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저편 7
히가와 쿄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5월
절판


책 겉표지

천상귀로 변하고 있는 이자크

책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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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그늘 1
김하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3월
품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대, 절 향해 싱긋 한 번 웃어줬으므로
그게 은빛 탄환처럼 제 가슴 꿰뚫어
제 전 생애가 단번에 휘청거렸다는 것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요?
한 순간 한 줌의 그 부드러운 미소가
단정하게 걸어가던 제 미래를
여지없이 꺼꾸러뜨려 버렸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뒤로 그대 생각만 해도 눈물 흐르고
마음이 피처럼 붉어지는 바에야.
어떻게, 이토록 단 한 번에 정통으로
깊이 숨겨둔 제 사랑을 관통시켜 버렸는지.
복장 터지게 억울하면서도 행복하고
행복한 만큼 그대 무심에 핏발 섭니다.
내 마음 이토록 쉽게 뚫려야만 했던 것인지
지금도 정신 나가고 넋 나갔습니다.

'단 한번에'-.쪽

인영은 입이 조금 벌어진 채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다시 보았다. 지금은 키도 작고 말랐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나갈 녀석이긴 하다. 야무짐으로 빛나는 얼굴. 어쩌면 나중에 참 멋진 청년이 되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분명 나를 오랫동안 남몰래 좋아해 온 소년 같긴 한데, 상처를 입을까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고. 아니면 코웃음치고 얼버무리듯, 도망치듯 남자와 자리를 뜰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자친구가 나서서 흠씬 패주라고 할 수도 없고.
저, 저 녀석……. 좀 봐! 점점 더 결의를 다지는 듯한 저 표정. 한 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자세야. 말이 전혀 안 통하는 녀석인데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쪽

재민의 주된 관심이 인영이 누나에게 완전히 옮겨가기 전까진 거의 매일 하루 한 시간 이상은 성당의 소녀상을 보러 찾아갔었다. 포도송이 모양의 푸른 꽃이 주렁주렁 열리듯 피는 등나무 아래에 놓인 긴 나무의자에 앉아 또래로 보이는 소녀상을 보고 있으면 그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마음이 덥혀지는 듯 따스해졌다. 조금은 부푼 흰 가슴에 모은 소녀의 두 손을 보고 있으면 까닭 없이 눈물이 났고 미소가 머금어졌다.
폭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 흰 손이 가진 평화스러움과 한없는 위로가 느껴져서였다. 사람들이 모두 다 저렇게 평화롭고 깨끗한 손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손이 만드는 가족과 집과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재민은 문득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서울과 큰형의 집, 그리고 학교에서까지 잘 적응하지 못한 그로선 그의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중곡성당이었다. 소녀상은 재민의 세상 유일한 친구이었다.
소녀상은 늘 한곳에 서서 늘 그를 기다려주는 소녀로 변해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그의 그리움이 된 것이다. 재민에게 있어 서울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는 맑고 매끄러운 흰 석고 소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쪽

목련은 잎 없이 먼저 꽃을 피운다.
다른 나무나 꽃나무들은 거의 다 잎새가 먼저 피어나고, 수많은 잎들이 바람결과 햇빛의 온도를 감지해 본 뒤 숨겨놓은 꽃순의 문을 노크해 나오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마치 공주의 행차를 알리는 시녀들처럼.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서로의 어여쁨과 아름다움을 시샘이라도 하듯 앞 다투어 꽃 봉우리는 꽃망울을 터뜨린다. 순식간에 나무 하나를 소란스러운 화색으로 가득 채운다.
앙상하지만 깨끗한 벗은 몸매 같은 맨가지에서 하나 둘 탐스럽게 피어나는 목련의 모습은 고고하고 정결하다. 재잘거리는, 수다스런 잎들과는 결코 같이 피거나 나무에 함께 매달리지 않는 목련꽃의 습성은 가히 결백적이다. 흰색과 미색의 중간색, 혹은 티 하나 묻지 않은 흰색으로 꽃이 핀 모습은 처음 흰 블라우스를 입고 외출하는 턱선 고운 처녀의 우아한 자태와 미소를 보는 거 같다.그러나 잎 없는, 번잡과 소란을 싫어하는 목련이어서 그런지 그 순결한 꽃잎이 떨어질 때는 더없이 참혹하다. 검은 사신(死神)이 그 동안 시샘하기라도 했듯이 무참하게 짓밟아 그 희고 빛나던 꽃의 살결을 검게 물들인다.
기껏해야 꽃나무인 주제에 뭐 그리 순결하고 깨끗하냐고 냉소를 퍼붓듯 바닥에 떨어진 두툼하고 커다란 흰 꽃잎을 순식간에 완전히 거무튀튀한 검은색으로 만들어버린다. 목련나무는 그 꽃들이 다 떨어져서야 잎을 피운다. 지나간 사랑을 푸른 가슴으로 노래하듯이 잎들을 가슴빛으로 돋궈내는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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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 읽노라~~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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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좋은글 엮음 / 산호와진주 / 2005년 9월
품절


