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정진영 기자]
 
▲ 책 표지
ⓒ2006 부키
대학에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수학을 가르치던 학생 중에 학교에서 ‘바보 ○○’라고 불리던 아이가 있었다. 처음 만난 날. 연신 아들자랑에 여념이 없던 어머니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두 살 때 한글을 떼고, 세 살 때 영어와 한문을 공부하고 간단한 산수 문제도 풀었다면서 정작 학교에 간 뒤로 아이가 이상해졌다는 것.

집에서는 멀쩡하던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담임선생님의 말만 믿고 방치한 사이, 친구들 사이에서 호명될 때 이름 앞에 '바보'가 덧붙여졌다고 한다.

집중력이 좋아 한번 책을 붙잡으면 밥 때가 되어도 불러야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아이. 초등학교 3학년 학생 치고는 피아노는 물론 바이올린도 잘 연주해서 각종 대회에서 상도 곧잘 타오는, 집에서 보면 똑똑한 아이가 정작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이의 상태는 과외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욕을 하고 곧이어 죄송하다며 미안해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틱 증상인 것 같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틱이라는 병명조차 들어 본 적이 없어 그저 정서불안이겠거니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아이도 틱의 일종인 음성틱을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최근 사회문제를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틱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 아이가 겪을 사회적 장애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다른 병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아이들이 겪는 틱과 강박증 같은 신경질환에 대해서 부모는 물론 학교와 사회 모두가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공공연한 '시선' 때문에 앓고 있는 병에 마음의 상처까지 받기 쉽다고 한다. 아이들의 고통을 배가시키지 않으려면 투렛증후군이나 ADHD에 관한 앎이 사회구성원 사이에서 상식이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투렛협회 공동 설립자가 가운데 한 사람인 소아정신과 의사 아리베르트 로텐베르거와 앙엘라 숄츠라는 독일인 어머니가 함께 쓴 이 책 <내 아이에게 틱과 강박증이 있대요>는 반갑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명으로 쓴 이 책은 입양한 아들 마누엘과 어머니가 겪은 틱과 강박증에 관한 이야기와 투렛 환자 가족들이 겪은 경험담, 부모와 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의학정보를 묶은 책이다.

이 책은 투렛 증후군의 A부터 Z까지 세세하게 요약해 두었다. 특히 1장에 서술된 마누엘 이야기는 우연히 아들의 병을 알아가게 된 발견 상황부터 진단 및 치료과정을 상세하게 적고 있어 막연히 병을 의심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진단 평가 척도를 대신한다.

2장 투렛 증후군 아이의 부모와 당사자들의 체험보고서에 이어 3장, 부모와 교사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들 편에서는 투렛 증후군에 관한 58문 58답, 주의력결핍과잉행동(ADHD) 장애에 관한 27문 27답, 강박장애에 관한 15문 15답과 의약품에 관한 최신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병을 앓고 있는 환자 가족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그리고 투렛 증후군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앙엘라 숄츠는 마누엘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산만하고 신경질적인 것이 신경정신병의 일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입양아라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했고, 입양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오는 지극히 '정상적인' 통과의례 행동이라고 이해했던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눈을 깜박이거나 코를 킁킁거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틱 환자들은 본인이 괴로운 것도 문제이지만, 학교생활을 비롯한 사회생활에도 큰 지장이 따른다. 많은 아이들의 사회생활이 원활할 수 있으려면 이 병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아이의 버릇이 나쁘거나 심리상태가 불편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틱 장애 아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투렛증후군 판명을 받은 부모들을 위한 몇 가지 조언

-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구하세요!

- 연대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드세요!

- 다른 부모들과 정보를 교환하세요!

- 아이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하세요!

- 아이의 자긍심을 고취시키세요!

- 하루아침에 병을 고치려는 성급한 마음을 갖지 마세요!

- 동네 친구, 이웃, 선생님, 학급 친구 등 아이가 접촉하는 중요한 사람들에게 병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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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수업 하는 아이 중에도 이런 남자아이가 있어요. 얼마전 엄마에게 말씀드리고 치료받게 했죠. 약물치료 중입니다. 지능지수도 높은 아이이고 순수한 편인데 강박증과 틱 행동을 해요. 그룹수업이라 참 어려워요. 그래도 점점 나아지면 좋겠죠..

