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스폰서섹션] 이 책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브랜딩의 권위자이자 세계적인 ‘브랜드 미래학자(Brand Futurist)’인 마틴 린드스트롬이 브랜드 분야에서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기관 밀워드 브라운(Millward Brown)에 의뢰해 3년간 600여명의 연구원들이 13개국 5대륙에서 수천 명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진 ‘브랜드 센스 리서치(Brand Sense Research)’의 결과물로서, 소비자와 브랜드 간에 궁극적인 유대감을 만들어내는데 오감(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하는 역할 및 오감을 활용해 자신의 브랜드 파워를 강화해나갈 방법을 제시하는 21세기형 브랜드 전략서이다.

싱가포르항공, 애플, 디즈니에서 노키아, 코카콜라, 스타벅스, 맥도날드까지 《포춘》선정 100대 기업들의 오감 브랜딩 전략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기존 마케팅에 지친 기업의 최고경영자에서부터 마케팅, 브랜딩, 광고, 상품기획,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영업 담당자들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브랜드는 고객의 쇼핑백에 담겨 있는가?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브랜드를 만나는가? 시몬스 침대에서 일어나 켈로그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오랄비 칫솔로 이를 닦으면, 브라운 면도기나 샤넬 넘버5가 당신을 기다린다. 그러고 나서 집을 나서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그들이 구매한 브랜드를 오감으로 느끼고 반응한다. 하지만 아마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21세기 지구 공화국에는 백화점과 할인점, 그리고 거리마다 시간마다 브랜드가 넘쳐흐르고 있다. 집에서 불과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당장 오프라인으로 구매할 수도 있고, 모니터 화면으로 여러 가지 브랜드를 이리저리 비교하면서 클릭 한 번으로 순식간에 주문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히 자신이 필요한 ‘유형의 상품’을 구매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즐기고 누리기 위한 ‘무형의 브랜드’를 구매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브랜드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상품으로서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평생 함께하고 지켜야 할 존재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해함으로써 충성스런 소비자를 확보하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은 없을까?

이 책의 저자인 세계적인 브랜드 미래학자 마틴 린드스트롬(Martin Lindstrom)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후의 전략으로 ‘오감 브랜딩(Five Senses Branding)’을 제시한다. 이 오감 브랜딩 전략은 브랜드 분야에서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기관, 밀워드 브라운이 3년간 600여 명의 조사원들을 통해 미국, 영국, 스페인, 폴란드, 멕시코, 일본 등 13개국 5대륙에서 수천 명의 소비자들과의 심층면접 및 정량조사를 바탕으로 쓴 ‘브랜드 센스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다. 브랜드 센스 리서치는 감각의 역할을 이해하는 1단계와 감각의 효과를 수치화하는 2단계 작업을 통해 세계 최고의 브랜드들이 브랜드 구축에 오감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전략과 방법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제품개발과 판매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을 참고해 시각과 청각을 넘어서서 우리가 지닌 모든 감각에 호소하는 오감 브랜딩이란 접근방법을 보여준다. 또한 감각의 미래 가능성을 분석하고, 가장 광범위하게 소비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감각활용기법을 제시한다.

감성의 시대, 오감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유혹하라!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기본적인 출발점은, 기업들이 시각에만 의존해서 상품을 판매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 환경이 입체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소비자들은 ‘기능적인 상품 자체’를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건네받는 게 아니라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이라는 오감을 통해 ‘브랜드’와 쌍방향으로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상품의 기능적 가치보다는 상품의 브랜드적 가치를 먼저 오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런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와 이에 따른 세계 유수 기업들의 브랜드 구축 및 판매 전략을 이해하기 쉽도록 수치화해서 제시한다. 그의 주장이 단순히 가설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스타벅스, 코카콜라, 애플, 싱가포르항공 등 《포춘》선정 100대 기업들이 오감 활용을 통해 성공을 거둔 혁신적 브랜딩 전략을 ‘브랜드 센스 리서치’를 통해 이 책에서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브랜딩의 역사를 독특한판매제안(Unique Selling Proposition: USP)에서 시작해 감성적판매제안(Emotional Selling Proposition: ESP), 조직적판매제안(Organizational Selling Proposition: OSP), 브랜드판매제안(Brand Selling Proposition: BSP)을 거쳐 자신판매제안(MPS)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브랜드의 미래 세대를 총체적판매제안(Holistic Selling Proposition: HSP)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미래 세대의 브랜딩 기법인 총체적판매제안이야말로 브랜드의 메시지, 모양, 상징, 의식, 전통을 모두 활용하는 총체적인 브랜드 관리방법이다. 그 힘은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브랜드의 모든 면을 활용한다.

오감 중심의 총체적판매제안은 프로슈머 개념을 통해 기업이 브랜딩의 일부를 소비자에게 넘겨준 것처럼, 브랜드의 소유권을 기업보다 소비자에게 넘겨줌으로써 소비자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게끔 하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충성된 소비자들은 고유한 브랜딩 커뮤니티에서 해당 브랜드와 삶을 공유하면서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구매하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오감으로 반응하는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식 변화와 오감 브랜딩을 이끌어나가는 기업들의 전략을 분석함으로써, 21세기 브랜드 리더로 우뚝 설 수 있는 최강의 법칙을 제시한다.

