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잠깐독서

‘밥’이라는 소재로, 기발한 상상력을 양념삼아 19편의 이야기를 비벼낸 만화 무크지가 나왔다. “시들어가는 만화시장에 힘을 불어넣겠다”며 청강문화산업대와 거북이북스가 손잡고 내놓은 코믹무크지 1호 이다. 잡지와 단행본의 장점만을 살려, ‘하나의 키워드’를 주제로 한 새로운 매체를 내놨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실험’이라 할만하다.

문흥미, 박무직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들부터 만화과 출신의 젊은 작가들까지 다양한 ‘밥상’이 차려진다. ‘밥’의 정의는 이야기마다 각양각색. 결혼 못한 아들·딸의 안부가 궁금할 때 핑계삼아 ‘밥은 먹고 다니냐?’ ‘밥이 보약이야’라고 전화하는 부모님에게 ‘밥’은 소통의 한 방편이다(박순구 ‘BOB’). 좋아하는 여자의 ‘뭐 먹을래?’라는 한마디에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듯이 먹어 뚱보가 된 남자에게 ‘밥’은 감춰진 성욕을 뜻하고(석정현 ‘뭐 먹을래?’), 자신을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강아지에게 ‘밥’은 주인‘여자’를 향한 사랑의 또다른 표현이다(문흥미 ‘맘마’). 밥(Bob)이라는 외국인을 등장시키거나(삼박자 ‘Bob 전설’), 밥과 총각김치 사이의 동성애를 그리는(박무직 ‘숟가락님이 보고 계셔’) 등의 상상력은 애교가 넘쳐난다.

‘가벼운’ 상상의 나래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지방 70㎏을 흡입한 징그러운 유충을 ‘콜레스테롤도 전혀 없는 건강식’이랍시고 비싼 돈을 내고 다시 먹는 여자 이야기(정철 ‘나나니 다이어트 클리닉’)는 지나친 다이어트 열풍을 비꼬고, 비닐하우스에 혼자 살던 초등학생이 자기가 밥 먹여주던 도사견에게 물려 죽은 실제사건을 재구성한 이야기(최호철 ‘철망바닥’)는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만화시장에 던져진 이들의 고군분투 ‘게릴라전’은 ‘에로틱’이라는 소재로 9월에 펴낼 무크지 2호에서 이어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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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깝다 이책

작년에 부산이라는 지방에서 출판사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어 <반송사람들> 저자 고창권 선생을 만났다. 고창권 선생은 간호사였던 아내가 다니는 병원 원장으로 인연이 되어 10년 전부터 알고 지냈다.

출판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만나는 사람마다 “글 한번 써 보시죠”, “책 한 권 내보실 생각 없으세요?” 하고 물어보는 일은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으레 “아이. 내가 뭘…” 하고 말꼬리를 내리기 일쑤이며,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저자도 그랬다. “내가 뭐 한 일이 있다고 책을 쓰나?” 하고 농담으로 넘기곤 했다. 하지만 10년 동안 그가 반송에서 개인병원을 하면서 반송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한 일은 결코 그렇게 쉽게 넘길 일만은 아니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고, 충분히 책으로 낼 가치가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었다.

“진담이가?”

저자는 결국 나의 집요한 청탁에 손을 들고 말았다. 여름휴가를 깡그리 반납한 채 원고를 써서 보내왔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은 우리 출판사의 두 번째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저자는 10년 전에 부산 반송지역에 병원을 열었다. 그의 고향이기도 한 반송은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부산 도심 재정비 사업으로 도심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정착한 마을이다. 부산에서도 반송하면 ‘못사는 동네’, ‘교통도 안 좋고,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동네’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반송은 2005년 전국 주민자치 박람회에서 당당하게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지역을 위해, 마을을 위해 헌신한 반송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반송 사람들의 10년 동안의 활동 기록이다. 행복한 삶은 먼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으며,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이야기다.

어린이날이면 밀리는 차를 타고 놀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놀이마당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추진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외면하기도 했지만 올해로 8회째를 맞는 ‘반송 어린이날 놀이한마당’은 다른 지역에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일부러 찾아오는 행사가 되었다.

