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헤지펀드라고 하면 흔히 국제 금융시장의 폭군, 해적 집단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난폭함으로 한 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 하는 괴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1992년 조지 소로스가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해 1주일만에 10억 달러를 챙긴 것이 그 도화선이었다.

그 이후 국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헤지펀드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관행이 생겼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최근 원화 환율이 급락했을 때도 곧바로 헤지펀드의 농간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1998년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라는 헤지펀드 업계의 간판스타가 투자 실패로 무너지고 2000년대 들어 헤지펀드와 관련된 비리(非理),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탐욕과 사기, 불법의 온상이라는 또 다른 부정적 이미지가 더해지기도 했다. 이래저래 헤지펀드는 일반인들에게 낯 설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투자전쟁’은 바로 그런 헤지펀드 업계에 관한 일종의 심층 취재 리포트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바턴 빅스. 모건 스탠리의 투자전략가 출신으로 몇년 전까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서 수시로 볼 수 있었던 이름이다. 세계 최고의 투자전략가로 여러차례 뽑히며 명성을 날렸던 빅스는 2002년말 30년간 몸담았던 모건 스탠리를 떠나 동료 두 명과 함께 트랙시스 파트너스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빅스는 헤지펀드 설립과 운용과정에서 직접 겪었던 일과 주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투자전쟁’에서 풀어놨다.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전문 투자자들의 세계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헤지펀드 뿐만 아니라 임야(林野)를 유산으로 남긴 독일 비스마르크의 재산관리법과 예일대의 기금운용에서 나타난 극적인 실패와 성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실전 투자에 대한 폭넓은 안목과 이해를 돕고 있다.

빅스는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전문투자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도전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엄청난 위험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포트폴리오를 끌어안고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삶’이고 ‘단 한번의 실수로도 인생과 영혼에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투자 성공사례보다는 실패사례가 훨씬 더 풍부하게 소개돼있다. 맹목적으로 시장의 흐름을 좇았다가 망한 경우도 있고, 엄밀한 가치 분석 결과를 믿고 시장 추세와 반대로 갔다가 끝까지 버틸 힘이 없어 성공 직전에 무너진 경우도 있다. 실제로도 헤지펀드의 평균 수명은 미식축구 프로팀의 러닝백 수명과 같은 4년에 지나지 않고, 해마다 1000개 정도의 펀드가 낮은 수익률 때문에 퇴출되고 있다.

결국 빅스의 메시지는 확실한 투자 성공공식은 없다는 것이다. 빅스는 ‘투자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예술’이라고 했다. 수학과 통계학 공식이 투자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실패에 대한 공포가 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빅스는 투자자들에게 경제나 경영에 관한 책뿐만 아니라 역사와 소설 나아가 시(詩)도 많이 읽을 것을 권한다. ‘투자는 인간사가 들고나는 것을 바라보는 행위이고, 감정의 격한 흐름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숫자에만 매달리지 말고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때론 ‘마음과 영혼을 재충전하기 위해 매우 정교하게 잘 구성된 글을 읽어야 한다’고도 했다. 월스트리트의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30여년을 성공적으로 버티고 살아남은 대가(大家)의 풍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김기천 논설위원 [블로그 바로가기 kc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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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성현기자]

“신에게는 나의 영혼을, 왕에게는 나의 삶을, 여인에게는 나의 심장을, 명예는 나를 위하여!”

중세 기사들이 마음에 품고 있었던 금언이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이 말처럼 우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사들 사이의 결투는 주로 혐오감이나 증오심, 흠모하는 여인 때문이었지만, 때로는 이웃과의 다툼이나 사리사욕 때문에 결투를 벌이기도 했다. 영토를 확장시키기 위한 야욕이나 유산 대물림과 관련된 경우도 많았다. ‘도적 기사’로 불리는 이들은 덤불 속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상인들을 공격해 약탈하기도 했다. 중세 말기로 갈수록 결투가 점점 잦아져, 도시 전체가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가문 전체가 몰락할 때까지 결투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성(城)과 기사, 전쟁과 무기 등 키워드를 통해 중세 역사를 살펴본 책이다. 생물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한 저자는 마치 서양사 교과서와 백과 사전을 섞어놓은 듯, 다양한 소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았다. 중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도판을 싣고 있지만, 정작 도판의 출처는 밝히지 않아 작은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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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돈규기자]

강물처럼 한없이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꼭 3차원의 네모난 주사위처럼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알던 세계는 이랬다. 시간과 공간은 따로,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E=mc²(물질의 에너지는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다)이라는 공식은 우리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즉 공간·시간·물질·에너지가 하나의 상호연관된 체계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물리학자가 아니라도 시간에 대해선 흥미를 느낀다. 어떤 사물에 지속성을 부여하고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건 작가들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타임머신을 상상한다.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로 가 아버지를 죽이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책은 생명의 근원부터 우주의 크기에 이르기까지 교양이라 할 만한 과학적 질문과 답을 담고 있다. 근대 자연과학은 인간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데서 출발했다. 중요한 것은 낡았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근대 과학의 탄생 이전에 존재했던 점성술과 연금술은 여전히 배울 게 많고 흥미로운 분야다. 매트리스에 올려놓은 무거운 공으로 ‘휘어진 공간’을 설명하고, ‘엔트로피’를 다루면서 셰익스피어의 시(詩)를 이용하는 등 접근법이 독특하다.

