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한수기자, 허영한기자]

“사진으로는 식물의 섬세한 잎맥과 솜털, 뿌리의 모습까지 세밀히 표현할 수 없어요.”

동양화가 송훈(66)씨는 “사진으로 찍으면 될 일 아니냐”는 물음에 ‘별 무식한 소리 다 듣겠다’는 표정이었다. 지난 11년간 사실적인 식물 세밀화(細密畵)만 그려온 그는 작품 450여 점 중 231점을 골라 ‘우리식물 세밀화 대도감’(현암사·15만원)을 펴냈다. 도라지·달맞이꽃·민들레처럼 친숙한 것부터 뻐꾹나리·새끼꿩의비름·큰까치수염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식물까지 망라했다.

“사진도감에서 클로즈업해 찍은 꽃을 보고 굉장히 큰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손톱보다 작은 꽃이었어요.”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6·25전쟁 직후에 자라면서 학교에 갈 형편이 못됐다. 대신 10대 후반부터 김태형·김흥종·권순일·김광배 등 여러 선생님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학원사’ ‘민중서관’ 등 출판사에서 위인 전기와 사전 등에 들어가는 삽화를 그리고, 틈틈이 ‘미인도(美人圖)’를 그리며 작품활동을 했다.

“그러다 출판사 편집자가 ‘우리 자연을 기록하는 것은 위대한 유산을 남기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젠 식물 세밀화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종류의 꽃이라도 사실은 다 다르다. 또 가장 아름답게 피는 시간은 5분이 채 안 되기 때문에 좋은 ‘모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1주일에 이틀은 산으로 들로 다닌다. 책에 실린 ‘강아지풀’은 5년 동안 찾아 다니다 의외로 가까운 곳인 여의도에서 찾았다.



세밀화 한 장 그리는데 걸리는 기간은 적어도 열흘. 하지만 ‘분위기’와 ‘격(格)’이 안 나오면 몇 달을 고생한다. 가는 붓과 직접 숫돌에 간 펜촉을 이용해 그리는데 워낙 섬세한 작업이라 숨도 크게 쉬지 못한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2년 전 심장 혈관 두 개가 막혀 가슴을 여는 큰 수술을 받았다. 그는 “잘못되면 다시는 세상에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며 “요즘은 그림을 그릴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원화(原畵)를 100점이라 할 때 사실 인쇄된 책은 60점도 안돼요. 이걸 80점 수준까지 올리려면 책값이 엄청나게 비싸집니다.” 책에 실린 그림 색깔이 조금 바랜 듯하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영구불변 색(色)이라는 ‘아크릴 물감’으로 1000년이 간다는 ‘코튼지(紙)’위에 그린다”며 “내 모든 것을 걸고 그린 그림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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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영완기자]

1961년 소련이 발사한 우주선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는 내용이 학교 게시판에 나붙었을 때 소년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제 국내 최고의 로켓 과학자가 된 그 소년이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닮은 청소년들에게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책을 펴냈다. 1992년 2월 러시아 우주인의 훈련센터인 ‘스타시티’를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방문한 이후 준비해 온 저자가 펴낸 이 책은 한국인 최초 우주인 모집에 한 달이 안돼 1만8000여명이 몰린 이 때에 꼭 맞는 우주인 안내서이다.

책은 유인우주비행과 우주정거장, 한국 최초의 우주인, 우주왕복선 등의 4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에는 러시아와 미국·중국 등 우주개발 선진국의 우주비행과 관련된 도전과 실패, 성공 드라마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로켓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나 우주정거장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가상 일기 형식으로 실어 눈길을 끈다. 책에 나오는 화보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일일이 채 박사가 초벌 그림을 그렸다.

채 박사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홉 권의 로켓 관련 책을 펴냈다. 이 중에는 세종 때의 신기전(神機箭) 등 우리 고유의 화약무기에 대한 책도 있다. 한국인 우주인을 꿈꾼다면 선조들이 만든 로켓도 함께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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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모처럼 듣는 소풍이라는 말이 참 좋다. ‘소풍’이라고 소리를 내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바람이 얼굴을 씻어주는 듯하다. 가까운 곳 어디라도 가고 싶다. 소설가 성석제<사진>는 그러라고 한다. 살짝 땀이 밸 정도로 걸어서 갈 거리면 좋고, 친구가 있으면 더욱 좋고, 좋은 음식을 동행한 친구와 나누면 더더욱 좋지 않겠냐고 부추긴다.