자기의 목적에 대한 수단을 알고, 그것을 포착하여 이용할 줄 아는가 모르는가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엇갈린다.

-괴테-.쪽

아버지란 무엇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아들, 딸의 학교성적이 자기가 기대한 만큼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면서도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면서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직장에는 즐거운 일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쪽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여기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남모르게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쪽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다음과 같다.

4세 때 : 아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7세 때 :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 때 :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때 :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다.
14세 때 : 우리 아버지요? 세대차이가 나요.
25세 때 :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하지만, 기성세대인 것 같습니다.
30세 때 :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때 :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때 :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어.
60세 때 :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쪽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두 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를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성가도 부르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쪽

3초의 여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세요.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출발 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경적을 울리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세요.
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려요.
그 사람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르니까요.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보고 있어 주세요.
혹시 그 친구가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웃어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아니면 뉴스에서 불행을 맞은 사람을 보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언젠가는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니까요.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내가 화낼 일이 보잘 것 없지는 않은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다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3초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세요.
그 아이가 크면 분명 내 아이에게도 그리할 것이니까요.

죄 짓고 감옥 가는 사람을 볼 때 욕하기 전
3초만 생각해보세요.
내가 그 사람의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쪽

삶이란 공중에서 다섯 개의 공을 돌리는 인생의 저글링이라고 상상해 보자. 각각의 공을 일,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영혼(나)이라 명명하고 모두 공중에서 돌리고 있다고 생각하자.
조만간 당신은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어서 떨어뜨리더라도 바로 튀어 오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네 개의 공들(가족, 건강, 친구, 영혼)은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중 하나라도 떨어뜨리게 되면 떨어진 공들은 닳고, 상처입고, 긁히고, 깨지고, 흩어져 버려 다시는 전과 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 사실을 이해하고 당신의 인생에서 이 다섯 개의 공들이 균형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과소 평가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들 각자는 모두 다르고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목표를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두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두어라.
당신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 당신의 삶처럼 그것들에 충실하라. 그것들이 없는 당신의 삶은 무의미하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해 당신의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하지 말라. 당신의 삶이 하루에 한번인 것처럼 삶으로써 인생의 모든 날들을 살게 되는 것이다. 아직 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진정으로 끝난 것은 없다.
-.쪽

당신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 말라. 우리들을 구속하는 것이 바로 이 덧없는 두려움이다. 위험에 부딪히기를 두려워 말고, 용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
찾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당신의 인생에서 사랑의 문을 닫지 말라. 사랑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주는 것이고, 사랑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랑을 너무 꽉 쥐고 놓지 않는 것이며, 사랑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은 그 사랑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진 말라.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감정은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고맙다고 느끼는 그것이다.
시간이나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 둘 다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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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 악의 역사 3, 중세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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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라는 이름은, '이사야서' 14장의 위대한 왕, 새벽 별, 자신의 자만심 때문에 하늘에서 떨어진 헬렐 벤 샤하르(Helel-ben-Shahar)와, "총조된 날로부터 죄악을 저지를 때까지 나름대로 완벽했던" '에제키엘서' 28장의 거룹과, 이 세상의 왕이며 하나님 왕국의 방해자인 사탄과의 연합으로 생겨났다. 이 세개의 개념들이 정확하게 언제 합쳐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리겐은 3세기경에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간주했다.-.쪽

