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숲처럼 언젠가 우리도…


[한겨레]
책속의 한장면

<플리즈 헬프-야생으로부터의 메시지>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사진 미츠아키 이와고. 연진희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1만9800원

숲이 울창하던 자리에 나무 그루터기만이 끝없이 남아 있을 때, 그 끔찍한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한없이 늘어선 묘비 같은, 전쟁에서 덧없이 희생된 병사들의 마지막 휴식처 같은 황량한 풍경….

모든 생태계마다 거기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동식물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생태계들도 점점 줄고 있지요. 해마다 커지는 건 사막밖에 없어요.

지구 역사상 다섯 번의 대절멸이 있었어요. 운석 충돌이나 대홍수 같은 끔찍한 재난이죠. 그때마다 생명체의 90퍼센트가 멸종했어요. 하지만 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이래료, 생물이 멸종되는 비율은 1만배나 증가했어요. 그리고 남은 식물의 절반 정도가 앞으로 50년 안에 멸종할 거라고 해요. ‘레드북 목록’에는 멸종 위기를 맞은 동물 이름이어마어마하게 올라와 있죠.

우리 인간이 여섯 번째 대절멸의 원인이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죠.(7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겨레] 수학에 대한 책이 두 권 나왔다.

어! ‘수학’. 로그, 미적분, 삼각함수, 집합…. 얼굴 찌푸리는 청소년들이 많을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서양수학사>는 입시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 자칫 공식암기와 문제풀이가 전부인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는 수학을 우리 삶 속으로 끌어들였다.

공식 하나, 증명 하나에 담겨 있는 수학자들의 고뇌를 함께 느끼면서 수학이 특별한 몇몇 사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실생활과 밀접한 학문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것은 수학자들이었다. 또 원자폭탄을 만든 것도 수학자의 공이 컸다.

<…서양수학사>는 고대 수학부터 현대 수학까지 인류와 함께 걸어온 수학 이야기를 분야별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부록에서는 수와 식, 함수, 기하학 등 수학의 영역별 유래를 덧붙였다.

책 중간 중간에 소개되는 일화는 수학자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각종 일러스트와 삽화가 들어있어 재미와 웃음을 더한다.

<피타고라스가 보여주는 조화로운 세계>는 피타고라스의 수학에 대한 업적, 철학과 사상, 생애에 대한 기록이다.

지은이는 삶의 즐거움을 상실해가는 현실에서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피타고라스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제시했던 삶의 방식을 소개한다. 수학자이며 철학자, 종교가, 사상가였던 피타고라스는 증명을 통한 수학적 논리 속에서 우주의 조화를 인식하고자 노력했다.

<피타고라스…>는 그의 일생을 수와 삶의 방식에 초첨을 맞춰 다루고 있어 수학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한다. 그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것은 단순한 수학적 ‘증명’이 아닌 이를 통한 ‘조화로운 삶’의 방식이다. 피타고라스는 책 속에서 수의 세계 속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진정한 삶의 가치인 ‘조화’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묻는다. 그의 저서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겨레] “내가 떠날 날이 앞으로 며칠 안 남았네. 만리 멀리 떠날 여행 봇짐에 자네의 글이 없어서는 안되니 반드시 오언율시 여덟 수를 노자로 주게나. … 부디 게을러서 짓지 못한다고 회피하지 말기 바라네.”

허균(1569~1618)이 진주사 부사로 명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권필(1569~1612)에게 이별의 시를 청한 ‘간찰’이다. 벗의 시를 에둘러 칭송하는 품이나 거절을 못하도록 ‘말 빗장’을 지르는 배포가 여간 이물 없지 않다.

“마침 동동주를 빚어서 젖빛처럼 하얀 술이 동이에 넘실대니, 즉시 오셔서 맛보시기 바라오. 바람 잘 드는 마루를 벌써 쓸어놓고 기다리오.”

권필의 내방을 기다리는 허균의 또다른 ‘간찰’은 어떤가. 술을 핑계 삼은 지음지교에 멋스런 해학미가 넘친다. 입꼬리가 올라갔을 받는 이의 표정마저 삼삼하다. 주고받는 이의 내밀한 감정과 생생한 숨결이 느껴지는 ‘간찰’이란 죽간이나 목편에 쓴 편지를 말한다. 대개 한 자 정도 크기여서 ‘척독’이라고도 하며 비단이나 종이에 쓴 것까지 아우른다. 간찰에는 일정한 구조가 있어 상투적 어휘로 예를 갖추기 마련이지만 위 두 사람의 관계는 그런 격의까지 허문 듯 문체의 장력이 팽팽하다.

