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도서관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 저장하여 대출해 주는 것. 만일 빌릴 수 없다면 자료가 없어졌기 때문. 둔 곳을 모르거나 등록카드가 없어져도 못 빌려주기는 마찬가지. 엉키는 일도 있지 않을까. 등록카드와 자료가 일치하지 않아 엉뚱한 자료가 나올 수 있다. 또 엉뚱한 분류체계에 의해 자료가 재배열될 수도 있다. 사서에 따라 특정 주제가 부풀 수도 있고 급기야는 없던 자료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기억은 일종의 생체 도서관. 거기서도 도서관과 흡사한 일이 벌어진다. 망실, 뒤엉킴, 조작은 도서관보다 더하다. 워낙 깊고 복잡하기 때문. “추억은 아름다운 것. 고통스런 기억은 잊으려네. 그래, 웃어야지. 웃음만을 기억할 테야. 옛일 생각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그 추억. 아름다운 그 추억.” 1970년대 유행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 ‘The way we were’ 가사처럼 현재가 과거를 줄세우기도 한다.

<기억의 일곱가지 죄악>(한승 펴냄)은 하버드대 대니얼 L. 샥터 교수가 말하는 기억의 세계다. 인지심리학자 답게 신경과학, 인지과학, 임상경험을 내세워 고대의 일곱 죄악에 빗댄다. 그는 기억의 왜곡을 소멸, 정신없음, 막힘 등 누락으로 생기는 오류와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 등 작위에 의해 빚어지는 오류로 나눈다.

소멸(transience)=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윈다. 1878년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시간-기억의 관계를 수치화했다. 스스로 무의미한 철자목록을 외운 뒤 9시간이 지나 점검해보니 60%를 잊어버렸다. 한달이 지나니 75%를 잊었다. 망각이 대부분 초기에 발생하고 서서히 감소한다는 결론. 하루 뒤의 기억은 말 그대로 기록에 가깝지만 일주일 뒤의 기억은 특수한 것은 떨어져나가고 일반적인 것이 남는다. 소멸을 줄이는 대표적인 방법은 시각적 심상기억술과 부호화. 대니얼 샥터(Daniel Schacter)를 기억하고 싶다면, 사자떼에 싸여(Daniel in the lion’s den) 숨고싶은 통나무집(shack)를 바라보는 식으로 상상하라.

정신없음(absent-mindedness)=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애초에 부호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기억 속에 있지만 인출이 안 되는 것. 안경을 어디 두었는지 몰라 헤매거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승용차 지붕에 얹은채 운전하기가 그 예다. 과거 상기에 실패하면 기억을 못 믿게 되지만 점심약속처럼 미래계획을 잊으면 사람을 못 믿게 된다. 포스트잇이나 다른 기억 보조기구를 활용하는 방법 외에 뾰족수가 없다. 한가닥 기댈 데가 있다면 인지공학자.

‘의도하지 않은 표절’은 오귀인 때문

막힘(blocking)=톡 튀어나올 것 같은데 입에서만 뱅뱅 도는…. 사람의 이름에서 흔하게 발생한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특성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 만난 지 오랠수록, 나이가 들수록 심하다. 사람에 대한 개념적 정보와 발음 코드 사이의 연결선이 약해진 탓. 혀끝에서 맴도는 현상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에서 잦다. 목표단어 사이에 끼어드는 ‘못생긴 자매’도 한몫을 한다. 어려서 성적 학대를 받은 경우 가해자가 가족 구성원일 때 일시적 망각이 흔하게 나타난다. 의존적 관계인 탓에 긍정적인 경험을 회상하면서 상처의 경험은 인출이 막힌다는 가설.

오귀인(misattribution)=어디서 본 듯함과 세세한 회상이 없는 상태가 겹쳐서 빚어지는 착각. 범죄 수사때 목격자 증언의 오류도 여기서 빚어진다. 늘어선 용의자를 모두 본 후에 범인을 지적하도록 하면 목격자는 비교적 용의자처럼 보이는 사람을 선택한다. 범인이 줄에 없을 때조차. 다른 사람의 저술이나 아이디어를 자신의 창작이라고 여기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타인한테서 온 자극이 기억을 활성화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그동안 자극의 출처를 잊게 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표절’이 생긴다.