악의 본질은 폭력이다. 해리스(J. Harris)는 그의 저서 『폭력과 책임』에서 폭력을 "자신의 행동이 발생시키게 될 해를 아는(혹은 당연히 알아야 하는) 어떤 행위자가 다른 사람이나 사람들에게 상처나 괴로움을 가할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괴로움은 고통의 한 모습으로, 뚜렷한 세 가지 요소를 지닌다. 첫째, 자연스러운 폭력이든 고의적인 폭력이든,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있다. 해악을 끼치는 이 행동은 적극적인 의미의 악이다. 사탄이 머무르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두 번째, 감각적인 자극에 대한 격렬한 신체적 반응으로 엄격하게 정의되는 고통이다. 이러한 의미의 고통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다. 만약 그러한 고통이 당신의 발에 불이 붙었다는 것을 경고해준다면, 그것은 유용한 것이다. 세 번째는 공포, 불안, 놀라움, 전멸에 대한 두려움 등을 포함하는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수동적인 악이며, 적극적인 악의 결과이다.-.쪽

폭력은 악의적으로 괴로움을 가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의사의 수술용 칼같이, 고통을 일으키더라도 폭력적인 것으로 분류할 수 없는 몇몇 예들이 있다. 그 의도가 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료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괴로움을 가하는 것이 폭력의 본질이며 도덕악이다. 홍수나 근이영양증(筋異營養症) 같은 "자연적인 악" 또한 폭력의 예가 된다. 그러한 것들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거나, 우주론의 측면에서 보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간단히 치부할 수 없다. 만약 신이 이 세상을 책임지고 있다면, 이러한 자연적인 악과 그에 수반하는 괴로움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이중효과의 원칙이 신의 책임을 면제해줄 수는 없다. "이중효과"란 개인이 행위를 할 때 정확히 의도하는 바와 그 행위의 예측가능한 결과와의 사이에서 빚어지는 차별성을 뜻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두 사람이 동일한 거리에?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본다면, 그는 나머지 한 사람이 익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사람을 구하러 갈 것이다. "이중효과"의 한계는 또 다른 예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세계를 불의로부터 구하기 위해 핵무기를 발사한다. 전지하신 신이 그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은 우주를 만들면서, 자신이 만든 우주에서 아이들이 고통받게 될 것임을 틀림없이 알고 있다.-.쪽

디오니시우스가 남긴 수많은 말 중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악을 정의한다.

악은 "부족함, 결핍, 약함, 불균형, 과실이며, 무의미하고, 추하고, 생명이 없고, 어리석고, 무모하고, 불완전하고, 실재하지 않으며, 이유 없고, 불확실하고, 황폐하고,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혼란하고, 부조화하며, 애매하고, 음울하며, 실체가 없고, 그 자체로는 어떤 존재도 결코 소유하지 못한다."
-.쪽

우주는 거룩한 신의 뜻인 탁시스 히에라(taxis hiera), 즉 신성한 질서에 따라 배열된다. 이것은 불변하며 절대적이다. 무질서한 것(atakton)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화는 모든 신의 창조물이 신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다. 우주의 본질적인 통합은 여기에 달려 있다. 이러한 합일은 모든 창조물이 테오시스, 즉 신격화의 과정을 통해 점차 신에게로 가까이 올라감에 따라 실현된다. 우주의 목적과 계급의 기능은 세상을 신 가까이로 끌어가는 것이다. 먼저 왜 신은 다양성을 창조하는가? 왜냐하면 그의 본질 속에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로 가득 차서, 창조력이 풍부한 다양성과 힘, 빛을 방출한다. 생명이라는 선물을 아낌없이 무한정 주는 것은 신의 본성의 일부이다. 신은 우주를 다스릴 섭리에 여러 성질의 결핍을 포함시켰다. 비록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어떻게 그랬는지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쪽