보슬비 2006-05-19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이런 증세가 있는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주위분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로하는 아이네요. 증세가 호전되면 좋겠어요.

BRINY 2006-05-1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증세가 걱정되어 전문가 상담을 학부모님께 요청했지만, 그냥 엄하게만 잡으려고 하시는 부모님도 계셔요. 아직 인식이 많이 부족한 증상입니다.

보슬비 2006-05-1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의외로 이런 증세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나봐요.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平安道의 어늬 山 깊은 금덤판/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年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백석 ‘여승’)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금광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옥수수를 삶아 팔던 아낙은 딸마저 잃고 여승이 되었다.

합장하는 여승에게서 풍기는 파리하고도 싸한 가지취 내음은 식민지 민중의 가난한 삶을 말하고 있다.

가지취는 일명 참취나물로 불리는 식용 산나물이다. 취나물 또는 치뚜아리라고도 하는 이 늦나물은 날로 쌈을 싸먹으면 쌉싸름하니 향긋하고 개운한 맛이 난다.

“시집온 새댁이 나물 이름 서른 가지를 모르면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던 시절, 산나물은 민중의 삶과 함께 하였다.

안동 사는 김수연 할머니(68)가 일러주는 <산나물아 어딨노?>(소나무.2006)는 보릿고개 시절 주린 속을 채워주던 70가지 산나물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은 야생화로만 알고 있던 들풀들이 봄날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옛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먹을거리였는지를 구구절절 풀어놓는다.

잎이 명태 주둥이를 닮았대서 명태취, 많이 꺾으면 손이 맵다고 꼬칫대, 곰이 나오는 깊은 산에서 난다고 곰취 등 나물이름의 유래를 아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랫동안 민중의 삶의 지혜를 더듬어 온 저자 편해문씨는 “할머니 세대가 먹고 살기위해 절박하게 나물을 찾았다면, 이제 사라져버릴지 모를 산나물을 애절하게 찾고 불러야 하지 않는가”라면서 이렇게 외친다.

“산나물아, 어딨노?”

(사진=‘넘나물’로 불리는 원추리, 꽃 피기 전 어린 순을 데쳐서 먹으면 맛이 있다)

[북데일리 서문봉 기자] munbong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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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네 글자. 누군가에겐 평생의 꿈으로 남고, 누군가에겐 현실이 되는 모두의 꿈이다.

월드비전 구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비야씨의 출현으로 세계여행의 열풍은 더욱 거세졌다. 세계를 향한 한비야의 여행과 도전을 담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1-4)>(금토. 1996-2000), <한비야의 중국견문록>(푸른숲. 2001),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푸른숲. 2005) 은 ‘한비야 신드롬’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세계여행을 꿈꾸는 이라면 한비야씨의 책과 같은 여행기를 찾기 마련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밟아본 선배들의 조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여행기들은 구체적인 여행 ‘Tip’과 분명한 ‘여행 동기’보다는 신변잡기적이고 자의적인 일기식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편집이 보기 좋고 사진이 훌륭하다 해도 여행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여행기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 중 도서출판 혜지원에서 나온 <세계를 모르면 도전하지 마라>(혜지원. 2005) 와 <공새미 가족의 세계여행>(혜지원. 2006)은 분명한 여행 동기,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돌아오기까지 겪었던 어려움과 준비과정, 필수 준비 사항 등이 꼼꼼히 적혀 있는 눈길 끄는 여행기다.

