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조도연] 남쪽의 초원 순난앵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마리트 턴크비스 그림

김상열 옮김, 마루벌, 48쪽, 1만3000원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살아야죠.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세요. 가슴이 아프죠? '남쪽의 초원 순난앵'의 마티아스와 안나는 오갈 데 없는 고아 오누이였어요. 못된 농부의 집에 얹혀 살게 된 오누이는 추운 겨울 헛간에서 우유를 짜고 외양간을 청소합니다. 겨울철에만 열리는 학교에 가는 게 유일한 기쁨이었지만, 거기서도 그들은 왕따였어요. 어느 날 빨간 새(파랑새가 아니예요)가 안내해 준 환상의 공간 순난앵 마을에서 오누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답니다.

두 사람은 순난앵으로 통하는 문이 한 번 닫으면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그 문을 힘껏 닫아버려요. 이제 두 사람은 순난앵에서 영원히 머물 수 있게 된 거죠. 그런데 빙긋 웃으며 문을 닫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상하게도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얼어죽는 순간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던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르는 까닭은 뭘까요. 순난앵 같은 곳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기 TV 시리즈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린드그렌. 그가 창조한 삐삐는 지극히 독립적이고 엉뚱한 시각으로 어른들의 고정 관념을 조롱하죠. 마티아스와 안나의 웃음도 '해피 엔딩' 일색의 기존 동화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조도연 기자 lumiere@joongang.co.kr ▶조도연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iamjo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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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경희] 괜찮아, 내일은 다를거야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오현수 옮김

대교베텔스만, 347쪽, 9800원

'빨간머리 앤'의 저자인 몽고메리(1874~1942)의 초기 단편 19편을 묶었다. 이야기에는 하나같이 부모 중 최소한 하나는 잃은 아이가 등장한다. 돌아갈 집이 없어 방학에도 기숙사에 머물러야 하는 아이부터 먼 친척에게 노예처럼 학대받다가 가출한 아이까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지만 주인공들의 주변에는 따뜻한 이웃이나 핏줄이 나타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어른들의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빨간머리 앤'의 밑거름이 됐을 단편들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생후 14개월에 어머니를 잃고 엄격한 외가에서 성장한 저자의 어릴 적 고통과 희망, 꿈이 스며들어 있다. 그 시절만큼 고아가 흔치 않은 요즘, 온통 고아 이야기로만 채워진 이 책이 좀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가치인 따뜻한 애정과 사랑이 전체를 관통한다. 현대인이 잊고 지내기 쉬운 인간에 대한 예의나 사랑 등도 끄집어낸다. 형식상 동화에 가깝긴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은 돼야 읽기 적합할 듯하다. 어른들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이야기 속에는 여러 유형의 어른들이 나온다. 자신이 아이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 어른일지 비춰 보는 거울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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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헤그만 지음. 펀북스,256쪽, 7800원

'남자는 다 그래'. 유행가 가사냐고? 천만에, 버젓한 책 제목이다. 리드미컬한 제목처럼 책은 톡톡 튀고 간결하다. 정색하기보다 낄낄대고 무릎 쳐가며 읽기 딱 좋은 책. 책 자체도 그렇지만 이런 책들이 쏟아져 나오며 독자에게 선호되는 최근 출판 풍토가 흥미롭다.

아무튼 책은 남자보고서.남자해부서다. 필자는 게이 남자.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화.멀티미디어.데이트.인간관계 등을 소재로 저술 활동을 하는 '튀는 게이 프리랜서'다. 필자는 "나 자신이 완전한 남자이며 남자 파트너와 소통하고 여자들의 허물없는 친구라는 점에서 남자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한다.

책의 결론은 하나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모든 남자는 똑같다는 것. 필자가 명명한 '사피엔스 페니스종'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양성애자든, 자상한 사람이든 마초든 다 똑같다. 절대로 철들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필자는 기발하고 코믹한 안목으로 그의 파트너이자 친구인 남자들을 해부한다. 아이 장난감을 갖고 놀고, 섹스와 멋진 자동차, 수퍼맨과 경주에 탐닉하고, 이별과 종말을 두려워한다. 이 가운데 엄살이 심한 남자들의 철없는 얼굴이 드러난다. 평원에서 달리던 고대 전사의 승전보를 잊지 못해 여전히 내기와 승부에 집착하는 남자들은 3분에 한 번씩 섹스를 생각하며 '브레인 피트니스(사고가 잘 되게 머리를 정리해주는 것)'를 한다는 것이다. 책은 그렇게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아니 태생적으로 어른이 될 수 없는 현대 남성의 유아성을 섭렵한다. 이들을 '피터팬종'이라 명명해도 좋으리라.

필자의 약력도 눈길을 끈다. 그는 저술 활동과 함께 함부르크 온라인 중매소의 데이트 전문가로 이메일.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철인 3종 경기 트레이너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오토바이와 만화의 열혈 매니어다. 그 자신이 어느 한 곳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한 순간도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허전해하는 유아적 남성인 것이다. 사소한 수다떨기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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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2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철 들지 않을 사피엔스 페니스종..

