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태훈기자]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물의 정거장’, 장편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황진이’ 등을 부지런히 써온 그녀가 언제 책 하나 묶을 만큼의 산문을 따로 써뒀을까. 소설가 전경린<사진>은 “1995년 등단 후 신문과 잡지, 인터넷 등에 기고하다 보니 있는 지도 몰랐던 조각글들이 저절로 넘치는 형국”이라고 했다. “저절로 넘친다”는 고백이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글 우물이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마른 우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긁어낸 듯 써낸 산문집들이 넘치는 판이다.

책 제목인 ‘붉은 리본’은 그녀가 10년간 걸어온 문학의 여로에 새긴 이정표들이다. ‘숲의 미로를 지나오는 동안 굽어지는 길과 갈라지는 길마다 나뭇가지에 하나씩 묶었던’ 글로 된 리본이다. ‘누군가 그 리본을 발견하고 어떤 모험가가 지나간 길인 것에 안도하고 공감하고 용기를 내기를 바란다’는 것이 이번 산문집을 묶은 작가의 의도다.



산문집은 그녀가 소설로 형상화하고 싶었던 소재들, 또는 그런 문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내면의 기록이다. 첫 여름비에 왈칵 울고 싶고, ‘이 숲 속의 나뭇잎 중에 흔들리지 않는 나뭇잎이 있을까’ 자문한다. 그녀에게 소설의 소재를 제공하는 일상은 ‘핵과 같은 상처를 감싸고 입을 꼭 다문 조개같은 것’이다. 문득 낯설어지는 일상은 ‘내 곁의 아주 먼 곳’이다. 상처를 감싸고 다문 입에서 외로움이 흐른다. 그녀는 ‘외로움은 현대인의 시민의식’이란 글에서 ‘존재가 평등하듯 외로움도 평등해졌고, 거리와 공원을 공유하듯 모두가 시민의식과 같이 외로움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썼다. 산문집 말미에 곁들인 ‘나의 글쓰기’에서 문학을 보는 그녀만의 시각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창작욕을 ‘이론이나 지적 추구나 소명의식보다는 생래적인 욕망으로 글을 쓰는 나’라고 고백하고, ‘결국 글쓰기란, 그 무엇보다도 이 세계의 중력을 전신으로 마주서서 버티는 한 개인의 흐트러지지 않는 고독한 자세, 그 자체’라고 선언한다.

(김태훈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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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판타지 ‘옥루몽’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조선 후기 베스트셀러 소설의 완역본이다. 1840년대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전 소설이지만, 1910년대까지도 출간돼 널리 읽혔을 정도로 오랜 생명력을 유지했다. 판타지가 성행하는 시대가 도래하다 보니, 판타지 성격이 강한 고전 소설이 새롭게 주목받는 가운데 새롭게 번역됐다.

천상계에서 인간 세계로 떨어진 인물의 이야기는 ‘구운몽’으로 대표되는 몽자류 소설의 전형이다. ‘옥루몽’은 천상계의 인물이 하계에서 양창곡이란 인간으로 태어나 역시 하계로 떨어진 다섯 선녀와 재회해 벌이는 모험담을 담은 소설이다. 명나라를 무대로 삼아 북으로는 몽골, 남으로는 베트남에 이르는 광대한 공간 이동을 통해 흥미진진한 모험이 벌어진다. 전쟁과 사랑의 대로망이 전개되면서 부패한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작가의 현실 의식을 표출한다.

‘옥루몽’의 매력은 고전 소설의 다양한 성격을 융합한 대하 소설이란 점에 있다. ‘구운몽’류의 환상소설, ‘홍길동’류의 영웅소설, ‘춘향전’류의 판소리계 소설, ‘임진록’류의 군담소설, ‘사씨남정기’류의 가정 소설 등등이 모두 ‘옥루몽’으로 흘러들어와 서로 합쳐졌다. 현재 ‘옥루몽’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지원을 받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있다.

(박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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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석재기자]

삼국사기’ 신라본기 중 진덕여왕 즉위년의 기록. “승만(진덕여왕)은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일곱 자였고 손을 내려뜨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 우리는 이로써 신라 진덕여왕이 키 172㎝ 가량의 미녀였음을 알 수 있다. 여왕은 처녀로 늙어 죽었을까? 천만에!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반박할 기록은 전혀 없다.