‘소풍’은 타고난 가출 기질에다 월급쟁이 생활을 반납하고 확보한 주체할 수 없는 시간 덕분에 인생의 태반을 길 위에서 사용하고 있는 작가가 이곳저곳 소풍을 다니며 맛본 음식 자랑이다. 그런데, 월든 호수에서 먹은 ‘소로 영감 김밥’ 이야기도 있던데 거기가 걸어서 살짝 땀이 밸 정도의 거리에 있단 말인가? 많이도 돌아다닌 모양이다.

그러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배 아파할 것도 아니다. 대개는 한반도의 남쪽, 그것도 경기도나 경상북도 내륙의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뭐 이렇다 할 특별한 음식을 맛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밥이고(김밥에 갱죽에 묵밥도 있다) 국수다(라면이나 냉면, 자장면도 있다). 배추고 홍시고 사과다. 막걸리다. 가끔 한정식에 너비아니나 떡갈비, 어란에다 가재 요리나 아이리시 흑맥주도 먹고 마신 모양인데 적지 않은 작가의 나이를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데 누구나 일용하는 그 밥이며 배추며 홍시 이야기에 소풍의 흥취가 은근하고 깊다. 대학 시절 고향에서 이웃 노인의 모내기를 도와주고 얻어먹은 겉절이 비빔밥. “함지의 반은 밥, 반은 겉절이였다. 할머니는 고추장을 한사발 함지에 퍼넣었다.

그러고는 물어보지도 않고 세상에 나온 지 80년 된 주름진 손으로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 밥의 맛을 “입속에 가득 차는 환희”였다고 말한다. 배가 아프다면 이런 대목이다. 늦은 밤 묵은 조선간장으로 비벼 먹는 제삿밥을 두고는 “온몸이 입이 된다. 혀가 삶이다.



한순간이 눈 내린 들판의 달빛처럼 환해진다”고 쓴다. 시다. 설날 새벽 청상으로 늙은 집안 할머니가 세뱃돈 대신 옷장 서랍에서 내어주시던 홍시의 시리게 다디단 맛도 역시 탄성 없이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오, 그 기다림과 은일(隱逸)의 향이라니.” 그러고보면 성석제의 ‘소풍’은 사라져가는 시간 속으로 떠나는 ‘소풍’이 아니겠는가. 작가가 깊은 속정으로 불러내고 있는 음식들은 그 시간의 환유였던 것. 그 소풍길의 환한 설렘 너머로 “서럽고 아련한 외로움”이 언뜻 언뜻 비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닭곰탕에 들어가는 닭고기는 ‘쭉쭉’ 찢어야 할까, ‘쪽쪽’ 찢어야 할까. 겉절이 비빔밥을 만들 때는 ‘싹싹’ 비벼야 할까, ‘썩썩’ 비벼야 할까. “요로콤 조로콤 말을 해싸봐도” ‘소풍’의 진미는 성석제가 비벼주는 한국어의 성찬인지 모른다. 그 성찬의 끝에 작가가 얹어주는 인생이라는 ‘고명’까지, 성석제의 ‘소풍’은 너무 푸짐한 밥상이다. 침이 홍수처럼 괸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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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2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더군요. 성석제가 비벼주는 한국어의 성찬..

보슬비 2006-05-2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읽고 싶어요. 이 책 때문에 신랑이랑 열무가 살짝 익으면 큰 그릇에 밥 모다놓고 참기름 고추장 넣어 비벼 먹기로 했답니다.^^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전기병기자]

소설은 수다스럽지만, 소설 독자는 입을 다문 채 텍스트를 읽는다. 소설은 침묵 속에 소통되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활자 언어에는 침묵의 여백이 있다. 그러나 독서 행위 속에서 그 침묵이 망각되면서 작가와 독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환각에 빠진다. 문학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수다스러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문학의 소란스러운 언변을 거부하는 한 젊은 소설가가 있다.

2003년 계간 ‘문학과 사회’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한 소설가 한유주(24·사진)가 첫 소설집 ‘달로’를 냈다. 소설 형식의 해체 실험을 해 온 소설가 이인성은 한유주의 소설을 끔찍히 좋아한다. “작품의 전체적 틀,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서사적 연계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무화시키며 말 하나하나, 이미지 하나하나에 주의를 돌리게 만드는 침묵의 여백들이다.”

