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정명화 기자]
 
ⓒ2006 서해문집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근사한 자기만의 서재를 꿈꿀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쏟아질 듯 많은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만 보아도 그들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질 것 같다. 아름다운 서재를 가꾸는 일,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책을 모으기란 쉽지 않고, 좁은 공간에 그 많은 책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도 힘든 까닭이다.

<작가의 방>에는 여섯 명의 문인들의 서재가 소개되어 있다.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서재 사진과 그림이 글 못지않게 참 좋다. 언제부터 이런 그림들이 좋아지게 되었을까. 손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안희원의 그림은 자꾸만 책을 펼쳐보게 만들었다.

먼저 이문열의 서재가 소개되어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사진이 전면에 펼쳐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재가 아니라 도서관 같은 분위기로 이문열에게 이곳은 '머리를 싸매고 난해한 고전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자신의 새로운 글을 길어 올리는 창작의 산실'이었다.

이문열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재를 모아 새로운 문학 수업의 틀을 세우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버지니아 울프가 속해있던 영국의 블룸즈베리 그룹 같은 하나의 문학적 그룹을 형성하려는 야심'을 지닌 작가다. 오래 전부터 꿈꿔온 '문학 지망생을 위한 서원건설'이라는 야심을 실현하는 현장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김영하는 집에 있는 서재 대신 교수 연구실을 공개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이곳이 '고래 뱃속' 같단다. 그 까닭은 고래 뱃속처럼 어두컴컴했기 때문이라고. 또한 그의 소설에 그림과 관련된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까닭이라고 했다.

주변 환경과 건물은 밝고 화사하지만, 자폐아 방 같다는 그의 서재는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뱃속처럼 유독 폐쇄적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지만, 만만하지 않은 창조와 창작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이 그의 방이라고 덧붙인다. 서재에는 3백 권쯤 돼 보이는 책이 있는데 좁은 연구실로서는 적은 편이 아니며 자연 과학 서적은 집에 대부분 집에 두었다 한다.

1주일에 한 번씩 꽃집에 들러 꽃을 사 온다는 강은교의 서재는 어떨까. 저자가 이 집을 방문했을 때는 하얀 글라디올러스와 보라색 여름국화가 조화로워 보였다고 한다.

그는 북쪽 서재의 창가로 데리고 가더니 창턱에 걸터앉는다. 바깥 창과 안쪽 창 사이에 반달 모양의 공간이 있다. 한 사람이 올라가 다리를 펴고 앉으면 딱 그만큼의 공간이 남을 정도다. …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도 하지만, 그곳은 그에게 하찮은 일상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를 주는 공간이다. 또한 시상과 소재를 불러 모아 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귀엽기조차 한 공간이다. 삶의 쓸쓸함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모퉁이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듯, 사진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햇볕이 잘 드는 이곳을 시인은 '은포'라 불렀다.

딸과 둘이 생활하는 시인은 푹푹 찌는 여름 날씨에도 천식기가 있어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두지 않고 부채로 여름을 난다. 베란다에 있는 동양란과 여러 화초들, 창밖으로 보이는 뒷산으로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지방에 있다 보니 문학 강연회에 자주 초청을 받게 된다는 시인은 아마추어 시인들과 호흡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자신의 서재를 '오락실'이라고 표현하는 공지영의 서재는 우아했다. 유럽풍 가구들이 이채로웠다. 아이들 등교를 도와준 후 집 서재에서 원고를 쓰고 잘 안 써지면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이 책 저 책을 빠른 속도로 읽기도 하다가, 문득 필요한 책이 생각나면 인터넷을 검색해 주문을 하고, 근처 마트나 백화점으로 시장도 보러 가는 공지영의 일상을 저자는 자상하게 들려준다.

예전에는 한 달에 책을 100만원 어치나 사기도 했다는 공지영의 서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방이었다. 고풍스런 유럽가구의 역할이 컸던 걸까. 책과 잘 어우러진 모습은 여성 취향에 딱 알맞아 보였다.

