무망은 진공(眞空)이다. 비어도 비지 않으며 비지 않아도 비었으니,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다 그 안에 있다.”

진융(金鏞)의 소설 ‘사조영웅문’을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전진도(全眞道)는 사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중국 도교의 한 교파다. 주술성을 배제하며 유교·불교의 사상을 흡수한 이 교파의 용문파(龍門派) 11대 전인(全人)이 바로 저자 유일명(劉一明·1734~1821)이다. 도교 사상가로서는 드물게 그의 수많은 저술은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책이 ‘주역천진(周易闡眞)’이다.

이 책은 ‘주역’의 원전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도교적인 관점에서 그 경문을 풀어낸다. 사실 ‘주역’은 유교의 근본 경전. ‘남의 책’을 통해 도교 수련의 원리와 과정을 설명하면서도 유·불·선이 종합된 시각을 잃지 않는다. 인간의 성정(性情)을 도야해 성(性)과 명(命)을 보존하는 합리적인 수행 방법으로 신비주의를 극복한다는 것. 역자는 역(易) 사상에 정통한 동양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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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한우기자]

스튜어트 홀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신좌파 문화연구가다. 국내에서도 이미 그의 저서나 논문들이 폭넓게 읽히고 있고 그에 관한 소개서도 다양하게 나온 편이다. 그럼에도 프록터의 이 입문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간의 난해한 이론개념 중심의 해설에서 벗어나 초보자들도 알기 쉽게 홀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는데 있다.

홀의 문화연구는 기본적으로 좌파진영 내부의 노선싸움과 깊이 관련돼 있다. 전통좌파는 문화를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에도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문화의 독자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홀은 문화 자체를 정치적인 행위로 파악한다.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정치투쟁에서 문화가 가는 의미를 간파했던 20세기초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와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홀과 그람시는 좌파들 사이에서 90년대말 큰 붐을 일으켰다. 어쩌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좌파들이 경직성을 털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문화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홀은 무엇보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문 사상가다. 그는 대중문화를 저급하게 보지 않는다. 대중문화는 그 자체로 타협과 저항이 긴장을 형성하는 영역이자 하나의 국면이다. 더불어 홀은 거대한 이론체계를 믿지 않았다. 그 때 그 때의 국면과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이론가 본연의 일이라고 여겼다. 프록터는 홀이 이렇다 할 단행본을 남기지 않고 잡지기고나 짧은 논문을 통해 주로 발언했던 것도 단행본이 갖고 있는 체계성과 완결성을 홀이 혐오한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사실 홀의 글을 현재의 시점에서 읽어보면 이미 낡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드라마 광고 영화 등 대중문화의 현장에 대한 분석은 그의 초창기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훨씬 정교해지고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결성보다는 개방성을 중시했던 그이기에 스튜어트 홀은 여전히 지적 자극을 제공한다. 여기에 좌나 우는 의미가 없다. 사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임을 고집하면서도 혁명을 꿈꾸지 않았고 마르크스조차도 마르크스주의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던 열린 사상가였다. 90년대에는 영국의 현실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도 던졌다.

좌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곤혹스러웠던 대처의 시대가 끝나고 노동당 출신 블레어가 등장했을 때 그는 이렇게 논평했다. “블레어는 몇 개의 노랫말은 배운 것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음악은 잊어버렸다.” 홀이 보기에 블레어는 좌파적 파편은 갖고 있을지언정 혼(魂)을 가진 좌파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블레어의 신노선을 ‘제3의 길’이라고 찬양하던 무렵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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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석재기자]

“1927년, 미나마타에서 일당 1원 60전을 받던 일본인 쓰게 단조는 조선질소 흥남공장으로 파견된 뒤 ‘조선 수당’을 가산해 2원 60전을 받았다. 게다가 조선은 물가가 싸서 한 달에 20원 정도만으로도 귀족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20세기 한국현대사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사각지대에 대한 복원이다. 왜 여태껏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일제시대가 피침(被侵)과 저항의 역사였다면, 도대체 바로 그 ‘침략’의 주체는 누구였다는 말인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 그리고 그 지배집단의 내부구조에 대한 이해와 분석 없이 그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놀랍게도 이 부분은 일본사 영역에서도 그다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저자인 일본 쓰다주쿠대 국제관계학과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 교수의 이 책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풀뿌리 침략’이야말로 식민지배를 지탱한 근거라고 보고, 1876년 개항부터 1948년까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다양한 군상에 접근한다.

실로 그 스펙트럼은 넓었다. 식민지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군인과 경찰, 관료, 상인, 기업경영인, 지주, 그리고 교사·교수·문학자와 같은 지식인층, 회사원과 농민, 대륙낭인, 주부, 학생, 유곽에서 일하는 예창기(게이샤)까지. 개항 당시 54명에 지나지 않았던 조선 내 일본인은 1905년 8만3315명, 1919년 34만6619명, 1930년 53만명, 1942년 75만명으로 급증했다. 광복 이후 북한 수용소에서 질병과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은 2만5000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온전한 상태로 1947년까지 일본으로 송환됐다.

그러나 조선 내 일본인 사회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조선총독부를 정점으로 조선인 위에 군림하는 사회구조였다. 그들의 직업 분포를 보면 항상 공무와 자유업이 20~40%를 차지했으며 농림·목축업은 10% 미만이었다. 고리대와 전당포는 통계수치를 웃도는 일본인에 의해 운영될 정도였다.

그들은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도시를 거점으로 생활하며 조선인과 직접 대면하지 않으려 했지만, ‘피침자’인 조선인은 어디까지나 착취의 대상이었다. ‘야인시대’ 같은 드라마에서 익히 봐 왔던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멸시는 이제 실증자료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집에 ‘어머니’라 부르던 조선인 하녀를 데리고 있던 일본인은 74.2%였다. ‘어머니’는 인격이 없는 로봇과도 같은 존재였다.” “가난한 달걀장사 조선인을 여러 명이 에워싸고 눈에 띄지 않게 속여 훔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처음엔 불쌍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아아, 이 조선 놈들은 열등하다’ ‘이놈들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같은 의식은 식민 지배가 정당하며 조선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이 ‘제1유형’이라면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게 조선을 그리워하는 일본인이 ‘제2유형’,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본인이 ‘제3유형’이라고 저자는 분류한다. 성균관대 연구교수인 역자는 ‘제1유형’의 일본인들이 아직도 존재하며, 향후 급증하리라는 예감을 숨기지 않는다.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역사의 다른 쪽도 반드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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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용관기자]

아는 사람은 익히 아는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책은 사전류다. 인터넷이 일상화되기 전 영미권에서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이었다. 호기심 충족, 자립적 학습, 상상력 개발 면에서 백과사전에 필적할 만한 건 없었다.

국내 소규모 출판사로선 놀라운 책이 나왔다. 초등학교 전 학년 전 과목에 나오는 모든 용어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말들을 뽑은 뒤 사회·문화·역사·과학·자연·예술·인물 등 분야별로 나누고 표제어를 정해 각각 한 권의 사전에 담았다. 주제별 사전이란 얘기다.

사회사전에 이어 출간된 과학사전의 경우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우주과학·기술 등 750여 항목으로 나눠 서술했다. 아이들 책에 글씨만 가득할 수는 없는 법. 천연색 사진·그림·도표 등이 1000여 개다. 사회와 과학이 먼저 선을 보였고, 나머지는 차례대로 나온다. 지나간 어린이날 선물로 줬다면 될성부른 아이라면 자지러졌을 매우 훌륭한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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