<간찰-선비의 마음을 읽다>(한얼미디어 펴냄)는 우정을 담은 간찰만을 골라 옛사람들의 교제의 미학을 엿본다. 고려시대 이규보 이제현 정몽주 등 3명과 조선시대 김시습 이황 이이 허균 정제두 이익 이덕무 박지원 김정희 등 24명과 그 친구들이 주인공이다. 저자인 심경호 교수(고려대 한문학과)는 우리 지성사의 핵을 그은 이들을 축으로 역사의 사각지대를 오밀조밀 엮어낸다. 그의 해박한 주해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발신자) 대 인물(수신자)’로 보는 역사의 관계망이 빽빽하게 그려진다. 어디까지나 시대의 아픔을 나누거나 학문에 대한 열정을 교유한 선비들의 마음을 따라갈 일, 문자메시지의 이모티콘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서신의 깊은 멋을 발견할 것이다.

“인생은 모이고 흩어짐이 무상하기에 오늘은 모였지만 내일은 또 각각 어디로 가게 될지 모릅니다. … 이군이나 박환고와 함께 와서 마시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 술이 며칠 되지 않아 바닥날 것이니, 늦게 오시면 물만 마시는 곤욕을 보게 될 겁니다.”

35살의 나이차를 잊고 맺은 ‘망년우’ 오세재(1133~?)를 먼저 보낸 이규보(1168~1241)는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며 친구 전탄부에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며 술을 권한다.

옛 선비들이 음풍농월과 안분지족만을 읊진 않았다. 이이(1536~1584)는 “억만 백성이 물 새는 배에 타고 있으므로 그것을 구할 책임이 실로 우리들에게 있습니다”라며 절친한 벗 송익필(1534~1599)에게 현실정치에서의 지식인의 몫을 환기시킨다. 경술국치가 있기 직전 황현(1855~1910)이 이건방(1861~1939)에게 보낸 간찰에는 우국지정이 사무친다. “세계가 날로 아지랑이 속에 빠진 듯 혼미해가니, 때때로 아주 잠들어버려 잠꼬대조차 하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 가슴을 치고 미친 듯 울부짖을 따름입니다.”

박지원(1737~1805)이 ‘책벌레’ 이덕무(1741~1793)에게 그의 수필집 <이목구심서>를 빌려 보려고 주고받은 간찰은 <산해경>의 문체를 패러디하는 지적 유희가 사뭇 ‘현대적’이다. 박지원이 세 번이나 심부름꾼을 보냈는데 이덕무는 마지못해 빌려주고는 바로 다음날 책을 찾아오려고 “귀와 눈은 바늘구멍 같고 입은 지렁이 구멍 같으며 마음은 개자만 하니, 대방가의 웃음을 자아낼 뿐이다”라는 간찰을 낸다. <이목구심서>를 풀이하면, 귀와 눈으로 듣고 본 것과 입과 마음으로 말하고 생각한 것을 모은 것. 말하자면 겸양을 드러낸 유머다. 이에 박지원은 “이 벌레의 이름은 뭔고”라고 응수한다. 체면치레를 벗어던진 익살에 훈훈한 인간미가 풍긴다.

간찰은 문학작품보다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 사람만의 필적이나 종이의 결마저 ‘드라마’가 되기 때문이다. 글 뿐만 아니라 오가는 마음을 읽는 것도 간찰만의 맛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귀 자료수집인들의 사랑방


[한겨레]
헌책방 순례/경안서림

“서울을 首爾라고 표기하는데 말이죠. 중국사람이 읽으면 ‘서울’일지 모르지만 일본사람은 그게 아니거든요. 서울 한자표기는 徐鬱이에요.”

경안서림(02-2235-1343, 동대문구 청량리동 224-3) 주인 김시한씨는 <증보 문헌비고>를 펴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지금껏 찾아낸 문헌증거는 25가지. 옛부터 써온 표기가 있는데 왜 굳이 중국인 전용의 발음기호를 쓰느냐는 것. 몇차례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언론에 알렸지만 요지부동이다.

김씨는 한국고서연구회 회장을 지낼 만큼 옛 자료에 관심이 많다. 그의 관심사는 주로 교육관련.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만 한 줄 알죠? 그게 아녜요. 멀쩡한 학교이름까지 바꿨어요.” 지금까지 찾아낸 것은 연희전문학교(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 세브란스의전(아사히전문학교), 보성전문학교(경성척식전문학교), 중앙불교전문학교(혜화전문학교), 이화여전(경성여전), 개성 호수돈여고(명덕여고), 부산 일신여고(동래여고), 기독청년회학교(영창학교) 등 8가지. 그는 1913년 도산의 흥사단에 앞서 유길준이 1907년 설립한 흥사단의 창립발기문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다(<고서연구> 23호).

