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나는 이렇게 읽었다/안나 카레니나

바람 한 점 없이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두텁게 얼어붙은 흰 눈, 사방 어디에도 하얀 뱃살을 드러내며 늘어선 자작나무뿐이고 대기조차 얼어붙어 손으로 만지면 쨍하고 소리를 내며 깨질 것 같은 러시아의 겨울. 내가 실제로 이러한 풍경을 경험한 적이 있던가? 왜 자꾸만 기억처럼 이런 장면이 떠오르는 것일까?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늦은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꾸물꾸물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으로 파묻힌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인들은 청명한 겨울날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중학교 시절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때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가 내게 선사한 풍경화 한 편이 아닐까. 아직까지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나의 학창시절은 당연하게도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머리에 이고 보내는 때였다. 중학생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든 않든 마찬가지였다. 70명이 넘는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은 서울 변두리의 학교. 닭장 같은 그곳이 우리를 숨 막히게 했지만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다. 극단적인 방법을 제외하면 말이다. 인터넷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동호회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열심히 공을 따라 뛰거나 락 밴드의 테이프를 구해 열심히 듣는 것. 내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 다였다. 다행히도 나에게 다른 길이 있었다. 우리 집이 서점을 했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공을 따라서 뛰다가 지쳐서 집으로 들어오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내키는 대로 뽑아서 읽다가 재미없으면 다른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문고판으로 나온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되었다. 정숙한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가 청년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불륜의 사랑에 빠지고 결국 안나는 불행한 사랑의 끝내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톨스토이의 심오한 사상이나 주제를 이해했을 리는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인물도 그 후에 본 영화와 뒤섞여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그 시절 읽었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걸작 SF 영화 이상으로 판타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라는 것을 아주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이 흩날리는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관차가 뿜어내는 증기가 내 몸을 감싸는 것 같았고 백옥 같이 흰 살결 위에서 비단옷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녹음 우거진 대저택의 정원을 산책하는 귀부인과 장교, 흰 눈 위를 달리는 마차, 늦은 아침 사모바르에서 따라 마시는 뜨거운 차의 향기….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러시아의 이국적인 풍경이 한국의 서울 변두리 좁은 방에서 문고판 책을 들고 읽는 나의 머리 위로 날아다녔다. 아마도 그때 내가 그렸던 광경은 실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러시아에 직접 갔을 때도 그러한 풍경이나 경험은, 근사치는 가능했지만, 맛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만의 판타지였다. 러시아의 귀족사회를 현실적이고 비판적으로 그려낸 톨스토이의 소설이 내게 준 판타지. 그때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그렸던 풍경은 내 삶의 판타지가 되었고 마음이 삭막하고 건조해진다고 느낄 때쯤이면 문득 떠올라 숨통을 틔게 해주었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기억 속에 톨스토이가 그려준 이국적인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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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을 진리보다 앞세워선 안돼/김기봉




[한겨레]
고전 다시읽기/이기백 <한국사 신론>

오늘 6월2일은 우리시대 최고 역사가로 칭송받는 이기백 선생 2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의 대표작 <한국사신론>은 1961년 <국사신론>으로 처음 출간됐다가 1967년 <한국사신론>(일조각)으로 개정 출판됐다. 그 후 계속 증보를 거치며 100만부 가까이 팔렸을뿐만 아니라, 영어·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돼 국제적으로도 대표적 한국사 개설서로 통용되고 있다. 서평 전문지 <출판저널>은 1999년 새 천년에 즈음해 전문가 추천을 받아 ‘21세기에도 남을 20세기의 빛나는 책들’을 뽑았는데, 국내서적으로는 <한국사신론>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이기백은 식민주의사학을 탈피해 한국사학의 과학성을 정립하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설정한 역사가다. 그는 식민주의사학을 한마디로 지리적 결정론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우리 주변의 중국·일본 등 강대국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적 운명이 결정됐다는 타율성이론을 특징으로 한다. 강대국을 섬기며 사는게 우리 민족성이라는 이른바 사대주의는 이 같은 타율성이론에서 비롯했다. 그는 사대주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일본 식민주의사학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사대와 사대주의는 구별돼야 한다. 사대가 외교정책 또는 특정상황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사실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사대주의는 그런 사대를 역사의 법칙이거나 사상 또는 민족성으로 치부하는 식민주의사학이 만든 이데올로기다.