피암시성(suggestibility)=지난 경험을 상기시킬 때 유도질문이나 추가설명, 암시로 인해 기억이 새로 생겨나는 현상. 기억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며 어린이들한테 특히 많이 발생한다. 연구 결과 어린이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니?”처럼 자유서술형 질문에 겪은 일을 정확하게 말한 반면 “어디에서 다쳤니?”처럼 더 구체적인 질문에는 부정확함이 급증했다. 즉 자유서술형 질문에 9%가 반응하고 구체질문에 49%가 반응했다. 처음에는 사건을 부정하던 어린이 가운데 58%가 반복질문 뒤에는 사건의 일부에 대한 자세한 기억이 만들어졌다.

편향(bias)=현재의 태도로 과거를 돌아볼 때 생기는 현상. 연인 또는 부부의 4년 전 느낌을 상기할 때 감정변화가 없는 커플은 5명 중 4명이, 감정이 바뀐 커플은 5명 중 1명만이 정확하게 회상했다. 이혼한 사람은 더 이상 행복한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실망만을 기억함으로써 과거를 덧칠한다. 화랑에서 두 작품을 두고 고심하던 사람이 다음날 포기한 그림보다 사가지고 온 그림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자신을 좋게 그리고 유리하게 보는 방향으로 과거를 기억한다.

기억의 7가지 죄악은 일종의 ‘필요악’

지속성(persistence)=고통스런 정보나 사건들이 반복해서 떠오르는 것. 군대나 직장에서의 참담한 실수, 망쳤던 중요한 시험 등에 가위 눌린 적이 있을 터. 지은이는 메이저리그 투수였던 도니 무어가 홈런 한방으로 소속팀이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자 이를 괴로워하다 자살한 예를 들어 지속성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일곱 가지 죄악은 악덕일까 미덕일까. 지은이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과 기능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며, 기억의 또 다른 적응적 특징의 부산물”이라고 본다.

옛 전화번호나 어제 주차했던 곳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유사 사건을 회피할 확률을 높여준다. 건망증 역시 그로 인해 생긴 기억의 여유가 또다른 좋은 생각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경험을 일반화하고 조직화하는 능력의 기본이 된다. 고정관념 편향도 그러한 일종이다. 그러니 그리 염려할 바 없다. 몸이 알아서 하나니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시라는 말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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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깝다 이책/창조문화

한잔만 더!” 술자리가 끝나갈 쯤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 초기증상이 아닐까 의심해야 한다. ‘한잔만 더’는 축복을 부르는 잔이 아니라 죽음을 부르는 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내가 무슨 알코올 중독, 나는 말짱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 역시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대부분이 이런 부정을 거듭하며 중독단계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의사의 처방도 주의해야 한다. 술을 약삼아 한 잔씩 하라는 의사의 권유로 환갑이 지난 나이에 알코올 중독자가 된 할머니도 있다. 문제는 알코올 중독은 사람들을 쉽게 중독시키지만 그 치료과정이 힘들고 이로 인한 가정의 붕괴는 물론, 가족 구성원들 간의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데에 있다.

