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선민] 배꼽

신형건 지음, 남은미 그림, 푸른책들, 48쪽, 8800원

500원짜리 동전이 침대 밑에 굴러가 멈췄다. 손을 뻗어 꺼내려다 보니 물컹 만져지는 게 있다. 아이가 펄쩍 뛰며 소리를 지른다. "아아악! 엄마, 쥐예요, 쥐가 나타났어요!" 엄마는 태연히 대답한다. "옛다, 이 게으름뱅이 녀석아! 네가 그 동안 뭉기적뭉기적 기른 쥐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게 참 보기 좋구나!" 엄마가 내민 것은 먼지 뭉치. 아이들이란 어둡고 컴컴한 데서 뭔가 만져지면 즉시 쥐를 떠올리는, 엉뚱한 상상력을 가졌다. 그리고 시인이란 아이들의 호들갑에서 "엄마 손에 잡히지만 않았어도 넌 쥐가 될 수 있었는데 참 아깝다, 아까워!"라는 절묘한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침대 밑에 손을 넣었더니').

요즘 애들이 동시를 잘 안 읽는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부모들에게 신형건 시인의 작품을 읽혀보라 권하고 싶다. 과거에 발표했던 24편을 빛깔 고운 삽화와 함께 다시 엮은 '배꼽'은 짤막한 싯구에 얼마나 너른 상상력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집이다. 24편 모두 고른 수준을 보여주는 가운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 만한 작품은'엘리베이터가 고장났을 때'다. 시인은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자 계단으로 걸어내려가는 아이의 입을 빈다.

"이제, 9층이구나! 심호흡을 하는 순간/오래오래 빠져 있던/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 부르르-/누군가 진저리를 쳤어. 쭈뼛, 머리카락이/서고 식은 땀이 흘렀어/(…) 이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계단은/혹시, 쥐라기 공룡의 등뼈가 아닐까?/그 중에서도 몸집이 가장 크다는/디플로도쿠스가 캄캄하고도 캄캄한 잠을 오래/오오래 자고 있던 것일까?/이크! 그럼, 지금 내가 겁도 없이/그의 등을 밟고 있는 거 아냐/이러다 잠에서 깨어나겠네". 아파트 계단에서 이름도 발음하기 쉽지 않은 쥐라기 공룡의 등뼈를 끄집어내는 그 탁월한 능력은 시인이 아직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까. 올해 초 출간된 시인의 또 다른 동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푸른책들)도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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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한국과 현재의 한국은 너무도 격차가 크다. 정치, 경제, 국민 정체성 등 사회 모든 부문이 빛의 속도로 변했다. 이 책은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얼마나 변했고, 어떻게 이질적인 서구문화를 수용했는지 관찰한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 10명이 각자의 분야에서 강연한 것을 한데 묶었다.

여러 변화 중 정치가 가장 격동적이고 굴곡이 많았다. 구미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지만, 독재체제가 온전한 정착을 방해했다. 한국은 아직까지 선진국식 민주주의를 떠받들 사회경제적 조건이 미약한 상태다. 이 때문에 현 정권의 서민 보호정책은 중산층에 손해를 끼치고, 서민들에게 높은 실업률을 안긴 셈이 됐다. 경제력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분배정책을 고집하면 성장이 되지 않아 역으로 분배가 위협을 받는다.

경제분야 역시 정치 못지않게 변화의 폭이 컸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성장에만 치우친 탓에 부의 고른 분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앞으로 관건은 기업가의 사업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 적정한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데 달렸다. 저소득자 복지정책과 성장 효율성 사이의 함수를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

사회의 전 분야가 변했는데 사람이 안 변할 수 없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개인주의 방향으로 급변했다. 집단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집합주의는 수그러들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독자성이 강화됐다. 책은 외교, 사회복지, 언론 등도 거론하며 환갑을 맞은 한국의 역사를 훑는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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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 박사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가 자폐증 환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자신의 장애와 다른 사람의 편견으로 고통받지 않는다. 장애로 여겨질 수도 있는 특성을 장점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랜딘 박사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가축시설의 3분의 1을 설계했고, 도축되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또 강의를 통해 자폐에 관한 일반인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폐인은 언어적 사고를 못 한다. 수학적 개념도 약하다. 그러나 기초 감각 자료를 일반인보다 훨씬 세밀하게 받아들인다. 다만, 언어적 사고자가 아닌 시각적 사고자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합해서 개념으로 나타내지 못할 뿐이다. 그랜딘은 두뇌 속으로 들어오는 청각 후각 시각 등 다양한 감각 자료를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 보고 동물의 눈높이를 이해했다.

동물들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에게 동물행동학은 적합한 분야였다. 동물과 자폐인은 사고를 통합하는 전두엽의 발달이 약하거나 형성이 부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무슨 사물이든지 하나하나의 미세함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 빠져든다.

반면, 일반인은 그 하나하나를 묶어서 관념으로 형상화한다. 그랜딘은 일반인의 머릿속에는 필터가 있어서 세세하게 전달되는 원천 감각을 걸러내 언어라는 관념으로 형상화한다고 말한다. 볼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보기로 되어 있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자폐인·동물과 일반인의 시각, 상호 이해를 갈라놓았다.