(박돈규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coeu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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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한수기자]

AD 4세기 무렵의 성서 필사본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히브리서 앞부분에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적힌 구절이 있다. 그런데 ‘붙드시며’라는 구절을 본 필사자가 그리스어로 비슷한 발음의 동사인 ‘나타내시며’로 바꾼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베껴 쓴 사람은 ‘붙드시며’로 다시 고쳤고, 또 그 다음 필사자는 다시 ‘나타내시며’로 고쳐놓는다. 마지막 필사자는 책 여백에 “어리석은 무뢰한이여! 옛 문서를 그대로 두시오! 변개시키지 말고!”라고 경고문까지 써놓았다.

미국의 성경 본문비평학자인 저자는 그리스도 사후 2000년 동안 성서가 전승되면서 어떻게 알게 모르게 바뀌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성경 자체는 오류가 없을지 몰라도 인쇄술조차 없던 시절,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자들의 오류는 충분히 가능한 일. 또한 현존하는 4대 복음서도 원본이 아니라 수세기 후 만들어졌다. 복음서 저자들에 따라 예수의 죽음이라는 중요한 상황묘사도 차이가 있다. 게다가 초기 그리스어 성경은 띄어쓰기, 대소문자 구별도 없었다. 당연히 필사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을 수 있다. 저자는 여기에 신학적, 사회적 요인들이 영향을 주면서 우발적으로, 때론 고의적으로 변개됐을 것으로 본다. 저자는 성서의 기원부터 ‘잃어버린’ 원본문을 찾기 위한 노력들을 소개하면서 “성서의 변개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김한수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an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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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해현기자]

삶에 대한 웅숭 깊은 시선과 곰삭은 문장의 묘미를 보여주는 작가 이혜경<사진>이 세 번째 소설집 ‘틈새’를 냈다. 오늘의 작가상, 한국일보 문학상, 현대문학상, 독일 리베라투르상을 받은 작가에게 올해 제13회 이수 문학상까지 안겨준 단편 ‘피아간’(彼我間)을 비롯해 9편의 작품들로 꾸며졌다.

‘피아간’은 여러 차례 유산 끝에 힘들게 아이를 갖게된 임산부가 친정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상황에서 출발하는 소설이다. 태아와 망자를 통해 삶과 죽음을 대비시키는 발상이 얼핏 뻔해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사유는 확장된다. 삶과 죽음에 이어 나와 너, 혈연과 외간, 사랑과 이기심, 진실과 거짓 등등 끝없이 갈라지는 두 갈래 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무수한 이분법의 울타리가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그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다.



‘옷 아래로 덩두렷이 부푼배가 생명을 담고 오는 배(船)가 아니라 거짓말로 쌓아올린 봉분이라는 생각에 주루륵 눈물을 흘렸다’는 주인공 경은은 거짓 임산부다. 입양할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했다고 속이고 연기를 벌인다.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자녀 입양과 순혈주의의 대립이 깔려 있지만, 작가는 사회적 발언을 표면화하지 않는다. 작가는 영혼의 울림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존재론적 차원에서 새롭게 묻는다. ‘거짓임신 기간 동안, 우주 어딘가를 떠돌다 열달 동안 감싸였던 자궁을 떠나 아기의 몸으로 자기에게 올 영혼을 생각하면 형체 막연한 슬픔이 촘촘한 밀도로 경은을 감아들었다’는 대목에서 이 소설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이혜경 소설집의 매력은 남달리 공들인 언어의 숨결을 내뿜는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발효해버렸으면 싶은 기억은 양념이 다 삭아 어우러진 신김치 속에서도 제 맛을 주장하는 생강조각처럼 도드라졌다’라거나 ‘수챗가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 흘리기 직전의 마음처럼 멍든 빛깔인 달개비꽃을 뜯다가도, 그 노래만 들으면 내 안에서 무언가가 슬금슬금 기지개를 켰다’라는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는 문장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경쾌하고 발랄한 문장은 분명히 아니다. 처음으로 접한, 조붓한 골목길 내부를 천천히 걷듯 읽어내야 할 문체다. 인생이 희치희치하다고 느¤?독자에게 이혜경의 소설 언어는 일상에 대한 신선한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의식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정체모를 생의 스멀거림이 느껴진다. 놀빛에 감싸여 어둠침침하거나 모호하고 몽롱한 분위기만 감지된다. 그래서 남다른 주의력으로 읽기를 요구하는 소설집이다.

(박해현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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