책 <한잔만 더!>의 원제목은 이다. 이 책은 처음 정동섭 박사가 추천했다. 정동섭 박사는 당시, 침례신학대학교 상담심리학 교수로 가족 치료와 각종 중독 치료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는 가정상담 아카데미 원장이며 가정상담 치료와 중독 치료 강연을 주로 하고 있다. 정동섭 박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상담을 하면서 술이 가족의 문제와 각종 중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그러면서 이 책은 우리나라 음주문화와 중독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은 물론, 중독자를 치료하는 단체나 상담사, 중독자의 가족들, 중독자 본인에게 아주 적절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가족 치료와 중독치료는 영성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현재 기독교내에 활발하게 이 문제를 다룰 것으로 전망하였다. 때문에 종교단체에서도 눈여겨보아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이뿐이랴, 우리 사회는 음주문화에 대해 너무 관대한 나머지, 알코올 중독자도 아닌 젊은 청년들이 술로 인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앤더슨 스피카드 의학박사는 벤더빌트 의료센터의 일반내과 과장이자 의과대학 교수다. 그는 벤더빌트 알코올 중독 치료 연구소의 의료과장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에 관하여 다양한 경험과 탁월한 치료방법을 알아내고 많은 강연을 통해 중독자들을 회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런 점이 널리 알려져 알코올과 마약 남용 분야에서 뛰어난 지도력과 기여로 특별표창을 받기도 했다.

책의 내용 역시 앤더슨 스피카드 박사가 수년간 알코올 중독자들과 가족들을 만나서 상담하고 이를 치료하는 과정을 사례를 들어 체계적으로 엮었다. 특히 알코올 중독의 시초와 중간단계 그리고 말기의 증상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물론 이들을 위한 치료방법도 소개하고 있으며, 알코올 중독자 본인은 물론 그를 둘러싼 조력자들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함께 알려주고 있다. 부록으로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당신은 알코올 중독자 입니까?’를 알아볼 수 있는 테스트 24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알코올 치료 상담기관 대신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 치료기관 및 전국적인 모임을 자료로 실었다.

이 책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의 이야기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씌어졌다. 나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는 것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특히 알코올 중독자와 함께 사는 가족들이나 그 조력자들의 어려움을 읽노라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아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직 재판을 찍지 못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이 파탄되고 삶이 실종된 많은 분들과 이들의 재활과 치료를 위해 애쓰는 많은 단체들이 이 책의 진가를 알아봐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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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잠깐독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난하는 우리는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나?

<역사를 왜곡하는 한국인>은 끊임없이 묻는다. 국사교과서와 언론에 등장하는 역사의 통설은 의혹투성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한자·불경 등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해줬다는 서술만 봐도 그렇다.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일본의 군사물자·군사력이 대가로 주어졌다는 설명은 쏙 빠져 있다. 저자는 “우리역사에서 ‘일본 깎아내리기’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고대사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왜’라는 존재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저자는 “일본이 4세기 한반도 일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한·일 역사학계의 균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하는 ‘굴레’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만 문제가 아니다. ‘한민족은 한 핏줄’이라는 단일민족론은 국민의 26%가 귀화혈통이라는 인구조사를 놓고보면 거짓이다. 몽고침략에 맞서 싸웠다는 삼별초도 알고보면 권력투쟁에 실패한 잔당들의 반란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박정희 정부가 쿠데타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호국의 화신’으로 과대포장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해방후 1백만명의 양민학살에 대해 입다물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진짜 무서운’ 역사왜곡을 저지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저자는 “교과서에 부끄러운 역사를 담아 미래세대에 전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기존 역사서술을 뒤집을만큼 치밀한 이야기나 논리는 아니지만, “우리의 역사왜곡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문제의식만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다만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듯, ‘의혹제기’가 설득력 있기보다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저자는 2003년까지 한국일보 기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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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그래, 넌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니?’(So You Think You’re Human?) 원제는 이처럼 다소 도발적이다. 도발적이지 않다면, 당혹스럽다. <우리가 정말 인간일까?>(아카넷 펴냄)라는 번역본의 제목은 원제를 상당히 점잖게 누그러뜨린 셈이다. 인간답지 않은 인간, 그러니까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향해 질책하듯 던지는 말은 아니다(아니, 사실은 그런 질책의 뜻을 담은 질문인 것일까).