세계적인 브랜딩 및 마케팅 전략가인 필립 코틀러가 추천하는 이 책은 세계 상위 20대 감각브랜드들의 오감 브랜딩 전략, 오감 브랜딩 성공에 필수적인 12가지 브랜드 분해철학, 종교에게서 배우는 10가지 브랜딩 전략 등 혼자 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브랜딩 전략들이 가득 담겨 있다. 현장의 브랜딩 흐름과 마케팅 전략이 역동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이 책을 통해 브랜드 기획자들과 마케팅 전략가들은 성공적인 브랜딩 및 마케팅 전략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지은이 : 마틴 린드스트롬 (Martin Lindstrom)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브랜딩의 권위자이자 세계적인 브랜드 미래학자(Brand Futurist). 12살 어린나이에 광고대행사를 설립했으며, 브리티시 텔레콤과 룩스마트의 글로벌 COO를 지냈다. 그 뒤에 BBDO 인터렉티브 유럽-아시아의 설립자이자 CEO로 일했으며, 매주 쓰고 있는 브랜딩에 관한 그의 칼럼은 30개국의 100만 명에게 사랑받고 있다. 돈 페퍼스, 마사 로저스, 패트리샤 세이볼드 같은 산업 아이콘들과의 작업을 통해 탄생한 그의 책들은 1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20년 이상 비즈니스 현장에서 실무마케팅 경험을 쌓아온 저자는 마케팅 전략을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이끌어내는 혁명적인 원칙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과거의 마케팅 유산에 얽매이지 않고,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프로세스에 기초를 둔 독특한 비전을 제시하여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그의 주요 고객으로는 디즈니, 펩시, 필립스, 마스, 메르세데스벤츠, 켈로그, 마이크로소프트, 로이터스, 노키아 등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기업들이다. 특히 저자의 360도 브랜딩 강의는 기립박수갈채를 받는 것으로 유명한데, 브랜드 센스 월드 투어 심포지엄이 2005년 상반기에만 29개국 51개 도시에서 열려 3만5천명의 마케팅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주요 저서로 『브랜드 차일드 BRANDchild』와 『클릭스, 브릭스, 브랜즈 Clicks, Bricks & Brands』 등이 있다.

■ 역자 : 최원식

영남대학교 경영학과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에서 고급 마케팅 과정을 수료했다. 우송대학교 멀티미디어대학원 겸임교수로 브랜드 마케팅을 강의했고,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대학원(IDAS)에서 브랜드 전략을 강의했다. 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일본P&G에서 연수한 뒤 한국P&G 마케팅본부에서 마케팅 및 브랜드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 뒤에 (주)서통 마케팅 실장과 아디다스 마케팅본부 상무를 역임하며 신규사업과 브랜드 및 브랜드 관리를 체계적으로 실현했다. SK 데이터베이스 추진 본부의 CRM 전략팀장을 지냈고, 세계적인 금융기관 알리안츠생명의 마케팅 이사, 영국계 PCA생명의 상무이사로 일하며 심도 깊은 금융 및 브랜드 전략을 실현했다. 현재 브랜드 및 마케팅 사이트인 MKTforum의 설립자로서 온라인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로 『마케팅 바이블』과 『브랜드자산경영』이 있다.

■ 정가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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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스폰서섹션]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정치 사회 각 분야에서 널리 회자되는 정치조어(政治造語)들을 만들어낸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귀재’이자 ‘최고의 명대변인’이라 평가받는 박희태 국회부의장이 대변인 시절의 정치비화와 소회를 담은 회고록을 출간했다.

저자는 1988년 말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비언론계 출신인데다 정치 입문 6개월의 신참내기로 처음 여당의 대변인을 맡은 뒤 1993년 초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법무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4년 3개월간 민정당?민자당의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타고난 순발력과 정곡을 찌르는 송곳 같은 언변으로 언론은 물론 여야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본격적인 ‘대변인 문화’를 이끌었다.

박희태 부의장은 유난히 곡절이 많았던 그 시절 대변인으로서 정치의 최전선에서 겪었던 3당 합당, 북방외교, 문민정부 탄생 등 굵직한 정치사의 비화들과 에피소드, 정치조어의 탄생 배경을 이 책에 풀어놓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직접 완성한 원고, 풍부한 신문기사와 사진자료들은 당시의 치열했던 정치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국민이 사랑하는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도 재미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변인 시절의 다양한 일화들을 책에 담았다고 말한다. 살벌한 정치판에서 웃음과 여유로 풀어가고자 했던 저자의 노력은 국민들에게 불신과 불쾌함만을 주었던 과오를 반성하고 재미있는 정치, 웃음꽃이 피는 정치, 그래서 국민이 사랑하는 정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실천이었던 것이다.