구석진 놀이터 시멘트 벽면에 화사한 그림을 그려 넣고, ‘좋은 아버지 모임’을 만들어 아이들 교육에 함께 고민하고, ‘마을신문’을 만들어 내는 등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금 반송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결코 내용이 얕은 책이 아님에 비해 신생 출판사의 역량 부족인지, 지역 출판사에 대한 선입관 때문인지 이 책은 종종 자비출판으로 오해를 받았다. 총판에서도 처음에 겨우 100권을 전국 서점에 유통시켰을 뿐이다. 서점에서 화려하게 표지를 장식한 다른 책들과 나란히 누워있는 이 책을 보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서점 관계자들에게 표지가 너무 촌스럽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책 판매에 있어서 표지가 반이라는데 표지에 좀 더 투자를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반 독자들한테는 외면을 받았지만 전국 도서관에서는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는 편이고, 뒤늦게 전국 NGO 대학이나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기도 해서 위안을 삼고 있다.

강수걸/산지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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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국 춘추시대 사람인 공자(BC 552~BC 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50~56세에 노나라에서 반짝 관리생활을 한 것 외에 74세에 죽기까지 유세했으나 세일에 실패하고 제자 교육으로 돈 게 전부다. 확실한 그의 저작은 제자들이 정리한 <논어>.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천개. 교육자, 철학자, 정치 사상가, 문학자, 편집자…. 그의 가르침은 유가, 유교, 유학 등 역사적 환경에 따라 학문과 정치, 또는 종교 사이를 오갔다.

20세기 중국만 해도 그의 운명은 극과 극을 오르내렸다. 일본에 예속됐던 1919년 5·4운동 때, 공자는 타도의 대상, ‘도둑놈 공자(盜丘)’였다. 그의 예교질서가 중국을 식민지보다 못한 차식민지로 전락시켰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그는 ‘천하의 몹쓸놈’이 됐다. 곡부 대성전 안의 공자상은 눈을 뽑히고 배에 구멍이 뚫리고 급기야 밖으로 끌려나와 거리에서 부숴졌다.

1930년대 중후반 국민정부에서 공자는 숭앙의 대상이었다. 당정은 탄신기념일을 지정하고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어 민족정신의 고양, 민족의 영예 유지의 구심점으로 선전했다. 그후 70년이 지난 21세기 벽두에 공자는 다시금 상징조작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차원에서 300~500권 분량의 <유장>(儒藏)을 내기로 하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렇듯 중국인들은 중대 국면마다 공자를 정리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파괴해야 할 대상, 현창할 대상으로 천양지차일 망정…. 중대한 국면이란 근대성 획득, 또는 국민국가 수립·발전 등 형태가 다르지만 ‘강한 중국’을 지향한 점은 일치한다.

왜 공자인가. 공자와 그의 가르침은 2000년 이상 깊숙이 뿌리내려 중국의 문화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요소가 되었기 때문. 넓은 땅,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탓에 권력 담지자들한테 통합기제는 중요하다. 그들에게 공자 말고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공자, 현대 중국을 가로지르다>(새물결 펴냄)는 20세기 초 대중소설과 누드크로키를 둘러싼 공방을 통해 전근대-근대 사이에서 공자(혹은 유교)가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검토하고 근대 상하이 문묘의 기능 변화, 문화대혁명에서의 ‘비림비공’, 최근의 국학열 등을 통해 어떻게 권력이 공자를 문화적 상징으로 삼았는지를 분석한다.

공자라는 돋보기를 통해 현대 중국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유쾌하다. 게다가 국내 학자들에 의한 시도임에랴.

주목되는 것은 비림비공 시기 조기빈에 의한 논어의 이데올로기적 해석. 그에 따르면 공자는 노예주를 옹호하는 사상가다. 공자는 세습귀족 편을 들면서 해체되고 있는 서주 노예제를 회복하려고 생각했다고 해석한다.

선생 왈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공경하게 하고 믿게 하며, 비용을 절약하고 인(人)을 중용하며, 농한기에 민(民)을 부려야 한다”(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논어 ‘학이’). 여기서 인과 민은 각각 지배층과 피지배층. 인은 정치적 중용의 대상이고 민은 농한기에 부림을 당하는 대상이다. 즉 공자는 노예주와 노예,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엄격하게 구분했다고 본다.

