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깝다 이책

작가나 저자들을 만나보면 은연중에 의무감이나 사명감을 앞세우는 분들이 많다. <율려>의 작가 전승규 교수도 사명감이 만만치 않은 분이다. <율려>는 발해의 건국을 중심축으로 삼은 역사 판타지 소설인데, 작품 속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 원형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사명감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민족의 문화 원형은 작가가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디지털 콘텐츠와도 일맥상통한다. 신화와 역사를 망각한 민족, 문화의 뿌리와 상상력이 거세된 민족은 미래도 없다는 작가의 신념 또한 작품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을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작가의 의지는 사명감과 의무감의 절정인 셈이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든 것은 발간하기 일년 전이었다. <율려>의 원고를 읽어보고 출판사에서 해야 할 몫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의무감이나 사명감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듯한 문장이 되지 않도록 작가에게 수정을 부탁하는 일과 판타지의 상상력을 구체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창작 원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일이었다. 창작 원화는 작가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영국에서 유학하며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일년 남짓 이런 작업 과정을 거쳐 창작 원화 48작품을 수록한 3권의 소설이 세상에 태어났다.

<율려>는 가우리라는 이름의 대조영과 무라는 이름의 가상 인물이 중심이 되어 엮어가는 발해의 건국 이야기로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의 중국이 배경이다. 따라서 실제의 역사 사실과 문화 원형에 대한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상상력의 범위는 발해에 국한시키지 않고 한민족 전체로 외연을 넓혀 도깨비, 장승, 어처구니, 두억시니 같은 캐릭터를 선보인다. 이런 캐릭터들과 민족의 신물들이 해마리산(백두산)과 하늘못(천지)과 천문령을 주무대로 형요, 촉음, 염화 같은 중국의 괴물들과 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나라를 세운다는 줄거리다. 또한 판타지 소설의 특징을 살려 퍼즐 게임처럼 비밀스럽게 전승된 단군의 옥첩과 민족 전래의 신물들인 칠지도, 삼족오, 치우의 깃발, 오룡거, 구미호에 얽힌 미스터리를 푸는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율려>에서 발해의 건국은 우리 민족의 염원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여 통일시대를 준비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와 출판사가 <율려>를 통해 단군(조선)의 뿌리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묻는 동시에 저마다의 마음속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건국기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아울러 소설에서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으로 지경을 넓힘으로써 우리 민족의 문화 원형이 바탕이 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s)의 콘텐츠가 되어주기를 희망했다. 판타지 소설인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가 영화로 만들어져 대단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현상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바람과 희망은 더욱 간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땅에서는 우리 체질에 맞는 판타지 소설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중국의 동북공정이 우리 역사를 위협하고 일본의 독도 망언이 우리 영토를 위협해도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토종 판타지 소설의 상상력이 선뜻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한다는 율려의 기지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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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혜경(46)씨의 세 번째 소설집 <틈새>가 창비에서 나왔다.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장편 <길 위의 집>을 포함하면, 1982년 등단 이후 네 번째 책이 된다.

<틈새>에 실린 아홉 개의 단편 중 가장 짧은 분량인 <늑대가 나타났다>는 아이의 성장 또는 작가의 탄생에 관한 ‘신화’처럼 읽히는 작품이다. “그 시절, 내가 살던 마을 근처엔 늑대들이 득시글거렸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늑대’는 아이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금기의 다른 이름이다. 어른들은 마을 주변의 일정한 둘레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 놓고는 그 너머는 늑대의 땅으로 규정해서 아이들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다. 공포와 위협이 수반된 늑대의 금기는 과연 아이들의 행동 반경을 ‘안전한’ 금 안에 묶어 놓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늑대의 금기가, 두려움과 체념을 뚫고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까지를 막지는 못한다: “얘야, 마을 바깥엔 널 기다리는 것들이 많단다. 넌 대체 언제쯤 떠날 거냐?”

아이는 결국 금을 넘어 길을 떠난다. ‘늑대에게 발목 하나를 내주고라도 단념할 수 없는 세상’이 금 바깥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아이가 만난 것은 무엇이었던가. 늑대?