현대 정치사의 주요 인물로 손꼽히는 저자의 이야기는 상생과 대화는 없고 공격과 정쟁만이 난무하는 오늘의 정치 현실을 되돌아보고 타협과 공존의 정치문화를 기대하는 고견을 느끼게 한다.

정치의 이면

저자는 정치현장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굵직한 비화들을 이 책을 통해 공개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90년 1월 22일에 있었던 1노 2김(민정당 노태우, 민주당 김영삼, 공화당 김종필)의 3당 합당 선언. 청와대가 물밑에서 합당을 추진하며 제일 먼저 김대중의 평민당을 교섭대상으로 삼았고, 평민당이 이를 거절하자 민주당과 공화당을 상대로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합당 선언 직전까지 자신들이 한 당이 된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진다.

한편, 1990년 3월 북방외교를 위한 박철언 정무장관과 YS의 소련 방문 당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날 공식일정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먼저 만나려고 경쟁하던 일과 YS가 전격적으로 고르바초프와 면담한 후 만남의 증거를 묻는 기자들에게 ‘고르바초프는 참 잘 생겼다. 안 만나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던 일화도 있다.

YS와 이종찬 의원 간의 경쟁,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 이후 도미노처럼 이어진 탈당의 대열 등 당의 위기와 격변을 극복하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과정 또한 생생하게 담겨 있다.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선에서 맞섰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대해 ‘기업은 용서해도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한 말과 그에 따라 현실 정치에서 벌어졌던 일화도 기록되어 있다.

촌철살인의 정치조어와 논평

저자는 1989년 12월 5공 청산 문제를 풀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야당 3총재의 청와대 회동에 대해 “대통령과 세 분 총재는 모두 ‘정치 9단’의 입신(入神)의 경지에 있다”고 표현하여 그 유명한 ‘정치 9단’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1990년 봄의 혼란하고 불안한 사회상을 일컬어 당시 이승윤 부총리가 ‘Total Crisis’라고 표현한 것을 저자는 ‘총체적 난국’으로 번역했고 이 말은 오늘날까지 정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또 1996년 총선 이후 첫 국회에서 야당의 공세에 맞서 야당을 ‘리모콘 국회’라 칭하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냐’고 했던 저자의 말은 유행어가 되었다.

한편, 1991년 세칭 ‘수서택지 특혜 분양사건’을 공격하는 야당의 장외집회에 대해 ‘보라매공원 집회는 보람이 없었다’, ‘여의도 집회는 여의치 않았다’, ‘부산 집회는 부산만 떨었지 실속은 없었다’고 했던 저자의 재치 있는 논평에 대한 일화도 실려 있다.

정치 9단의 대기(大器)들에 대한 인물평

정치의 최전선, 권력의 최측근에 있었던 저자는 우리의 정치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대 정치가들에게 대한 재미있는 일화들도 소개한다. 6?29의 정신을 이어서 국민의 뜻을 잘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물대통령이라 불리는 게 좋다’고 말했던 노태우 대통령의 이야기부터 모스크바 강변에서, 폭우 속에서, 심지어 호텔 현관 처마 밑에서까지 했던 YS와의 조깅 일화가 실려 있다. 또한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에 대해 한학에 정통한 JP가 ‘홍곡(鴻鵠)의 대지(大志)를 연작(燕雀)이 어찌 촌탁(忖度)하지 못하겠느냐’며 새로운 표현법으로 지지의 뜻을 밝혔던 일과 DJ의 유려한 달필 등 저자가 옆에서 지켜본 정치 대기(大器)들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까지 이 책에 담아냈다.

■ 지은이 : 박희태

서울 법대를 나와 1961년 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그 다음해부터 육군 법무장교 검사를 거쳐 법무부, 대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청주, 춘천 등에서 검사와 부장검사, 검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26년간의 현직 법조인 생활 끝에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1988년 경남 남해?하동에서 13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후 14?15?16?17대에 걸쳐 연속으로 당선되어 현재 5선의원이다.

초선 때인 1988년 12월부터 당 대변인을 맡아 4년 3개월간 대변인을 계속하여 ‘정당사상 최장수 대변인, 최고의 명대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변인을 끝내고 법무부장관, 국회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원내총무(여당 1회, 야당 1회), 한나라당 부총재(직선), 최고위원(직선),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 그리고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회부의장이다.

검사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학문에 뜻을 두어 1970~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법대에서 수학을 하고 건국대 대학원을 나왔으며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정가 : 12,000원

(조인스닷컴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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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스폰서섹션] 최근, 어느 영재교육 연구소와 여성지가 공동으로 분석?보고한 ‘2005 대한민국 5~7세 창의력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들의 육아 고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이의 성격에 관한 문제였다. 요즘 아이들일수록 수줍음을 많이 타며, 표현력, 사교성, 리더십 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이러한 성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난감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습지와 유아원, 미술학원 등에 다니게 함으로써 아이의 지적 능력을 키우기는 쉬우나, 아이의 정서적 능력을 키우는 문제는 정확한 커리큘럼이나 해결방법을 어디에서도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민은 있으나 해결책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 책의 감수자 문용린 교수(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전 교육부 장관)는 본 도서를 이렇게 소개한다.

