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한일관계 2천년-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한일관계사학회 편 전 3권·각 400쪽 내외·각권 16000원·경인문화사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이라는 말이 있다. 엄마 배 속에서 쌍둥이였던 아이 중 하나가 유산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한일관계의 뿌리를 파헤쳐 갈수록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 그런 배니싱 트윈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일관계사학회(회장 연민수)의 학자 54명이 필자로 참여해 한일관계사를 고중세편, 근세편, 근현대편으로 나눠 가장 궁금한 98개의 주제로 정리한 이 책에서도 그 배니싱 트윈에 대한 애증을 읽을 수 있다.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무리 지어 일본열도로 건너갔다. 이들은 기원후 3세기까지 600여 년간 야요이(彌生)문화라는 청동기·철기 문명을 이뤘다. 이 야요이인들은 원주민격인 조몬(繩文)인을 몰아내고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이 됐다.

그뿐만 아니다. 백제와 가야, 고구려인들은 나라가 망한 뒤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른바 도래인들이다. 그런데 이 도래인들이 이룩한 일본의 역사서에서 한국은 왜 그처럼 비하되고 있을까. 일본은 임나일본부를 통해 한반도를 식민통치했고, 칠지도는 백제왕이 일왕에게 바친 것이고, 광개토왕비문의 신묘년조 기사는 백제·신라가 일본의 신민이라는 주장은 사실인가.

이 책은 이를 모두 부정한다. 그러나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고대 역사가 밀접한 연관을 맺었기 때문이다. 당시 왜(일본)는 백제·가야와 밀접한 동맹관계를 맺었다. 칠지도는 백제와 왜의 동맹의 상징물이었고, 임나일본부는 가야의 여러 나라에 파견된 왜의 외교사절이었다. 또 신묘년조 기사는 고구려가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을 위해 왜를 과장되게 묘사한 것이다.

배니싱 트윈의 역사는 663년 왜가 백제부흥군을 돕기 위해 2만7000명의 병력을 파병했다가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시작된다. 특히 한반도에서 패퇴한 도래인이 대거 유입된 일본은 이후 자신들의 기억에서 한반도의 영향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 다시 쓰기’를 시작한다. 이런 나쁜 추억은 원에 등을 떠밀린 고려의 일본 침공 시도와 임진왜란을 통해 악화된다.

임진왜란은 쌍둥이 중 한 명이 다른 쌍둥이의 태반을 빼앗아 흡수하려드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10만 명 이상의 코를 베어 만든 일본의 귀무덤(耳塚)과 1만 권 이상의 책과 학자, 도공 그리고 엄청난 문화재 약탈로 한쪽은 쇠락해 간 반면 다른 한쪽은 새로운 문명의 토대를 마련한다. 이는 19세기 말 이후 다시 시작된 일본의 한국 침략으로 이어지면서 배니싱 트윈의 역사는 ‘배싱 트윈(bashing twin·쌍둥이 때리기)’이라는 가학적 양상으로 변모한다. 이 책의 부제에 쓰인 ‘보이는 역사’가 배싱 트윈의 역사라면 ‘보이지 않는 역사’는 곧 배니싱 트윈의 역사가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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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Who am I/정창현 외 지음/163쪽·8500원·사계절

북유럽에 사는 레밍이라는 들쥐들은 일 년에 한 차례씩 ‘죽음의 질주’를 벌인다. 영문도 모르는 채 무리지어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마는 것이다. 들쥐들이 뛰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쥐들은 떼를 지어 사는 동물이다. 어느 날 앞의 쥐들이 우연히 뛰기 시작하면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뒤의 쥐들도 덩달아 뛰게 된다. 맹렬히 추격해오는 뒷놈들의 기세가 두려워 다시 앞의 쥐들은 더욱더 달리게 되고 이에 뒤질세라 뒤의 쥐들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리고 이 황당한 질주는 절벽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장소에 이르러서야 끝을 맺는다.

경쟁 자체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왜 이겨야 하는지를 망각한 레밍의 일화는 십대들에게 훌륭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십대들 역시 커다란 삶의 목표로서의 미래보다는 그날그날의 자잘한 현재 속에 파묻히기 쉬운 까닭이다.

‘십대를 위한 자기 탐색 교과서’란 부제처럼 이 책은 나는 내가 만든다는 모토 아래 나는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그 삶을 이룰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공감을 자아내는 수많은 예화와 실천 가능한 탐색과제들은 어떻게 비전을 세우고 자기를 관리하며,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것인지 세세히 알려준다.