"악마들이 신으로부터 나왔다면, 어떻게 그들 자신은 선하지 않을 수 있는가?" 디오니시우스는 자신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악마는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의지를 통해 악하게 된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은 우주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리고 천사로서, 그에 걸맞은 모든 훌륭한 재능이 선사되었다. 악은 물질과 육체, 동물, 혹은 존재하는 어떤 것에도 본래부터 주어져 있지 않다. 악은 타락한 천사와 타락한 인간들의 사악한 의지로부터 비롯되며, 그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마음껏 이용하여 선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것을 탐한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약화시키며 강등시킨다. 이러한 악은 본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본성을 왜곡한 결과이며, 실체로부터 본성을 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결핍된 성질(악)이 그 자신의 힘으로 선과 싸운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데, 그것은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존재는 마치 진공처럼, 창조물을 비존재의 공간으로 빨아들인다.-.쪽

악의 본성은 선하고 실재한다. 신이 그것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마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를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향하게 한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만큼, 악마는 선이자 존재이며 실재하는 신에게서 멀어져가고, 결핍이자 비존재이자 악으로 향해간다. 모든 창조물 중에서, 악마는 신에게서 가장 멀어지며, 무(無)에 가장 가까워진다. 그러나 토네이도의 중심에 있는 저기압처럼, 텅 빈 악마는 실재하는 것들을 무시무시하게 파괴한다.
귀족의 신분으로 수사이자 수도자가 된 고백자 막시무스(c. 580-662)는 디오니시우스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해석하여, 다시 서방과 동방 교회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디오니시우스와 마찬가지로, 막시무스는 신의 의지를 통한 우주의 신격화를 강조한 신비주의자였다. -.쪽

악마의 존재는 선하다. 그의 악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무지하게 오용한 결과이다. 악마의 동기는 신과 인간에 대한 질투이다. 그러나 악마가 신의 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또한 신의 "노예"이자 "옹호자"이기도 하다. 신은 악마로 하여금 우리를 유혹하도록 함으로써, 우리가 미덕과 죄악을 구분하도록 도우며, 우리로 하여금 투쟁을 통해 미덕을 성취하도록 하고,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며, 우리로 하여금 악을 분간하고 증오하도록 하며, 우리가 신의 권능에 의지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악마는 누구에게도 죄를 짓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로 죄를 짓는다. 그러나 신은 사탄으로하여금 우리를 유혹하도록 허락한다.

=>어쩜 이런 이유에서 악이 존재하는것인가요?-.쪽

비잔티움 대중들의 사고에서, 악마적 힘에 대한 인식이 만연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서방의 대중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신학자들의 관점을 전달한다. 솟 악마 연구에서와는 달리, 악마론에서는 이단적 요소들이 드물다.왜냐하면 악마는 이교도의 신앙에서는 존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악마는 적어도 암시적으로나마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항상 나타난다.-.쪽

중세 초기의 작가들은 사탄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오리게네스의 반대자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나아가 왜 사탄이 구원받을 수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추구했고, 이에 대한 설명을 제공했다. 첫째, 루시퍼나 그의 사악한 천사들은 구원받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조금도 회개하지 않는 그들은 최초의 죄로 인해 실재로부터 멀어져 파멸을 향해 가는 돌이킬 수 없는 궤도로 보내진다. 둘째, 천사들은 그들의 고귀한 본성 속에는 신에게서 부여받은 비범한 저항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타락은 인간보다 훨씬 더 큰 죄가 된다. 셋째, 순수한 정령인 천사들은 육체의 나약함에 의해 유혹에 넘어갔다고 변명할 수 없다. 넷째, 인간은 이미 죄를 지은 사람에게 유혹을 당했다는 정상참작이 가능하지만, 악마는 그러한 변명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스스로가 모든 죄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심판은 단호하고 최종적인 것이다. 루시퍼에게는 전혀, 아무런 희망이 없다.-.쪽

