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신용관기자]

‘고수’(高手)들은 음악은 보고, 그림은 듣는다고 한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지도는, 마치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처럼, 읽을 줄 아는 사람의 눈 앞에 마법을 펼친다고 말한다. 지도 위 파란 줄 하나가 자격을 갖춘 ‘눈’을 만나면 푸른빛으로 출렁이는 강으로 살아난다는 얘기다. 누런 바탕에 다닥다닥 찍힌 점들에서는 사막에 부는 뜨거운 모래바람을 느낄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지도를 ‘종이 한 장의 마법’이라 부른 제목은 아주 적절하다.

일례로 경도선(經度線)은 지구를 세로로 가르는 선들로, 그 기준은 그리니치를 지나는 선이다. 그러나 지도에서 경도선이 의미하는 바는 그 이상이다. 항해와 탐험 때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그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알게 되면 경도선의 의미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지도에 보이는 경위(經緯)선, 축척, 날짜 변경선, 도법, 기호 등은 모두 사람들의 창의적 사고와 치열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선 하나, 기호 하나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오랜 노력과 도전이 녹아 있는 ‘위대한 유산’이다.

사실 지도는 문자보다 더 오랜 기간 사람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나누고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인류가 함께 만들어 온 보물 창고다. 도구로서의 지도는 과학 기술력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더욱 커지고 있다.

하긴 구형(球形)인 지구를 2차원 평면에 완벽하게 표시하는 건 애초 불가능한 작업이다. 다만 실제 모습에 누가 더 비슷하게 담느냐가 관건이다. 요즘은 IT기술에 힘입어 3차원 영상이 제공되고, 지도는 아니지만 인공위성을 이용한 각 지역별 사진이 나무 식별도 가능한 수준으로 인터넷에 떠다니니, 정말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동안 외국 서적 번역은 간간 있었으나 국내 전문가가 쓴 아이들용 관련서는 무척 반갑다. 우리 아이들에게 맞춤한 시각 자료들이 글과 잘 어울려 있다. ‘삼각 측량’이나 지구 둘레 재기(참고로, 지구 허리 둘레는 4만76㎞)처럼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들은 그 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림으로 풀어 내고 있다. 삽화가 일정 내용을 담는 텍스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종이 한 장의 지도가 역사책 한 권과 맞먹는 무게와 웬만한 위인전 못지 않은 감동을 준다는 점을 알려주는 알맞은 분량의 훌륭한 가이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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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윤덕기자]

초등학교 가기 전 우리 아이, 수학을 가르쳐야 할까, 말까? 이럴 땐 놀이로, 재미난 그림책으로 ‘맛뵈기’를 하자.

‘청어 열 마리’는 아주 기초 단계의 뺄셈 이야기다. 청어 10 마리가 함께 살다가 크고 작은 ‘사건’으로 한 마리씩 사라진다는 줄거리다. ‘몸살이 나서’ ‘달이 콱 삼켜서’ ‘줄타기하다 떨어져서’ ‘피아노 뚜껑이 닫혀서’ 등등 참으로 엉뚱하고 재미난 사연으로 10→9→8→7→6→5 순으로 숫자가 줄어드는 이야기. 작가의 짓궂고도 발랄한 상상이 그림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배고픈 개미 100마리…’는 난이도가 조금 높다. 맛있는 간식을 먹으러 개미 100마리가 1줄로 소풍을 떠난다. 이때 가장 어리지만 재치 있는 꼬마개미가 아이디어를 낸다. “50마리씩 2줄로 가면 금방 갈 수 있겠다!”



그래도 속도가 오르지 않자 ‘25마리씩 4줄’ ‘20마리씩 5줄’ ‘10마리씩 10줄’로 정열을 맞춘다. 개미들은 과연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시간에 맞춰 먹을 수 있게 될까? 운율처럼 반복되는 ‘발발발’이란 의태어도 우습고, 판화 기법을 활용해 개미들의 소동과 100이라는 숫자를 정확하게 맞춰 표현한 그림도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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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소녀, 삼팔선을 넘다



[조선일보 김윤덕기자]

1945년 봄, 집 앞마당에 심어진 늙은 소나무 아래에서 기력이 쇠한 한 노인이 명상하는 풍경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해방과 분단, 전쟁으로 점철된 우리 슬픈 역사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다.

당시 열 살이었고 평양에 살았던 숙안에게 ‘해방’은 희망의 시작이 아니었다. 양말공장 언니들을 정신대로 몰아가고, 할아버지의 목숨까지 앗아간 일본 경찰은 제 나라로 쫓겨갔지만, 이번엔 소련군이 마을에 들어온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날마다 회의를 하며 서로를 감시하는 일상. 선전과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숙안의 가족들은 정든 평양을 떠나 월남하기로 결정한다. “왜 우리는 식구끼리 이웃끼리 우리가 바라는 대로 오순도순 살면 안될까. 왜 우리에겐 자유가 없을까.”

도미해 중·고교 역사교사로 일했던 저자가 자신이 실제 체험한 삶을 토대로 영어로 썼다. 저자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철조망을 넘어온 어두운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어린 세대들에게 자유와 참다운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소설로 남겼다”고 말한다. 미국도서관협회 최우수 청소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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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여행 떠나면서 지도 한 장 없이 나서는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아주 많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에게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지도책을 권하고 싶다. 최단 거리를 찾아 주는 내비게이션은, 최단거리를 안내하는 고속도로만큼이나 여행을 단조롭게 만들어 버린다.