김용택 그의 서재는 세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와 섬진강가의 고향 집, 전주의 아파트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그를 탁월한 시인으로 키워 낸 가장 원형적 공간은 섬진강과 고향 집이라고 했다. '끊이지 않고 유장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의 물빛과 물소리, 강에 드리워진 산그늘은 그를 키워준 시적 자양'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고향집과 아파트의 서재를 한 면에 대조적으로 배치해 둔 사진이 인상적이다. 하나는 고전적이고 나머지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앉은뱅이책상과 의자가 있는 책상이 각각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것 같다.

섬진강가의 조약돌은 오랜 세월 물결에 떠밀려 서로 부딪치며 둥글게 마모돼 간다. 어느덧 그의 얼굴에서도 젊은 날의 강퍅함보다 마음 좋은 시골 시인의 풍모가 넉넉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변치 않는 것은, 그 속에서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의지인 듯싶다.

-본문 중에서.


마지막으로 신경숙의 서재다. 책에 소개된 여섯 개의 서재 가운데 나는 신경숙의 서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서재를 꾸미게 된다면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부터 큰 거실이 하나의 서재였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편 남진우와 겹치는 책이 많아 자신의 책은 부모님 집으로 내려 보냈다는 데도 책이 무척 많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대형 책장 세 개가 있어 책이 빼곡한데 이채로운 공간이었다.

옅은 색 원목 책장에서 스며 나오는 밝음과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책을 구입할 때 함께 주었던 엽서 속에도 나오는 이 모습을 나는 책상 벽에 붙여 두었다.

새벽잠이 없는 편이라 새벽에 쓰는 것이 습관이 됐다는 신경숙은 그 시간은 전화도 안 와서 방해도 안 받고, 그래서 집중도 잘 된다고 했다. 매일 글을 쓰지는 않고 하루 몇 시간씩 정해두고 작업하지도 않으며, 자정 무렵 쓰기 시작하는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책에 소개된 문인들 서재의 공통점은 책이 참 많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 독특한 모습의 서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소박하지만 소중하고 가치있는 나만의 서재를 꾸미고 싶은 마음이 시나브로 몰려왔다. 그것은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꾸게 될 행복한 꿈이 아닐까.

/정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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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곽진성 기자]
 
▲ 박정욱이 지은 <그림 속 연인들>
ⓒ2006 예담
사랑의 감정은 아름답다. 머릿속이 한 사람으로 가득 찬다. 심장은 두근두근 뛴다. 그 혹은 그녀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면 죽을 듯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그렇기에 그런 사랑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은 결코 기교나 기술 같은 게 아니다. 사랑은 진실함 그 자체이다. 그림은 그런 사랑의 순간을 포착, 담아낸다.

화가가 담아낸 순간은 그래서 빛나고 진실하다. 화가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사랑을 그림 속에 달게 녹여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후에 사람들에게 수도 없이 회자되는 명작이 되었다.

박정욱이 쓴 <그림 속 연인들>은 그런 명작들에 등장하는 연인의 이야기다.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를 비롯 에로스와 프시케, 나폴레옹과 조제핀 등 많은 연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중에는 소설 속 허구의 인물도 있고 실존 인물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 속 그들은 한결같이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명작들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그림 속의 연인들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이니까, 윌리엄 호가스의 '연인', 그리고 자크 루이 다비드의 '파리스와 헬레나'를 보면 그림 속 연인들의 행복감에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하지만 비단 연인들의 사랑에 행복만이 자리 잡았던 것은 아니다. 사랑이란 테두리 안에 내재된 갈망, 이별, 그리움, 염원, 질투심 같은 것들은 언제나 사랑의 행복함을 위협한다.

 
▲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2006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완성' 그리고 '기다림'은 사랑에 대해 애절하고 간절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그림이 주는 강렬성, 그리고 인물과 한 몸을 이루는 그림의 배경 탓일까? 아니면 우리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사랑의 애절함 때문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이런 설명을 한다.

사랑을 하면 세상은 갑자기 다른 빛을 띄기 시작하고 추상의 색으로 물든다. 마치 긴 외투처럼 그 색은 우리를 감싸고 일상적인 의식을 서서히 증발시켜 버린다. 마침내 우리는 그 추상적 색에 취해 자신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황홀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p36.