대표적 한국사 개설서로 세계 통용

해방 후 한국사학의 제일과제는 식민주의사학의 허구성을 밝혀 한국사의 독자적 발전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내재적 발전론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요청은 민족주의사학을 한국사학의 가장 지배적 흐름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이기백은 민족을 진리보다 앞선 가치로 해서는 한국사학의 과학성이 이룩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리를 배반한 민족은 역사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마침내는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를 그의 묘비명으로 할 것을 유언했다. 그는 역사를 민족의 역사로 환원하는 국사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사’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평생 동안 기울였다. 그는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나아간 일본의 민족사학에 의해 식민주의사학이 만들어진 사실을 상기하면서, 민족사학과 식민주의사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했다.

민족사학-식민주의사학 동전 양면

이기백이 지적했던 민족주의사학의 문제점은 한국사의 개별성을 특수성 내지는 고유성으로 이해함으로써 세계사적 보편성과의 연관성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사학은 “한국민족을 인류로부터 고립시키고 한국사를 세계사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결국은 민족의 우열론으로 기울어져서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군국주의를 자라나게 한 것과 같은 온상을 제공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사학의 반대편에는 백남운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사학이 있었다. 백남운은 세계사적인 일원론적 역사법칙이라는 보편성에 입각해서 한국사를 이해했으며, 이러한 보편성을 인식하는 것이 한국사연구의 기본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선사회경제사>(1933)에서 유물사관의 도식에 입각해서 원시 씨족사회로부터 삼국시대 노예제사회, 신라통일기 이래 동양적 봉건사회 그리고 자기시대까지 이식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으로 한국사를 체계화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사적 보편법칙에 입각해서 일방적으로 한국사의 개체적 발전과정을 재단하는 것은 결코 역사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기백 선생의 주장이다.

그가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과학적 역사 연구방법론은 실증사학이다. 그는 실증사학을 과거의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언뜻 보면 무질서하게 생각되는 객관적 사실들을 하나의 실에 꿰서 연결을 지어주는 작업, 즉 체계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역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사로 서술돼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기에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주도권을 쥐었던 지배세력이 누구였는가를 찾아내 그들을 중심으로 한국사의 전체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사신론>에서 신석기시대에는 씨족사회 구성원 전체가 지배세력이었다면, 신라시대에는 성골과 진골이란 골품이, 고려시대에는 호족이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그리고 마침내 근대에서는 민중이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한국사 이야기의 플롯을 구성했다.

이런 한국사 체계화에 대한 비판은 그의 생전에 이미 제기됐다. 이에 대해 그는 평소 그답지 않게 겸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구구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가 그러했듯이, 저자도 ‘10세기 뒤에 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 말고 어떤 역사가가 천년 뒤에도 평가 받을 수 있는 한국사 통사를 썼다는 자부심을 피력할 수 있을까? 그는 <한국사신론>을 ‘자신의 분신’이라고 일컬었으며, 천년동안 읽힐 고전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나와 같은 사학사 연구자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다. 난쟁이는 거인에 비할 바 없는 초라한 존재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서 거인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기백이 20세 한국사학의 거인이라면, 그의 모습이 큰 만큼 그가 남긴 그림자 또한 길다. 나는 21세기 한국사학을 위하여 2가지 이유에서 이기백 실증사학의 극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실증사학으로는 지금 우리가 국내외적으로 당면한 역사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일본·중국의 역사적 사실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 오늘날 동아시아 역사학 현실이다. 일본 우익 역사교과서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우리가 아무리 시정을 요구해도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은 그것은 사실왜곡이 아니라 또 다른 역사해석이라는 것이다. 실증사학은 역사가가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만든다는 실제 작업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과거는 사라지고 없고, 남아 있는 것은 기억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분쟁은 사실과 해석의 관계라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기억투쟁, 곧 특정 과거를 누가 어떤 기억으로 전유해 역사로서 공인하느냐를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된다. 이런 역사의 담론적 투쟁에서 과거와 역사가 일치해야 한다는 실증사학의 진리론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실증사학의 이런 한계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으로 벌어졌던 역사의 내전에서도 그대로 재연됐다.

