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How She Really Does It:

The Stay-at-Work-Mom's

Guide to Happiness

웬디 삭스 지음, 한은숙 옮김

에코의서재, 312쪽, 1만1900원

미국 ABC 방송의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에는 광고회사 부사장으로 일하는 리넷이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리넷은 무려! 네 아이의 엄마다(젖먹이 포함). 그중 쌍둥이 아들은 도저히 부모 힘으로 제어가 안 되는 ‘에너자이저’들이다. 집은 늘 어수선하다. 싱크대에는 더러운 접시가 쌓여 있고 남편의 와이셔츠 단추는 떨어진 채로 한 달 넘게 방치되기 일쑤다.

사장은 늘 그에게 잔업을 기대한다. 아이들을 잠깐씩이라도 봐줄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리넷에게 기발한 광고 시안을 짜내는 것만큼이나 중차대한 일이다. 『성공한 엄마들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했을까?』는 이 시각에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전 세계의 ‘리넷들’을 위한 책이다.

'성공한'이라는 말에 지레 기 죽을 필요는 없다. 세계적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베라 왕,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제인 스위프트,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브랜드로 대성공을 거둔 바비 브라운, 인기 TV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연 신시아 닉슨 등 유명인들의 경험담도 일부 포함돼 있긴 하다. 그렇다고 두 마리 토끼 다 잡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슈퍼우먼들의 성공 신화는 절대 아니니 평범한 워킹맘들, 도끼눈 뜰 필요 없다. 사실 원제에도 '성공한'이라는 말은 없다.

미국 NBC 방송 '데이트라인'의 부제작자를 지내고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저자 웬디 삭스는 '일하는 엄마가 행복해지는 비결'을 알려준다(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그는 2년에 걸쳐 심리학자.홍보담당자.교사.변호사.사업가.방송인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워킹맘 100여 명을 인터뷰했다. 아이를 둘이나 셋, 혹은 그 이상 낳으면서도 맹렬히 일터를 휘젓고 다니는 여성들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일과 육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인터뷰의 출발점이 됐다.

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의 한결 같은 대답은 "회사와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야망을 일부 접어야할 수도 있고 계획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일에서 얻을 수 있는 무형 자산인 활력과 보람을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책은 구체적 노하우로 일할 때는 일만, 집에 가서는 아이와 가사만 생각할 것, 완벽한 엄마가 못된다고 자신을 괴롭히지 말 것, 일과 육아 사이에서 매몰되지 말고 그 중심에 설 것 등을 제시한다.

이들 상당수가 균형 잡는 과정에서 크게 도움을 받았던 훌륭한 보육시설, 남편의 헌신적 외조는 아직 한국의 워킹맘들에게는 괴리감 느껴지는 얘기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말마따나 "일터에 남기로 결정한 엄마들을 위한 책"으로서 꽤 현실적인 제안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이건 육아건, 혹은 둘 다이건,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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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선민] 샐러리맨 R씨, 세계일주 떠나다

리프 K 하파르 지음, 이은선 옮김

이마고, 528쪽, 1만4800원

'샐러리맨 R씨, 세계일주 떠나다'는 제목 그대로 회사원 R씨가 1년 동안 세계일주를 하면서 적어내려간 여행 일지다. 샐러리맨 주제에 팔자 한번 좋다고? R씨는 정리해고를 당한 뒤 그 충격 완화를 위해 자신에게 '안식년'을 선물한 것뿐이다.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6개 대륙, 45개국을 누빈다.

바꿔 탄 오토바이만 11대. 그중 1대는 잃어버렸다. 코끼리.낙타도 한번씩 타봤고 모기에 물린 회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스쿠버 다이빙은 38회나 했고, 원활한 여행을 위해 뇌물을 바친 공무원 숫자만 1만2000여 명이다. 어떤 나라, 어떤 장소에 가더라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저자의 생기발랄한 입담과 눈썰미가 제법이다. 머리 속에서만 사표를 수천 번 써봤던 이 땅의, 전 세계의 회사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물하는 책이다. '정리해고된 후 세계일주'는 미국의 한 통신회사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었던 저자의 실제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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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정호]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

앨프리드 크로스비 지음,

김기윤 옮김, 지식의숲,

424쪽, 19800원

'총, 균, 쇠'라는 역저가 있다.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진화생물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성쇠를 따져본 책이다. 다이아몬드는 서구의 오랜 이데올로기였던 백인의 우월성, 즉 인종주의적 시각을 거부했다. 특히 그는 지난 500년간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줬다. 유럽인의 신대륙 도착 이후 원주민 대다수가 질병과 전쟁 등으로 죽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는 일정 부분'총, 균, 쇠'의 '형님 뻘' 된다. 72년 초판이 나왔다. 출간 30년이 훨씬 지난 이 책을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유럽의 신대륙 정복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둘째, 사례가 풍부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무엇이 새로운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주로 정복자, 혹은 피정복자 입장에서 해석됐다.