저자는 그림 속 연인들이 나누었던 사랑의 여러 감정을 잘 풀어서 이야기해 준다. 저자의 이런 유려한 설명은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그림의 감흥을 언어의 상태로 바꾸어내는 저자의 노력 앞에 그림 속 연인, 그리고 그 그림을 그려낸 화가가 바로 가까이 있는 듯하다.

이별의 순간을 담아낸 그림들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별이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죽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담은 그림들이다. 안 루이 지로 데 트리오종의 '이탈리아 장례식', 자크 루이 다비드의 '헥토르의 시신에 대한 안드로미크의 고통과 후회' 그리고 프랑수아 페리에의 '플루톤과 프로세르핀 앞의 오르메우스'다.

사랑하는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죽자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되찾으려고 하계로 내려간다. 지옥의 신과 담판을 벌여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꺼내 데려왔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순간에 에우리디케를 돌아보는 실수를 저질러 그녀는 지옥의 문턱에서 돌이 되고 만다. 슬픔에 잠긴 오르페우스는 죽은 뒤에 다시 저 세상으로 에우리디케를 찾아간다. 사랑은 어느 한족이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저 너머까지 사랑은 함께 한다.

-p207.-


'플루톤과 프로세르핀 앞의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연인을 구하러 지하세계로 달려간 오르페우스의 한줄기 희망이 비친다. 오르페우스가 지하세계에서 아름답게 노래 부르는 광경, 슬프고도 애절한 그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죽음마저 넘나들었던 연인과 그들의 사랑을 그려낸 그림, 그 뜨거운 상상으로 가슴 벅찬 명작 속 연인들이 탄생했다.

<그림 속 연인>들은 이렇듯 사랑의 다양한 광경을 보여준다. 찬란히 사랑했던 연인들을 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옛 과거의 명작이 아니다. 그 연인들의 모습에는 사랑하고 있고, 또 사랑해야 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깊게 자리 잡아 있기 때문이다.

/곽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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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마카오에 가서는 함부로 부채를 만지작거려선 안 될 것 같다.

부채 동작만으로 뜻을 전달하는 부채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까딱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부채를 펴서 얼굴 아랫부분을 가리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이고, 손잡이로 입술을 두드리면 ‘키스해 주세요’, 펼쳤다 접었다 하면 ‘당신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라고. 중국 연인들은 부채 대신 부채 그림이나 부채추를 사랑의 징표로 주고받는다.

부채 선(扇)자가 헤어짐을 나타내는 산(散)자와 음이 같아 부채를 선물하면 이별하게 된다는 속설의 영향이다.

소설 ‘홍루몽’에서 보옥이 ‘소매 속에서 부채를 꺼내 끝에 달린 옥구슬 장식을 풀어’ 기관에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 부채는 순임금이 요임금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뒤 의장용 부채인 오명선(五明扇)을 만든 게 효시라고 전해지며, 3000년간 옥석을 걸러내는 과정을 거쳐 공예품으로 발전한다.

부채의 기능은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물리치고 햇빛을 가리고 불을 지피는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이었지만, 중국에서는 문학 작품을 비롯해 희곡·민속·군사·무협·TV·의약·가무·시사가부(詩詞歌賦) 등과 결합하면서 풍부한 의미와 깨달음을 전달해 주는 일종의 문화적 언어를 만들어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일반화한 요즘도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이나 풍류를 나타내는 기호품으로 널리 사용된다.

후속으로 나올 ‘차의 향기’ ‘요리의 향연’과 함께 ‘교양으로 읽는 중국 생활 문화’ 시리즈 제1권으로 나온 ‘부채의 운치’(저우위치 지음, 박승미 옮김, 산지니)는 중국 문화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채의 모든 것을 담았다. 부채의 연원과 예술품으로서의 위상, 문학작품의 수용 양상, 혼례·장례 등 생활 속 용례를 설명하고 부채의 모양을 본뜬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등 문화사 측면에서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중국 경극의 거장 메이란팡(梅蘭方)은 공연 때마다 아름다운 부채 기술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귀비취주(貴妃醉酒)’에선 부채를 빌려 양귀비의 취한 모습과 복잡한 내면세계를 정교하게 형상화했다. 곱고 화려한 부채가 소품으로서 똘똘한 역할을 한 덕분에 주인공의 연기가 빛을 발한 것이다.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제갈량은 항상 깃털 부채(羽扇)를 들고 푸른 윤건(輪巾)을 둘러 소탈함과 자유를 표방하며 군사를 지휘하는 멋스러운 풍모를 자아낸다. 우선·윤건·학창의·4륜수레 세트는 공명의 상징이 되어 그가 죽은 다음에도 힘을 발휘한다. ‘서유기(西遊記)’에서는 손오공이 불경을 구하러 인도로 가다가 800m의 화염산(火焰山)에 가로막히자 철선공주한테서 세 번이나 파초선을 빌려 49번 부채질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불씨를 완전히 끄고, 세찬 비를 내리게 해 무사히 화염산을 지난다는 내용이다.