두 권의 여행기는 미혼남성이 혼자 떠난 ‘나 홀로 여행’이라는 점과, 온가족이 함께 떠난 ‘가족여행’이라는 점에서도 적절한 비교대상이 될 수 있다. 두 타입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여행기를 골라 읽으면 그에 맞는 구체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눈길을 끄는 다른 요소는 “떠나는 목적이 분명했다”는 점이다. ‘출혈’에 가까운 큰 경비, 학생이라면 학업의 중단, 회사원이라면 퇴사를 (복귀를 보장 받고 떠날 수 있다면 좋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각오해야만 떠날 수 있는 것이 세계여행이다. <세계를 모르면 도전하지 마라>의 저자 박영진씨는 직장생활 3년차 자신이 일하던 분야의 폭을 넓혀 ‘국제사업가’가 되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포부가 있었으며, <공새미 가족의 세계여행>의 저자 공새미 가족은 우리고유의 문화 ‘풍물’을 세계 곳곳에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두 여행기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나 홀로 여행’과 ‘가족여행’의 차이점과 세계여행 준비시 갖춰야 할 필요사항 등을 짚어 보도록 하자.

하나, <세계를 모르면 도전하지 마라> `나 홀로 여행‘

저자 박영진씨는 세종대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주)베네통 코리아에서 2001~2003년까지 근무했다. 박씨의 여행기간은 446일.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세계여행을 결심했던 이유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패션분야의 폭을 넓혀 ‘국제 사업가’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 때문이었다.

그는 “각 나라에서 얻는 대략적인 정보들이 머릿속에 수집되면서 어느 순간 세계라는 큰 시장 아래 각각의 정보와 감각이 자리 잡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나라를 방문하면 상류층이 이용하는 고급백화점과 시민 층이 주로 이용하는 상점,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재래시장 모두를 방문했고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 할인점에 가서 의류 품목이 아닌 전 품목의 판매형태를 관찰, 기록했다. 나라별 구매 습관과 진열 방식, 물류 구조를 세밀히 학습했다.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직장에 복귀하면 이전보다 훨씬 유능한 인재가 될 것이라 자신하고 꾸준한 노력을 다한 후에는 내가 속한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씨의 세계여행은 무모한 도전이나 일상의 회피가 아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을 갖고 떠난 목표가 분명한 여행이었다.

책은 ‘당신이 세계 여행을 떠나야 하는 7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유가 없이 떠나려는 여행자들에 대한 ‘경고’에 가까운 도전적 부제다.

▲당신의 국적은 세계, 당신은 세계인이어야 한다

▲당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경험만큼 값진 것은 없다

▲전 세계의 인력 네트워크를 구축 할 수 있다

▲미래사회의 경쟁력은 ‘적응의 속도’이다

▲창의력이 21세기의 키포인트다

▲CEO의 조건, 국제적 마인드는 기본이다

도전적인 지침항목들이 눈에 띤다. 박씨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같은 또래의 여성을 만난 이야기를 전한다. 그녀는 유명한 건축가인 가우디의 작품을 바라보며 스케치북을 꺼내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건축설계 회사에서 5년을 근무 한 후 세계일주중이라는 그녀는 세계 각국의 유명 건축물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긴 여행 중인데도 커다란 건축 관련 서적을 4권이나 짊어지고 숙소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자는 많은 것을 느꼈다고. 요리사나 프랜차이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 일주를 하면서 그 나라의 대표음식들을 먹어보고 유명한 레스토랑을 방문하며 메뉴와 인테리어, 서비스, 프로모션 등의 체크포인트를 세워놓고 조사를 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 그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이 되었는지 조사하고, 장점을 학습 할 수 있다.

여행목적이 분명하다면 다음 문제는 경비.

여행경비를 절감하는 노하우 5가지로 ▲국제 학생증을 최대한 활용 할 것 ▲열차나 버스는 야간에 이용할 것 ▲주의의 다른 여행자들을 활용할 것 ▲국가별로 차별적인 여행방식을 선정할 것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닐 것 을 제안한다.

저자가 세계일주에 들인 총 여행경비는 2천580만원.

총 446일을 여행했으니 평균 일일 5만8천원을 사용한 것이다. 늘 싼 숙소에서만 지냈고 길거리나 벤치, 주차장에서 잠을 잔 날도 많았으며 현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신세진 날이 많았기에 가능했던 경비다.