선생이 자하에게 이르기를 “너는 군자 유가 되고 소인 유가 되지 말라”(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논어 ‘옹야’). 여기서 군자와 소인은 각각 세습귀족, 신흥지배층. 춘추시대 생산력의 발전과 전쟁의 확대로 정전제가 무너지면서 사유제가 발생한다. 당연히 벼락부자(소인)와 몰락귀족(군자)이 생겨나고 두 계층은 정전제를 싸고 계급투쟁을 벌인다. 공자는 군자를 찬미하고 소인을 공격하였다는 거다. 또 공자가 죽인 소정묘(少正卯)는 세습귀족을 비판하고 그 정권을 뒤엎으려 했던 소인파의 대표 지식인으로 본다. 제자들도 군자파(안연, 민손, 자유, 자하, 증삼)와 소인파(자로, 자공, 재아, 염구, 자장, 유약, 번지)로 나뉘는데 공자는 주로 전자를 칭찬하고 후자는 비판한다. 이것만 읽어도 본전은 뺀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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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원로 소설가 최일남(74)씨가 13년 만의 새 산문집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현대문학)를 펴냈다. 소설에서나 신문 칼럼에서나 쫀득쫀득한 글맛으로 호가 난 작가이니 만치 산문들 역시 읽는 재미가 쑬쑬하다.

표제작은 작가로서 또 기자로서 평생을 글을 쓰며 살아 온 그이가 자신의 손, 특히 “오른손 가운데손가락에 삐주룩이 돋은 옹이”를 내려다보며 반추하는 손과 글쓰기에 관한 사색이다. 어린 시절의 몽당연필에서 시작해 촉을 갈아 끼우는 펜대와 붓대를 거쳐 볼펜과 만년필로 이어지는 필기도구의 변천사를 그의 손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머리의 명령을 때로 거부하고 제 길을 가는 손의 ‘고집’에 관한 이야기다. “머리가 제시한 단어를 어김없이 따라 쓰다가도, 맘에 들지 않으면 당장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다. 이의를 다는 데 머물지 않고 이 말은 어떠냐는 투로, 대신할 대자 대안까지 곧잘 꺼내 보인다.” 손이 제시한 대안을 때론 받아들이고 때론 거부하기도 한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

<키로 말하면>은 작가의 작은 키에 얽힌 사연들이다. 작은 키에 유난히 민감했던 어린 시절에는 “세계 위인 중에서 키 작은 인물의 이름만 스무남은 명까지 외웠다.” 녹두장군, 강감찬, 채플린, 아인슈타인, 나폴레옹 등은 그 가운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몇몇이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교실에서나 조회 서는 운동장에서나 맨 앞자리를 유지했던 처지를 두고 “눈앞에 거리끼는 것 없이 아침마다 시야가 확 트였다”고 쓰는 데서는 반어적 해학이 짚인다. 서울대 국문학과 학생 시절, 그 역시 단구(短軀)로 이름 높았던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과 키를 대보라던 친구의 부추김에 나란히 걸으며 키를 재 보았다는 일화도 재미지다. “같다는 둥 높다는 둥 양론이 분분했을망정 최소한 작다고는 아무도 안 했다고 기억한다.” 작가는 훗날 일석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와 신랑이 서로 푸근하고 만만했겠다.

<그게 글쎄 - 나의 데뷔작>은 1953년과 1956년에 걸쳐 잡지 <문예>와 <현대문학>에 2회 추천을 받아 등단하던 무렵의 정황이고, <라일락이나 마로니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신입생으로 등록하고서 1년여 뒤인 1953년 가을에야 지금의 대학로에 있는 동숭동 교사로 다니게 된 대학 시절 풍경이다. “박람강기”와 “막힘없이 좔좔 흐르는 언변”에 “반어적 해학”과 “탈국문과 수준의 앞서 가는 눈”이 빛나던 “놀라운 친구” “어령(李御寧)이”와의 만남, 문리과대학 바둑애호가 클럽과 당수애호가 클럽이 후원하던 샹송애호가 클럽 주최의 ‘파리 샹송의 오후’ 행사가 인상적이다. “어떻든 그립다. 별다른 의미가 없어 좋았던 그때 그 치기가.”

잘 저민 우리말 표현 ‘진국’

<부실했던 모국어 공사>라는 글에서 작가는 “내 문학의 떡잎은 이렇게 부실한 모국어로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일제의 조선어 말살책에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조선어 수업을 받을 수 없었던 사정은 <배가 ‘쌀쌀’ 아팠던 시절>이라는 글에서도 희비극조로 회고된다. ‘배’와 ‘아프다’는 말은 일본어로 알았어도 ‘살살’에 해당하는 일어 부사를 몰랐던 아이는 ‘쌀쌀(米米)’이라는 뜻의 ‘고메고메’를 그 자리에 넣었던 것. 훗날 평론가 김현으로 대표되는 ‘4·19 세대’ 문학인들이 자랑 삼아 내세웠던바 “모국어로 사유하고 모국어로 글을 쓴 첫 세대”의 앞선 세대에 해당하는 작가의 아픈 자의식이 ‘부실한 모국어’라는 표현에는 들어 있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갓 겸양의 말에 지나지 않음을 그의 글은 확인시켜 준다. 누가 뭐래도 그는 자기만의 문체를 가진 몇 안 되는 글쟁이에 속한다. 소설이든 칼럼이든 그의 글이 지니는 매력은 세상사와 인정세태를 바라보는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함께, 우리말의 결과 질감을 잘 살려 쓰는 특유의 문장에도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우리말의 폭과 깊이>라는 글에서 그는 우리말을 두고 이렇게 적고 있다.