누구의 기억을 공인받느냐 관건

둘째, 21세기 한국사학은 망각된 역사공간인 동아시아를 재인식해야 한다. 식민지시대를 살았고 그 아픈 경험 속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식민주의사학 극복을 화두로 해서 한국사학의 독자적인 과학적 체계를 세우고자 했던 이기백은 동아시아사를 식민주의사학의 발로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도 그러해야 하는가? 페르낭 브로델의 용어를 빌어 말하면, 우리는 동아시아라는 감옥에서 살았으며 지금도 살고 있다. 이제는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를 ‘기억의 장(場)’으로 하는 한국사인식이 요청된다. 이는 브로델이 지중해를 무대로 해서 성찰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한계에 대한 탐색이며 우리의 역사적 운명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다. 우리는 이렇게 이기백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아야 한다.

서평자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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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병호(35)씨의 첫 시집 <달 안을 걷다>(천년의시작)는 인상적인 출발이라 할 만하다. 50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실린 시집에서 제1부에 실린 18편의 시는 특히 높은 밀도와 상징의 배치로 하여 도두보인다. 유년기의 풍경을 신화적 필치로 그린 시들에는 아버지와 숲과 강과 우물이 등장하여 모호하지만 풍요로운 울림을 낳는다.

“불탄 묵시록 같은 검은 숲을 지나/비로소 닿은 지평선의 투명한 밤/아비의 주검을 불사른 아이들은/자정의 태양마저 훔치고 싶어했다//(…)//아버지는, 마술사였다/겨드랑이 밑에서 털 빠진 비둘기를 꺼내거나/혀 밑에 숨겨둔 불꽃으로 파도를 만들거나/거웃도 없는 성기로 꽃을 만들어 주었다/하지만 꽃 된 적 없는 아버지/한번도 시들지 못한 아버지/걸음을 옮길 때마다, 죽은 새의 깃털이/아버지의 발자국을 메우고/아버지는 주문처럼 지워져갔다”(<청맹과니 마술사> 부분)

김병호씨의 시들에서 아버지는 자식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하릴없이 지워져 가는 존재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성에서 죽은 짐승들의 피가 흐르고/어둠만이 문이 되는 아버지의 땅”(<아버지의 화원>)은 지독한 묵시록적 비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에 대한 시인의 태도는 뜻밖에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 점이 선배 시인 이성복씨와 구분되는 점이겠거니와, 시인에게 아버지는 시인 자신을 거쳐 아이에게로 이어지는 유전자의 전생(前生)으로 파악된다.

“오래전에 지운 아버지의 얼굴이/내 아이의 얼굴에 돋는다”(<강가의 묘석> 부분)

“아버지는 어둠을 낳고/어둠은 우물에 뿌리를 묻어/밤하늘, 수문 여는 소리만 가득하다”(<어둠은 우물에 뿌리를 묻는다> 부분)

그러니까 김병호씨의 시들에서 어둠과 죽음은, 통상의 용법과는 달리, 부정적인 의미망을 거느리지는 않는다. 이 점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시인 자신의 성장을 한 줄에 꿴 그의 등단작에서 어둠이 안온한 품처럼 그려졌던 것과 통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금줄 친 대문이 어둠을 낳습니다/대문에서 토방으로/토방에서 사랑방으로 이어진 징검돌이/별자리처럼 빛납니다/환하고 평평한 징검돌 안에 담긴 어린 내가/별을 닮아가는 밤, 할아버지는/저녁보다 먼 길을 나섭니다”(<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날 때>)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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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 전문 계간지 <시작> 여름호는 ‘‘다른 미래’를 꿈꾸고 사유하는 젊은 시인’이라는 이름의 특집을 마련했다. 고영민 길상호 박성우 신용목씨 등 18명의 신작시를 싣고 평론가 여덟 사람의 평을 곁들인 야심찬 기획이다. 평론가 권혁웅씨가 ‘미래파’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린, 엽기적이고 자폐적이며 무의식과 욕망의 표출에 치중하는 젊은 시인들과 변별되는, 서정시의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현실과의 접점을 잃지 않는 또래 시인들을 집중 조명한다는 취지였다.

이 특집에 손택수(36) 시인 역시 포함되었다. 그의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2003)을 대상으로 한 글에서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선태씨는 손택수 시가 고향 담양의 대숲에서 빚어져 나왔음을 지적했다.

<목련 전차>(창비)는 손택수씨의 두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과 마찬가지로 고향과 가족에 연원을 두고 있으면서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을 향해 더욱 넓고 깊어진 시선을 만날 수 있다.

