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 박사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가 자폐증 환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자신의 장애와 다른 사람의 편견으로 고통받지 않는다. 장애로 여겨질 수도 있는 특성을 장점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랜딘 박사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가축시설의 3분의 1을 설계했고, 도축되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또 강의를 통해 자폐에 관한 일반인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폐인은
언어적 사고를 못 한다. 수학적 개념도 약하다. 그러나 기초 감각 자료를 일반인보다 훨씬 세밀하게 받아들인다. 다만, 언어적 사고자가 아닌 시각적 사고자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합해서 개념으로 나타내지 못할 뿐이다. 그랜딘은 두뇌 속으로 들어오는 청각 후각 시각 등 다양한 감각 자료를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 보고 동물의 눈높이를 이해했다.
동물들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에게
동물행동학은 적합한 분야였다. 동물과 자폐인은 사고를 통합하는
전두엽의 발달이 약하거나 형성이 부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무슨 사물이든지 하나하나의 미세함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 빠져든다.
반면, 일반인은 그 하나하나를 묶어서 관념으로 형상화한다. 그랜딘은 일반인의 머릿속에는 필터가 있어서 세세하게 전달되는 원천 감각을 걸러내 언어라는 관념으로 형상화한다고 말한다. 볼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보기로 되어 있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자폐인·동물과 일반인의 시각, 상호 이해를 갈라놓았다.
‘동물과의 대화’는 템플 그랜딘이 동물과 보낸 40년을 담고 있다. 사고 구조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그는 동물과 자폐인을 묶어서 관찰했다. 이를 통해 그는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기 힘든 일반인과 자폐인·동물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자폐증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통하는 중간 정차역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동물의 행동과 가능성을 살펴봄으로써 동물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곧 자폐인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전체 자연이라는 거대 사회에서 일종의 ‘자폐’에 빠지지 않고, 다른 종과도 소통하며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망한다. 두 자폐아를 둔 캐서린 존슨 박사가 그랜딘의 언어를 글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