반대로 기간에 비해 여행한 국가가 많았고 한 국가에서도 여러 도시를 바삐 다녔기 때문에 그에 따른 교통비는 경비를 많이 쓰게 한 요인이기도 했다고. 공짜로 가는 세계일주를 소개하는 책도 있지만 “세계일주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박씨는 실제로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았고 필요한 만큼의 돈을 현지에서 현금인출기(ATM)를 통해 찾아 썼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여행자 수표 또한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충고한다. VISA(비자)카드를 가지고 다녔는데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지 못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신용카드를 통해 현금을 인출하게 되면 약 한달 뒤 결재일에 자동이체로 예금 통장에서 빠져 나간다.

그러나 해외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은 후 인터넷 카페에서 카드 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현금서비스에 대한 중도상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5분이면 어제 사용했던 현금서비스의 금액이 바로 예금통장에서 인출이 되기 때문에 20%나 되는 높은 이자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용 시간에 인출 금액의 1%의 수수료가 추가 청구되며 ATM의 수수료는 카드회사에서 부담 해줬기에 해외에서 VISA 카드를 가지고 현금을 뽑아 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환율을 계산하고 환전소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 오히려 편리했다는 것.

박씨가 여행 중 힘들었던 점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주 장소를 이동해야 했던 것과 나홀로 여행으로 느낀 외로움이었다.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헤어져야 하기에 결국엔 혼자가 된다. 저자는 15개월 전으로 되돌아가 다시 세계일주를 한다면 전처럼 혼자 떠날지 결혼을 한 다음 부인과 함께 떠날지 심각하게 다시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 전에는 부부가 함께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여행 중 장기여행을 하고 있는 서양의 부부들을 만나며,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던 중 숙소에서 우연히 같은 방을 쓰게 된 가족 사물놀이패 ‘공새미’ 가족을 만나며 “왜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고집했었나”라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

박씨는 가족여행의 장점을 여럿이 여행하다 보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토론할 수 있으며 보다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숙박비를 낼 때도 인당 비용을 절약 할 수 있고 도둑이나 강도의 위험에서 다소 안전할 수 있다고.

혼자 떠나는 여행은 어려움이 많기는 하지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둘, <공새미 가족의 세계여행> ‘가족 여행’

저자 공새미 가족은 KBS 월드넷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다.

“집 한 채를 유산으로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세계여행을 통해 인내하고 폭넓은 세상을 보며 조국애를 느끼고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자세를 유산으로 주고 싶다”는 공새미 아빠의 커다란 포부 덕에 아빠 김영기씨, 엄마 강성미씨, 큰 딸 김민정양, 아들 김민수군, 막내 김현정 양 다섯 명은 세계일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들은 2001년 6월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가족 사물놀이’라는 기치를 내 걸고 가족사물놀이패를 출범. 2002년 2월부터 지하철 예술무대, 장애인 복지시설, 청계천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04년에는 온 가족이 배낭과 사물놀이 악기를 메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길거리 사물놀이 공연을 하고 돌아왔으니 분명 매우 특별한 세계여행을 경험한 가족이다.

‘공새미’라는 이름은 아빠 김영기씨의 고향인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어음1 리에 있는 커다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이름.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마을사람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해 준 고마운 샘물 이름을 따 가족사물놀이패를 만들었다. 샘물처럼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는 가족, 서로의 사랑이 영원히 마르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어린 시절부터 세계여행을 꿈꾸던 아빠 김영기씨가 결정적으로 세계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공무원인 40대 가장 전세금 빼고 다섯 가족 세계일주’라는 제목의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기사의 주인공은 현재 구로구청장으로 있는 이성씨. 곰새미 아빠는 이성씨를 직접 만나 조언을 얻었고 세계일주 전날까지 이성씨는 곰새미 가족에게 절대적인 도움을 준 든든한 조언자 역할을 해줬다.

곰새미 아빠의 가장 큰 고민은 1년 늦춰지는 아이들의 학업, 직장의 퇴사문제였다. 오랜 시간 갈등 하던 그는 저녁식사 중 “아빠가 요즘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지?”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졌다.