좋은 여행을 하려면 지도책 사는 것에 인색하지 말 일이다. 여행 작가인 나는 1년에 1권씩 지도책을 산다. 온갖 길이 식물처럼 해마다 삭정이를 만들며 새로운 가지를 치기 때문이다.

국내 지도책 중에서 그래도 안정감이 있는 게 성지문화사에서 낸 ‘10만분의 1 도로지도’다.

학교가 격주로 주5일제 수업을 하면서 여행이 숙제처럼 되어 버린 경향이 있다. 숨 가쁘게 일에 매달리는 가장들에게 비록 숙제처럼 떠안겨서라도 여행하게 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행은 인생의 농담 같은 것이다. 진지하지 않아도, 필사적이지 않아도 감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편하게 떠나야 할 여행이건만 근래에 나온 여행 관련 책들의 제목은 필사적이다.

‘죽기 전에’나 ‘살아서 꼭’이나 ‘평생 잊을 수’로 시작되는 치명적인 제목들이 눈길을 끈다. 좋게 평한다면 바쁘거나 게으른 독자들을 위한 배려이자 구애다.

여행할 시간도 내기 어려운 판에 여행 계획을 짜기란 더욱 난망한 일이니 핵심 포인트만 찾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친절하고 똑똑한 여행 책까지 진을 치는 상황이 되었다. 개중에 볼만한 책도 없지 않다. 양영훈의 ‘똑똑한 여행책’은 글과 사진이 잘 짜여 있어 눈으로 즐기고 발로 되짚어 볼 만하다.

여행의 흥미를 배가시키기 위해서라면 좀 더 화려한 곳, 좀 더 유명한 곳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일정 기간 추구하는 자기만의 주제를 가지면 여행만이 아니라 삶까지도 풍성해진다. 전통마을만 찾아가든지, 숲만 거닐든지, 제철 특산물만 맛보든지, 오래된 골목길만 뒤지든지 외곬으로 파다 보면 단번에 그 분야의 전문가 반열에 오를 수가 있다.

퇴직하고 외식업이라도 해야겠다고 작심한 분이라면 김홍기의 ‘제철음식 제철여행’을 배낭에 넣고 다니길 바란다.

여행은 무엇보다도 시선이다. 새로운 시선만이 새로운 세상을 읽어 낼 수 있다. 그 시선의 높낮이부터 폭까지를 논하고 있는 여행서가 강영조의 ‘풍경의 발견’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번 가 본 곳이라도 다시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로 헛걸음했다는 생각을 안 하려면, 이 책을 읽고 길을 떠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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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맑고 향기롭게/법정 지음/282쪽·1만2000원·조화로운삶

《재작년 겨울이다. 개울을 건너다 반쯤 물에 잠긴 돌이 온몸에 파란 이끼를 쓰고 다소곳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마침 겨울철 산방이 삭막하게 느껴지던 터라 그 주먹만 한 것을 방에 옮겨다 놓았다. 하얀 수반에 담아 놓으니 마치 토끼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 물을 갈아 주면서 한겨울을 우리는 사이좋게 지냈다. 내가 건네는 말을 돌은 잠잠히 듣고만 있었고, 돌의 침묵을 나는 마음의 귀로 받아들였다. 한겨울 우리 ‘토끼’는 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창호로 비쳐 드는 햇살을 먹고 자랐다.

골짜기에 얼음이 풀리고 매화가지 끝에 꽃망울이 부풀어 오를 즈음, 우리는 작별을 했다. 겨울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 자리에 갖다 놓았다. 작년 겨울에도 그 돌은 나와 함께 한방에서 지냈다.

얼마 전 문득 그 돌의 안부(?)가 궁금해져 나는 개울가로 갔다. 그 돌은 저만치서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뜻밖에도 그 돌에 석창포가 여러 줄기 돋아 있는 게 아닌가. 이제는 갈데없는, 귀가 솟은 토끼였다! 정말 놀라운 생명의 신비였다. 삶은 이토록 깊고 넓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이 책은 선승이며 자연주의 사상가인 스님의 대표산문선집이다. 산속에 칩거하며 한 달에 한 편 쓰는 글로써 세상과 소통해 온 스님이 30년간 써 온 글 가운데 50편을 직접 가려 뽑았다.

산중 생활에서 길어 올린 명상과 사색이 수식과 꾸밈이 아닌 실천하는 삶 그대로의 모습에 오롯이 담겨 있다. 무소유의 철학, 침묵과 홀로 있음, 단순하고 간소한 삶…. 아마도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은 일상의 모든 일을 심오한 화두로 바꾸는 그 깊고도 단순한 지혜에 있지 않을까.

스님은 ‘과밀’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삶의 부스러기를 털어버리고 본질적인 삶을 이루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조촐하고 맑은 가난을 지니라고 말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다. 삶은 순간순간 새롭게 발견되어져야 할 헌칠한 뜰이다!”

우리는 가끔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고 스님은 다독인다. 때로는 옆구리께를 스쳐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을 통해서 자기정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나온 날들이 새삼스레 되돌아 보이는 마루턱에 올라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라고 주문한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있느냐?”

겨울 밤 대숲을 적시는 싸라기눈처럼 허허롭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처럼 청랭(淸冷)한 스님의 글을 읽고 있자니 문득 인도의 베다 경전에 나온다는 문답 한 구절이 떠오른다.

“누가 홀로 가는가?”

“태양, 태양이 홀로 간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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