“강이 휘어진다 乙, 乙, 乙 강이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 굽은 아낙 하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호밋날 끝에 돌 부딪는 소리, 강이 들을 껴안는다 한 굽이 두 굽이 살이 패는 아픔으로 저문 들을 품는다//乙, 乙, 乙 물새떼가 강을 들어올린다 천마리 만마리 천리 만리 소쿠라지는 울음소리-//까딱하면, 저 속으로 첨벙 뛰어들겠다”(<강이 날아오른다> 전문)

시집 맨 앞에 배치된 이 시에서 강과 아낙과 물새는 똑같이 한자 ‘을(乙)’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얼핏 여유롭게 흘러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양은 실은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관찰하는 이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지녔다. 시인은 ‘까딱하면 뛰어들겠다’고 쓰고 있지만, 그는 시를 씀으로써 이미 뛰어든 것이다. 강과 아낙과 물새의 아픔과 울음 속으로. 시란 그런 것이니까.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기. 왜냐하면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비범한, 시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첫 시집처럼 고향 담양이 ‘연원’

“상할머니의 몸은 천문을 품고 있었던 게지/내가 알지 못할 예감으로 떨리는 우듬지 끝/떨어져내리는 잎사귀 잎사귀마다/빛나는 통증으로 하늘과 이어져 있었던 게지//쿠르릉 밤늦게 저린 다리를 끌며 일어난 어머니 빨래를 걷는다/서러운 몸속에서 몸속으로 구름이 유전하고 있다”(<구름의 가계> 부분)

강과 물새의 성(性)은 알 바가 없다. 아픔의 공화국에 거주하는 사람 주민들의 성에 주목한다. 아낙과 상할머니와 어머니는 모두 여성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아픔, 그들의 빛나는 통증, 천문(天文)을 읽을 수 있는 특출난 능력이 “땀 뻘뻘 생의 뻘구멍”(<꽃낙지>)을 통과해 온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할 때 구멍이란 통증을 통찰로 형질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구멍을 여성의 상징으로 드는 것이 반드시 비속한 상상력의 작동만은 아니다. 열려 있어서 만물을 흔쾌히 통과시키는 구멍의 너그러운 생리는 수용성과 내성(耐性)이라는 여성의 성정을 닮았다. 구멍은 호흡이며 생명이고 화엄이다.

“스윽, 제비 한마리가,/집을 관통했다//(…)//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그야말로 무방비로/앞뒤로 뻥/뚫려버린 순간,//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방심> 부분)

“화엄이란 구멍이 많다/구례 화엄사에 가서 보았다//절집 기둥 기둥마다/처마 처마마다/얼금 송송/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화엄은 피부호흡을 하는구나/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환하게 뚫려 있구나”(<화엄 일박> 부분)

여성을 닮은 ‘구멍’의 상징성

<방심>은 여름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놓고 땀을 식히던 순간 제비 한 마리가 그 두 개의 문을 통과해 지나간 일을 읊고 있다. 제비가 알려준-알려주었다기보다는 만들어낸 구멍은 보는 이의 숨구멍까지 활짝 열어젖히는 구실을 한다. 살림의 구멍이다. 구멍의 이런 작용을 발효에 견줄 수도 있겠다.

“절집 처마 아래 메주가 마른다//(…)//겨울 햇살과 바람과 먼지와 눈 내리는 소리까지//눈 속에 먹이를 구하러 내려온 산짐승 울음까지//몸속에 두루 빨아들여 피워내는 메주 곰팡이//나무아미타불, 자연 발효시킨 부처님이시다”(<메주불(佛)> 부분)

절집의 부엌 살림을 맡아하는 보살님은 메주에게 염불을 들려주고, 그 아래 합장을 한다. 살림과 모심이다. 여자의 일. 여자를 가사노동에 묶어 두려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거룩하고 갸륵하다는 뜻. “할머니의 몸속에, 씨앗 속에, 할머니 주름을 닮은 밭고랑 속에/별과의 교신을 하는 무슨 우주국이 들어 있었던가”(<달과 토성의 파종법>)라고 쓸 때 시인은 우주와 교감하는 할머니=여자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감과 감응의 능력이 반드시 여자의 독점물일 필요는 없다.