아이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빠 저희는 괜찮아요. 그동안 너무 힘드셨으니까 쉬셔야죠. 대신 저희가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을 하며 엄마 아빠를 도울게요”

아이들의 뜻밖의 반응, 언제든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라던 아내의 따뜻한 위안에 힘입어 아빠는 세계여행을 결심했다.

18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조직의 울타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고. 회사 건강보험조합에서 탈퇴하고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하면서 그제야 완전히 조직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실업자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라도 하듯 국민연금보험 관리공단에서는 빨리 연금을 내라는 독촉을 보내오기도 했다.

아빠는 마음을 굳게 먹고 생활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이른 시간 일어나 도서관에 갔고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스페인어와 중국어를 독학했고 체계적인 여행준비를 할 수 있었다.

공새미 가족은 1년간 1인당 20kg의 짐을 지고 온 세계를 누볐다. 북, 장구, 꽹과리, 상쇠, 징, 부쇠, 꼬마장구의 짐을 지고 다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출발 전 6개월간의 어학공부, 체력단련을 위한 마라톤 도전, 종합건강검진 체크 과정 등을 통해 단단히 준비한 여행준비로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 일주일에 1회 이상 가족회의를 가졌고, 전문적인 여행계획서를 만들었으며, 2003년 4월에는 공새미라는 이름으로 명함도 만들었다. 전문회사에 의뢰해 홈페이지도 오픈했다.

공새미 가족의 홈페이지는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자신들의 근황을 알리는 중요한 소통수단이었다. 현재도 홈페이지는 공새미 가족과 사회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이자 재산 1호라고.

공새미 가족은 여행경비를 줄이기 위해 가장 저렴한 배낭여행자 숙소를 이용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전예약을 하지 않았고 현지에 도착해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를 찾았다. 배낭여행자가 많이 묵는 숙소는 주로 ‘백팩커스’ ‘유스호스텔’ ‘도미토리’ ‘오스페다해’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방 하나에 침대가 2개부터 많게는 20개까지 갖춰진 집단 숙소다.

중국, 인도, 아프리카, 중동, 남미에서는 숙박비가 큰 부담이 되지 않았으나 영국런던 등지의 숙박비는 부담이었다. 숙박비 절감을 위해 유럽대륙을 여행할 때는 텐트를 렌터카에 식고 다니며 캠핑장에서 숙박했다.

공새미 가족이 꼽은 유럽에서 캠핑장이 좋은 이유

▲호텔이 비해 가격이 절반 정도로 저렴함

▲언제든지 체크 인 할 수 있음

▲많은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고 서로 여행정보를 교환할 수 있음

▲가족이 많은 경우에도 행동의 제약이 따르지 않음

▲취사도구를 마음껏 이용 할 수 있음

여행 후 잃은 것과 얻은 것으로는 ‘1억원 가까이 든 여행경비로 인한 물질적인 여유’와 ‘정신적인 여유와 경험’을 꼽았다.

18년간 일해 모은 돈 중 많은 부분을 잃었다. 아파트 평수도 가기 전보다 절반으로 줄여 지금은 방 두개짜리 조그만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마치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 하나도 세계여행을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돈을 주도고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세계일주 후에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학업에 쫓기는 모습이 아니라 학습을 즐기는 모습이다. 아들 민수는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지금의 우리와 같은 가족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아빠는 “가족이 행복해 지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아 행복하다.

아프리카에서 머나먼 남미여행까지 한 공새미 가족의 남은 꿈은 북한 땅을 밟아보는 것이다. 북한에서 사물놀이공연을 하는 것이 공새미 가족의 남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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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조태용 기자] 어떤 책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기도 하고 직업을 바꾸게 하기도 합니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란 책은 저의 직업을 바꿔 버린 책입니다.