런던대 지리학 교수인 역사가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가 쓴 이 책은 ‘인간’이라는 개념의 정의와 범주, 그 정합성과 타당성을 따져 묻고자 한다. ‘인간’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종다기하겠지만, 역사학자인 지은이가 동원하는 방법론은 역시 역사적 접근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를 돌이켜 보면서 그 타당성과 설득력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거나, 자기가 혹시라도 인간 아닌 다른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다’라는 것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자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의 진술일 터이다. 그런데도 지은이는 왜 새삼스럽게 인간의 정의를 문제 삼고 나섰는가. 자명한 것 속에 함정이 있으며, 자명한 것이 왜 자명한지를 따져 묻는 것이야말로 진정 학문적 태도임을 그가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바탕에 깔고 그는 인간에 관한 역사적 정의의 타당성을 점검한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는 전통적인 요소 중 대표적인 것으로 도구와 언어, 문화 등이 있다. 그러나 영장류 동물학의 최근 연구 성과들은 이런 특징들이 인간만의 몫이 아님을 속속 밝혀 내고 있다.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개미집에 집어 넣어 거기에 달라 붙은 개미를 떼어 먹는 유명한 사례는 제인 구달의 선구적 연구 덕택에 보편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단한 나무 열매를 쪼개기 위해 두 개의 돌을 이용하는 원숭이는 물론, 조개 껍질을 깨기 위해 돌을 이용하는 수달을 보더라도 도구 사용에 관한 인간의 독점권은 인정하기 어렵다.

‘물질문명’ 네안데르탈인 복권 주장

언어 역시 인간만의 몫으로 주장하기 어렵다. 벌·개미와 돌고래, 박쥐 등의 고유한 의사전달체계는 인간과 다른 방식의 ‘언어’로 볼 수 있으며, 영장류들을 훈련시켜 얻은 결과는 그들이 인간의 언어를 습득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말을 알아듣는 개와 앵무새의 사례 역시 참조할 만하다.

언어와 도구가 아닌 ‘문화’라는 고급스러운 현상으로써 인간의 고유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려 할 때 수컷 침팬지들이 모여 똑같은 방식으로 몸을 흔들고 발을 구르는 ‘비 춤’의 사례 보고라든가, 죽은 토끼나 바퀴벌레를 종일 머리에 얹어 두고 만족스러워하는 암컷 보노보들의 행위는 영장류들에게도 나름의 문화가 있다는 강력한 반증이 된다. 일본 코시마 섬의 짧은꼬리원숭이 집단에서 목격된 행동의 혁신과 보편화 과정은 특히 놀랍다. 관찰자들이 ‘이모’라는 이름을 붙인 천재 암컷 원숭이가 농부에게서 얻은 고구마를 개울물에 헹구어 흙을 씻어 내고 먹기 시작하자 그 방법은 이내 다른 동료 원숭이들에게 확산되었다. 이모는 또 인간들이 해변에 뿌려 주는 밀에 모래가 묻어 먹기에 힘들자 밀과 모래를 함께 물에 뿌리고는 물 위에 떠오르는 밀만을 건져 먹는 방법을 개발해서 역시 무리들에게 전파시켰다.

이런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지은이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일종의 ‘복권’을 주창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생 인류의 조상과 상당 기간 동안 공존하다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물질문명을 이루었으며 죽은 이를 매장하고 그 위에 꽃을 뿌리는 식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일부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의 조상에 비해 여러 모로 열등했다는 주장을 하며 그에 어울리는 증거를 찾기에 열을 올린다. 지은이는 이런 태도에서 흑인을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적 존재’로 보고자 했던 19세기 인종주의의 그림자를 본다. “과거에 인간과 사실상 구분되지 않는 인간 아닌 종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간’이라는 것이 고정된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게다가 생명공학과 로봇공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에 대한 기존 관념의 불가피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웃 동물의 권리를 빼앗지 말라