주인이 그런 만큼 책방은 자료수집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18일 오후 잠시 머무는 동안에 노 유학자, 동국대 한문학 강사, 기독교 자료 수집자가 다녀갔다. 여섯 시간 동안 <고문진보>를 외운 바 있는 한문학자는 이날도 최호의 ‘황학루’와 이태백의 ‘등금릉봉황대’를 읊었고 강사와 자료 수집자는 최근 일본에서 간행된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에 나오는 <이장길집(李長吉集)>이 한국에는 없는 점필재 김종직의 저술이라는 의견을 나누었다.

주인 맞은 편 의자 2개는 부지런히 손님을 갈았다. 김씨는 손님이 바뀔 때마다 새로 사들인 자료를 꺼내놓았다. 대정 연간에 나온 <성경잡지>, 철도 개설 초기의 자료, 1890년 무렵 파리에서 간행된 천주교 휘장집 등등. 그런 까닭에 단골들은 하루가 멀다고 들르지 않겠는가. 60~70년대 ‘빨간책’에 관심있다는 손님은 “여기에는 쓸만한 책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35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김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별 희한한 자료가 그의 손을 거쳤다. 새 자료임에는 틀림없지만 결코 공개할 수 없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손기정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기념해 1936년에 만든 양정교지. 거기에는 손씨의 일문 여행기, 교장(안종원)의 일문 찬시, 명사 33인의 와카(和歌) 한수씩이 실렸다. 창씨개명 관련 서류, 어느 문중에서 발행한 창씨개명 족보 등도 쉬쉬할 뿐이다.

여든일곱의 유학자는 주인 김씨를 일러 망년우라고 했다. 이곳이 청계천에서 유일하게 한문책을 살 수 있는 곳이고 값도 적당하다면서…. 사실 그랬다. 이날은 60대 주인이 매개 되어 노학자와 마흔의 대학강사가 옛 한시를 화제 삼았다. 신문지로 포장한 책뭉치가 들어오자 “와, 보물 들어온다”며 고개들이 모였다. <한국시잡지집성> 1~3권. <대명률직해>(조선총독부 중추원 1936). 밖에는 언뜻 청계천 투어 이층버스가 지나가고 손잡은 젊은 연인의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바닥에 쌓이고 벽에 꽂힌 조선왕조실록, 조선명신록, 영조순정후가례도감의궤(영인본), 고전국역총서, 최남선 전집 등. 단장한 청계천에는 새물이 흘러도 서점 안에는 모르쇠 세월이 거꾸로 흘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겨레] 잠깐독서

(1997년). 미국국적의 중국계 2세 여성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 아이리스 장이 써서 세계적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책이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미다스북스 펴냄)라는 이름을 달고 번역 출간됐다. 상상을 절하는 일본 제국군의 충격적인 난징 대학살 만행(1937년 12월13일 이후 7주간)을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당시 현지 생존자 및 일본군쪽 증언과 자료, 서양 선교사들과 사업가들의 고발 등을 토대로 되살려냈다.

영어로 된 최초의 본격적인 난징 대학살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99년에 이끌리오에서 펴낸 적이 있으나, 미다스북스쪽은 당시 국내에선 이 책의 의미가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다며 최근 과거사 인식과 영토분쟁을 둘러싸고 불거진 일-중, 일-한간의 첨예한 갈등을 계기로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책 출간 뒤 일본 우익세력의 끊임없는 협박에 시달리던 저자(당시 36살)가 2004년 11월9일 캘리포니아주 남쪽 17번 고속도로변 길가 차 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된 사실도 극적인 추가요소로 주목할 만하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인간 존엄성을 조롱하며 치욕의 극한까지 치달았던 당시 일본군 만행에 대해 대다수 세계인은 잊고 있고, 치부가 드러나자 당황한 가해자들은 저자를 협박하며 진실을 호도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오히려 피해자를 자처하며 지난 죄업을 미화하고 있는 가해자들의 수상쩍은 최근 행보가 재출간에 새로운 의미를 안겨주고 있다.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 때 말했다. “사람들은 일본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이 꾸며낸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일본은 국가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 극우 이시하라니까 으레 하는 막말이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일본 집권당 핵심을 비롯한 지배그룹 대다수의 생각이 그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책 내용은 난징의 진실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저자는 썼다. 난징 학살은 일본제국주의 중국침략 만행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중국침략은 한반도 강탈을 포함한 일본제국주의 죄업의 일부일 뿐이다. 그 진실의 문을 막 열어제치는 순간 아이리스 장은 비명에 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