“별이 지상에 내리는 걸 저어하지 않도록/일찌감치 저녁상을 물리고/잠자리에 드는 마을”(<별빛보호지구> 부분)

“드센 파도가 아직 갑판을 때려대고 있다는 듯/봉두난발 흐트러진 저 글씨체,/속절없이 바다의 필체와 문법을 닮아 있다/저 글씨체만 보고도 성난 바다 기운을 점치고/가슴을 졸일 사람이 있겠구나/그러고 보면 바다에서 쓴 편지는 반은 바다가 쓴 편지”(<장생포 우체국> 부분)

별빛은 마을 사람들이 드리워 놓은 어둠을 발판 삼아 지상에 내려온다. 바다에서 막 돌아온 사내의 필체는 바다의 기운을 닮아 있다. 사람과 세계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한 몸처럼 호흡한다. 동기감응(同氣感應).

시집에는 물론 아물리지 않는 고통과 분노도 있다. 하필 추석날을 골라 술 취한 사내들을 몸으로 받아야 했던 ‘김양’(<추석달>), 그리고 “주도면밀한 강간범처럼/벌겋게 달아오른 총열에 덮어씌운 콘돔/(…)/시엔엔(CNN)을 타고 생중계되는 미국식 포르노”(<콘돔 전쟁>)에 대한 시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시집은 전체적으로 고향 담양의 대숲에서 비롯된 따뜻한 공감의 테두리 안에 놓여 있다. 손택수 시인이 동갑내기 문태준 시인과 함께 전통 서정시의 듬직한 계승자로 기대를 모으는 까닭이다.

“대나무 그림자가 장구채처럼 문에 어리던 날이었다/그런 날이면 코 고는 소리에도 정든 가락이 실려 있었다”(<집장구> 부분)

“그러나 청둥오리떼 파다닥 멀어지기 직전, 오오 바로 그 직전 나는 잠시 청둥오리 몸속에 있다 청둥오리 몸속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떨어진다”(<청둥오리떼 파다닥 멀어지기 직전>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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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잠깐독서

이름이 <배달말 가르치기>다. 이른바 ‘국어교육론’이라고 할, 사범대학에서 가르칠 이론서 이름으로는 파격이다. 지은이는 몇 해 전에도 ‘국문학사’ 정도로 낼 책이름을 <배달말꽃>으로 엮어낸 바 있다. 문학을 ‘말꽃’으로 이름붙여, 떠돌던 온갖 말꽃들을 갈래잡고 제자리에 세워 문외한이 읽어도 우리 ‘문학’이 한눈에 들어오게 엮은 책이었다. <배달말 가르치기>도 배달말(국어)을 광복 뒤 학교에서 가르친 지 60년을 기다려서야 나온, 얼·몸·옷을 제대로 갖춰 스스로 살아가게 할 방도를 담아낸 책인 성싶다.

말이 살 집은 어디인가? 바로 그 말하는 이, 듣는 이, 글 쓰는 이, 읽는 이다. 터전은 배달겨레고, 살아갈 마당 역시 우리와 가까운 이웃들이다.

이 책에서는 “말이란? 배달말이란? 교육이란? 배달말 가르치기란? 왜? 무엇을? 어떻게?”로 ‘뜻’과 ‘길’ 두 갈래에, 네 가지 무엇인가?, 세 가지 ‘하는가?’로 된 물음과 대답으로 배달말의 속갈피와 가르칠 방도를 펼쳤다.

우리는 오늘날 입말·글말에다 특히 ‘전자말’로 말글살이를 한다. 배달말 가르치기 속살을 말·말꽃의 삶·앎으로 묶고, 말하기·쓰기·읽기·듣기·보기·보이기로 가른다. 여기에 말의 존재·모습·변화 항목을 보태면 둥근 그림이 그려진다. 제대로 된 국어 교과서를 엮고, 가르치는 데 쓰일 길잡이로서 이만큼 얼개와 얼을 다잡아 엮은 책은 드물겠다.

책을 펴낸 ‘나랏말’은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만든 출판사다. 이 모임에서는 몇 해 전 중고등학교에서 쓸 대안 교과서 <우리말 우리글>을 여러 책 엮어낸 바 있다. 또 우리말교육연구소를 차렸고, 우리말교육대학원도 꾸렸는데, 주로 여름·겨울에 몰아서 현직교사들이 모여 공부하는 학교다. 지은이 김수업 교수는 그 대학원 원장이기도 하다.

100년 전 주시경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리느니라.” 온갖 일로 나라가 시끄럽게 들썩이는 판이지만, 이렇게 소리없이 활동하는 이들과 어른들을 보면 우리 겨레가 한층 격상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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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6-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갈게요. 감사합니다.^^

보슬비 2006-06-0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