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윤덕기자]

선행학습이 극성이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부모가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한글이나 수학·영어가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평화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게 마음 밭을 일궈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꼬마 시민학교’ 시리즈는 그래서 유익하다. 매 상황을 아이의 질문, 어른의 대답으로 구성해 세상에 첫발을 디디는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1권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는 엄마 아빠에게서 벗어나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다름’과 ‘차이’의 존중을 가르친다. “저 아저씨는 왜 우리랑 피부색이 달라요?” 하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사람들은 태어난 곳이나 자라난 환경에 따라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 엄마 눈은 작지만 네 눈은 크잖니? 엄마 아들인데도 말이야” 라고 대답한다.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이란 감정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한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 게 한두 가지씩 있지만, 두려운 게 뭔지 용기를 내어 말해보면 두려움은 곧 작아져 버려.”



2권 ‘내 마음대로 할거야’에선 남에 대한 배려와 공공장소에서 질서와 규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소개한다. “누가 날 때리면 때려도 되는 거죠?” 하는 아이의 물음에 “당연하지. 더 세게 때려야 하고 말고”라고 대답해준 어른이 있다면 2권을 반드시 읽어봐야 할 터. 각 권 뒷부분에 ‘부모에게 드리는 글’이 첨부된 건, 자녀의 인성교육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기 위해서다.시리즈는 ‘학교에 꼭 가야 해?’ ‘이건 불공평해!’ ‘난 어디서 왔을까?’로 이어진다. 학교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어떻게 해소시켜줘야 할 지가 고민인 엄마, 부당한 일을 겪고 상처받고 혼돈스러워하는 아이에게 ‘불공평’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싶은 아빠, “난 어디에서 왔어요?” “세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어요?” 하고 묻는 아이에게 쉽고도 재치 있는 대답을 주고 싶은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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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석재기자]

주인공의 얼굴이 낯 익을 부모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1977년 TBC에서 방영했던 만화영화 ‘슬기돌이 비키’. 우락부락한 바이킹 아저씨들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이 작은 꼬마는 기막힌 꾀를 생각해 내고, 그때마다 화면에는 별이 반짝이고 어른들은 위기를 벗어난다. 이것은 1974년 독일·일본 합작으로 제작된 TV용 애니메이션이었고, 그 원작이 스웨덴 작가가 쓴 이 책이었다.

바이킹 용사들과 함께 항해를 떠난 비케는 마침내 어떤 으스스한 도시에 도착한다. 도시를 다스리는 세 명의 ‘대왕’은 세 명의 ‘장관’을 두고 사람들을 괴롭힌다. “장관들의 임무는 말이야. 불쌍한 빈민을 짜낼 새로운 수단과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것이지.” 이 악당들은 악어와 사자 수백 마리로 진을 치고 접근을 막고 있는데, 우리의 바이킹들이 이들을 무찌르려면? 비케는 또다시 꾀를 낸다. 도약대 한 쪽에 바이킹이 한 명씩 서고, 반대편으로 큰 바위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우리의 용사들은 한 명씩 하늘을 날아 궁전 지붕에 도착하게 될걸!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폭력이 아니라 지혜와 용기인 것을, 꼬마 바이킹은 가르쳐 준다. 초등 3학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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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죽음과 함께 춤을/베르트 케이제르 지음·오혜경 옮김/440쪽·1만3000원·마고북스

나는 독극물을 가지고 율즈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에 들어서면서도 그가 의식을 잃는 순간이 또다시 두려워졌다. 나는 천천히 액체를 잔에 따랐다. “율즈, 준비되었나요?” “네….”

나는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다시 물었다. “준비됐지요?”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알지 못할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진심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료 의사가 어느 노부인의 안락사를 돕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삶의 마감을 준비했지만 마지막 며칠 사이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죽던 날 의사의 방문을 받고 크게 당황해했다. “그런데 선생님, 웬일이시죠?”

그는 그녀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고, 그날 저녁 그녀는 결국 약을 마셨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의사는 그녀의 딸에게 물었다. “이게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것 맞지요?”