한편으로는 유럽의 확장이요, 다른 편으로는 아메리카의 몰락이었다. 둘로 나뉘었던 세계의 통합이 부각됐거나, 총.칼을 앞세운 유럽의 잔인함이 강조됐다. 저자는 양자를 '콜럼버스의 교환'(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다)이란 용어로 수렴시킨다. 일방적 정복.굴복이 아닌 쌍방의 '교환'을 내세운다.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신대륙을 피를 물들인 유럽의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오해가 풀린다. 저자는 '유럽의 신대륙 습격사건'을 폭넓게 분석한다. 칼과 총이 아닌 세균.동물.식물 등 전방위 시각에서 신대륙 발견의 공과를 따지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힘도 쓰지 못하고 급속하게 무너진 이유를 정치.경제의 좁은 틀이 아닌 생물.환경의 넓은 틀로 돌아본다.

일례로 천연두. "인디언들은 물통의 물고기처럼 죽어갔다"는 표현처럼 구대륙의 질병에 면역력이 없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른바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유럽에서 건너온 말은 어떤가. 최초 적응기를 거쳐 숫자가 급속히 불어난 말은 신대륙 곳곳을 연결해주는 수단이자 유럽인의 확산을 떠받치는 지렛대였다. 이 밖에도 매독.폐렴.옥수수.감자.소.돼지 등 구세계와 신세계의 교환을 일러주는 사례가 줄을 잇는다. '하나 된 세계' 때문에 생명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경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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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우석]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미다스북스,

329쪽, 1만3000원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저자가 책의 맨 앞에 올려놓은 말이 주는 울림이 여전하다. 7년 전 '난징대학살'(이끌리오)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이 한 차례 나왔으나 이 책은 계약만료에 따른 재출간본. 1997년 원저 출간 때 받았던 "2차대전의 묻혀진 진실을 담은 역작"이라는 평가는 빈말이 아니다.

이 책은 1937년 일본군의 난징(南京) 대학살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일급 역사서. 민간인 30만명에 대한 학살은 단 몇 주 사이에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가장 끔찍한 대량학살의 사례"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저자는 중국계 미국인 여성. AP통신 기자였던 그는 이미 고인이다. 책을 펴낸 직후 일본 우익의 협박을 받아왔던 그는 2년 전 의문의 타살을 당했다. 이 책은 내년 난징대학살 70주년을 앞두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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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민우.김성룡] 신선희(61.사진) 국립극장장이 '한국 고대극장의 역사'를 냈다. 그의 전공인 무대미술에 대한 식견과 경험이 녹아든 책이다. 첫 여성 국립극장장으로 취임한 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다. 16일 여름이 성큼 다가온 남산에서 신 극장장을 만났다.

-책을 쓴 동기는.

"서울예대.중앙대 등에서 극장사(史)를 강의해 왔다. 늘 서양극장사만을 가르치다 보니 '동양의, 한국의 극장은 어땠을까'라는 물음을 갖게 됐다. 난 전문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학자와는 또 다른 체험과 창작 활동, 상상력이 있다.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 손을 댔다. 6년 걸렸다."

-얘기하고 싶은 내용은.

"서양의 시각으로만 극장을 보지 말자는 것이다. 서사적 구조를 갖춘 가면극이나 인형극.판소리만을 전통 연극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놀이문화로 볼 수 있는 산대잡희나 궁중의례도 극장문화의 변형이 아닐까, 이런 생각에서 연구했다. 열린 사고로 접근하면 우리의 극장은 엄청난 깊이와 역사를 지닌다. 자연공간의 제장(祭場), 삼국시대 의례악의 공간연출, 고려시대 국가의례 축제극장 등을 말하고 있다."

-자료 수집이 어려웠겠다.

"당연히 극장에 대한 자료는 없다. 향가 등의 문학작품에서 극장을 상상해 낼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 일본.중국 문헌을 많이 참조했다. 책에 나오는 고대 극장공간 추정도 8점을 직접 그렸다. 고분벽화와 유물을 많이 참고했다. 객관적 분석과 예술적 영감이 결합한 셈이다."

-지난 5개월의 소감은.

"사람 차별을 안 하고 배경도 따지지 않았다. '조용함 속의 질서'랄까, 극장 전체에 안정감이 생겼다고 자부한다. 국립극장은 돈을 벌기 위한 극장이 돼선 안 된다. 전통예술에 대한 존중과 함께 21세기적 실험이 꿈틀거리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구체적 계획은.

"민간과 함께하겠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와 손을 잡고 청소년이 즐길 수 있는 역동적 축제(내년 5, 6월)를, 서울국제공연예술제.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와 협력해 정통 예술제(내년 9, 10월)를 만들겠다. 공연예술의 데이터베이스화도 급선무다. 7월부터 창극.연극.무용.음악 분야의 학예사를 선발해 자료 수집에 나설 것이다. 임기 안에 공연예술자료관의 토대를 구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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