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주로 미국에 근거지를 둔 국제 투기자본의 가공할 위력과 약탈적 행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그 이후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한번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다가왔다. 지금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건 이들 금융투기자본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이권을 쓸어가는 그들의 대규모 투기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시비는 현실적으로 심각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닐 것이다. 옛 식민주의가 그랬듯이, 한때 지금의 개발도상국들보다 훨씬 더 보호무역을 고집해온 이른바 오늘의 선진국들이 어느날부터 자유와 개방을 앞세우며 자기들처럼 문을 활짝 열라고 약자들을 윽박지르는 건 불쌍한 빈국들에 자유와 개방의 세례를 퍼부어 그 주민들을 빈곤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부처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그랬을 리는 없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투기자본이 한건해서 거액을 챙기는데 성공한다면, 그건 새로운 부의 창출에 따른 대가라는 측면이 강할까, 부의 이전에 지나지 않는 약탈적 측면이 강할까.

<아이언 트라이앵글>(댄 브리어디 지음. 황금부엉이 펴냄)이 매스를 들이댄 칼라일 그룹은 세계 최대규모의 미국 사모투자회사다. 사모투자는 개인이나 기관 등에서 돈을 끌어모아 투자해서 이익을 챙긴다는 점에서 뮤추얼펀드 따위와 다를 바 없으나 주식이 아니라 기업을 매수한 뒤 기업가치를 올려서 되팔아 이윤을 남기는 일에 주력한다. 말하자면 ‘기업사냥’이다. 예컨대 칼라일은 1990에 미국 방위산업 컨설팅회사 BDM을 1억3천만달러에 인수 해서 7년 뒤인 97년 9억7500만달러에 대형 방산업체 TRW에 넘긴다. 9·11사태 직전인 2001년 8월엔 나중에 폐기된 초대형 대포 크루세이더 생산을 위한 국방예산 확보 로비를 전방위로 펼친 끝에 역시 방산업체 유나이티드디펜스로부터 2억8900만달러의 첫 배당금을 챙겼으며, 그해 12월14일 유나이티드디펜스 전격 공개로 그날 하루에만 2억3700만달러를 챙겼다.

86년 미국의 세계적 호텔체인업체 매리엇의 인수합병팀 중역으로 세금전문가였던 스티븐 노리스와 워싱턴 법률사무소에서 역시 인수합병팀 변호사였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 의기투합해 만든 칼라일은, 그때 그들이 자주 만나던 뉴욕 맨해턴 호화호텔 칼라일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불과 10여년만에 세계 최대급 사모펀드들을 통해 130억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이례적인 급성장을 이뤘다. 그 비결은 이들이 조직속에 어떤 인물들을 끌어들였는지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 프랭크 칼루치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리처드 다먼 전 예산관리국장, 닉슨 전 대통령 인사담당관 프레드릭 말렉, 존 메이저 전 영국총리,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해 1주일만에 10억달러를 챙긴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 건축재벌 오사마 빈 라덴 가문, 루 거스너 전 IBM 회장, 알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아난드 파냐라춘 전 타이총리, 그리고 한국 박태준 전 총리….

이 막강한 전현직 권력자들을 끌어들인, 그야말로 “백악관 전화교환대보다 더 많은 정치커넥션”, 이를 통해 엮어내는 방위(무기)산업 중심의 비즈니스와 어마어마한 이권(돈), 이들 정·군·재계 삼자의 기막힌 결합. 이것이 바로 ‘아이언 트라이앵글(철의 삼각지대)’이다. 널리 회자되는 ‘칼라일 방식’이란 이 가운데서도 특히 거물 정치권력자들을 무더기로 끌어들여 사업에 활용하는 유난스런 행태를 가리킨다. 아이젠하워 전 미 대통령이 퇴임연설에서 경고했던 ‘군산복합체’의 업그레이드형이라 할 만하다.