동료 의사의 그 말은 교수형을 집행한 후에 그 사람이 유죄이기를 바란다는 판사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안락사를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요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의 비망록이다. 삶의 가장자리를 서성이는 환자들을 돌보고 때로는 직접 안락사를 실행하기도 하면서 일상적으로 접해온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의료 행위의 가장 놀라운 면은 그토록 많은 환자가 죽어간다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저자. 그는 육신이 썩어가는 죽음의 실상을 ‘날것’ 그대로 들이댄다. 삶에 있어서 가장 거대한 사실인 죽음을 있는 그대로, 거북스러울 만큼 고집스럽게 보여 준다.

의사에게 안락사는 외면할 수만도 없는 독배(毒杯)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위엄 있는 육체의 해방이라는 환자의 요구와 의사의 윤리적 딜레마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에 대해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현대의학의 가장 취약한 분야다. 안락사를 앞두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죽음 후에 남게 될 의사와 간호사를 위해 정성스럽게 포도주를 준비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가슴이 서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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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슬픈 열도/김충식 지음/332쪽·9800원·효형출판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더라도, 시대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그들의 삶, 죄의식과 강박에 떨며 살았던 그들의 안쓰러운 일생을 한번쯤은 중층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증오하고 침을 뱉기에는 너무도 쓸쓸하고 가련한 삶, 나는 오늘 연민의 지평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이 책은 일본과 기막힌 운명의 실타래를 맺은 10명의 한국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월간 신동아에 ‘열도의 한국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평전의 주인공인 이들에게서 언뜻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일본의 힘을 업고 혁명을 도모했던 김옥균, 일본인이 준 것은 입에 대지 않겠다며 곡기를 끊고 버티다 쓰시마(對馬) 섬에서 숨진 최익현,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으로 일본 자기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삼평, 무명 씨름선수에서 전후 일본 대중의 영웅이 된 레슬러 역도산(김신락), 재일 한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회성…. 개중에는 반일 인사도 섞여 있지만 친일파라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는 이도 있고, 한국의 핏줄을 감추려고 몸부림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오가며 펼친 꼼꼼한 현장취재와 관련 문헌에 대한 해박한 독해를 바탕으로 쓴 콕콕 찌르는 듯한 스타카토의 문장을 읽어 가노라면 만나게 되는 키워드가 ‘연민의 지평’이다.

서두에 인용한 문장은 2부 ‘나에게 돌을 던지라’의 서문에 나온다. 조선 도공의 후예지만 2차 대전 패전 상황에서 미국과 항복 협상을 맡아 ‘일본과 일왕을 구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도고 시게노리(박무덕), 자신이 한국계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이름뿐 아니라 일생까지 거짓으로 일관한 소설가 다치하라 세이슈(김윤규) 그리고 역도산이 그 주인공이다.

국가와 민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배신자’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에 서자면 이들은 ‘시마구니 곤조(島國根性·섬나라 근성)’라는 일본사회 특유의 배타적 문화 속에서 자아실현을 위해 자학의 인생을 산 사람이다.

물론 이들과 반대로 문학작품과 역사 연구를 통해 일본인의 이중적 허위의식을 거침없이 고발한 김달수와 이회성 같은 강골의 삶도 있지만 저자는 그들의 핏줄 속에서도 운명과 같은 한(恨)의 정서를 발견한다.