“영리한 아이로 키우려는 책들은 많다. 하지만 아이의 생각과 감성을 살찌울 방법을 소개하는 책은 흔하지 않다. 이 책은 그래서 귀하고 소중한 책이다.”

일본에서 ‘감성교육education of sentiments 최고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책의 저자 가나모리 도시로는 30여년의 교직생활 동안 자연과 인간의 삶을 아이들이 세밀하게 배우고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실험적인 교육을 실천해온 교사다. 현재 그는 정년을 1년 앞두고 있다.

2004년, 가나모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일본의 부모와 교사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던져준 이후, 가나모리 선생의 교육철학과 실천방법들은 이제 일본 전역에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독창적인 교육철학과 실천 노하우를 1년여 간 현장에서 기록 ? 취재한 것으로, 저자의 교육스타일을 전수받고 싶어 하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실천법과 노하우를 전하기 위해 펴내게 되었다는 사연을 저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단순한 지식 하나에 집중하다가 더 큰 것을 놓칠 수 있다

매 순간마다 아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경험들 하나하나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부모들은 단순한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만 열을 올리곤 한다. 10세 이전 아이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가 자신감과 감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강한 자신감과 튼실한 감성을 갖춘 아이는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보다 빨라질 거라는 사실은 누구나 수긍할 만한 진리이자 교육의 기본일 것이다. 감성에만 집중하면 어디에 내놓아도 구김 없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연상하게 하는 가나모리 식 교육법

NHK의 다큐멘터리 눈물과 웃음의 해피 클래스, 4학년1반 생명의 수업 을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일본 교육계에 커다란 희망과 해결책을 제시한 가나모리 도시로 선생. 작은 시골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가나모리 선생의 교육법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깨달음을 주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대화식 교육법으로 아이들의 감성을 깨우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열어주는 그의 교육관과 아이를 다루는 노하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명한 부모가 되어 있는 부모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미래 지식사회의 가장 큰 아젠다, ‘감성’으로 우리 아이들을 살찌우자

현대 사회에서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고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을 꿈꾸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21세기형 조건은 바로 ‘감성’이다. 단적인 예로 현재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모두가 ‘감성’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교육은 모두 감성을 기본 소양으로 지키며 시작되어야 한다. 미래 세대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의 재능을 10세 이전에 잘 키워 놓아야 한다.

■ 지은이 : 가나모리 도시로

1946년 이시카와 현 노토 출생. 이시카와 현의 ‘카나자와 시립 니시 남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30여 년간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며 행복해지자’ 라는 교육사상을 내걸고 아이들이 인간과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생명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 일본 최초로 초등학생에게 ‘생명의 소멸’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 활동은 커다란 주목을 받게 되었고 「정조교육情操敎育, education of sentiments 의 최고봉」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에는 쥬니치교육상을 수상하였다.

2003년, NHK가 1년 여간 가나모리 선생의 수업시간을 촬영한「눈물과 웃음의 해피 클래스- 4학년1반 생명의 수업」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반후 국제TV 다큐멘터리 대상(2004)과, 일본상 그랑프리(2004)를 수상했다.

현재는 정년퇴임을 2년 앞두고 대학 강단에서 자신의 교육철학과 노하우에 대한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태양의 학교』, 『성(性)의 수업 사(死)의 수업』(공저), 『마을로 뛰어들어라 탐정단-쌀과 물을 조사하다』, 『생명의 교과서』등이 있다.

■ 감수 :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를 졸업(학사, 석사)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교육심리학 분야(성격 및 도덕발달 전공)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세종대 교수, 한국교육개발원 도덕연구실장을 거쳐 2006년 현재까지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서지능, 다중지능 및 성공지능연구 등 인간의 잠재능력의 실체와 발달을 중심으로 강연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 수학능력시험 채점위원장, 과외사교육대책위원회 위원장, 제40대(2000년)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 독서새물결운동추진위원회 위원장, Safe Kids Korea 공동대표,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상임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도덕교육론』, 『EQ가 높으면 성공이 보인다』, 『나는 어떤 부모인가』, 『학교교육 이렇게 살리자』, 『지력혁명』, 『그러나 그의 삶은 따뜻했다』, 『백범 김구의 지적계발과정 연구』등이 있고, 역서로는『피아제의 인지발달론』, 『콜버그의 도덕발달이론』, 『에디슨 아동』, 『도덕심리학』, 『비범성의 발견』, 『다중지능: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도덕성의 발달과 심리』, 『윤리경영시대를 여는 전문 직업인의 윤리발달과 교육』등이 있다. (http:/moral.snu.ac.kr)

■ 번역 : 이경옥

■ 정가 :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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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6-0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일날 쉬는 날은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인데 오늘 과연 아이들과 마음껏 소통하며 지냈는지 의문스럽네요. 이 책을 읽어 보고 다시 돌아봐야겠어요. 늘 여러 가지 자료, 감사합니다.
 

