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조우석] 인류의 미래사 (원제: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W 워런 와거 지음, 이순호 옮김, 교양인, 476쪽, 1만8000원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도로 남이 되는~". 대중가요 '도로 남'식의 말장난을 학문에서 실천한 이가 있다.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으로 토마스 모어가 만든 용어'유토피아'의 꼬리를 살짝 비틀어봤다. 유토피스틱스(utopistics). 유토피아학쯤 될까. 그건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라는 사회과학자의 시도인데, 뉘앙스는 완전히 판이하다.

"단순한 말장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모든 유토피아의 진짜 문제는 그게 이 땅에는 존재할 수 없는 천상의 꿈이라는 점이다. (…) 내가 대체 용어로 고안해낸 유토피스틱스라는 단어의 취지와 전혀 다르다. 유토피스틱스는 가능한 대안적 역사체제에 대한 판단 행위다."('유토피스틱스' 11쪽, 창비사, 1999)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이란 부제가 달린 '인류의 미래사'는 '천상의 꿈' 유토피아가 아니라 '대안의 역사' 유토피스틱스를 다룬 책이다. 그것도 정면에서. 따라서 달콤한, 그러나 공허할 수 밖에 없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외면해도 좋다. 자, 그러나 당신이 이 책에 필이 꽂혔다면, 축하부터 드린다. 즐거운 지적 노동의 결과가 뿌듯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0년 뒤인 2026년 유엔의 전면 개편이 단행된다. '지구국가연합'. 이것이 지금도 진행 중인 세계화 물결의 최종 완결편이다. 그건 다국적 기업들의 입김 아래 몇몇 나라가 저개발국 신탁통치에 나서기로 합의한 오스트리아 '빈 체제' 성립(2008년)의 결과다. 이 '지구주식회사'는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태평양공동체 6개국 사이의 블록별 관할 지배 시스템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독자에게는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하나씩 등장한다. 우선 한국은 2030년쯤 세계 6대 강국에 진입한다. 한국이 포함된 G6는 세계 총생산의 89%를 차지하는 지구촌 공룡이다. 나쁜 뉴스? 그 직후 불어닥친 대공황에 이어 파국이 닥친다는 것이다. 2044년 제3차 세계대전 발발. 3차 대전은 자본주의 폭주기관차의 모순 때문인데, 하필 미국의 빈 체제 이탈 선언으로 시작된다.

한 세대 뒤의 미국은 지금의 제국이 아니라 '이빨 빠진 골리앗(201쪽)' 정도로 묘사된다. 인종문제 심화와 함께 부의 재분배를 단행하지 않으면 내전으로 풍비박산이 날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빈 체제 탈퇴를 감행한다. 위기 상황에서 G6 정상들이 이끄는 지구국가연합이 대미 선제공격에 나선다. 군사 목표물을 향해 발사된 리튬 폭탄의 결과는 참담했다. 개전 1년 만에 지구인 70%가 절명했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치는 국지전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런 스토리는 23세기를 코 앞에 두고 역사학자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무릎 이야기' 방식으로 진행된다. 6대에 걸친 가족사라는 틀 속에 "그랬단다" "하렴" 등의 구어체로 전개된다. 역사의 뼈대(거시사) 말고도 인간의 피와 살(미시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미덕이다. 전체 12개 장의 사이를 장식한 '간주곡'에는 그 시기를 살았던 이들의 편지.일기.소송기록 등이 나온다.

3차 대전 중 리튬폭탄을 떨어뜨렸던 공군 장교의 자살, 환경 오염에 분노하는 여성 시인의 절절한 목소리까지…. 평양 시민 윤석미라는 똑똑한 여성의 신념에 찬 육성도 만날 수 있다. 윤석미는 '작은 당(독일 녹색당과 비슷한 생태주의와 공동체 이념 당)'이 통치하는 22세기 말이야말로 유토피아라고 단언한다. 어쨌거나 대단한 내공을 바탕으로 과학사에서 지성사까지 포괄하는 이 미래서가 주는 교훈은 음미해볼 만하다.

누구나 '지금 여기'에 코 박고 사는데, 가끔 고개 들어 멀리 보게끔 만드는 자극제 역할 말이다.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새삼스런 책임감에 때론 정신이 번쩍 난다. 그건 좋다. 문제는 바탕에 깔린 서구 중심주의 시각이 좀 께름하다. 책의 바탕에 깔린 여성.생태.공동체주의 모두 좋은 얘기지만, 그것들이 18세기 서구 계몽주의의 틀 속에서만 거론된다.

