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저편 14 - 완결
히가와 쿄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14편에 끝나버리다니.. 너무 섭섭하네요.

솔직히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이 좀 약한것 같아서 서운했답니다.

그래도 질질 끌거나 그러지 않아서 좋았어요.

평범했던 지나가 스스로 깨우쳐서 천상귀인 이자크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되고,
불안했던 세계도 지나와 이자크로 인해 다시 안정되게 되어 기뻤어요.

라체프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것이 아쉬었지만,
그래도 그 역시 행복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악당이었지만 꽤 매력적인 캐릭터였거든요.

솔직히 그전에 읽을때 지나가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게 될까 걱정했는데,
이자크와 함께 있길 선택한 지나를 보면서 무척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자신의 세계와 이자크의 세계를 일기로 연결하는 부분은 재미있었고,
마지막에 지나의 일기를 보여주는 작가의 센스에 만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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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저편 13
히가와 쿄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빛의 전설이 있는 엔나마루나로 간 이자크와 지나는 그곳에서 가야 일행을 만나게 됩니다.

이자크와 지나와 좋은 관계였던 동료들이 다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네요.

그곳에서 이자크와 지나는 자신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서 다시한번 확고한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한편 라체프 일행은 엔나마루나로 가서 이자크를 천상귀로 깨어나게 할 계획을 합니다.

라체프는 도대체 아무것도 아닌 소녀가 천상귀를 변하게 한 힘에 대해서 궁금하여
지나를 납치해 지나의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려하지만...

이자크와 라체프가 집적 맞대결하게 되어 무척 긴장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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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휴가를 보내고 읽게되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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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의 철학 - 혼합의 시대를 즐기는 인간의 조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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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조건은 삶을 제한하지만, 조건이 있어서 삶은 가능하다. 문학과 철학은 인간의 조건을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수많은 인간의 조건들이 드러났어도, 오늘 또 하나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조건은 비극적이기도 하고, 실존적이기도 하며, 형이상학적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우리 삶에 고뇌를 가져오는 조건들도 찾아보겠지만, '재미있는' 조건들도 함께 생각하려 한다.-.쪽

우리말에서는 이때 '폭력'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과도해 보일지 모르나, 서양어로 폭력(violence) 또는 폭력적(violent)이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라틴어 'violentia/violentus'에서 유래하는데, 이 말은 '힘으로 침범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violare'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또한 '힘을 쓰다'는 뜻의 'vire'와 '힘'이란 뜻의 'vis'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두 단어 모두 남성의 정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영어에서 '남자다운', '강건한', '생식력 있는' 등의 의미를 지닌 'virile'도 여기서 유래한다).-.쪽

이렇듯 생명의 존재에는 강력한 힘의 개입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선 번식에 관한 모든 행위가 힘을 쓰는 일이니 말이다. 또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동물의 암컷이 겪는 폭력적 고통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의 과학적 실험 행위에도 폭력적 요소가 빠지지 않는다. 꼭 동물 생체 실험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미세한 복제 기술에서도 핵을 제거하기 위해 세포를 '찢는' 작업을 한다.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미세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해서 폭력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생명에 개입한다는 것은 '폭력 사건'에 개입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쪽

이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생명의 탄생에서 소멸에 이르기까지 그와 연관한 행위는 폭력적일 수 있기 때문에, 생명에 관한 모든 행위에서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성행위를 할 때, 두 생명체의 결합이라는 격렬한 행동에 앞서 전희(前戱)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독한 고통을 동반하는 출산을 앞둔 임신부를 각별히 배려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공 수정, 생명 복제 등 생명 조작의 기술을 적용할 때도 우리는 최대한 주의하고 그 생명체에 대해 정말 각별히 배려해야 한다.-.쪽

고통
진실의 조건, 희망의 동기

살아 있다는 증거
터미네이터는 상처 입은 자신의 팔을 스스로 해부하고 수리한다. 그러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완전히 망가진 자신의 눈동자를 칼로 후벼 빼버리면서도 아파하지 않는다. 그는 유유히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외출한다.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에 나오는 로봇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1991년 그 속편에서는 로봇 T-800이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칼로 팔뚝의 피부를 잘라서 걷어낸 다음, 금속 기계로 작동되는 손가락을 보여주면서 고통을 느끼기는커녕 "내 말을 잘 들으시오."라고 태연히 말한다. 이런 로봇은 모습은 사람이지만 너무 비인간적이다.
2001년의 영화 <에이. 아이.(A. I. 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우리는 훨씬 더 인간적인 로봇을 보게 된다. 등장하는 로봇들이 월등한 인공 지능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로봇 전문가 하비 박사는 말한다. "이제 로봇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완벽하게 모방한 것이죠. 사지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말도 분명히 합니다. 더구나 매우 인간적인 반응을 합니다. 고통의 감각을 기억하고 그에 반응하기까지 하죠." 로봇이 고통의 감각을 기억하고 반응한다면 거의 인간과 같다는 말이다. 인간이기 위한 최종 기준이 고통의 감지인 셈이다.-.쪽