제가 도시에서 지리산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마케팅에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마케팅이란 '개인이 목적과 조직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교환을 조장하기 위해서 아이디어, 재화, 및 서비스들의 개념, 가격결정, 촉진 및 유통경로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다." - 미국 마케팅 학회(AMA)

 
▲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스코트 새비지 (엮은이), 김연수 (옮긴이) | 나무심는사람
ⓒ2006 조태용
소비자의 목적과 기업이 원하는 목적, 즉 '개인이 원하는 상품과 기업이 팔고자 하는 상품'을 찾아 해결하는 해결사가 바로 '마케터'(마케팅을 하는 개인이나 조직)가 바로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케터에게 시장과 소비자는 사냥꾼의 정글과 같았습니다. 정글에 나가 탐색을 하고 상품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분류해서 핵심고객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들에게 맞는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돈을 주고 제품을 구입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골몰하고 다녔습니다. '한국에 시장이 없다면 일본에 시장이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도쿄에서 2년 가까이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도쿄의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소비자이며 연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구매 내력과 성향과 연령 등 마케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관리하고 분석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왜 이 상품을 원하고 구매했는지 분석하기를 희망했고,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직 그것이 제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좀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고객이 목말라하는 것이어서 그 어떤 고객도 거부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좀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관련 사적들을 읽어나갔습니다. 책꽂이에는 마케팅과 관련된 서적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다가, 어느새 가득 채우고 다시 쌓여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한 권의 책이 들어왔습니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자주 가던 서점 한 귀퉁이에 이 책이 있었습니다.

플러그를 뽑는다고? 플러그는 전기 에너지 사회를 연결하는 핵심고리입니다. 전기 에너지는 현대 사회의 핵심 동력입니다. 그것을 뽑는다는 것은 현대 사회와의 결별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케팅 관점으로 본다면 제목이 좋은 책이었습니다. 전체 내용을 제목만 보고도 알 수 있으며, '21세기에 플러그를 뽑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플레인(Plain)>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었습니다. <플레인>은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이 창간한 잡지입니다.

"게다가 고객에게 파는 물건 생산에 시간과 공을 들이기보다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정말 괜찮은 물건을 샀다고 믿게끔 만드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되는데, 이럴 때 저는 일에 대한 회의와 함께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16쪽)

이 문장이 저의 직업을 바꿔 버렸습니다. 이 글은 메가빅 석유회사에 다니던 로버트라는 사람의 '사직서' 중 일부입니다. 그는 <플레인>이라는 잡지가 여는 '두 번째 러다이트 대회'라는 행사에 참가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대회에 참가한 후 그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오클라호마에 농장을 마련해 회사와 도시를 떠났습니다.

저 역시 그 책을 읽던 시기에 '마케팅'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마케팅이라는 것이 괴물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필요한 것처럼 둔갑시켜야 했고, 꼭 필요한 것처럼 설득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미 비슷한 기능에 제품이 있는데 거기서 차별 점을 찾아 또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오직 '소비자'로만 보였습니다. '저들은 어떤 제품을 원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아닌 '소비자와 생산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하는 일의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 혼란스러웠던 것입니다.

 
▲ 우리 아이들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돈 없이도 사는 방법을 가르치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6 조태용
그때 이 글을 읽은 것입니다. 그(로버트)는 제가 느끼고 하던 일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나서 마법사에 주문에 걸린 소녀처럼 제 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랫동안 해온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1년 후에 저는 지리산에 내려왔습니다.

결혼한 지금은 아내가 사온 TV를 보고 있습니다만, 처음 지리산에 내려와 혼자 살던 1년 동안은 TV를 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TV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TV를 보지 않고 살아도 세상을 아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고, 삶의 질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TV가 없었을 때 평소 TV를 보던 시간에는 마을길을 산책하거나 조깅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책을 읽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때 'TV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없었던 것으로 봐서 'TV 없는 삶'은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TV에 연결된 플러그 하나를 뽑고는 살아봤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모든 플러그를 뽑고 살 자신은 아직은 없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여전히 컴퓨터를 켜고 있고, 형광등을 켜고 있으며, 휴대폰 충전을 하고 있고, 전기 밥통에 밥이 보온되고 있고, 냉장고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플러그를 빼버린다면 이 글 역시 사라져 버릴 것이고, 정전이라도 되면 한전을 향해 욕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삶은 조금은 변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소비와 구매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직업과 삶의 터전이 바뀌었습니다. 생활 역시 소박하고 검소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돈 없이도 사는 방법을 가르치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돈 버는 방법과 돈에 익숙하지 않고, 또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지금과 다른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언제나 희망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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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 작가 박상률 소설집 <너는 스무살, 아니 만 열아홉 살>
ⓒ2006 사계절
"너는 갔다.