금병매’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부채는 천하의 바람둥이 서문경의 극에 달한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상징한다. 서문경은 당시 사천 지방에서 생산되던 명품 ‘진금 사천부채’와 ‘금박 사천부채’를 들고 여인들을 희롱하고, 기녀 이계저는 서문경과 함께 놀면서 소매에서 춘화가 그려진 춘선(春扇)을 꺼내든다. 반금련은 비단 부채인 환선(紈扇)과 합환선(合歡扇)을 들고 월낭과 노름을 하거나 후원에서 나비를 잡으며 더위를 피하곤 했다.

부채의 운치 교양으로 읽는 중국 생활 문화저우위치 지음/박승미 옮김산지니/2만5000원


부채는 예술품으로서도 한몫 하고 있다. 1980년대 쑤저우 부채공방은 겨우 성냥갑만한 부채에 당시(唐詩) 300수를 새겨넣어 그 정교한 기술을 뽐냈다.

1986년 위신창은 손톱 절반 크기의 소형 부채에 글자 385자를 적어 혀를 차게 했다. 우리나라에 부채춤이 있듯이 중국 문화에서도 다양한 부채 무용이 등장한다. 특히 중국 강남 채차무(採茶舞)의 무용수는 왼손에는 차 바구니를, 오른손에는 채색 부채를 들고 자신의 슬픔과 기쁨을 노래와 춤에 환상적으로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혼례·장례 문화에서도 부채는 빠질 수 없다. ‘각선지석(却扇之夕)’은 ‘부채를 치우는 밤’이라는 뜻으로 신혼 초야를 의미한다. 초상집은 문 앞에 흰 부채를 걸어두어 상가임을 알렸다. 공예미술품인 부채는 조경 건축의 세계로 들어가 부채가 갖고 있는 형태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부채 모양의 창문을 내고 날아갈 듯한 곡선의 환형 지붕을 올리는가 하면, 아름다운 정자와 누각에는 부채 모양의 편액에 이름 있는 ??대가들의 글씨를 실어 멋을 한층 드높였다. 옆에 놓인 부채가 새삼스럽다.

부채의 운치

교양으로 읽는 중국 생활 문화저우위치 지음/박승미 옮김산지니/2만5000원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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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경희] 나는 이렇게 113kg을 뺐다

닉 이판티디스 지음, 김태 옮김

넥서스BOOKS, 236쪽, 9000원

체중감량에 성공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온 세상이 '슬림(slim)'을 부르짖는 와중에 보통 사람의 몇 배쯤 되는 살덩어리를 달고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필자처럼 직업이 "제 말만 들으세요, 제 행동은 따라하지 마시고요"라고 환자에게 말해야 하는 의사라면 양심의 가책에도 시달려야 한다.

그러나 미국 지역보건센터 의료부장으로 일하던 필자는 212kg에 달하는 몸무게를 줄일 생각이 없었다. 비록 몸이 끼어버릴까봐 팔걸이가 있는 의자엔 앉을 수 없고 비행기를 탈 땐 옆 좌석 사람들의 경멸 어린 눈빛을 감당해야 할지라도….

그러나 30대 나이에 결혼은 커녕 연애도 못해보고 고환암 수술을 받은 뒤 필자는 다이어트에 인생을 걸었다. 방법은 다소 극단적이었다. 전국을 돌며 야구 시합을 몽땅 관람하면서 모든 음식을 끊고 단백질 보충제와 물만 섭취해 100kg까지 체중을 줄이기로 목표를 세웠다.