99년 서울에 온 아버지 부시는 김종필 당시 총리,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 이헌재 금융감독원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만났으며, 2000년 6월 제주도에서 열렸던 칼라일 투자자회의에선 다시 박태준 당시 총리 등을 두루 만났다. 박태준 총리 사위인 김병주는 ‘칼라일 아시아’ 회장이었다. 이들은 국내 금융기관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던 사모펀드 칼라일이 편법으로 미 금융기관 JP모건을 앞세워 멀쩡한 한미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칼라일은 4년만에 6천억원 이상의 차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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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동물은 “어떤 물건을 보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흔들리는 사슬 같은 건 동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시선을 잡아끈다.” 반면 사람에게는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에게 처음부터 새로운 것이란 없다. 사람은 자신들이 보려고 예상하는 것만 보게끔 돼 있다.”

<동물과의 대화>에 따르면 동물은 시각에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면, 사람은 그걸 인식하고 해석해서 받아들인다. 그래서 동물들이 사람보다 더 사소한 것을 본다. 사람이 ‘언어적 사고’를 하는 반면 동물은 ‘시각적 사고’를 한다.

이 책의 저자 템플 그랜딘은 자폐아이다. 30여년간 동물을 연구했고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아 콜로라도 주립대학 교수로 있는 그랜딘은 자폐아의 사고 체계가 동물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폐아가 동물과 인간의 언어를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정상인과 자폐인의 차이이기도 하다. “동물과 자폐인은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보이는 그대로만 볼 뿐이다. 우리 자폐인은 세상을 이루는 작은 것 하나하나를 본다. 그러나 정상인들의 눈에는 그 작은 것 하나하나가 흐릿하게 하나가 돼 일반화된 개념의 세계로 보인다.”

그랜딘이 자폐증 아이의 어머니이자 집필가인 캐서린 존슨과 함께 집필한 <동물과의 대화>는 그래딘의 성장기를 얘기하면서 앞에 말한 정상인, 자폐인, 동물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끌어낸다. 그런 뒤에 동물의 특징을 그들의 공격성, 통증, 사고 능력 등으로 나눠 관찰한다.

소녀 시절 자폐증으로 고심하던 그랜딘은 학교에서 키우던 말과 친하게 지내면서 위안을 얻기 시작했다.(그는 승마가 볼룸 댄스나 피켜 스케이트의 페어처럼 ‘상호 관계’라고 말했다.) 어느 여름 목장에 갔다가 소 떼들이 자기 몸을 압박하는 금속 집게인 ‘보정 틀’속에 들어가선 뜻밖에 매우 차분해지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보정틀을 만들어 착용했다. “압박상자에 들어갈 때마다 편안해짐을 느낀다”는 그는 “아직도 이것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랜딘이 만든 이 보정틀 ‘허그 머신’은 자폐인용 압박치료기로 널리 쓰이고 있다.

동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랜딘은 스키너 같은 행동주의자들의 동물에 대한 견해에 반발했다. 그랜딘에 따르면 “그들은 기본적으로 동물을 자극과 반응만이 존재하는 기계로 파악한다”. 스키너 박사를 직접 만났다가 실망했다는 그랜딘은 스키너 박사가 말년에 중풍을 앓기 시작하면서 견해를 바꾸었다는 말을 전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두뇌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사람은 두뇌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실감한다. 스키너 박사는 그 사실을 어렵게 배웠던 것이다.”