그 사람을 늑대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어스름녘, 들판을 혼자 걸어가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은 마을 안에서 늑대 취급을 받던 그뿐이었다.” ‘그’란 ‘처제하고 사는 이’로도 불리는 마을의 외톨이. 아내가 병으로 죽자 아이들의 처참한 몰골을 보다 못한 아이들 이모가 그의 집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돌보다가는 그예 아이들 아버지인 그까지 돌보게 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뜻밖의 만남에서 아이는 ‘늑대’가 전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음은 물론, “내가 나 아닌 아기늑대인 것 같”다고까지 생각하기에 이른다. 늑대의 탄생, 그러니까 작가의 탄생 이야기다.

<늑대가 나타났다>의 이야기를 인식과 성장의 드라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지와 편견의 너울을 벗고 깨달으면서 성숙해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길 위의 집’ 떠올리게 한 ‘피아간’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어른이 된 작가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불행하게도 세상에는 늑대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금기와 편견이 얼마든지 버티고 있다.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의 ‘망태할아버지’는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와 거의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혼자 생각한다: “나이가 든 뒤에도, 망태할아버지는 마음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모습만 달리했을 뿐.”

늑대의 금기를 벗어났음은 물론 스스로가 늑대가 된 것 같다고 느끼기까지 한 어른들의 세계에 또 다른 늑대(또는 망태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른이 되는 것이 일회적 사건 또는 행사로 완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그 아름다운 풍경 뒤편, 안락한 내 집 어딘가에 숨어 있을 바퀴벌레”를 상상하며 ‘망태할아버지’ 노래를 웅얼거린다. 이러할 때 숨어 있는 바퀴벌레란 평온해 보이는 일상 뒤의 균열과 불안, 공포를 상징하는 것일 테다. 소설집 속에서 정체 모를 불안과 공포에 대한 언급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견고해 보이던 것들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섬>)

“한순간 눈에 띈 포스터 한 장이 한 사람의 회로를 교란시키고 마침내 수리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틈새>)

“그러나 과연 그 믿음만큼 안전할까.”(<크레바스>)

참신하면서 효과적 비유 도드라져

‘정체 모를’이라고는 했지만 그 실체와 원인을 적시하지 못할 노릇은 아니다. <물 한 모금>의 주인공인 이주노동자 아밀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를 둘러싼 상황은 결코 호의적인 것이 아니다. 동료 노동자 샤프가 당국에 붙잡혀 추방당할 처지에 놓여 있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낯선 땅에서 먹을것을 훔치다가 맞아 죽은 동생 라흐맛의 최후가 떠나지를 않는다. 죽기 직전 물을 달라고 했다던 동생의 이야기는 아밀 자신의 근원적 갈증을 자극한다.

<크레바스>의 주인공 남자에게 불안의 정체는 어릴 적 잃어버린 점박이 여동생이다. 대형 마트의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그의 시야에 어느 날 여동생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포착된다. 그러나 폐쇄회로 텔레비전 화면에 한 번 잡혔던 ‘여동생’은 그 한 번을 끝으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정말로 여동생인지조차도 불분명하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주인공은 여동생을 찾기를 포기하고 기왕의 일상에 주저앉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표제작의 결말에서도 주인공은 “날아오르는 새”와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의 틈새에 끼인 채 주저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섬>의 주인공은 그나마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찾아가고자 하는 정도의 의욕을 보이지만, 소설집 전체의 기조는 <그림자>의 주인공이 신조처럼 떠받드는 ‘상기하자, 아일랜드’라는 구호에 담겨 있어 보인다. 다수 신교도에 차별 당하고 억눌려 온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상대방을 대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 말이다.

한편 올해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피아간>은 작가의 대표작인 장편 <길 위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와 장남으로 대표되는 남자들을 뻔뻔스럽게 “만든 그 무엇”, 주인공 경은을 비롯한 여자들을 “느닷없는 분노로” 떨게 만드는, 그리고 경은으로 하여금 “생명이 아니라 거짓”을 포태하게 만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마지막으로 이혜경씨의 참신하면서도 효과적인 비유들을 만나 보자. 좋은 비유는 서사와 주제의식을 적절히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발견과 인식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성한 잔칫집 어귀에서 두드러지게 초라한 옷차림을 한 식구들을 볼 때처럼 맺혀왔다.”