사실 고통에 대한 반응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지닌 모든 동물의 특징이다. 이는 고통에 대한 반응과 기억을 동물을 사육하거나 조련할 때 이용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고 복종하게 만드는 데 고통을 적절히 사용한다. 소에는 코뚜레를 꿰고, 말에는 재갈을 물린다. 그들을 몰기 위해 채찍과 박차를 사용한다. 조련할 때는 채찍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허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배고픔의 고통이 복종을 얻어내는 데 효율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좀더 확장해보면 고통은 모든 유기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에이. 아이.>에서 진짜 아이들이 주인공 로봇 데이비드가 유기체적 조건을 갖추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기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의 살갗을 칼로 베어보려는 장면이 있다. 이는 고통이 유기체의 본질적 조건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쪽

인생의 목표
우리는 '복 많이 받으라'는 말로 한 해를 시작하곤 한다. 영어권 사람들도 'Happy New Year'가 전통적인 인사이다. 매년 서로 행복 하라고 인사한다는 것은 행복이 그해의 기원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목표라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아니,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행복이 있기나 한 건지, 또 어떤 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어떤 게 행복하지 못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행복의 철학(Die Philosophie des Gl웒ks)》을 쓴 루트비히 마르쿠제(Ludwig Marcuse)는 "행복이라는 말은 마치 태양과도 같아서 쾌적함, 즐거움, 쾌락, 만족, 기쁨, 안녕 등 한 무리의 말을 행성으로 주변에 거느린다. 이런 말들뿐만 아니라 이들과 유사한 말들은 때로 태양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태양의 대역을 맡은 적도 있으며, 때로는 행복과 정면으로 대립한 적도 없지 않았다. 그만큼 '행복'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쪽

행복이 이렇게 한 무리의 행성을 거느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들이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인생은 복잡한 욕구와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행복의 개념은 그들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려 한다. 행복의 나무는 한 그루일지 모르지만, 이를 지탱하는 뿌리는 수많은 갈래들을 갖고 있다.
더구나 현대에 '행복의 추구'가 헌법적 권리가 되면서, 행복한 삶은 일상생활에서 구체화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미국 헌법을 제정할 때 적어넣은 행복추구권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파급 효과를 주었다. 그 후 다른 나라 헌법에도 그 조항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제퍼슨은 인간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로서, 존 로크(John Locke)의 저 유명한 삼위일체적 권리인 '생명, 자유, 재산'에서 재산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인 '행복의 추구'를 들어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삼았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유독 행복의 추구에 집중된다. 아마도 생명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자유는 정치사 등 역사의 경험으로 보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면 행복은 훨씬 더 일상적 삶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쪽

왜 인간은 돌아가고 싶어서 괴로워하고 그 애틋한 감정을 즐기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감동으로 분출한다는 것은 잘 안다. 이와 함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향수의 감정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관한 일이다.
나는 앞에서 '낭만'과 같은 인간 고유의 감정을 즐기는 것이 '인권'에 관한 문제임을 생각해보라고 권한 바 있다. 인간 고유의 감정을 즐기는 것은 인간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적극적 인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향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나아가 향수가 낭만보다 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이고 조건일지 모른다는 추측도 해본다. 그러므로 낭만에 관해서는 각자 자기 스스로 챙기는 인간적 향유의 권리라는 점에 머물렀지만, 향수에 관해서는 적극적 인권 향유의 주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다.-.쪽

향수의 감정이 인간의 삶에서 보편적인 것이라면, 우선 그것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쪽으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유적과 파괴되지 않고 잘 보존된 농촌의 자연 환경은 향수의 감정을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언제라도 다시 찾아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보존하는 일 또한 공동체적 임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스탤지어의 차원에서 보아도 '보존의 삶'이 '파괴의 삶'에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언도 향수와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일지 모른다. 좀더 현실적으로는 인간의 고향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자세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계획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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