요한의 인식론은 기본적인 것이었다. 신은 우리와 그 모두에게 전혀 인식할 수 없는 존재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정의될 수 없다. 더 나아가, 신은 어떤 것도 아니다. 신을 무언가라고 얘기하는 것은 신을 창조물들과 동일한 범주에 두는 것이므로 모순된다. 게다가 신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다. 신에 대해 단언하는 것은 그 반대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거대하다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신이 작다는 것을 부정하게 된다. 그가 빛이라고 얘기하면, 신이 어둠이라는 것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신은 모든 범주를 넘어서, 모든 범주를 초월하며, 모든 반대개념들을 통합한다. 신에 대한 긍정은 단지 비유일 뿐이다. 부정은 직설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혹자는 어쩌면 정말로 신은 공간에 제약을 받는다고 말하거나 그가 빛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에 대한 다른 진술을 배제시키는 어떤 진술도 타당하지 않다. 신은 심지어 본질이라고도 얘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질은 무(無)의 반대인데, 신은 무엇인가인 동시에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쪽

우리는 신이 본질을 초월한 존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부정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이 어떤 존재인가가 아니라, 신이 어떤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본질도, 물질도, 존재도 아니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하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마치 시공(時空)의 연속선상을 점하고 있는 것처럼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개나 탁자, 별, 여성은 존재할 것이나, 신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이 긍정을 무효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디오니시우스와 마찬가지로 요한은 긍정적, 혹은 유념적(cataphatic) 신학보다는 부정적, 무념적 신학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는 가장 진실된 명제는 역설이며, 서로 반대되는 일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에 대한 어떠한 진술도 두 개의 반대되는 명제로 나뉠 수 있으나, 둘 중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닌 동시에, 둘 다 진실이다.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기는 하지만 허튼 소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진실이다. 즉, 신은 존재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신을 포함할 수 있는 어떤 범주도 생각해낼 수 없다.-.쪽

모든 이야기 가운데, 여자 수도원장의 이야기가 가장 강렬한 종교적 감정을 드러낸다. 비록 이야기하는 사람이 반드시 초서 자신이 아니라 여성 수도원장이라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을 신랄하게 반대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악마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이 불길한 존재가 유대인으로 의인화된다는 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가를 불러서 거리에서 붙잡힌 신앙심 깊은 어린 청년의 운명은 좁다란 인생의 길목을 지나면서 악마에게 급습을 당한 그리스도를 믿는 영혼의 운명과 같다. 이슬람의 '이교도'나 이단적인 '마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악마의 충복이었다.-.쪽

초서는 도덕적인 행위의 중심을 신과 악마 사이의 보편적인 투쟁에서 인간의 영혼 속에 깃들여 있는 선과 악의 투쟁으로 전환하였다. 적어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악역들-이아고, 맥베스 부인, 에드먼드-은 깊은 악의 우물에서 길어 올려진다. 그 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디에선가에서 나와서 우물 안으로 스며든다. 악마가 그 근원으로 지명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움직임이 인간을 향해 나아가면서 악마의 역할이 약화됨과 동시에, 14, 15, 16세기의 설교 문학이나 극문학에서 악마는 일반적으로 이전보다도 대중들에게 더욱 다채롭고 생생하게 다가갔다. 이러한 광범위한 대중적인 믿음에 기초한 대마녀광란은 르네상스적인 현상이었고, 마녀광란은 정확하게 셰익스피어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영국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 이야기는 신랄한 반유대적인 성격을 지니고 악마가 인간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사악한 존재가 유대인으로 인격화된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쪽

신은 9등급의 천사를 만들었고, 가장 높은 등급의 가장 높은 천사로 루시퍼를 창조했다. 그래서 이 우주에서 신 다음의 2인자가 되었다. 신은 루시퍼를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너를 나와 가장 가깝게 모든 힘을 부여해서 만들었노라. 나는 너를 내 권세의 주인이요 귀감으로 만드노라. 나는 너를 천상의 지복으로 아름답게 창조하노라. 그리고 너를 빛을 가진 자, 루시퍼라고 부른다." 루시퍼를 따로 떼어놓으면 필연적으로 악이 여러 가지 원인을 통해서 발사되기보다는 하나의 사악한 인격에 집중된다고 생각하는 견해에 이른다. 많은 악령들이 존재하지만 악마 하나에게로 통일되는 것이 필요하다.-.쪽