“잠은 언제나 운모조각처럼 얇았고, 작은 소음이나 커튼 틈으로 스며든 빛살에도 쉬 바스러졌다.”

“뽀족하게 튀어나오려는 말을, 경은은 혀끝을 동그랗게 말아 가둬버린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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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연말 교통사고로 숨진 젊은 시인 신기섭(1979~2005)의 유고시집 <분홍색 흐느낌>이 나왔다. 지난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나무도마>를 비롯해 생전에 발표한 20여 편과 미발표 및 습작품을 포함해 모두 53편이 묶였다.

“오래 자다 일어난 것 같은데 어둡다 문득 잠결에 친구의 전화를 받은 기억, 그러나 그 친구 이미 오래 전 스스로 목을 매달고 죽은 기억, 죽어놓고도 생전처럼 또 묻던 그 말: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지?)”(<봄눈> 부분)

“늙게 살면 빨리 죽는 거야/희망을 말하면 빨리 죽는 거야”(<문학소년> 부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이른 죽음을 맞은 시인의 시들에서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죽음에 관한 숱한 언급을 만나는 것은 전율스럽다. 그는 심지어 “나는 내 입으로 곡을 하며 길을 떠난다”(<꽃상여>)라는 구절도 남겨 놓고 있는데, 말이 죽음을 부른 것인지, 시인에게 남다른 예지력이 있었던 것인지, 남은 자들은 알 길이 없다.

죽음 시편들 이상으로 시집을 지배하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에 관한 기억이다. 시인은 미리 써 둔 시집 머리말에서 “이 시집을 언제나 곁에 계신 할머니에게 바친다”고 밝혔다. 왜 할머니인가.

“추억이란 이런 것./내 몸속을 떠도는 향기, 피가 돌고/뼈와 살이 붙는 향기, 할머니의 몸이/내 몸속에서 천천히 숨쉰다.”(<추억> 부분)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것들은 모두 할머니가 된다. 품에 안겨 젖 빨아먹고 싶던 생의 모든 아름다움, 따뜻함, 예쁨, 그러나 할머니가 된 것들이여.”(<할아버지가 그린 벽화 속의 풍경들> 부분)

어머니로 대표되는 모든 긍정적인 가치의 이름이 시인의 경우에는 할머니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서울예대 문창과 스승인 김혜순 시인은 시집 뒤에 붙인 표사에서 “기스바! 네 할머니 톤으로 너 불러보자.(…)네 시와 삶 속에 가득 들어찼던 죽음 버리고, 네가 그리 시 속에서 찾아 헤맸던 죽음 속에 깃든 삶의 나라로 날아가버렸구나”라며 어린 제자의 성급한 죽음을 애도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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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시 노부스케(1896~1987)는 일본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나에겐 위대한 존재”라고 칭송한 인물이다. 기시는 군국주의 일본 시절 도조 히데키 밑에서 상공대신과 군수차관을 지내며 미국과의 전쟁준비 최일선에서 활약했고 그 때문에 패전 뒤 에이(A)급 전범으로 단죄받았으나 도조 등 7명이 처형당한 다음날 전격 석방돼 총리직까지 오르면서 냉전시대 미국의 일본 및 동아시아 정책에 적극 협력한 우익 정치인이다. 만주국 총무청 차장으로 군부 지도자 도조와 함께 3년여 동안 일제 괴뢰국 만주국을 주무른 뒤 본국으로 영전하면서 “만주국은 내가 그린 작품”이라고 떠벌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쇼와(히로히토 ‘천황’)의 요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침략전쟁시대 일본 실력자 중의 실력자였다.

자위권 확대 외친 기시 노부스케

그가 전범 재활용으로 점령정책을 바꾼 미국 덕에 살아남아 총리직까지 오르면서 자신의 핵심적 정치 신조로 삼은 것은 ‘평화헌법’ 개정이었다. 자유당 입당 조건도 개헌이었고 입당한 뒤 헌법조사회 회장이 됐으며 총리가 되자마자 설치한 게 헌법조사회였다. 지금 일본 우익들이 추진하는 군대보유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으로의 변신을 위한 개헌공작의 시조가 바로 그이며, 미-일 안보조약 개정으로 지금의 미-일 동맹 초석을 놓은 이도 그다. 그를 움직인 신념은 결국 영광스런 대일본제국의 부활이었다. “일본의 자위권은 한국과 대만에까지 확장돼야 한다”고 한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기시는 아베 장관의 외할아버지다.