거론되는 주요 이념도 자본주의.사회주의.아나키즘 셋 뿐이다. 탈(脫)근대를 말하면서 서구 모더니즘의 틀에 갇혀있는 꼴이다. 그런 고정관념과 함께 과도한 단순화에서 오는 무리함이 눈에 뜨이지만, 허황한 꿈은 전혀 없어 마음에 든다. 즉 미래는 저 높은 신성(神性)으로 올라가 구름처럼 떠다니는 게 아니라는 것,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온다는 인식이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의 자기실현을 담은 이 책은 대표성이 충분하다. 89년 초판본을 개정한 99년판을 번역한 이 책은 미국 대학의 필독서. 미래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몇 해 전 작고한 저자는 뉴욕주립대 빙엄턴대 교수였고 앨빈 토플러 급의 미래학자로 꼽힌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wowow@joongang.co.kr ▶조우석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att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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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정호] 페페로니 전략 옌스 바티트너 지음, 배진아 옮김, 더난출판, 248쪽, 9000원

남들이 '예스(Yes)'라고 대답할 때 '노(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돼라. 어느 기업의 CF가 당장 떠오른다. '아니오(No)'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태도다. 물러터진 성격으론 세상 살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아니오'는 공격적이다. 적자생존의 일터에서 살아남으려면 '비둘기파'보다 '매파'가 유리할 수 있다. 아니, 경험적으로 볼 때 거의 그렇다. 교육학.범죄심리학을 전공하고 기업 컨설턴트?활동하는 저자의 굳은 믿음이다. 성공을 원한다면 상사든 동료든 주변에 '매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운맛? 그렇다. '페페로니 전략'의 저자는 이를 '건강한 공격성'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내 안에 숨어 있는 20%의 매운맛을 찾으라"고 채근한다. 이해.배려.관용.양보 등의 덕목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생활백서로 되살아난 마키아벨리쯤 될까. 철저한 현실주의다. 권력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도 치밀하다. 상대에게 착취.이용당한 뒤 분노와 좌절감에 알코올을 삼키기 전에 자신의 '매서운 면'을 향상시켜 멋지고 건강한 삶을 살라고 권한다.

언뜻 비정해 보인다. 나아가 비장감도 느껴진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매운맛'은 경쟁이 불가피한 직장에서만 발산하라는 것. 가정에선 자상.인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참으로 어려운 주문이다. 그만큼 팍팍한 세상이라는 뜻일까. 페페로니는 매운맛이 강한 서양고추. '무늬'만 고추일 뿐 맛은 달콤한 파프리카와 정반대 개념으로 사용됐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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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신홍] 영화로 읽는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로 읽는 현대 문화

김희진 지음, 동인, 268쪽, 1만1000원

평생 33편의 희곡을 썼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당시 인기 작가였다. 대사 한마디에 관객들은 울고 웃었으니까. 그런 그가 20세기 대중문화의 중심 코드로 다시 태어났다. 400년이란 장벽을 뛰어넘어 지금 활발하게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동시대 작가인 셈인데, 책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왜 셰익스피어인가. 왜 서구 사람들은 여전히 셰익스피어에 집착하는가. 저자는 이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지난 100년간 셰익스피어 희곡 중 가장 많이 영화화된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3편을 천착했다. 이 작품들이 각 시대에 어떻게 영화화됐는지 따져본 것이다.

문학작품 수용사이자, 장르 간 몸 바꾸기의 역사 추적의 결과가 흥미롭다. 한 작품이 1930, 60, 90년대에 각가 전혀 다른 스타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조지 쿠커, 프랑코 제피렐리, 바즈 루어만, 존 매든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소재만 같을 뿐 형식과 강조점이 판이하게 달랐다. 이에 대해 필자는 "각 시기의 감독들이 셰익스피어라는 가장 대중친화적인 소재를 빌어 자신의 시대와 문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셰익스피어 영화의 변천사는 현대 서구 문화의 흐름을 따라잡는 기회다.

나아가 저자는 셰익스피어 영화를 '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읽을' 것을 제안한다. 단지 영화를 통해 셰익스피어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셰익스피어 영화를 생산하고 소비한 그 당시 문화를 함께 경험한다면 훨씬 풍부하고 즐거운 '읽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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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채인택] 기상천외 과학대전

