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박돈규기자]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할머니(백성희)가 실연당한 손자 상우(유지태)의 입 안에 박하사탕을 넣어줄 때, 관객도 등을 들썩거린다. 할머니의 박하사탕은 체념해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위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신경과 의사는 여기서 맹점을 발견한다. 치매로 판단력이 엉망인 할머니가 “떠나간 여자와 버스는 잡는 게 아니다”란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식물인간을 사랑하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그녀에게’를 보면서는 대뇌의 구조를 꼼꼼히 살핀다. 남자는 죽고 식물인간이 4년 만에 깨어나는 결말 부분은 의학적으로 난센스(비상식)라고 말한다. 영화 ‘한니발’에서는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을 끄집어낸다. 인간이 고혈압·비만·당뇨·심장병 같은 문명의 질병을 앓고 있는 건 육식동물화 된 대가(代價)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편두통(‘디 아더스’), 음악가의 뇌(‘아마데우스’), 안락사(‘밀리언달러 베이비’), 망각(‘페이첵’), 동성애(‘왕의 남자’)…. 신경과 의사의 뇌(腦) 속으로 들어갔던 40편의 영화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박돈규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coeur.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일보 김태훈기자]

삶은 시시한 넋두리일 지도 모른다. 고통스럽지만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닌, 작은 응어리들이 맺힌 나무 가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열 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집에서 주인공들은 그 응어리를 미주알 고주알 풀어 놓는다. 넋두리는 위로의 수사학을 요구하지 않는다. 독자는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만이다. 응어리는 말로 엮이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첫 번째 단편 ‘37도2부’는 37세 이혼녀의 남자관계 이야기. 7년 전 이혼한 그녀의 남편은 지금도 한 해 서 너 번 그녀를 찾는다. 잠자리를 같이 하러 오는 것도 아닌 전 남편의 방문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또 다른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아내와 이혼하지 못하는 소심한 유부남이다. 애매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아이를 갖지만 의사라던 그는 사기꾼으로 밝혀진다. 그 사이 카페 사장에게도 친밀감을 느끼지만 임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인해 그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태아의 낙태로 끝난다. 사랑이란 것이 모호하고 만남과 헤어짐의 경계는 흐릿하다. 타오르지 못한 사랑의 앙금은 그 사연을 하소연하는 것에서 치유의 희망을 찾는다.



‘딸꾹질’의 주인공 인자는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섯 살 딸을 떼어놓고 도망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그러나 뱃속에 들어선 아이를 유산할 정도의 심한 딸꾹질로 표출된다.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애써 외면하는 괴로움은, 버림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하는 딸의 애타는 엄마 찾기와 충돌한다. 강요된 고통(남편의 폭력)을 벗어나기 위해 의도하지 않은 상처(버려진 딸)를 준 엄마는 딸꾹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의 딸꾹질은 자신을 찾아온 딸을 만나기로 결심하자 잦아든다.

이밖에 ‘랩소디 인 블루’, ‘아내의 진홍빛 슬리퍼’, ‘천적 퇴치법’, ‘꿈꾸는 실낙원’ 등의 단편들도 한결같이 상처받은 내면의 트라우마에 간섭당한 삶을 그린다. 그러나 내적 갈등을 다룬 소설들이 흔히 보이는 심리적 공황의 파열음 없이, 소설은 겉으로 드러난 일상과 그 속에 내재한 정신의 자연스런 화해를 추구한다. 결핍을 그리지만 부드럽고 편하게 읽히는 것은 그때문이다. 구성진 호남 사투리와 맛깔지고 능수능란한 언어의 잔치 또한 작품 읽는 재미를 더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들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서 굵은 거품을 부글거리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을 한다.”

알베르 카뮈의 산문 ‘티파사에서의 결혼’은 폐허 위에서 피는 꽃과 푸른 지중해에 쏟아지는 빛의 축제를 노래했다. 카뮈는 프랑스 작가지만, 알제리가 낳은 지중해의 작가이기도 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달아오르는 지중해 지역의 돌은 묘하게도 식물처럼 햇빛을 자양분으로 삼아 쑥쑥 자라나 신화의 공간을 잉태한다. 카뮈는 지중해의 돌과 빛에 향일성(向日性)의 상상력을 투사해 자연을 인간 중심의 시공간에서 해방시킨 뒤 우주적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로 바꿨다. 페니키아 말로 기항지를 뜻하는 티파사는 카뮈의 젊은 영혼이 해를 향해 비상하기 전에 도약의 숨을 골랐던 땅이기도 했다. 카뮈 문학의 향일성을 파헤치면서 젊은 날을 보낸 불문학자 김화영은 카뮈가 보며 자랐던 해가 떠오르는 땅, 알제리를 찾아 길을 떠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뤄진 여행이었다.



