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그 아래 딱딱한 인도와 부실한 난간/붉은 해와 검은 강은 곧 이 거리를 덮칠 듯 하다/뒤돌아 보면 안 되는데, 뒤돌아 보면 안 되는데......//어디서 우 울음 소리가 드 들려/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토 토하고 싶어 울음 소리가/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드 들려 와//야 양말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우우 그런 치욕적인/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끼쳐/다 다 달아나고 싶어.//도 同化야 도 童話의 세계야/저놈의 소리 저 우 울음 소리/세 세기 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그런데/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소 소름 끼쳐 터 텅빈 도시/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끝내는 미 미쳐 버릴지 모른다/우 우 보우트 피플이여 텅빈 세계여/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이승하 `화가 뭉크와 함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한 시는 폭력과 광기로 얼룩진 80년대의 사회를 ‘절규’하듯 고발하고 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무력한 시인 역시 그에 동조한 공범의식을 느끼면서 괴로워하고 있다. 주검으로 변한 텅 빈 도시에서 보트피플처럼 안주하지 못하는 영혼의 울림이 우는 듯 웃는 듯 대기를 쥐어뜯는다.
노르웨이 태생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는 6살 때 어머니를, 14살 때 좋아하던 누이를 잃고 크나큰 슬픔과 충격을 받는다. 45살 무렵에는 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파국을 맞지만 자기의 삶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극복하려 했다. 궁핍한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신념을 가졌던 그는 "내가 그리는 것은 숨을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며 살아있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대표작 ‘절규’를 그리면서 다음과 같이 일기에 적었다.
"친구 두 명을 따라 길을 걷고 있었다. 거리와 피오르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태양이 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너무 슬펐다.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초조하여 걸음을 멈추고 난간에 기대어 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처럼 검푸른 피오르드와 거리 위로 낮게 깔린 불타는 구름들을 바라보았다. 두 친구는 잠시 동안 나를 보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공포에 떨면서 그 자리에 줄곧 서 있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명이 대기를 갈기갈기 찢는 것을 느꼈다."
작품에서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눈과 입을 크게 열고 있는 모습은 공포를 참지 못하고 절규하는 것이기도 하고, 공허한 그 소리를 배경의 화면을 통해 다시 듣는 것이기도 하다. 메아리를 통해 공포에 질린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것이 오히려 공포를 증폭시킨다.
“모든 것은 등뒤에 있다.//몇 개의 그림자, 그리고/거리의 나무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아무도/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만 몸을 떨었다./곧 네거리에 서 있는 거대한 주유소를 지나야/할 테지만 나는 아무래도 기나긴 페이브먼트,/이 낯선 거리의 새벽 공기가 다만 불안하였다./천천히 붉은 구름이 하늘을 흐르기 시작했으며/흐릿한 전화 부스에는 이미 술 취한 사내들/어디론가 가망 없는 통화를 날리며 한량없었으므로/나는 길 끝에 눈을 둔 채 오 분 후의 세계를/다만 생각할 수 있을 뿐. 어느 단단한 담 안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믿을 수 없는 고음역의/레퀴엠, 등뒤를 따라오는 몇 개의 어두운/그림자, 쉽게 부러지는 이 거리의/난간들, 나는 온힘을 다해 아주 오래된 멜로디를/떠올렸으나 네거리의 저 거대한 주유소,/그리고 붉은 불빛의 편의점 앞에서/결국 뒤돌아보게 되리라, 결국 뒤돌아/보는 그 순간 나는 어떤 눈빛을 지니게 될는지/두 손으로 두 귀를 막고 어떻게/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는지/다만 몇 개의 그림자, 그리고//등뒤의 세계.”(이장욱 ‘절규’, 민음사 2002년)
등 뒤에 있는 알 수 없는 세계, 계속 따라오는 어두운 그림자가 가져올 공포를 금방 숨넘어갈 듯 헐떡이는 문장의 배치를 통해 그리고 있다. 정체 모를 공포에 압도당한 시는 결국 뒤를 돌아다보지 못하고 눈과 귀를 닫지만 귀에서는 이명처럼 레퀴엠과 오래된 멜로디가 잉잉거리며 반복해서 들려온다. 세상과 통하는 모든 숨구멍을 막으면 오래지 않아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한편 뭉크의 ‘절규’(1893년 작)는 2004년 여름 오슬로 국립미술관 전시실에서 2인조 도둑에게 절도를 당했다. 범인들은 잡혀 법정에 섰지만 도난낭한 작품 ‘절규’와 ‘마돈나’의 행방은 묘연하다. 관람객 뒤에서 복면을 쓴 채 태연하게 그림을 훔쳐간 절도범의 모습이 마치 그림 속 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처럼 세계를 한동안 ‘절규’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