로버트 매튜스 지음, 이영기 옮김

갤리온, 215쪽, 1만1000원

평소 궁금했던 게 하나 있다. 숙취는 술의 부산물인 메탄올에 의해 주로 생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술에 메탄올이 많이 들었을까? 영국의 유명 과학 저술가인 '기상천외 과학대전'의 지은이는 대략 술의 색이 진할수록 메탄올이 더 많다고 알려준다. 메탄올은 술에 깊은 맛과 향, 그리고 색깔이 생성될 때 함께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색.맛.향이 강한 코냑에 가장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이 적포도주.럼주.위스키.백포도주.진.보드카 순이다. 알아두면 적지 않게 도움이 되는 과학의 지혜다. 보너스로 숙취 해소에 좋은 약도 소개한다. 물이 효과가 좋으며 궁극적인 치료제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우리가 살아가며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것부터, 밤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황당한 궁금증까지 과학에 대한 온갖 의문을 쉽고 섬세하게 가르쳐 준다. 지은이는 과학이 카드놀이보다 다섯 배는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도 다룬다. 남자도 유방암에 걸릴 수 있는데 이를 잘 몰라 발견 시기가 늦어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이 왕왕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 것이 한 예다. 뇌에는 통증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없어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하고 고민에 빠져도 그게 두통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미처 생각조차 못했던 과학 상식도 줄을 잇는다. 해발로 따지면 8850미터의 에베레스트산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지구 중심에서 가장 먼 곳을 기준으로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구는 완전한 구형이 아니고 적도 주변이 불룩 튀어나왔기 때문에 적도에서 가까운 남미 에콰도르의 침보라소 산이 지구 중심에서 가장 멀다. 이 산의 해발 높이는 6309m이지만 지구 중심에서의 거리는 에베레스트산보다 2134m 더 멀다.

축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페널티킥이 11m를 지나 골 라인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5초. 이는 보통 사람의 반응 속도와 같다. 그래서 미리 공이 오는 방향을 짐작해 몸을 날리지 않으면 페널티킥을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공을 차기 직전 0.2초 동안의 몸짓을 보고 방향을 알아차릴 수는 있다고 한다. '페널티킥을 앞둔 골키퍼의 불안'이 여기서 비롯됐나보다.

채인택 기자 ciimccp@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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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6-1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취해소에 궁극적인 치료제는 시간이군요....아 시간이 모자랍니다. 오늘 점심약속이 있는데 집안일도 해야하궁. 더불어 숙취해소도 해야하는데...

보슬비 2006-06-1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해리포터님 바쁘시겠네요. 술마실때 너무 기분이 업되서 가끔 다음날 힘든것도 잊어버리게 되는것 같아요. ^^
 


[중앙일보 기선민] 고양이 소녀

부희령 지음, 생각과느낌, 224쪽, 8800원

흔하디 흔한 책 홍보 문구같은 얘기부터 해야겠다. '고양이 소녀'를 펴는 순간, 첫 문장부터 빨려들기 시작했다고. "오랫동안 나는 망설였다. 거리를 떠돌며 엄마를 계속 찾아다닐 것인가, 아니면 편안한 잠자리와 먹이를 위해 사람을 길들일 것인가를. 하지만 그 애를 발견한 순간 내 고민은 눈 녹듯 사라졌다…."

눈치챘겠지만, 일본 작가 나스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 소설의 화자는 '야옹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도둑고양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갇혀지낼 수밖에 없다면 그건 진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떠돌이 고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녀 민영을 만나면서 야옹이는 "심장이 쿵쿵 뛰면서 무엇인가 나를 확 잡아끄는 느낌"이 든다. 민영은 바로 '고양이 사람'이었던 것이다.

고양이 사람? 야옹이의 엄마가 들려줬던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쓸데없이 한데 뭉쳐서 살잖니? 서로 할퀴고 물어뜯으면서도 떨어질 줄 모르지. 하지만 고양이 사람들은 달라. 우리처럼 필요한 거리를 지키며 혼자 살아가는 당당함을 즐기지. 고양이 사람들은 같이 살기에 가장 좋은 동물이라고 하더라."

'고양이 소녀'는 곁 주기를 싫어하는 깔끔한 동물 고양이의 입을 빌어 정을 갈구하지만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소녀의 내면을 묘사한다. 민영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재혼해 따로 산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민영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둑고양이를 주워다 인터넷 고양이 동호회 회원들에게 판다. 민영은 야옹이를 학교를 잠시 쉬고 있는 부잣집 소년 한이에게 넘긴다. 부모의 정을 느낄 새가 없었던 민영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데 익숙지 못하다. 그래서 자신 곁에 머물고 싶어하는 야옹이도 팔고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한이에게도 선뜻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고양이 소녀'의 흡인력은 고양이의 얘기가 사람의 얘기로 바로 치환돼 읽히는 데 있다. 그 형식이 퍽 새롭고 매력적이다. 엄마 품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야옹이 처지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민영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먹다 남은 과자 한 조각을 던져 준 것으로 나를 제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무례한가?"라며 사람을 경계하던 야옹이.

그러나 민영과 한이와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가만히 보면, 서로 물고 뜯고 할퀴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데 어울려 사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민영 역시 점차 자신의 성을 허물고 한이와 고양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 과정과 결론이 전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점 덕택에 '고양이 소녀'의 책장을 덮는 뒷맛이 산뜻하다. 오랜 만에 만나는, 괜찮은 성장소설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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