“죽은 자들의 몸이 갇혀있던 옛 석관 속에 햇빛이 가득히 고이고 향일성 식물이 솟아올라 찬란한 꽃을 피우며 새로운 생명을 노래한다는 티파사”에서 이 책의 문장들은 활자의 틀을 벗어나 솟아오르려고 애를 쓴다. 한때 티파사에 세워졌던 고대 건축물은 돌덩어리들로 분해됐지만, 폐허의 꽃들은 그 돌들을 어루만지듯 피어나면서 대자연의 심오한 뜻을 전한다. ‘모든 서 있는 것은 무너진다’는 것이고, ‘향일성의 수직을 무심한 수평으로 눕게 만들고 마는 힘, 그것이 바로 사물의 중심’이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외친다. “젊은 카뮈의 이 찬란한 ‘봄의 찬가’ 뒤에는 실상 죽음과 소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삶과 죽음이 시소게임을 하며 서로를 더욱 깊고 높게 고양시키는 것. 이것을 카뮈는 부조리의 유희라고 부른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알제리 서부 해안의 항구 도시 오랑을 무대로 삼았다. ‘바다에 등을 돌린 채 달팽이처럼 맴돌게 만들어진 시가지 오랑은 단단한 하늘로 덮어놓은 둥그렇고 누런 담’이라고 썼던 ‘페스트’의 한 문장을 떠올리면서 저자는 오랑의 구시가지를 마치 신화 속의 미로를 헤매듯 걷는다.



‘이방인’에서 햇빛 때문에 일어난 살인 사건은 소설 속에서 알제의 해변으로 나오지만, 카뮈는 실제로 오랑의 해변에서 벌어졌던 프랑스인과 아랍인의 싸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오랑은 카뮈에게 늘 영혼의 샘터였다. “어떤 유의 남자들에게는 여자가 아름다운 곳이면 어디나 여자가 하나의 쓸쓸한 조국이다. 오랑은 그런 조국의 숱한 수도들 중의 하나”라고 카뮈는 썼다.

알제리는 선뜻 가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이 매혹적인 기행문집을 펼치면, 올 여름 휴가철에 카뮈의 문학 속으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푸른 지중해의 유혹이 넘실거린다.

(박해현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hpark.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일보 이한우기자]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전공자들에게도 난해하기로 악명높은 독일철학자 니체의 사상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가 상당하다. 본고장 독일을 제외하고는 이만한 열기를 느낄 수 없다. 아마도 얼마전 완간된 니체전집(21권) 덕분인 듯하다. 게다가 니체는 21세기에도, 아니 21세기여서 더 주목받을 만한 사상의 씨앗들을 누구보다 많이 담고 있는 사상가다. 이 책에 참여한 필자들의 관심은 바로 이 점을 보여준다. 니체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전집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이어 니체철학의 현대적 응용이 이 책의 본론을 이룬다.

영미철학과 니체철학의 연관성을 분석하기도 하고, 니체가 실존철학해석학에 미친 영향을 추적하는 글도 있다. 또 프로이트나 융, 아들러같은 넓은 의미의 심층심리학에 니체가 미친 영향을 정리한 흥미로운 글도 있다. 무엇보다 니체가 빛을 발하는 대목은 예술분야. 그의 예술론을 다룬 두 편의 글과 종교에 대한 니체의 인식을 정리한 글은 우리 학계의 연구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맨 마지막에는 니체가 국내에서 붐을 이루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잘 정리돼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일보 -->김윤덕기자]

아이들 세계에서 공주와 왕자는 판타지이고 꿈이다. 간혹 자기가 마녀의 시샘으로 궁전에서 쫓겨난 공주일지 모른다고 믿는 아이들도 있다.

이 책을 엮은이는 ‘공주이야기=성장이야기’라고 단언한다. 연약한 공주가 온갖 시련을 겪은 뒤 멋진 왕자를 만나는 줄거리는 어린이가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상징한다는 것. 의미야 어찌 됐든 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걸작’들을 한 권에 묶었다는 게 재미있다. 그림 형제의 ‘개구리 왕자’,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샤를 페로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보몽 부인의 ‘미녀와 야수’ 등 모두 8편이다.

원전에 지극히 충실한 번역이라 글 맛은 매우 ‘드라이’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진짜 묘미는 그림(삽화)에 있다. 연대가 알려지지 않은 유서 깊은 초판본 삽화부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거장 삽화가들의 그림까지 모두 80권의 판본에서 가려 뽑은 삽화들이 제각각 개성 있고 아름답다. 아동문학에 관심 있는 어른들은 소장용으로 탐낼 만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리포터7 2006-06-0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의 그림들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던대요. 확인해보구 싶네요. 우리나라에도 각종 아동문학의 그림들을 설명해주는 책이 더러 나와있는데 그림들이 너무나 작게 삽입되어서 그 분위기를 느끼긴 어려운데 이책은 또 어떤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