이름 6번이나 바꾼 대중작가

기시의 친동생은 전후 역대 일본 총리들 가운데 최장 재임 기록을 남겼고, 노벨평화상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까지 탄 사토 에이사쿠(1901~1975)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최종타결될 당시 일본 총리가 그였다. 모두 총리가 된 그들 형제는 현대 일본의 토대를 쌓았고 한국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역사의 장난인지 악연인지.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충식씨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 심수관 14대로부터 최근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 사는 심수관 14대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사토 에이사쿠가 자신한테 직접 써주었다는 ‘묵이식지’(默而識之;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라는 액자 속 글씨를 가리키며 이런 얘기를 했다. “사토씨가 하는 말이 놀라웠어요. 나한테 ‘당신네는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기에 400년 가까이 되었다고 했더니, ‘우리 가문은 그 후에 건너온 집안’이라는 거예요. (한)반도의 어느 고장에서 언제 왔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기네 선조가 조선에서 건너와 야마구치에 정착했다는 얘기였지요.”

핏줄 드러내고 위선 고발한 이도

김충식씨가 발로 뛰며 써낸 〈슬픈 열도〉(효형출판 펴냄)는 ‘영원한 이방인 400년의 기록’이라는 부제대로 임진왜란을 전후해서부터 일제 때까지 강제로 또는 자진해서 일본 땅으로 건너가 나름대로 굵직한 흔적을 남긴 당사자나 그 후손들 10명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뒤틀린 한-일 관계 역사의 바닥 모를 비극성이 짙게 반영된 그들의 기구하고도 극적인 인생유전은 어떤 역사책보다도 일본, 한-일 관계,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깊은 상념에 잠기게 만든다.

이름을 여섯개나 갈아가며 철저히 자신의 핏줄을 속이고 산 일본 스타 대중작가 다치하라 세이슈(김윤규), 외무대신으로 일제 패전 처리 최일선에서 일본과 ‘천황을 구한 인물’ 도고 시게노리(박무덕), 영웅이 된 프로레슬러 역도산(김신락)처럼 일본인보다 더한 일본인으로 행세한 사람들에서부터 작가이자 한-일 고대사를 바꾼 역사가 김달수, 외국인으로 일본 최고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처음으로 받은 이회성처럼 차별의 참담한 고통속에서도 당당하게 핏줄을 드러내고 싸움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일본 사회의 위선을 고발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의 다양한 삶들을 중심으로 한 논픽션이 주는 재미와 감동은 묵직하고 흡인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들어보는 면암 최익현, 김옥균, 이진영, 심수관, 이삼평에 관한 얘기는 또 얼마나 색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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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큼 기나긴 동안 인류를 사로잡은 것이 있을까. 사랑은 시대와 사회,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며 수많은 문학과 미술, 음악의 모티브가 됐다.

‘사랑의 문화사’는 사랑의 과정을 살핀다. 기다림을 시작으로 만남, 청혼, 결혼식을 거쳐 종말에 이르기까지 사랑이 겪는 과정을 고찰한다. 지은이 스티븐 컨은 미국의 문화사회학자. 또 다른 저작 ‘육체의 문화사’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등도 이미 국내에 소개됐다.

저자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문학과 미술 작품을 촘촘히 훑었다. 대상이 된 것은 1847년부터 1934년까지 87년간 생산된 예술 작품. 1900년을 기점으로 이전은 빅토리아 시대, 이후는 현대로 구분했다. 이 시기에 출간된 문학과 미술작품, 철학서를 분석해 컨은 사랑에 관한 18가지 주제를 끌어냈다. 이들 주제가 각각의 작품에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펴봄으로써 시대에 따라 사랑에 관한 의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핀다.