보슬비 2006-05-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중앙일보 채인택]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아베 쓰카사 지음, 안병수 옮김, 국일미디어, 215쪽, 1만원

자, 콩으로 메주를 쑤어 간장을 담가보자. 장독에서 적어도 1년은 숙성해야 천연 아미노산들이 우러나와 제대로 된 장맛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자면 원가가 많이 든다. 공업적 제조법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재료부터 다르다.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탈지 대두를 쓴다. 이를 전기분해 하면 간장의 기초 물질인 아미노산을 얻는다. 문제는 맛이 무미건조한 데다 간장 고유의 색이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식품 첨가물'이라는 이름의 마술사에게 일을 맡기면 된다. 우선 화학조미료인 글루타민산나트륨으로 감칠맛을 내고 감미료로 단맛을 살짝 더한다. 거기에 산미료를 써서 산뜻함을 만들고 증점제를 넣어 걸쭉한 느낌을 보탠다. 색깔도 간단하다. 캐러멜 색소가 해결사. 여기에 보존료를 넣어 상하지 않게 한다. 겉모습은 거의 차이가 없는 간장이 탄생한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제품들은 가짜.모조.대체 간장"이라고 비난한다. 간장 고유의 풍미는 물론 찜이나 조림을 만들어 보면 차이가 확연해진다. 간장은 빙산의 일각. 이 책은 미트볼에서 커피 크리머에 이르는 숱한 식품의 사례를 들며 흔히 먹는 가공식품의 대부분이 이런 사정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식품업계 사정을 깊숙이 파악한 '내부고발자'가 쓴 책이니만큼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물론 일본의 사례다.

그에 따르면 더 큰 문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첨가물로 만든 제품들이 오늘날 맛의 세계와 음식 문화를 지배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맛의 기본인 소금도 형편이 나을 게 없다고 한다. 전기와 여과장치를 이용해 바닷물에서 염화나트륨만 뽑아낸 정제염은 짠맛만 난다. 하지만 햇빛에 바닷물의 수분을 증발시켜 만든 자연 바다소금은 풍부한 미네랄 덕분에 짠맛이 강하지 않고 오히려 단맛이 스며 있다.

지은이는 "천연 양조간장 맛이 수많은 아미노산의 하모니라면 바다 소금 맛은 미네랄의 합주"라며 "화학 간장이나 정제염이 결코 낼 수 없는 이런 맛의 문화를 가격 때문에 희생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이 하루에 먹는 식품첨가물은 10g 정도로 1년이면 4kg이나 된다. 기피 풍조가 퍼졌지만 첨가물 사용량이 줄지 않고 있다. 사용되는 첨가물 정보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매복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손쉽게 제품을 만들려는 생산업자와 원가가 낮은 제품으로 할인 행사를 벌이고 싶어하는 유통업자, 값싼 것만 찾는 소비자의 행태가 복합 골절을 일으켜 이런 '무간지옥'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현실이지만 옮긴이에 따르면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식품 살 때 원료와 첨가물을 표시한 라벨이라도 잘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기에도 함정이 있다고 하니 씁쓸하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도 있는데….

채인택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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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정호] 이것이 진짜 축구다

SHO'w 지음, 살림

447쪽, 1만5000원

좋든 싫든 '월드컵 열풍'을 피해갈 수 없는 시기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최고다.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월드컵을 만끽하자는 말이 아니다. 알고 보자는 것이다. 각종 전술에 대한 이해, 필요하다. 각국 선수에 대한 정보, 요긴하다. 여기에 하나 더-. 역사와 문화까지 곁들인다면. 축구 해설가를 넘어 축구문화 평론가도 노려볼 수 있겠다.

예컨대 영국 축구. '신사의 나라'를 자처하는 영국에서 왜 훌리건(경기장 난동꾼)이 극성일까. 해답은 역사에 있다. 영국 축구의 기원은 중세 마을공동체. 현재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연고지도 도시.지역보다 동네 중심이다. 그들에게 축구는 '우리 동네'를 위한 것. 타지 사람을 멋지게 '손 봐주는' 게 영국 축구의 뿌리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토털 사커'로 유명한 네덜란드 축구는 지리적 특성과 관계가 깊다. '바다보다 낮은 땅'을 옥토로 만든 네덜란드는 자연과의 오랜 투쟁 끝에 진취적 국민성을 형성했고, 선수 전원이 공격.수비를 교대하는 '토털 사커'로 세계를 뒤흔들었다.

책에는 이탈리아.독일.브라질.아르헨티나 등 8개 축구 강국의 문화가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합법적인 세계전쟁'인 월드컵을 보는 눈이 확 넓어진다. 축구사이트 X1000.co.kr(천배) 운영자들이 썼다. 축구를 1000배 즐기자는 뜻이라나.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박정호 기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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