그래서 너의 목소리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러나 너는 다시 여기에 있다.

어머니의 기다림과 함께.

기다림은 모든 걸 같이 있게 한다.

기다림.

숱한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버리고 싶으면서도 놓아버리지 못하는 끈 같은 것.

아니, 밧줄 같은 것.

지금 너의 어머니는

그 밧줄에 매달려 있다."

-10쪽, '빛과 어둠 사이, 기다림' 몇 토막


1980년 5월 광주.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광주 고립작전과 무차별 살육 때문에 순하고 착한 시민들이 자신들과 가족, 친지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을 들고 시민군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공수부대의 무차별 총격에 의해 하루아침에 피바다가 되어버렸던 그 슬픈 도시 광주….

해마다 5월은 싱그러운 초록빛과 함께 다가온다. 검붉게 피어나는 흑장미보다 더 검붉은 피바람이 불었던 그 잔인했던 광주의 5월도 어김없이 다가온다. 어떤 이들에게는 5월이 어린이의 달, 가정의 달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5월이 끔찍스럽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피의 달, 제사의 달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 그로부터 26년이란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천민자본주의가 날뛰면 날뛸수록 5월 광주의 뼈아픈 사건이 자꾸만 빛이 바래져 가는 것만 같다. 그때 그 자리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군에 의해 까닭 없이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의 곡소리와 그 유가족들의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그 어떤 아픈 일에 대해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만 같다. 자신과 주변에 당장 그 어떤 위협이 닥쳐올 때에는 냄비처럼 뽀르르 끓어오르다가 그 어떤 위협이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싶으면 얼른 그 아픈 기억을 잊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저질러진 끔찍스런 일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가 않는데도 말이다.

"1980년 5월, 그 해 봄날 이후 빛고을 광주 사람들 가운데에선 삶의 물줄기가 바뀐 이들이 많다./ 가장 많이 바뀐 이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이고, 다음으론 그 곳에 아직 살아도 그 때의 깊디깊은 상처 때문에 현실의 삶에서 밀려난 사람들이고, 마지막으론 그 해 봄날의 일을 견딜 수 없어 빛고을을 떠나 다른 데에서 삶의 터를 다시 닦은 사람들이다." - '작가의 말' 몇 토막

지난 1980년 오월 광주의 속내를 차분히 더듬은 소설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사계절)을 펴낸 작가 박상률(48)은 말한다. "나로선 그 도시의 바람과 햇살과 냄새를 참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라고. 그래서 5월 광주 뒤 빛고을을 허우적허우적 빠져 나와 삶의 터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하지만 작가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어느 한 순간이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피바람과 ‘피햇살’과 ‘피내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사실, 그때에는 5월 광주란 도시를 빠져 나왔다고, 이제는 그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있겠노라고 여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게 아니었다. 그는 등에 5월 광주를 엎고 그 도시를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그때 그 5월 광주를 잊지 못한다. 눈만 감으면, 어쩌다 그 도시에 가서 새롭게 바뀐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에도, 그해 그 5월 광주가 자꾸만 떠오른다. 광주의 겉모습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작가의 기억은 사반세기 앞의 시간에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이다.

"아이고, 내 새끼야! 아이고, 내 새끼야! 니가 뭣 땜시 요로코롬 누워 자빠져 있어야 헌단 말이냐. 퍼뜩 일어나거라, 이 놈아! 어서 집에 가야 쓸 것 아니냐? 젊으나 젊은 것이 뭣 땜시 이러고 있냔 말이여?"

월산댁은 아들의 관을 끌어안고 뒹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거나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살만큼 산 늙은이도 아니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어 가는 생때같은 젊은이가 죽었으니 뭐라고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는 거였다.

그것도 아프기를 했나, 남에게 해코지하기를 했나, 그저 날마다 지나다니던 길가다 영문도 모르고 죽었으니...... / 보다 못해 옆에 서 있던 산역꾼 하나가 나섰다.