그러나 그 변화는 그야말로 ‘인간적 가치라는 신화’를 보존하고 확산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간곡한 제언이다. 그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가 애써서 기왕의 인간 개념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인간적 겸손와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 ‘이웃 동물’들의 권리와 행복 역시 침해하지 않는 평화적 공존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가령 동물들 역시 자기 영역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 잡히거나 괴롭힘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하거나 무언가를 빼앗기는 실험을 당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권리를 지닌다는 동물 권리운동가들의 주장에도 새겨 들을 바가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것이며 다른 모든 생명을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하거나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식의 인간 중심주의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 개념의 경계는 분명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그 개념은 아직도 놀랄 만큼 확장될 여지가 있다”는 지은이의 결론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이같은 염원을 바탕에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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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책 이야기/유명 작가의 색다른 작품들

이언 플레밍(1908~1964). 그 이름만 들어도 많은 사람이 ’007’을 떠올리게 되는 20세기 최고의 스파이소설 작가로 플레밍은 일세를 풍미했다. 그가 정보부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만들어낸 제임스 본드는 1953년 첫 소설 <카지노 로열>부터 등장해 1964년 그가 숨지기 전까지 모두 14편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소설로, 그리고 영화로 전세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병상에서 아들에게 들려준 얘기

그렇다면 이 플레밍이 남긴 마지막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숨진 1964년 나온 소설은 뜻밖에도 스파이 소설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현대판 동화같은 소설이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이자 ‘사람처럼 말하는 자동차’ 이야기였다. 바로 <치티치티 뱅뱅>이다.

최근 <치티치티 뱅뱅>(김경미 옮김·열린책들 펴냄)이 국내에서 다시 출간됐다. 70~80년대 어린이들에게는 이원복 교수가 그린 만화 <하늘을 나는 자동차>로, 또는 ‘치티치티 빵빵’이나 ‘뛰뛰빵빵’이란 이름으로 사랑받았던 바로 그 이야기다.

<치티치티 뱅뱅>은 괴짜 발명가이자 모험가인 포트 중령이 갖가지 신기한 장치를 단 마법자동차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는 모험에 떠난다는 것이 줄거리다. 1968년 일찌감치 영화로 만들어졌고, 2002년에는 인기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최근 대형 뮤지컬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상륙하는 등 화제가 되면서 이번에 책으로도 다시 선보인 것이다. 영국의 세계적 삽화가인 존 버닝햄의 그림을 곁들였다.

이 소설은 언제나 첩보물만 썼을 것 같은 대중소설가 이언 플레밍이 온가족이 함께 웃으며 볼 수 있는 해맑은 이야기를 썼다는 점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재미를 주는 책이다. 말년에 심장마비로 쓰러진 플레밍은 요양중에 이 책을 썼는데, 아들 캐스퍼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뼈대로 삼아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모험을 버무렸다. 그가 세계 어린이들에게 남긴 귀중한 선물이 된 이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했는지, 그리고 어린이 작가로서도 얼마나 탁월한지 보여주는 증거다.

<치티치티 뱅뱅>이 보여주듯 우리에게 친숙한 유명 작가들이 모두 그들의 이미지로 인식된 장르의 책만 썼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 작가가 이런 작품도 썼어?’라고 생각하게끔 전혀 다른 책을 쓴 작가들도 많다. 이처럼 유명 작가의 숨은 면모를 발견하는 것 역시 책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특히나 세계적인 추리소설의 거장들 가운데에는 플레밍처럼 ‘뜻밖의 작품’을 쓴 이들이 많다.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파고드는 게 주특기인 추리소설가들이 독자들에게 고정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팬서비스’이기도 하며, 때로는 ‘전공 못잖은 부전공’인 작품들도 있다. 국내에서도 70~90년대 한국 추리소설계 최고 인기작가였던 김성종씨가 역사소설 <여명의 눈동자>로 추리소설 못잖은 인기를 누린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탐정소설의 대명사인 아더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캐릭터가 셜록 홈즈만은 아니다. 고집장이에 괴팍한 성격은 같아도 비상한 두뇌로 범인을 밝혀내는 홈즈와는 달리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모험가 ‘챌린저 교수’가 있다.