식욕을 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백질 보충제로 들끓는 위장을 달랜다. 남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만족하는 '관식증(觀食症)'까지 생긴다. 그래도 필자가 좋아하는 야구를 보며 그 모든 유혹을 견뎌낸다. 물론 야구장의 작은 의자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걸치기란 쉽지 않다. 팔걸이가 없는 장애인석에 슬쩍 앉으면서 "난 덩치가 너무 커서 일반 좌석에 앉을 수 없는 장애인"이라고 독백하기도 한다. 다행히 비만이란 장애는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8개월 만에 99kg으로 몸무게를 줄였다. 이후 꾸준한 운동으로 96kg가량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의사의 전문 지식과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다이어트 가이드라인을 제안한다. 마음가짐.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바꿔야 다이어트에 성공한다는 진리에 더해 세부적인 지침까지 전한다. 손쉬운 다이어트의 유혹에 시달리거나 생사의 갈림길에 설 만큼 뚱뚱하다면 그의 조언에 귀기울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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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재숙] 돈이 되는 미술

김순응 지음, 학고재

264쪽, 1만2000원

제목 한 번 솔직하다. 내놓고 미술로 돈을 벌어보자고 부추긴다. 부제는 '성공하는 미술 투자 노하우'. '주식 투자 실전법'처럼 '미술 재테크 안내서' 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사야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지 첫 걸음부터 가르쳐준다. 조만간 미술품 투자가 붐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 책 바탕에 깔려 있다.

지은이는 '그림 값 부르는 남자' 김순응이라 돼있다. 김순응(53)씨는 국내 양대 경매사의 하나인 K옥션 대표. 경매 진행자인 경매사 노릇을 즐겨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20여 년 금융 기관에서 일하며 미술애호가를 자임하다 경매회사에 초빙됐다."돈과 관련된 공부를 했고, 돈 다루는 일만 하다 돈이 되는 그림에 일찌감치 눈떴다"는 필자 소개가 재미있다.

"미술품을 오로지 예술로만 바라보는 것은 구태의연한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점차 미술품이 하나의 대체 투자자산(Alternative Asset Class)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돈이 많든 적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잘만 하면 언젠가 10억 원이 될 작품을 지금 100만 원에 살 수 있다."

귀가 솔깃한 투자 초대다. '언젠가'라는 막연한 기약이 좀 걸리지만 1000배 장사가 어디 쉬운 일인가. 주식과 부동산에서 빠진 뭉칫돈이 미술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분석 또한 입맛 당기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 참에 미술품에 투자 좀 할까' 쯤으로 덤벼들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고 지은이는 경고한다. 멋도 모르고 뛰어들기에는 미술품이 몹시 까다롭고 어려운 투자 종목이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사모으는 컬렉션의 기본부터 컬렉터의 다양한 모습, 미술품 값의 속사정, 경매장 들어가기, 한국 미술시장 트렌드, 숨은 보석 찾기까지, 현장에서 비싼 수업료 치르며 몸으로 익힌 투자 정보와 바람직한 자세를 차근차근 일러준다.

경매 얘기가 많은 것은 지은이가 경매사 대표인 까닭도 있지만 "우리도 점차 경매를 중심으로 한 미술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나름의 방향타를 잡은 데서 온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2위를 다퉈온 반 고흐와 파블로 피카소 작품의 경매 현장을 생중계한 듯한 '세기의 경매' 대목은 소설처럼 읽힌다.

지은이가 알짜만 골라 따로 쓴 '돈이 되는 가이드' 몇 가지를 맛뵈기로 소개한다. △ 내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은 남도 안 산다 △ 돈 없고 눈 있으면 테마 컬렉션을 시도하라 △ 단 한 점이라도 직접 사봐야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 작품과 작품가를 반드시 입력해두라 △ 도록이나 포스터에 실린 작품을 노려라 △ 경매가를 맹신하지 마라 △ 가격이 막 오르기 시작한 작품을 사라 △ 믿을 만한 곳에서 사라 △ 트렌드를 주도한 작품을 사라.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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