[오마이뉴스 김규종 기자] 글을 시작하면서 : 그들은 라이벌인가

1995년에 출간된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라틴어 'rivalis'에 어원을 둔 라이벌은 "다른 사람을 능가하거나 필적하고자 시도하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과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한다. 후자의 의미에서 라이벌은 '경쟁자'로 번역 가능하다. 라이벌에 담긴 다른 뜻은 "어떤 특별한 관점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거나 거의 필적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 반복되는 '다른 사람'은 일차적으로 최소한 동년배이거나 동시대인을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죽은 사람과 경쟁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거나 시대착오적인 행위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마음속으로 뛰어난 선각자들과 비견할 수는 있으되, 그들을 경쟁상대로 삼는 일은 불가능하거니와 우스꽝스러운 노릇이기에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책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제목이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들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월명사와 최치원은 150년의 시간적 거리를, 김부식과 일연은 131년 시차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향하고 있던 생의 최종 목적지 또한 각양각색이었으며, 생전에 상호 경쟁자로 인식한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들어지는 라이벌 관계 : 이인로이규보

 
▲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겉그림.
ⓒ2006 한겨레출판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에는 모두 아홉 쌍의 라이벌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글쓴이들은 열여덟 사람에 이르는 고전대가들을 상호경쟁 혹은 대립관계로 엮어내어 그들 내부의 관계뿐 아니라,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가운데서 최충헌무신정권 시기에 활동했던 두 문인 이규보와 이인로의 면면을 살펴보자.

'두 시대의 충돌과 균열'이란 소제목으로 묶인 이인로(1152-1220)와 이규보 (1168-1240). 무신정권에 반대하며 '죽림고회'를 결성하여 우두머리 노릇을 한 이인로는 이른바 '용사'에 의지하였고, 그들을 비웃었던 이규보는 '신의'에 기댔다고 한다. 글쓴이에 따르면 이런 평가는 후대학자들이 내린 것이 아니라, <보한집>의 최자를 비롯한 당대의 평가였다.

"용사(用事)는 이미 존재하는 명문(名文)의 표현이나 관련사실을 다시 끌어다 쓰는 창작방식이고, 신의(新意)는 옛사람의 표현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새로운 착상과 표현을 중시하는 창작방식이다." (96쪽)

용사에 의지함은 뛰어난 선인의 문장과 문체를 연마하여 자기 것처럼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며, 신의에 기댄다함은 그런 자세를 구태의연한 것으로 보고 새로운 창작방식을 시도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문제는 용사나 신의가 독자적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은 과거와 대면하면서 부단히 현재를 성찰하고 다가올 날들을 예비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파한집>을 남긴 이인로와 <백운소설>을 전한 이규보의 창작방법론은 단순한 기법상의 차이를 노정한 것이 아니라, 세계관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라져가는 귀족세력의 대표로 이인로를 수용하고, 새로 발흥하는 사대부의 표상으로 이규보를 독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창작방식이 세계관과 직결된다는 것이 글쓴이의 시각이다.

"이인로와 이규보, 두 라이벌의 만남 혹은 대결은 어쩌면 이미 승부가 결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인로와 그의 시대가 이규보와 그의 시대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지 이인로가 나이가 많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한 시대와 다른 시대를 표상하는 존재였다. 두 시대가 낡은 귀족과 신흥사대부에 속하는 두 인물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116쪽)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한 우정의 글벗 : 이옥과 김려

이인로와 이규보가 16년 나이 차이에도 양보 없이 맞섰던 관계라면 이옥(1760-1815)과 김려(1766-1821)는 평생을 함께 한 각별한 글벗이었다. 기존의 글쓰기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던 이옥은 문체반정의 연장선에서 패사소품체로 인하여 정조에게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견지하였다고 한다. 김려는 이옥을 거두고 기렸던 인물이다.

"이옥의 산문은 섬세하여 정사(情思)가 샘물처럼 용솟음치고, 그의 시는 가볍고 맑아 격조가 초각(峭刻)하다. 이옥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 나의 시와 나의 산문을 쓴다. 그것이 선진양한과 무슨 관계가 있고, 위진삼당과 하등상관이 있겠는가?" 지금 이옥이 죽은 지 이미 5년이 된다. 우연히 상자를 뒤적이다가 이것을 발견하고, 그가 평생 부지런히 힘쓴 뜻을 슬퍼하여 붓으로 베껴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216쪽)

이옥이 남긴 <묵토향>을 엮어서 책으로 만든 김려의 후기 <제묵토향초본권후 題墨吐香草本卷後>에 담겨 있는 글의 일부다. 주목되는 점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던 조선시대에 이옥이 그것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대목이다. '문필진한 文筆秦漢 시필성당 詩必盛唐'이라 하여 "문장은 반드시 선진양한을,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받아야 한다"는 당대 주류문사들의 금과옥조를 이옥이 결연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옥은 '지금과 여기'를 살고 있는 문사가 어째서 '지난날과 다른 곳'에 연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도전적으로 제기하였다. 그 결과 견책과 정거 (停擧) 뿐 아니라, 양반출신에게는 치욕적인 처벌인 충군 (充軍) 조처까지 당하지만 그는 자신의 태도를 결코 바꾸지 않는다. 이런 불온한 문사를 거둔 김려 또한 비어사건(飛語事件)으로 유배당하면서 민초들의 곤궁한 삶을 한시 형식에 담아냈다.