육류산업 종사자이기도 한 그랜딘은 목장과 도축장에서, 자신의 동물관으로 남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풀어냈다. 그가 강조하는, 동물을 이해하는 첩경은 “동물이 무엇을 보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소들이 쉽게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어두운 축사 입구에서 그랜딘은 소들이 밝은 데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갈 때 일어나는 암전 현상을 싫어한다는 걸 알아냈다. 사람보다 사소한 것들을 잘 보는 동물들은 땅바닥의 조그만 그림자, 금속 표면의 반사광 같은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걸 모르는 농장 인부들은 가축들에게 전기봉만 들이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동물의 특징에 관한 설명에 이르면 독창성이 줄어드는 듯하다. 기존 연구 결과들을 인용, 대조하면서 일반화를 피하지만 유용한 정보도 적지 않다. 노란색은 동물들에게 매우 튀는 색이므로 황색 우비 등을 입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개에게 어떤 것이 먹이이고 아닌지를 가르치기는 쉽다. 어떤 동물이든 어릴 때부터 함께 키우면 그건 먹이로 인식하지 않는다. 고양이도 어릴 때 다른 동물과 함께 키우면 공격성이 준다.…

그러면 동물과 사람의 의사 소통이 가능할까? 그는 동물과 의사소통하는 언어를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서도 안 된다고 말하며 그 일례로 ‘n, u, t’라고 철자를 발음하며 호두를 찾았던 페퍼보그 박사의 앵무새를 들었다. “동물이 의사소통 가능한 존재라는 생각을 시작할 때가 됐다”는 그랜딘은 “(동물은 언어가 없다는 식의) 부정적 입증이 초점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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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깝다 이책

어느 휴일, 60대 중반이신 어머니께서 마루에 누워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낸 <조용헌의 사찰기행>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전국의 유명 사찰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까지 유래와 스님들의 일화 등을 아주 구수하고 쉽게 쓴 책입니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어머니께서 몇 페이지나 읽으셨는지 궁금해진 나는 책을 들춰본 후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한 25페이지 분량까지 까맣게 손때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매일 책을 읽으셨지만 더 이상 몇 페이지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불교 관련 신문사 홈페이지를 검색하다 한 편의 좋은 원고를 찾았습니다. <불교신문> 조병활 기자가 6개월 동안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 지역 등을 답사, 취재해 쓴 ‘한국 불교의 원류를 찾아’(43회)라는 기획 연재물이었습니다.

불교미술을 다룬 독특한 원고였지만, 그 원고에는 한국 불교의 원류와 부처의 탄생에서 열반에 이르는 전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열흘쯤 뒤, 저자와 원고 계약을 한 후 원고를 받았습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도록도 가지고 왔습니다. 원고 교정을 보기 시작한 지 사흘쯤 지났을 때 더 이상 원고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읽어 보아도 그 뜻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순간 얼마 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곧장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 번 뵙기를 청했습니다. 다음날 저자를 만나 어머니의 일화를 말씀드리며 몇 가지 사항을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불자이십니다. 아들이 출판사로 이직하자 60세가 넘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들이 만든 책 한 권 한 권을 읽어주는 어머니 모습이 참 고맙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제가 쉽고 재미있게 읽고 만든 책이 30년 넘게 절에 다니셨는데도 어머니께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제 말을 듣고 웃으시면서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주일 후 저자가 원고를 다시 보내왔습니다. 원고를 읽는 동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자가 보내온 원고에 불교 용어는 물론 일반 단어에도 한자와 간단한 설명이 아주 쉽게 적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설명도 누가 읽어도 이해가 쉽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문체도 부드럽게 고쳐져 있었습니다.

이런 편집과 저자의 배려 끝에 세상에 나온 책이 <불교미술 기행>입니다.

이 책은 조각 속의 인물은 누구인지, 부처의 다양한 손동작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눈과 머리카락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얇은 옷은 왜 그런지 등 부처의 몸짓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조각상, 벽화, 탱화 등 부처의 모습이 담긴 세계 10여 개국 42점의 불교미술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즉, 불교의 문외한인 사람이라 해도 알기 쉽게 쓴 훌륭한 ‘부처님 해설서’입니다. 또한 이 책은 2005년 불교출판협회 선정 ‘올해의 불서’의 선정되었습니다.