예를 들어 ‘주먹 쥐고 일어서’나 ‘늑대와 춤을’ 같은 인디언식 이름 짓기는 자신의 장점과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계기가 된다. 스스로 자기 마음을 곧추세우기 위해 쓰는 명상글, 히포메마타(hypomemata)는 일상의 여러 문제와 욕구를 해결할 힘이자, 내 인생의 격언이 된다. 또 26세의 나이에 사형대 앞에 섰던 도스토옙스키의 예화를 떠올려 보자. 만일 내 인생의 졸업식을 가정해 본다면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과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해질 것이다.

떠밀려 하는 공부는 피곤하다. 논술의 진정한 목표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따짐으로써 무의미한 삶을 유의미한 삶으로 바꾸는 일이다. 하루하루의 일과와 성적에 매달려 떠밀려 사는 십대들에게 나에서 우리로, 현재에서 미래로 사고의 틀을 넓혀나가는 이 책은 새로운 다짐과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발전하는 나를 만들고 싶다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하라고 이 책은 충고한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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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도전 100세/박효 지음·노준구 그림/219쪽·9500원·아메바

‘25세-윤봉길, 도시락 폭탄으로 일본을 응징하다/ 혼자서는 도시락을 먹을 수 없는 나이.’

‘77세-플레이보이 창간자 휴 헤프너 창간 50주년 기념파티를 열다/ 콘돔을 찾을 필요가 없는 나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나이에 걸맞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1세부터 100세까지 각각의 나이에 어울리는 두 문장을 작은 그림과 함께 싣고 있다. 세계 유명인사들이 그 나이에 무슨 일을 했는가를 말해주는 첫 문장에 이어, 평범한 생활인들은 그 나이에 어떤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익살스러운 두 번째 문장을 읽다보면 빙긋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모차르트는 12세에 첫 오페라를 썼지만 ‘우리’에게 12세는 체르니 100번을 끝으로 피아노와 멀어지는 나이다. 안철수는 33세에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를 설립했지만 ‘우리’의 33세는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후배에게 고쳐 달라고 하는 나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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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혼지침서/쑤퉁 지음·김택규 옮김/312쪽·9500원·아고라

양보는 미칠 지경이다. 결혼 5년이 지나자 낡은 메리야스를 잠옷으로 입고 이도 제대로 안 닦는 아내 주윈한테 질려 버렸다. 어여쁜 애인 위츙과의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면 방법은 이혼뿐이다!

이 책은 현재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쑤퉁(蘇童·43)의 대표작 모음이다. 쑤퉁은 소설 ‘처첩성군’이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홍등’(1991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면서, 국내에도 일찌감치 이름이 알려졌다. 이 책에는 축첩제도의 현실을 생생하게 다룬 ‘처첩성군’을 비롯해 3편의 작품이 실렸다.

그는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을 세우면서도 정치성에서 벗어나 개인의 일상에 천착하는 소설가로 유명하다. 표제작 ‘이혼지침서’에서도 그런 주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위자료 줄다리기에, 처남들의 매질에, 아내의 자살 소동까지…. 이혼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이혼율 90%를 보장한다는 옛 스승의 저서 ‘이혼지침서’는 아직도 출판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현대인이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가 낱낱이 드러난다. 양보가 속한 회사는 양보를 조직의 부속물로만 여기고, 아내 주윈은 무너진 가정의 껍데기라도 쓰고 살려고 하며, 순수해 보였던 애인 위츙은…. 현실은 세속적이지만 이상의 힘은 그에 맞설 만큼 세지 않다는 것을 쑤퉁은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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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없는 각시 얼굴…‘소꿉놀이’"


[동아일보]

◇소꿉놀이/달연예쁠아 지음/32쪽·9500원·깊은책속옹달샘(3∼6세)

“…솔잎으로 국수말아/풀각시를 절 시키세/풀각시가 절을 하면/망근 쓴 신랑이랑/꼭지꼭지 흔들면서/박주걱에 물 마시네”

개성지방 전래 동요 ‘소꿉놀이’의 가사를 바탕으로 만든 ‘풀꽃그림책’.

꽃과 풀잎을 일일이 따서 말린 뒤 신랑 각시 종이인형과 합성해서 만들어낸 입체적인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자는 풀꽃그림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오프라인 개인 전시회까지 연 대표적인 ‘블짱(인기 블로거)’ 중 한 명.

바닷가에서 주워 온 작은 게, 솔방울, 돌멩이, 나뭇가지, 흙 등 자연 속의 재료가 그림 속에서 독특한 질감을 자아내며 아이들에게 자연의 세계를 보여 준다. 글자 수가 적고 그림이 풍성해 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먹으로 그려진 신랑과 각시는 얼굴에 눈 코 입이 없이 그려졌지만, 표정이 저절로 떠오른다. 아들(딸)과 책을 보면서 장면마다 신랑(각시)의 표정을 상상해 보고 그 표정을 지어 보게 하며 읽어도 좋겠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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