이 챌린저 교수가 나오는 가장 대표적인 소설 <잃어버린 세계>는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가 못잖은 모험소설가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역시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남아있는 미지의 세계를 챌린저 교수 일행이 탐험한다는 것이 줄거리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로 알려진 소설 <주라기 공원> 등에 영향을 미쳤다. 코난 도일은 1912년 발표한 이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자 이후 챌린저 교수 시리즈를 계속 발표했다. <잃어버린 세계> 이후에 나온 <안개의 땅> 등은 과학적 소재에 깊이 빠져들어 과학소설(SF)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내에는 이 <잃어버린 세계>와 <안개의 땅> <마라코트 심해> 등이 여러 출판사에서 동시에 나와있다.

추리소설팬들에게는 <노란 방의 비밀> 하나만으로도 코난 도일이나 모리스 르블랑 못잖은 작가인 가스통 르루는 일반독자들에겐 오히려 그가 추리소설도 썼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르루가 창조한 탐정인 앳된 기자 루르타비유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표작 <노랑방의 비밀>은 밀실에서 일어난 사건의 비밀을 푸는 이른바 ‘밀실트릭’의 고전으로 추리소설사에서 늘 걸작으로 꼽힌다.

체스터튼 유머 넘치는 ‘팔방미인’

하지만 정작 가스통 르루란 이름은 이 탐정소설보다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 작가로만 더욱 알려져 있다. 뮤지컬팬들에겐 그가 추리소설을 썼다는게, 추리팬들에겐 그가 오페라의 유령같은 로맨스 소설도 썼다는게 색다르게 느껴질만하다.

가스통 르루는 또한 기자이기도 했는데, 러일전쟁 당시 프랑스 신문의 특파원으로 지금의 인천인 제물포에서 벌어졌던 제물포해전을 취재해 르포를 남기기도 했다. 이 책은 뒤늦게 발견돼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이름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바 있다.

탐정에 대한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깨버리는 독특한 탐정 브라운 신부를 창조한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은 워낙 팔방미인이었던 탓에 많은 글을 남겼지만, 추리 이외의 분야에서 가장 주요한 저술은 뜻밖에도 ‘기독교 선교’에 관한 책이 꼽힌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란 부제를 달고 있는 체스터튼의 <오소독시>는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그가 기독교에서도 정통신앙(오소독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는 책이다. 웃음을 짓게 만드는 유머를 장기로 하는 체스터튼은 이 책에서도 특유의 유머를 활용하면서 신앙을 역설한다.

‘논쟁의 달인’으로 불렸던 그는 친구이자 논쟁에서는 적이었던 조지 버나드 쇼를 비롯해 H. G. 웰스, 버트런드 러셀 등 쟁쟁한 지성들과 설전을 벌여 이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체스터튼은 독실한 신앙인의 입장에서 버나드 쇼와 웰스,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의 작가들을 싸잡아 이단자로 비판했고, 왜 그들이 이단이며 그렇다면 진짜 정통이란 무엇인지 알리고자 노력했다. 체스터튼은 언론인으로도 이름을 남겼는데, 당시 영국이 벌인 보어전쟁에 반대한 양심적 행동과 함께 인종차별의 근거였던 우생학에 동조하지 않아 훗날 많은 존경을 받았다.

애거사 크리스티 판타지소설도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에게도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도 있었다. 국내에는 <리가타 미스터리>와 <빛이 있는 동안> 등의 단편소설집에 들어있는 심령소설이나 환상미스터리, 곧 팬터지소설들이다. 다른 추리소설들보다도 훨씬 정교한 짜임새를 추구한 애거서 크리스티가 왜 팬터지에 관심을 가졌나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추리소설이란 장르를 만들어낸 에드거 앨런 포가 팬터지도 함께 개척했음을 떠올린다면 두 장르는 원래부터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난 도일도 만년에는 신비주의에 빠졌을만큼 추리작가와 팬터지는 묘한 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이 아닌 일반 소설로는 꼭 6편을 썼고, 시집과 중동 체험담, 자서전도 남겼다. 국내에 소개된 이 환상소설들은 크리스티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크리스티의 또다른 정신세계를 엿보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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