요새 어머니의 방을 열어 보면 흐뭇해집니다. 얼마나 여러 번 읽으셨는지 아주 오래된 책처럼 손때 묻은 책 한 권이 어머니 베개 맡에 놓여 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어머니께 받은 사랑만큼은 못 되더라도 한 자 한 자 어머니의 가슴에 새긴다는 마음으로 만든 책입니다. 종교를 떠나 가슴으로 만든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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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잠깐독서

한 사물이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또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 건 제 몸에 와 부서지는 빛 때문이다. 사람이 여러 사물을 구분해 인식할 수 있는 것 또한 물체에 부딪쳐 반사되는 빛 때문이다. 영원하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빛, 어떻게 하면 이 빛을 붙잡아 둘 수 있을까? 인간이 인지하는 대상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진, 빛을 잡기 위한 노력이 사진의 발명과 사진기술의 발전을 부추긴 원동력이었다.

1839년 프랑스 학술원이 사진술의 발명을 공식적으로 선포했을 때, 그것은 빛이 빚어낸 순간의 광학이미지를 영존하는 시각이미지로 고정시킬 수 있게 되었음을 선언한 것이었다.

<사진의 경쟁>(눈빛 펴냄)은 발명 초기의 사진과 사진가들의 얘기를 다뤘다. ‘사진의 발명과 19세기 사진의 선구자들’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그 동안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던 19세기 사진가들의 노력과 새로운 모색이 15개의 주제로 나뉘어 담겨있다. 빛과 겨루려는 사진가의 욕구가 메카니즘의 진보로 실현되고, 기술적 한계의 극복이 새로운 영역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 37명의 사진가들 얘기 속에 사실적으로 녹아있다.

귀족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초상화를 값싸게 대체한 초상사진이 일반대중의 환호를 불러일으켰지만,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한 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만 겨우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 있었던 발명 초기의 에피소드. 서양의 제국주의 시장개척을 위해 사진이 활용된 실증적인 예로, 조선을 최초로 기록한 사진가가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시아함대 종군사진가였다는 얘기 등 책 곳곳에 숨은 진주를 캐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진의 세기로 활짝 피어날 20세기를 위해 19세기 사진가들은 과연 무엇을 준비했는지 궁금한 이들에겐, 사진과 사진가에 대한 평가나 해석은 뒤로 돌리고 객관적인 사실을 고갱이로 다룬 이 책이 깊고도 오랜 울림을 남길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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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러너가 파고드는 여성사는 그냥 여성의 역사가 아니다. 역사 기록에서 침묵하는 수동태로 남겨졌던 타자들에게 제 자리를 돌려주는 것이며, 동시에 역사 자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그는 일탈자, 외부인의 이름으로 잊혀졌던 이들의 이야기를 보태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을 타자로 만든 배제의 논리, 위계질서에 도끼질을 해댄다. 기존 질서의 위와 아래를 뒤엎자는 게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그는 여성, 유대인, 망명자 등 타자라는 굴레에 겹겹이 묶여야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으며 대중에게 말을 건다. 이 책은 러너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연구한 결과이기도 한데, 읽는 이가 스스로 묻게 만든다. ‘내부자라 믿고 있는 나도 배제의 논리 안에선 언젠가는 외부자가 된다.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까? 그 밖에서 연대할까?’

러너는 40살이 다 되어서야 역사공부를 시작했다. 특히 흑인 여성사는 그를 사로잡았다. 권력 집단이 규정하는대로 타자가 되어야 했던 경험은 그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성사는 세계를 보는 또다른 창

그는 1920년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 자리잡은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곳에서 유대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자신의 존재를 정상적이고 안정적이며 도전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유대인들에게는 불가능했다. …내가 그처럼 철저하게 희생당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희생자들은 자신들이 희생당했다는 죄의식을 내면화한다.” 그리고 그는 유대교 회당에서 남성들이 모세5경을 읊을 때 침묵을 지켜야 하는 여성이기도 했다.