‘동물과의 대화’는 템플 그랜딘이 동물과 보낸 40년을 담고 있다. 사고 구조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그는 동물과 자폐인을 묶어서 관찰했다. 이를 통해 그는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기 힘든 일반인과 자폐인·동물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자폐증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통하는 중간 정차역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동물의 행동과 가능성을 살펴봄으로써 동물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곧 자폐인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전체 자연이라는 거대 사회에서 일종의 ‘자폐’에 빠지지 않고, 다른 종과도 소통하며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망한다. 두 자폐아를 둔 캐서린 존슨 박사가 그랜딘의 언어를 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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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칼라일’이라고 하면 론스타, 뉴브리지캐피털과 함께 국내 은행을 인수한 외국계 펀드 정도로 인식된다. 2000년 한미은행을 인수했다가 2년 전 씨티그룹에 매각하면서 6200억원의 차익을 남긴 주인공이다. 물론 이 정도는 칼라일에겐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칼라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저 규모가 큰 사모펀드가 결코 아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새로운 권력’, ‘미국의 그림자 정부’라는 엄청난 별명을 가진 칼라일그룹의 무기는 다름 아닌 ‘인맥’이었다.

경제저널리스트로 수년간 칼라일그룹의 실체를 파헤쳐온 저자는 칼라일이 정치권과 연을 맺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고위층과 밀착해 압력을 행사하는 등 정치와 비즈니스의 경계를 흐리고 방위산업에서 특혜를 얻어 성장해온 방법을 낱낱이 드러냈다. 저자가 ‘안면(顔面)자본주의(Access Capitalism)’라고 정의한 칼라일의 운영 방식은 놀랍게도 우리나라에 깊숙이 뿌리내린 학연·지연·혈연 등 연고·인맥 주의와 흡사하다. 책 제목인 ‘아이언 트라이앵글’은 정권·군대·방위 산업이 인맥으로 복잡하게 얽힌 위험한 삼각 고리를 뜻한다.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의심이 제기돼왔던 미국의 조지 부시 가문과 사우디아라비아 빈 라덴 가문의 동업자 관계가 칼라일을 매개로 하고 있다며 물증을 제시하고 있다. 9·11테러 이후 칼라일그룹이 돈방석에 올라앉은 사실과 그 과정은 씁쓸함을 넘어 분노까지 일으킨다. 이 책은 칼라일의 이 같은 비즈니스 방식이 우리나라에 정치·경제적으로 끼쳐온, 그리고 앞으로 미칠 악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지 국내 독자들을 아연 긴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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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단 수행자들이 자신의 경험담과 전문성 등을 살려 영혼을 맑게 하는 저서를 나란히 펴냈다. 특히 스님과 신부, 교무, 정사 등 각기 다른 종단의 성직자 4명이 펴낸 저서들은 ‘4인 4색’의 특징을 띠고 있어 정감을 더한다.





◇한자용 스님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민족사)=적조사와 수국사 주지를 역임하고 정진사에서 수행 중인 한자용 스님이 재미있는 불교 설화 70여편을 모아 펴냈다. 중국의 석상 스님은 백척간두의 허공 속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걸어보라고 했다. 그래야 시방세계의 모든 진리를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옷에 베푼 친절’ ‘이마에 도끼가 박힌 불상’ ‘원효 스님과 뱀복’ ‘콧구멍 없는 소’ 등 소제목만 봐도 성냥불을 그은 것처럼 궁금증이 확 일어난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금쪽 같은 이야기들이다. 9500원





◇허영엽 신부


◆성서의 풍속(이유)=기독교 경전인 성서가 잘 풀리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사고 방식, 생활 습관 등 풍속을 모르기 때문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가 신자와 비신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서 속에 등장하는 풍속들을 소상히 설명해 놓았다. ‘장애의 원인은 그 사람의 죄?’ ‘이집트에는 왜 10가지 재앙이 있었을까’ ‘유대인의 겉옷과 허리띠가 갖는 의미’ 등 75가지 의문과 배경 등을 풀어나가다 보면 성서 내용이 보다 풍요롭게 다가온다. 정진석 추기경이 추천했다. 1만원





◇서문성 교무


◆한국 불교설화를 찾아서―사찰 이야기(미래문화사)=변산 성지, 성주 성지 등 교무를 역임하고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봉임 중인 서문성 교무가 전국의 사찰을 답사하고 일차로 강원·경기·경상도 지역의 전통 사찰 44곳의 숨겨진 설화를 찾아내 사진과 함께 담았다. 지은이는 서양의 설화가 신화라는 장르로 그 지위가 확보돼 널리 읽히고 있는 데 비해 한국 설화는 한낱 옛날이야기 정도로 폄하돼 안타까워한다. 그만큼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공을 들였다. 1만8000원





◇장용철 정사


◆작대기(여시아문)=작대기는 농부의 지게를 받쳐주는 친근한 벗이다. 불교 진각종 미국 심인당에서 정사를 역임하고 진각복지재단 사무처장으로 있는 장용철(법명 지현) 시인이 동서고금의 성현들과 이름 없는 민초들이 작대기처럼 의지하고 살았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묶어 펴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참으로 무겁고 많은 등짐이 생겨난다. 이 책은 그 등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을 때, 든든한 작대기가 돼준다. 고암 정병례씨가 아름다운 컷을 그려 넣어 향기를 더했다. 9000원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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