사랑의 문화를 분석하기 위해 지은이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길잡이로 삼는다. 하이데거가 ‘본래적-비본래적’ 구분에 따라 현존재의 실존을 해석했듯, 이 구분에 따라 사랑의 요소를 해석한다. 빅토리아 시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좀더 본래적인 사랑을 하게 됐다는 것. “현대인은 빅토리아인의 우아함과 통렬함 그리고 영웅주의를 얼마간 잃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의 의미를 더욱 깊이 성찰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신들만의 고유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수많은 소설과 미술 작품을 가로지른다.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주홍글자’ ‘레 미제라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댈러웨이 부인’ ‘전망 좋은 방’ 등 소설만 100여 편에 달한다. 클림트, 뭉크, 칸딘스키, 달리, 피카소, 뒤샹 등 근현대 화가들의 그림도 상세한 설명과 함께 소개된다. 방대한 작품의 행간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엮어낸 저자의 깊이와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접하고 싶은 이들, ‘연애 기술’류의 가벼운 책에 식상한 이들,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소설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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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문화사

원제 The Culture of Love

스티븐 컨 지음, 임재서 옮김, 말글빛냄, 768쪽, 3만원

"피츠제럴드의 '천국의 이편'(1920)에서 연인들은 만난 지 5분 만에 키스에 대해 말하고 곧 키스하지만 '폭풍의 언덕'(1847)의 히스클리프는 4년이나 기다린 끝에 캐서린과 키스한다."(제8장 입맞춤)

"'보바리 부인'(1857)의 엠마는 자기가 딸을 낳은 걸 알게 되자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는다. 어린 딸이 남자들 세계에 종속된 자신의 운명을 반복할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무지개'(1915)의 안나 역시 딸을 낳은 걸 알고서 실망하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다. 작가(D H 로렌스)는 안나가 '이 애가 내 젖을 빠네. 이 애가 나를 좋아해, 나를 사랑하는 거야!'와 같은 현대적인 모성애가 담긴 감탄사를 발하는 장면을 묘사한다."(제15장 결혼식)

'사랑의 문화사'는 이처럼 빅토리아 시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문학작품에 나타난 사랑과 연애, 결혼과 욕망 등의 변천사를 좇는다. 문학 작품 출간 연도로 보면 1847년부터 1934년까지이며, 두 시대를 나누는 기점은 1900년이다.

지은이 스티븐 컨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기다림.만남.조우.육화.욕망.언어.폭로.입맞춤.젠더.권력.타인들.질투.자아성.청혼.결혼식.섹스.결혼생활.종말 등 18개 주제별로 사랑의 역사를 풀어놓는다. 거론되는 작품들이 워낙 많아 영미권 고전문학을 꿰고 있는 독자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쉴레.뭉크.발라동 등 미술 작품 57점에 대한 해석도 곁들여진다.

책장이 착착 넘어가는 책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분석 틀로 빌어왔기 때문에 하이데거의 '본래적-비본래적' 구분을 이해하는 몸 풀기가 필수다. 지은이는 "빅토리아 시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됐고, 이에 따라 비본래적 사랑에서 본래적 사랑으로 변화가 이뤄졌다"고 말한다.

그는 '본래적'이라는 단어를 '자기자신임'이라는 말로 바꾸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남녀의 성 역할이나 타인의 가치관에 맞추는 사랑은 '비본래적'이고, 사회적 상황에 당당히 맞서 사랑의 의미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사랑은 '본래적'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두 시대의 차이를 잘 알려진 소설 작품에서 관찰하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예컨대 여주인공의 연령도 변했다. 분석 대상이 된 작품들 중 19세기 소설 여주인공의 평균 연령은 19.7세.'레미제라블'의 코제트는 15세,'제인 에어'의 제인은 18세였다.

반면 20세기 소설에서는 28.6세로 껑충 뛴다. 여주인공 연령 변화를 통해 "20세기 여성들이 연애 적정 연령에 대해 좀더 여유로운 태도를 가지게 됐고 결정적인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머리말에 "어떤 책은 전쟁을 다루기 때문에 중요하고, 어떤 책은 응접실의 여성의 감정을 다루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비평가들은 생각한다"는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인용한다. '사랑의 문화사'는 울프의 불만을 달래줄 만한 책이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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