연기 피어나는 작은 마을엔/ 초가집 겨우 몇 채 뿐/ 주인이 나와 인사를 하고는/ 길게 탄식하네/ 해마다 폐정으로 의식이 부족해/ 온 집안 항상 울음소리 뿐/ 어른이야 어떻게 버틴다지만/ 어린 자식 어찌 길러낼지/ 귀한 손님 멀리서 오셨는데/ 죽 한 그릇 진실로 없답니다/ 가난한 형세로 그런 것을/ 천한 내가 뭐라 하겠소 (<과피도고>, 228쪽)

김려와 이옥은 당대 사대부들이 즐겨 다루었던 국가나 정치 혹은 우주만물의 이치와 같은 거대담론 내지는 정치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일상의 세태와 인물들에 눈길을 주었다. 그리하여 병졸과 노복 혹은 예인이나 포수, 장사치, 거지나 포수 등의 인물과 개구리나 물고기, 거미나 벼룩 등과 같은 하찮은 미물들을 시와 산문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옥과 김려는 거창한 명문만 내세우던 자들에게는 눈에 띄지 않던 인물들을 문학의 전면으로 끌어올려 그들의 내면에 간직된 진정을 기리고자 하였다. 그것은 그들과 대비되는 지배층의 허위의식에 대한 야유이기도 했다. 인간과 사물, 귀한 것과 천한 것,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개체로 존중하려는 의식이 그들을 진전된 이해로 이끌었다." (234-239쪽)

결론을 대신하여 :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에 담긴 의미

1993년 '창작과 비평'에서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대한민국 사회에 '한국학'의 가능성을 알린 첫 번째 화살이었다. 저자의 화려한 언변과 객담이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지식대중화와 문화의 일상화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상아탑'의 학문이 이른바 '강단비평'에서 저자거리의 삶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던 셈이다.

거기에는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졌다는 풍요에 대한 인식과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종언이라는 시대적인 배경도 크게 한몫하였다. 고문과 투옥과 학살의 일상이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틀 안으로 자리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았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영화 <서편제>가 그해 성공했음을 상기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한국학은 가장 잘 팔리는 인문학의 대표적인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책머리에'서 지은이들은 말한다.

"갑자기 밀어닥친 서구의 근대는 우리의 유구한 동양적 사유를 깨끗하게 지워버렸고, 우리의 우량한 문학전통마저 완벽하게 단절시켰다. 요즘 일고 있는 우리 고전문학에 대한 관심은 서구의 근대적인 문학관에 경도되던, 그리하여 우리의 풍성한 문학유산을 손쉽게 방기하거나 폐기하던 지난날의 태도를 반성하는 것과 무관할 수 없다." (6-7쪽)

지은이들이 제시하는 '반성적인' 자세와 태도는 소중하다. 자아를 배제한 채 대상과 물상 나아가 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과거에 대한 깊이 있고 비판적인 성찰을 빼놓고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무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요즘 출간되고 있는 한국학 관련서적들의 명실상부한 질적인 성취를 곱씹어야 한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우리가 잊어버린 고전대가들을 경쟁관계나 대결양상으로 묶어 논의함으로써 선명한 대비와 이해를 시도한다. 그러나 비교작업이 언제나 그러하듯 평면적이고 나열적인 대비와 부연설명은 지적인 흥미와 관심을 저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특히 대중적인 글쓰기가 전문용어와 충돌할 때 그런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아아, 우리시대의 견고한 상업주의여!)

지은이들이 밝힌 것처럼 라이벌 관계로 포착한 몇몇 인물들의 연결고리는 상당히 취약해 보인다. 다른 형식으로 묶을 수 있는 인물들은 그냥 두어도 좋을 듯하다. 앞으로도 이런 성격의 교양서적 출판은 분명 줄을 이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키면서 앞날을 예비하려는 우리의 태도를 고취하고 인도할 풍요롭고 흥미로운 서책의 연이은 출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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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철학자 - 아무도 말하지 않은 철학의 역사
마르트 룰만 지음, 이한우 옮김 / 푸른숲 / 2005년 5월
품절


여성에게도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 철학하는 남성들-여기에는 소크라테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에라스무스, 존 스튜어트 밀 등과 같은 소수의 예외가 있다-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들은 집요하리만큼 철두철미하게 정신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 감각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이라는 등식을 고집한다.-.쪽

페미니즘적 철학함의 목표는 처음부터 이처럼 철학적 성찰의 공간에서 여성들을 이중적으로 배제하려는 기도를 까발리고 그런 배제가 갖는 의미를 인식론적 차원에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페미니즘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늘 '곁다리처럼 취급되던' 여성적인 것을 담론의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 시키고자 할 뿐만 아니라 남성 일변도의 철학이 주장하는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한다.-.쪽

철학자들은 오늘날까지도 철학사에서 아스파시아가 갖는 의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식' 대화술은 바로 아스파시아의 발명품이다.-.쪽

여성의 (무)능력을 둘러싼 논쟁은 '여성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수백년 동안 진행되어왔으며, 중세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여성은 과연 인간인가 아닌가'하는 것이 근저에 깔려 있는 문제 제기엿다. 이런 문제 제기의 중심에는 하느님은 '남성'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생겨난, 남성은 '하느님을 꼭 빼닮았을 것'이라는 인류학적 견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동시에 여성은 그에 상응하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열등하며, 따라서 결코 인간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입증 근거'가 되었다.