독일군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뒤 그는 1938년 빈털털이 무국적자가 돼 미국으로 쫓겨났다. <안녕이란 없다> 등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노예제 폐지운동가였던 그림케 자매의 이야기를 추적하다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게 됐다. “역사는 나의 삶과 시대를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다. …실제로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타인이 우리 자아를 규정하는 점이다. 여성들은 그 어떤 인간 집단보다도 오랫동안 타인에 의해 타자로 규정되었다. 또한 그 어떤 집단보다도 오랫동안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박탈당했다.” 타자로 내몰렸던 개인에게 여성사는 세계를 보는 또다른 창을 열어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자기를 보며 존재가치를 긍정하도록 돕는다.

1960년대 그가 들고나온 여성사는 학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러너는 “당시는 억압받고 주변화된 집단들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협받던 시기였다”며 “역사는 지배 엘리트의 소유물이라거나 권력기구를 정당화하는 매개체라고 파악하는 이들과 일전을 벌인 때”라고 회상했다. 그는 ‘여성 역사가의 대등한 지위를 위한 조정위원회’ 등을 꾸려 공고한 상아탑의 편견을 실천으로 깨뜨렸다. 여성에게, 흑인에게 목소리가 없었던 게 아니라 남성이, 백인이 애써 듣지 않았다는 걸 실증적 연구로 드러냈다.

이 책에서 러너는 그 잊혀졌던 목소리를 들려준다. 비폭력 저항을 실천한 이들이 마틴 루터 킹이나, 모한다스 간디, 헨리 데이비드 소로만은 아니었다. 1600년대 추방과 파문에 이어 사형까지 당하지만 비폭력의 이념을 끝까지 실천했던 퀘이커 교도 메리 다이어부터, 공적인 일에 관여할 수 없는 사회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예제에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낸 ‘보스턴 여성 반노예제협회’의 그림케 자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 실천가들이 되살아난다. 저자는 “비폭력 저항의 실천이 미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에서 기원하며, 여성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손에서 성공적으로 운용되었다”면서 “미국의 비폭력 저항 실천이 100년 후 다시 등장했을 때 그 기원을 미국의 여성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아니라 간디와 톨스토이에게 돌린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에게 기억을 제대로 복원하는 작업은 과거의 재구성에 그치기보다는 미래를 구성하는 일이다. 그는 잘라 말한다. “이제 우리는 소규모 집단, 친족, 유대인촌, 동향 친구들, 심지어 민족으로 생존해서는 안된다. 차이가 지배의 구실로 이용되지 않고, 차이 그 자체가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생존할 수 없다.” 러너는 페미니즘에서 차이가 통합의 단초가 되는 세상의 가능성을 발견하려 한다.

평화·생태환경운동과 동맹하라!

그는 페미니즘 안에 논쟁들을 비껴가지 않는다. 같은 여성일지라도 인종, 계급 등에 따라 맞닥뜨리는 상황이 다른 것을 직시하면서도 차이에 파묻혀 연대의 가능성을 폄훼하지 말자고 독려한다. “차별의 우선순위를 매기거나 부족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일”은 지배권력에 힘을 보태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러너는 위계질서, 그 너머를 꿈꾸는 사람들의 연대를 희망한다. 그는 “성과 인종, 계급은 독립된 변수가 아니라 억압적인 위계질서의 통치체계를 구성하는 여러 다른 측면”이라고 분석하며 “대립적이지 않고 상명하복 서열이 매겨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면 목표가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중첩되는 세계평화운동, 생태환경운동 등과 동맹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또 “이들은 모두 계급과 국가를 넘나드는 속성을 지니고, 현행 정치제도의 주변부에 자리잡으며, 군국주의와 민족주의, 착취, 불의, 편견들을 증오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페미니즘 이론이 이들에게 지속 가능한 동맹을 형성할 수 있게끔 공통의 일관된 철학을 제공하리라 본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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