중세의 문헌에 따르면, 악마는 대체로 루시퍼 아니면 사탄으로 불려진다. "루시퍼"는 중세 초기만 해도 그리스도를 빛을 가진 자라고 명명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흔하게 불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퍼라는 이름은 중세 후기 문헌에 나오는 사탄만큼이나 흔하게 되었다. 비록 문학적인 대화를 강화하기 위해서 종종 구분되기는 했지만, 루시퍼와 사탄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보편화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엘로이 다메르발의 『마법의 서』에서는 루시퍼와 사탄 사이에 학식 있고 풍자적인 대화가 나온다. 마치 수세기 후에 C. S. 루리스가 자신의 작품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그랬듯이, 작가는 악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루시퍼라는 이름은 타락 전후의 어디에서나 악마의 대명사로 자주 불려졌지만, 사탄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지위에서 강등된 이후에 정해졌다. 이런 이유로, 루시퍼는 다소 높은 지위를 누렸고 몇몇 작가들은 루시퍼를 지옥의 지배자로 사탄을 루시퍼의 부관으로 만들었다. "기욤 드 디귈르벨(Guillaume de Digulleville)"의 환시에서, 사탄이 기욤의 영혼을 붙잡으려고 위로 올라가는 동안에 루시퍼는 지옥에 묶여 있다. 주인인 루시퍼와 충복인 사탄 사이의 긴장은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내기 위해서 아놀 그레방에 의해 활용되었다.-.쪽

비록 몇몇 근대의 작가들은 루시퍼에게 사탄이 복종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신학이나 가장 주요한 문학에도 예를 들면, 단테나 랭글런드, 성체축일 연극에서도 그런 상하관계로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N-타운 연극에서는 둘을 동등하게 다룬다. 여기서 루시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들의 주 루시퍼다. 나는 지옥에서 나왔으며, 이 땅의 군주이고 지옥의 대공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사탄 경이라고 불린다." 지옥의 지배자는 인페루스(Inferus, 의인화된 지옥)인데, 사탄에게 악한 심부름을 보낸다. 사탄은 지옥의 군주이고, 바알세불을 보내 부자들의 영혼을 잡아오도록시킨다. 메리의 후온에서 사탄은 몰려드는 그리스도의 군대에 맞서 절망의 도시를 방어하는 악의 군대의 사령관이다. 『농부 피어스』에서처럼,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와 아담이나 그리스도를 유혹하고 악마가 시키는 여러 가지 짓을 하는 것은 바로 루시퍼다. 사탄이 루시퍼에게 복종했다고 썼던 작가들은 아무런 신학적인 정당성도 없이 오직 문학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러한 복종은 우발적이거나 일시적이거나 사소한 것이었으며 , 악의 인격화라는 측면에서는 아무런 개념적인 중요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탄", "루시퍼", 그리고 때로는 "바알세불"이라는 다른 이름도 모두 어둠의 지배자 하나만을 의미한다.-.쪽

이와는 대조적으로, 악마와 사소한 악령들 사이의 차이는 신학적으로도 문학에서도 대체로 분명히 나타난다. 중세의 문헌에서는 악령들에게 수많은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중에서 극소수만이 악마 그 자신과 동격으로 불리는 이름이었다. 15세기 "빛의 제등(Lanterne of Light)"에 나오는 일곱 가지 악덕의 악령들에게 붙여진 일곱 개의 이름들은 마왕과 가장 흔하게 연관되는 것들이다. 루시퍼(자만심), 바알세불(질투), 사타나스(분노), 아바돈(나태), 마몬(탐욕), 벨페고르(폭식), 그리고 아스모데우스(호색). 악마에게 붙여진 다른 이름들로는 베리알, 베헤모트, 베리트, 아스타로트, 인페루스, 그리고 바알 등이 있었다. 때로는 투티빌루스와 같은 작은 악령도 인류라고 하는 교훈극에서처럼 온갖 악덕을 대표하는 중요한 악령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투티빌루스는 대체로 기록 담당 천사의 패러디였다. 이 악령은 부주의한 수도사들이 의식을 거행하는 동안에 빠뜨리거나, 필사실에서 서투른 필경사가 빼먹은 죄의 목록이나 문장들이 담긴 가방을 들고 다녔다.-.쪽