저자는 도자기 종가 심수관가의 후손으로부터 1960년대와 1970년대 형제가 나란히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와 그 친동생 사토 에이사쿠의 집안이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건너온 한국계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유력한 차기 일본 총리 후보이자 독도 해저 측량 소동을 배후에서 지휘한 강경파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그렇다면 이런 오랜 악연의 연원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저자는 시마구니 곤조에 주목한다. 시마구니 곤조는 왜 서양에 적용되지 않고 한국을 겨냥하는가. 저자는 임란 이후 일본의 왜곡된 가해 심리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에서 좌절한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의 또 다른 한(恨)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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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한국사의 천재들/이덕일 신정일 김병기 지음/349쪽·1만4000원·생각의나무

“기대승이 제자들과 산천을 노니는데 경치가 빼어난 곳에 이르자 한 제자가 물었다. ‘이 세상에서 인품이 이 경치에 비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에 기대승은 ‘정철이 바로 그렇다!’고 말했다.”(‘송강행록’)

조선조 불세출의 문인이자 최악의 정치가였던 송강 정철. 스승 기대승은 그의 비범함에 가린 인간의 흠을 보지 못하였으나 정적들은 그를 ‘동인 백정(白丁)’ ‘간철(姦澈)’ ‘독철(毒澈)’이라 불렀다.

그는 양면적인 인물이었다. 한문학과 한글문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불후의 걸작을 남긴 시인이었으나 16세기 후반 정쟁의 회오리 속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정치적 행적으로 길이 오점을 남겼다.

이 책은 한국사의 ‘천재 열전’이다. 타고난 뛰어난 재능으로 세상의 앞길을 먼저 갈파하고 ‘시대의 상식’을 뛰어넘고자 했던 천재 13인이 등장한다. 이덕일 신정일 김병기. 저술로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재야사학자 3명이 한국사의 인물에 대한 ‘편식’을 교정하고자 뜻을 함께했다.

당나라 유학 8년 만에 과거에 붙었으나 고국인 신라에서는 골품제의 한계로 뜻을 펴지 못한 최치원, 관노 출신으로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시간’을 조선에 선사했던 장영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무대를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로 확장했던 유득공…. 이들은 단연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였다.

자신의 모든 천재적 재능을 독립운동 외길에 바쳐 이국땅에서 운명을 다한 이상설, 천주교를 버리라는 압력에 맞서 단식 끝에 죽음에 이르렀던 이벽, 망국의 책임을 홀로 걸머진 채 자결로 생을 마쳤던 매천 황현. 이들은 시대의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았던 천재였다.

천재들의 삶에 드리워진 명암도 낱낱이 드러난다.

평생에 걸쳐 권력의 언저리를 맴돌았던 정철. 그는 다혈질이었고 직선적이었다. 할 말이 있으면 반드시 입 밖에 내야 했고 반대파를 공격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동서붕당의 한가운데 서서 300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당쟁 시대를 열었고,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서인의 ‘행동대장’을 자처하며 1000명이 넘는 반대파를 숙청했다. ‘조선실록’은 그가 술에 취해 옥사를 다스리면서 증거를 조작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학적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쟁의 진흙탕 속에서도 후세에 길이 남을 절창을 쏟아 냈으니, 그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국문학사상 최고의 봉우리로 평가받는다.

“국문시가에서 그가 이루어 낸 빛나는 업적을 생각하면 정치인으로서 정철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피에 전 그의 정치 역정을 생각하면 시인으로서 송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일생에 8000여 편의 시를 지어 ‘붓을 달려 시를 쓴다’는 말을 들었던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 역시 선비의 귀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랫동안 한직 말단을 전전하며 시대를 탓하던 그는 무신정권의 등장으로 입신양명의 기회를 거머쥐었다. 최씨 정권에 의해 발탁된 ‘어용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재(文才)는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데 쓰였으니 그의 서사시 ‘동명왕편’은 고려인의 자부심을 만대에 전한 시문의 백미로 꼽힌다.

정약용이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는 천재 이가환. 그는 자신을 천주교인으로 몰아가는 노론의 탄핵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교우를 해침으로써 자기변명의 계책을 삼았으나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

정철은 어떠했던가. 그의 만년은 스산해서 호구조차 어려웠고 빈곤과 울분 속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죽자 사헌부에서는 “그는 성질이 강퍅하고 시기심이 많아 사갈(蛇蝎)과 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고 해치는 것을 일삼았다”고 아뢰었다. 선조는 이리 답한다.

“정철을 말하면 입이 더러워질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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