신라사학회 소속 학자들이 쓴 이 책은 생동감이 넘친다. 신라 천 년의 역사가 “진솔하고 열정적인 남녀간의 사랑으로 가득찬 시대”였다고 말한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사내대장부는 병상이 아닌 전장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되뇌인 소나의 처가 ‘분노로 타버린 사랑’이라면, 나이 70에 열여섯 살 소녀를 사랑하다 돌연사한 비처왕은 ‘죽어서 이룬 사랑’이 된다. 연인의 아버지 대신 군역을 맡아 변방으로 떠났다가 6년만에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온 가실은 짚신 거꾸로 신지 않고 묵묵히 그를 기다린 설씨녀와 재회하게 된다. ‘불멸의 사랑’이다. 역사란 근엄한 학문 분야가 아니라 흥미로운 상상력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석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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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한수기자]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광장 복판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서있고, 루브르박물관 뜰에는 유리피라미드가 설치돼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까지는 유럽인들의 이집트 문명에 대한 관심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왕정과 기독교까지 거부한 프랑스대혁명 직후 혁명세력이 바스티유 감옥 터에 세운 것이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상(像)이었다는 점은 다소 의외다. 또 벤저민 프랭클린이 도안에 관여한 미국 1달러 지폐에 피라미드가 있고, 그 안엔 눈동자 하나가 그려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찾아보면 피라미드 속에 눈동자가 그려진 문양은 꽤 많다. 1789년 초안된 인권선언문 표지 그림에도, 미국의 국새에도 있다. 왜 그럴까? 혹시 무언가를 상징하기 위한 기념표식 같은 것은 아닐까?

이집트 피라미드 등 고대문명의 수수께끼를 다룬 ‘신의 지문’으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저자들이 이번엔 서구사회의 미스테리 비밀결사조직인 ‘프리메이슨’의 역사를 다뤘다. 저자들에 따르면 피라미드와 눈동자는 프리메이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양이며 뉴턴, 볼테르, 루소, 프랭클린, 조지 워싱턴 등은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의 3두 마차 중 당통과 마라도 프리메이슨 단원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대혁명과 미국건국에까지 프리메이슨의 거대한 마스터플랜이 작용했다는 이야기인가? 저자들은 이 같은 의문을 갖고 프랑스대혁명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 양 갈래로 프리메이슨의 미스테리를 추적한다. 거슬러 올라간 역사에는 이집트의 신전과 오벨리스크, 예루살렘의 신전 등을 건축한 기술자들이 있다. 또 기독교 초기에 이단으로 박해 받았던 그노시스파(영지주의), 가톨릭에 반기를 들고 프랑스 남부 랑그독그 지방을 중심으로 지극히 경건한 신앙생활을 했던 이단 카타리파, 또 십자군 전쟁에서 전설적인 무공(武功)을 떨쳤지만 1307년 교황 클레멘스 5세에 의해 이단판정을 받고 전원 체포돼 화형(火刑) 당했던 템플기사단 등의 계보가 나타난다. 살아남아 잠적했던 템플기사단이 근·현대의 프리메이슨으로 연결됐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 DNA처럼 프리메이슨 단원 서로를 이어준 상징 표식이 피라미드와 눈동자, 솔로몬신전의 두 기둥과 오각별 등이라는 주장이다.

프랑스대혁명과 미국혁명이 프리메이슨 단원들의 배후조종으로 일어났다는 저자들의 가설은 이후 세계 근·현대사부분으로 넘어올 수록 당혹스럽다. 책에 따르면 이스라엘 건국을 집중적으로 지원한 루스벨트, 트루먼 등 미국대통령들도 이 단체 단원들이다. 트루먼은 1948년 5월 15일 벤구리온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한 지 불과 몇 분 후 이스라엘을 주권국가로 승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양 근·현대사가 한 비밀결사에 의해 움직였다는 가설인 셈이다. 저자들은 방대한 자료를 동원, 고대 이집트에서 미국의 9·11테러까지 종횡하면서 정사(正史)에서는 볼 수 없던 미스테리, 음모, 비밀, 암호의 역사를 해독하고 있다.

(김한수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an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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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석재기자]

1860년 7월 영국 옥스퍼드. 영국 과학진흥협회의 회동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보다 한 해 전에 초판이 발간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엄청난 충격과 논란을 불러왔고, 이 자리에서 반(反) 다윈파의 사무엘 윌버포스와 친(親) 다윈파의 토마스 헉슬리가 격돌했다. 청중은 무려 1000여명. 윌버포스가 헉슬리에게 공세를 펼쳤다. “당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느 쪽이 원숭이와 인척이신가요?” 헉슬리가 반격했다. “만약 누가 내게 ‘원숭이의 자손이 되겠는가, 아니면 귀하와 같이 큰 능력과 높은 지위를 진리 탐구자의 명성을 말살시키는 데 쓰는 사람의 자손이 되겠는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게 될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통념과는 달리 다윈의 주장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게 아니라 ‘인간과 원숭이가 공통의 조상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과학사는 과연 중요한 원리와 공식으로 이뤄진 난해한 책인가? 이 책은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과 ‘일화’들을 보여준다.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소 엉뚱한 면모도 보여주는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탐구, 성공과 실패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자연스레 과학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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