어떤 이름들은 루시퍼, 루시비아우스, 라이트베렌드처럼 중요한 이름들을 변형하거나 번역한 것들이었다. 대체로 사소한 악령들에게 붙여진 또 다른 이름들은 고전에 나오는 신들이거나, 고전의 저자들 자신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에서 유래했다. 이들 가운데에는 아폴로(「요한계시록」 9:11에 나오는 아폴론(악마)이 힘을 불어넣어 주었고, 실제로는 히브리어의 아바돈을 번역한 것으로 그리스의 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케르베루스, 카론, 다이아나, 주피터, 넵튠, 오르쿠스, 플루토, 프로세르핀, 탄탈루스, 비너스, 그리고 불칸 등이 있었다. 암몬, 몰로크, 그리고 베리트와 같은 몇몇 이름들은 성서에서 유래되었다. 테네브리퍼(어둠을 가진 자), 코코니퍼(뿔을 가진 자, 이것은 유부녀의 바람기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숀스피겔(귀여운 거울)이나 스피겔그란츠(거울의 희미한 빛)처럼 몇몇 이름들은 반어적이었고, 마지막 두 개의 이름은 여자들의 허영심을 날카롭게 관찰한 결과였다. 다른 이름들은 조잡하게 묘사하는 식이거나 모욕적인 것들이었다. 라버, 머더러, 라가머핀, 리발드, 카코데먼(악한 악령), 크룸나제(메부리 코), 회른리(뿔달린 것), 스랑에(뱀 같은), 고블리, 바바린 또는 헬훈트. 아마도 악한 인간의 이름들이 악령에게 적용되었다. 아그라파르트(헤롯 아그리파), 아마발(한니발), 헤로디아스, 무하마드, 파로스(파라오), 그리고 빌라도. -.쪽

악마가 보기에는 신이 자신을 하늘나라에서 부당하게 내쫓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늘나라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대신할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굴욕감을 더했고, 인간이라는 형상을 택해서 자신을 더욱 좌절시키려고 계획했다고 여겼다. 마침내 신은 천사의 형상보다는 인간의 형상을 선호함으로써 악마를 모욕했다. 처음에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가 다음에는 인간의 육체 안에 성육신할 계획을 세운다. 사탄은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들은 흠 없고 밝게 빛났으므로, 나는 신께서 우리의 형상을 취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실망했노라. 신은 인간의 형상을 취하려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질투 나게 만든다." 그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같은 그러한 조잡한 창조물이 어떻게 그런 지복을 누릴 수 있단 말인가?(체스터, "루시퍼", 177-178).
타락한 천사들이 자신들의 상태를 논의하면서, 구원을 방해하던 전력을 가지고 있는 많은 평의회의 수석 천사들은 천사들의 마음을 복수심으로 바꾸어놓았다. 천사들의 불평은 점차 새로운 창조물, 특히 가장 귀중한 보석인 아담과 이브를 파괴하려는 음모로 바뀐다. 사탄은 스스로 이렇게 하리라고 말한다.-.쪽