=>'여성이 인간인가?'라는 주제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겠지만, 고대 그리스에 여성과 노예가 선거권도 없고 글도 쓸수 없었던 시대를 생각하면 결코 우스운 일은 아닐것이네요.-.쪽

소녀들을 위해 고대에 존재했던 유일한 교육 공간이라면 기녀(혹은 기생) 양성 학교가 전부였다. 따라서 이런 직업 세계에서 많은 여성 철학자들이 나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이스, 라스테니아, 레온티온). 그 밖에 여성 교육의 유일한 대안은 교육받은 아버지나 남편들에게서 직접 배우는 것이었다(테아노, 다모, 아레테, 히파르키아, 히파티아). 그래서 여성 철학자 아스파시아는 소년들의 학교를 상응하는, 소녀들의 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쪽

그 어떤 그리스 사상가보다 학문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이 두 사람보다 훨씬 결정적이었다. 그에게 여성이란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발생학'에 관한 논문에서 보이듯 '여성적인 피조물'은 생물학적인 결여체이자 '훼손된 남성'이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남성의 종자만이 하나의 영혼을 빚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종종 위대한 사람들도 실수를 저지르게 되지요...-.쪽

자연현상에 대한 철학자 탈레스의 관심은 모든 철학의 출발점에서 '경이감', 즉 스스로 직접 의미를 제시하는 현상들에 대한 놀라움이 놓여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뒷받침해준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서의 철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철학자들은 수학자이면서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그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사물의 변화, 예를 들어 사물들이 계속해서 변하거나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실체로서 변화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따위의 물음이었다.

-.쪽

말 그대로 철학은 곧 '지혜에 대한 사랑'(그리스어로 'philia'는 우정, 사랑, 'sophia'는 지혜)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정의는 더 이상 적실함을 갖지 못한다.
원래 '소피아'라는 그리스 말로 모든 종류의 지식과 교양,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의 능함과 뛰어남을 의미했다. 철학의 관심은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능력 너머에 있는 영역들을 향해 있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만물에 정통해야 한다."고 철학자 헤라클레이스토스 주장했다.-.쪽

교양은 매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귀족 집안에서는 그것을 체면 유지나 사교의 수단으로 여겼다. 그러나 여성들이 그 수준을 넘어서 학문을 응용하는 일은 기대하지 않았다. 남성들이 하는 지도자의 역할에 여성이 뛰어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성들이 교양을 습득하는 일은 결혼할 때까지만 가능했고, 그 후에는 과부가 되어야만 다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여성들이 결혼을 최대한 늦추었다.-.쪽

계몽주의

1783년 이마누엘 칸트는 어느새 하나의 고전처럼 되어버린 '계몽주의'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미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숙함이란 다른 사람의 인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 원인이 지성의 결핍이 아니라 결단과 용기의 부족에 있는 것이라면 미숙함의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당신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겠다는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바로 계몽주의의 표어이다."
계몽주의의 가장 중요한 선행 조건은 휴머니즘의 철학이었다. 인간은 처음으로 세계 시민의 개념을 발전시켰고, 교양을 통해 좀더 고귀해지려고 노력했다. 계몽주의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독단론이나 선입견, 미신 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속에서 태어난다. 그것들은 '합리적 근거를 갖는 신앙'에 의해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운동의 중심 개념은 관용이다.-.쪽

합리주의와 감각주의의 관계

두 가지 인식론적 사고가 계몽주의 철학을 지배했다. 합리주의의 안내자는 독일과 프랑스에 있었다. 여기에는 르네 데카르트, 바루흐(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크리스티안 볼프 등이 속한다. 그들에게 모든 인식의 제1의 원천은 이성이다. "18세기에는 이성의 단일성과 불변성에 대한 믿음이 관통한다. 이성은 모든 사유하는 주체, 모든 민족과 국가, 모든 시대, 모든 문명에 똑같은 것이다."(카시러, 1973년, 5쪽)
이것이 여성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컸다. 여성들이 이성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배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 여성 철학자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를 들면 메리 아스텔과 앤 콘웨이는 그 당시 가장 중요한 철학 논쟁이라 할 수 있는 데카르트의 이성주의적ㆍ기계론적 세계상에 관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수많은 여성들은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활동했다.-.쪽