한유주의 소설에는 ‘뒷면’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달의 뒷면에는 아름다울 무수한 바다가 있고, 많은 시인과 소년들이 그곳에 발을 담그고 싶어 했지만, 발아한 문장들은 너무 무거웠고, 소년들은 너무 어렸으며 나이를 먹은 후에는 어느 순간 노인이 되어 있었다.”(단편 ‘달로’)



“기억은 망각의 뒷면이었고, 망각은 기억의 뒷면이었다”라는 그의 소설에서 ‘뒷면’은 산문의 영역이 아니라 시의 영토다. 희미한 언어의 흔적들이다. 분명히 일상적 현실 속에 있지만, 우리의 망각으로 인해 언어의 포충망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이다. 문학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일상의 뒷면’을 찾아가는 행위다. 그러나 그 뒷면에서 우리는 ‘텅 빈 세계를 기록한 지나간 시대의 이미 상해버린 필름’만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되풀이되는 ‘삶과 죽음의 희비극’에 대한 씁쓸한 깨달음이다.

한유주의 또 다른 단편 ‘죽음의 푸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암시하면서 현대 문명의 광기와 폭력을 비판한다. 그러나 서사적 이야기가 아니라 몽환적 이미지가 가득한 한 편의 산문시와 같은 소설이다. 왜 이렇게 쓸까. “말하고 싶다. 독백들이 움튼다.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기억을 되새긴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군데군데 뜯기고 구멍 뚫린 기억. 어느 순간 홀연히, 하나의 음처럼, 떠오르는 기억. 서로의 영혼이 증발하고, 사라지고 또 사라지는 영혼을 있는 힘껏 말하던 그때. 모든 사람들의 입술이 단 하나의 말을 속삭이고, 모든 사람들의 귓가에 단 하나의 음악이 들려오던 그때”(단편 ‘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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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용관기자]

역사를 읽는 방식은 사학자 수만큼 많다. 역사를 읽는 이유는 독자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이 책의 저자는 아마추어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널려 있는 잡다한 자료들을 그럴듯하게 짜집기 하거나 어쭙잖은 사관(史觀)으로 사실(史實)을 왜곡·재단하지도 않는다. 다만 발로 뛰어 취재한 대로, 가능한한 많은 자료를 비교해 확신이 선 대로, 정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한반도 근현대 100년 역사의 발화점이자 심장부라 부를 수 있는 대한제국 황실의 이야기다. 관련자들의 삶을 있었던 모습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한반도 역사의 빈 페이지를 메우고자 했다. 당연, 만만찮은 않은 일이다. 저자의 말.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은 ‘퍼즐 맞추기’에 가까웠다. 왜 이 기록과 저 기록은 앞뒤가 맞지 않을까. 무슨 법을 만들고 누구를 처형했다는데 구체적인 근거는 왜 제시하지 않았을까. 자료과 기록에 나타난 내용을 당대 신문·잡지·실록의 기사와 비교해나가자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알고 있던 막연한 풍문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소개되는 인물은 영친왕 이은(李垠)과 영친왕비 이방자, 의친왕 이강(李堈)과 덕혜옹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 등이다. 거기에 민갑완과 이구의 전 부인 줄리아 뮬록, 황적(皇籍)에 올랐던 이강의 두 아들 이건(李鍵)과 이우(李?), 그리고 황적에 오르지 못한 후예들이 등장한다.

제법 비중있게 서술되고 있는 민갑완은 어려서 이은의 간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평생을 수절하며 살아야 했던 여인이다. 조선 황족과 일본 황족의 정략결혼, 소위 일선융화(日鮮融和)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비록 황족은 아니지만 그녀가 감내한 세월 속에는 대한제국 황실 내 어느 누구의 삶보다 애절한 개인사가 서려 있다.

황족들은 그들의 나약함이나 무능과 상관없이 몰락해가는 대한제국의 민중들에게는 희망의 불씨였다. 특히 의친왕 이강은 무수한 풍문과 논란의 진원지였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주색으로 세월을 허송했다고 폄하했지만, 진위여부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중들은 이강의 빛나는 독립운동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바늘 끝처럼 예민한 정신의 소유자인 덕혜옹주에게 망국의 공주 자리는 무겁기만 했다. 고명딸인 그녀를 애지중지 키웠던 고종 황제의 죽음, 일본인과의 정략결혼, 불행한 생활이 불러오는 과중한 심리적 고통은 그녀의 정신을 짓눌렀다. 덕수궁의 금지옥엽으로 태어난 덕혜옹주는 결국 오래토록 정신분열증을 앓다 한으로 가득한 삶을 마감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겨 놓은 낙서만이 그녀의 오래된 고통과 외로움을 조용히 증언한다.

방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비교·분석한 저자의 고투는 560쪽에 이르는 묵직한 기록으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주석만 원고지 200장 분량이다. 우리 근대사가 황실 인물들의 생애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고 평가 받을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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