타락한 천사들의 의회에서는 자신들 가운데 하나를 에덴 동산에 보내 이 임무를 수행하게 하기로 결정한다. 창세기에는 원래 에덴에서 유혹하는 역할을 뱀이 맡았지만, 아담과 이브의 죄는 적어도 3세기 이후로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악의 원천으로 간주되었고, 그래서 유혹자는 악마나 적어도 악마의 대리인과 동일시되었다. 에덴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악마가 취했던 형상은 육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습을 가져야 했고, 이브에게 매력적으로 보여 설득할 수 있는 그런 존재여야만 했다. 이는 전통적인 악령들의 기괴한 복장으로는 에덴에서 유혹자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부적절함을 의미했다. 그래서 악마는 인간의 머리를 가진 뱀이나 천사든 인간이든 고상한 형상으로 나타났다. 때로 이 두 가지가 뒤섞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서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가 다음 번에는 뱀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 뱀이 형체를 갖는다면, 대체로 인간의 머리 그것도 여자의 머리를 갖게 되었다. 뱀이 이브처럼 보이게 만듦으로써, 극작가들은 악마의 유혹을 더욱 신빙성 있게 만들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여자를 싫어하는 발언도 할 수 있었다.

=>원죄로부터 여성은 자유롭지 못하는군요.-.쪽

미술과 문학 속의 악마들이 통합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무대 위의 악령을 통해서이다. 지옥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정교한 환시 문학은 단테는 물론이고 구상미술에도 영향을 미쳤고, 어떤 그림들은 그러한 환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자국어로 된 연극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때인 12세기 말부터 미술과 연극은 서로 영향을 주었다. 무대 위에 악마가 출현하게 된 것은 문학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반대로 무대 위의 작품을 보았던 미술가들도 자신들의 견해를 수정하였다. 쉽게 무대 위로 등장시킬 수 없었던 작고 검은 꼬마 악령들은 중세 후기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쪽

마녀 사냥은 악마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악마의 즉각적이고도 무서운 권능에 대한 믿음은 사막의 교부시대를 능가할 정도로 전 사회에 걸쳐 다시 유행하였다. 그리고 마녀 사냥은 악마의 존재를 믿는 것이 불러올 수 있는 끔찍한 위험성을 드러내었다. 불신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사탄의 종복이고 증오와 파괴의 표적이 되기에 적합하다는 가정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적에게 절대적인 악을 뒤집어씌우는 행위가 악마의 존재를 믿는 자들의 독점적인 특성은 아니지만-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당 정치위원은 심문관들만큼이나 아주 열심히 그런 짓을 했다-사탄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특히 기괴한 방식으로 마법을 손쉽게 악마적인 것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에서 1550년부터 1650년까지 극에 달했던 마녀 사냥은 계몽주의라는 철학적인 이념과 마녀 사냥꾼들의 명백히 지나친 행위로 인해 책임 있고 반성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수그러들게 되었다. 마법을 불신하게 되면서 마법의 기반이 되었던 악마에 대한 믿음도 상당히 불신을 받게 되었다. 악마의 존재를 확대포장하여 알리기에 급급했던 수세기 동안의 사회현상은 18세기 이후 악마의 쇠퇴에도 충분한 책임이 있었다.-.쪽

악마는 메타포이다. 그렇더라도 악마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적인 실재에 접근할 수 없고, 우리의 정신이 감각적인 관찰이나 이성, 무의식적인 요소들로부터 만들어낸 메타포에 항상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악마라는 관념은 메타포이다.
(중략)
악마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악에 대한 메타포이다. 신안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신이 반대하는 악. 악마는 개별적인 인간의 악한 의지를 넘어서는 초의식적이고 초개인적인 악을 상징한다. 악마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급격하고 통제불능의 그러나 궁극적으로 초월이 가능한 악의 상징이다. 우리는 이러한 힘에 대해서 또 다른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름이 발견되면 그렇게 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고통을 회피하고 느끼지 못하거나 사소한 일로 만들지 않는 그런 이름을 붙여야 할것이다.

=> 메타포 : 수사법 가운데 비유법의 하나.

직유법과 대조되며 암유(暗喩)라고도 한다. 원관념은 숨기고 보조관념만 드러내어 표현하려는 대상을 설명하거나 그 특질을 묘사하는 표현법이다. 원관념과 비유되는 보조관념을 같은 것으로 보므로 ‘A(원관념)는 B(보조관념)다’의 형태로 나타난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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