19세기 말의 상황은 여성들에게 진보를 고취할 만한 아무런 동기도 부여하지 않았다. 왕정복고 시대(1850~1890년)가 열리면서 오히려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성적 능력을 갖는다고 했던 초기 계몽주의의 사상은 한쪽으로 밀리고 전통적인 여성상으로의 복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시절에도 비록 미미하기는 하지만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 1865년 라이프치히에서는 전(全)독일여성연맹(ADF)이 탄생했다. 이로써 1848년에 좌절된 혁명 이후 처음으로 독일에서 여성 운동이 생겨났다. 이 단체의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아우구스테 슈미트, 헨리에테 골트슈미트, 그리고 30년 동안 이 연맹의 의장을 지낸 루이스 오토 페터스였다. 페터스는 1866년에 여성이 직업을 가질 권리를 주창하는 글을 펴낸 적이 있는데, 그 권리는 여성연맹의 주된 관심사였고, 그것의 쟁취를 위해 상당히 오랜 기간 연맹에서 활동했다(헤트비히 벤더, 레노레 퀸 참조).
바로 같은 해에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해리엇 테일러-밀 참조)이 하원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주창했지만 이를 관철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주제는 이제 더 이상 공적인 토론의 장에서 배제되지 않았다.-.쪽

교육 분야에서도 최초의 서광이 비쳤다. 독일어권 대학으로서는 처음으로 취리히 대학이 1865년 겨울 학기에 여성들의 수업 참여를 허용했다. 1867년 12월에는 같은 대학에서 나데슈다 수슬로바가 처음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와 달리 프로이센의 대학에서 여성들의 정규 입학이 허용된 것은 1908년에 와서이다. 따라서 이 무렵 취리히가 학문을 하고 싶은 여성들, 특히 동구권 여성들의 메카가 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그 중에는 안나 투마르킨(Anna Tumarkin), 루 안드레아스-잘로메, 레사 폰 시른호퍼(Resa von Schirnhofer), 헬레네 폰 드루스코비츠가 있다.
19세기가 끝날 때까지 여성 운동의 주된 주제는 평등하게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1888년 헤트비히 케틀러는 바이마르에서 여성들의 대학 입학 허가를 요구하는 여성 단체인 '개혁'을 설립했다. 그 결과 1889년 이후 베를린에서는 헬레네 랑어에 의해 3년짜리 실업 과정이 생겨났고, 1893년에는 그것이 인문 과정으로 개편되었다. 훗날 바로 이 학교에서 레노레 퀸과 헤트비히 콘라트-마르티우스도 대학 입학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독일의 첫 번째 여자고등학교는 1893년 카를스루에에 설립되었지만, 시작부터 법적인 권리를 둘러싼 각종 문제들 때문에 투쟁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 학교가 아비투어(대학 입학 자격시험) 자격을 갖는지조차 분명치 않았다. 여성들은 대학에서 공부할 권리를 위해 2천 년이 넘도록 투쟁을 해야 했던 것이다.-.쪽

196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여성 운동을 배경으로 이제 여성 철학자들도 자신의 학문에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페미니즘적인 철학함의 중요 관심사는 여성들이 철학적인 성찰로부터 이중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늘 논의의 대상에 머물러 있는 여성적인 것이 주체로 바뀌어야 함(바이스하우프트)은 물론, 고대 이후부터 역사에서 여성 철학자들이 사실상 배제되어온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나야 한다.
페미니즘 철학의 이 같은 목표 설정은 여성 철학자들이나 여성적인 주제의 추가라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확장이 아니라,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철학과 그 바탕에 깔린 가부장적인 가치와 규범들에 대한 비판을 지향한다. 페미니즘 철학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곧 여성 해방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나글-도케칼, 1990년, 11쪽). 이런 식의 성찰이 당파적이라는 비난에 맞서 엘리자베트 리스트는 이렇게 반박한다. "보편주의적인 수사학의 도움을 받은 전통적인 이론은 언제나 당파성을 허용했다. 그런데 이제 그 이론이 무엇보다도 그것의 희생자였던 여성들을 비난하고 있다."(리스트, 1989년, 7쪽) 이론의 전통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쪽

이제는 대서양 양쪽의 학문 분야에서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1993년 캐럴 C. 굴드가 미국 애틀랜타에서 미국철학협회를 위해 조직한 심포지엄들 가운데 하나의 모토가 '20년 후의 페미니즘 철학'이었다(굴드, 1994년 참조).
굴드는 같은 제목의 발표 논문에서 페미니즘을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사회 운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철학은 페미니즘 덕택에 상당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굴드, 1994년, 183쪽 참조). 이런 주장을 독일의 대학에서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독일의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페미니즘적인 철학함이 설자리는 거의 없다. 철학과는 통계적으로 정신과학 분야에서 꼴찌 수준이다. 여성 교수의 비율은 여전히 2퍼센트 수준(미국은 13퍼센트)이며, 젠더/여성 연구가 일반화된 미국과 비교해보면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은 그저 요원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월드컵으로 독일이 관심이 가는데, 철학으로 더 눈길을 끌게 되네요.-.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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