"아짐씨, 인자 그만 고정하쇼. 마지막 가는 길, 조용하게 보내주는 게 좋다 안 하요." - 12∼13쪽, '너를 묻다' 몇 토막


'5·18 민주화운동' 제26주년에 맞추어 나온 이 소설은 지난 1980년 5월, 광주에서 저 세상으로 떠난 대학 1학년생 청년과 그 청년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피멍처럼 박혀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던 한 청년 영균의 꿈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폭력과 압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꺾이는가를 조목조목 짚어낸다.

'5·18 기념재단' 지원도서이기도 한 이 소설집은 우유배달을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간대학에 합격해 철물점에서 학비를 벌며 대학을 다니던 스무 살 청년 영균의 영문 모를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영균의 어머니 월산댁은 야간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자신의 학비까지 벌어가며 학교에 다니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영균은 비록 몸은 고되지만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그 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며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나아가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에 철물점의 고된 일조차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광주에 들이닥친 국군들에 의해 그 모든 꿈이 무참하게 잘려나가고 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영균의 죽음을 지켜본 월산댁은 절규한다. 영균이 죽음으로써 이제 그 모든 희망이 송두리째 꺾여버린 것이다. 월산댁은 아들을 산에 묻고 돌아온 뒤에도 계속 "내 새끼 살려내라"고 울부짖다가, 어느 순간 '아들이 절대 죽지 않았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형이 죽다니...... 아닌 게 아니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어머니 못지 않게 자신도 마음속으론 형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형을 산에다 묻고까지 왔지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악몽을 꾸고 있거나 잠깐 도깨비에 홀린 것 같기만 했다.

꿈이라면 어서 깨어나 버렸으면 했다. 도깨비에 홀린 거라면 놀랄 만큼 놀랐으니 이제 도깨비한테서 놓여났으면 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도깨비에 홀린 것이 아니었다. 형은 진짜로 죽은 것이다.

월산댁은 가슴에 품고 있는 사진틀을 방바닥에 내려놓은 뒤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행여라도 영균의 웃음이 일그러지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듯 조심스런 손놀림이었다. 어쩌면 영균의 웃음을 두 손에 가득 담고 있는 지도 몰랐다." -23∼24쪽, '검정교복' 몇 토막


그때부터 월산댁은 성치 않은 몸으로 아들 영균이 다녔던 대학으로, 영균이 일하던 철물점으로, 영균이 묻혀있는 무덤으로 마구 돌아다니는데….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은 5월 광주 뒤 태어난 청소년들에게 5월 광주의 속내를 사실 그대로 알려주기 위해 씌어진 1980년 오월 광주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입시 위주 교육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청소년들에게 오월 광주의 아픈 역사를 같은 또래의 영균과 영균의 어머니 월산댁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려준다.

문학평론가 김이구는 "이제 '광주'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할 만큼 한 세월이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청소년 독자를 의식해 쓴 이 작품이 "'오월 광주'를 역사교과서의 한 갈피에서 만나는 미체험 세대에게 문학 고유의 방식으로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가슴속에 그득한 울음으로 쓴 이야기이다"
작가 박상률은 누구인가?

▲작가 박상률
 
"이 작품은 빛고을을 떠나온 이가 사반세기 넘도록 그 도시를 등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가슴속에 그득한 울음으로 쓴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 도시의 겉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눈만 감으면, 아니 어쩌다 그 도시에 가서 바뀐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에도, 그해 봄날의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 '작가의 말' 몇 토막

시, 희곡, 소설, 동화 등 쟝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 박상률은 1958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1990년 월간 <한길문학>에 시 '진도 아리랑', <동양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진도 아리랑> <배고픈 웃음> <하늘산 땅골 이야기>가 있으며, 희곡집 <풍경소리>, 소설집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이 있다.

동화집으로는 <바람으로 남은 엄마><까치학교> <구멍 속 나라> <미리 쓰는 방학 일기>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가 있다.

1996년 희곡 '풍경소리'로 '불교문학상' 받음.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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