“아무려나 우리말은 네모반듯하기보다는 둥글넓적하고, 단단하기보다는 무른 편이다. 무엇보다도 대화 용어로 알맞다. 그리고 말꼬리를 슬쩍 비틀고 뒤집는 데 장기가 돋보여 차라리 연극적이다. 그것들을 요긴하게 뒷받침하는 소도구가 이른바 해학이요 속담이다.”

그는 또 “표현의 틈을 저밀 수 있는 데까지 저며 제일 정확한 놈을 골라내는 작업이 그만큼 어렵되, 그 과정을 거치면 진국을 맛볼 수 있다”고도 썼는데, 인용한 대목들은 고스란히 작가 자신이 구사하는 우리말의 특장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아 무방하다.

<전주비빔밥>이라는 글은 고향 전주의 전통 음식인 비빔밥과 콩나물해장국에 바쳐진다. ‘음식이 곧 고향’이라는 점에서 두 음식에 관한 자부심과 일말의 안타까움은 바로 고향에 대한 그의 태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남들이 어릴 적 추억에 곁들여 은근히 제 고장 음식을 자랑할 때마다 넉넉한 마음으로 웃고 있으면 된다.(…)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가라면 마뜩찮게 여기던 직장인이 전라도, 그중에서도 전주로 출장을 가라면 얼른 나선다는 소리를 들을 땐 일부러 겸양을 떤다.” 한마디로 여유가 있는 것이다. 비빔밥과 해장국이 있기 때문. “그러나 이제는 때때로 회의한다.” 입천장이 델 정도로 너무 뜨거운 콩나물해장국, 반숙란이나 날계란 등속을 곁들이는 전주비빔밥의 변모가 서운한 것이다. “아무리 ‘간사한 구미’를 좇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지킬 건 지키고 보탤 건 보태야 생명이 긴 음식으로 남을 수 있다.”

고향 향한 안타까움 ‘전주비빔밥’

<시몬 비젠탈의 질문>으로 마무리를 삼자. 비젠탈은 나치수용소에서 3년을 보내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유대인이다. 수용소 시절 그의 앞에 어느 날 죽음을 앞둔 나치스 친위대원이 나타나 자신의 죄상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당신이 대답해주지 않으면 저는 결코 마음 편히 죽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비젠탈은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비젠탈은 그때 용서했어야 했던가. ‘비젠탈 딜레마’라고도 불리는 이 곤혹스러운 질문을 우리 현실에 끌어와 작가는 이렇게 쓴다. 옳고 그름, 원칙과 반칙의 문제에 관해 어디까지나 올곧은 목소리를 잃지 않는 ‘참된 어른’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날의 숱한 양민 학살과 ‘광주’의 예에서 경험했듯이,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용서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참회는 없다. 그것이 지금껏 겪은 한국적 과거사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한영희(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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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베스트셀러 들여다보기/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결과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해서 그 과정도 엄청나게 다른 것은 아니다. 합격과 불합격은 1문제를 더 맞춘 차이일 수 있고, 게으르다고 찍히는 것과 부지런하다고 인정받는 것의 차이는 단 한번의 지각 때문일수도 있다.

인간관계가 술술 풀리는 사람과 풀리지 않는 사람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는 바로 이런 사소한 차이의 중요성이 인간관계를 바꿔놓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책이다. 팔리는 책과 안팔리는 책의 차이도 아주 작은 것 때문일텐데, 이 책은 제목처럼 그런 작은 차이로 차별화에 성공하면서 반년 동안 30여만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책의 내용은 남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는 법들을 소개하는 게 전부이며, 그 방법들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어 보일만큼 누구나 아는 것들이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옷차림이 괜찮아야 대접을 잘받는다’, ’아쉬울 때만 찾지 말고 지속적으로 만나야 정이 든다’, 심지어 ’유머감각이 있어야 인기가 좋다’까지! 구체적인 조언들도 비슷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라’,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책이 전하는 메시지 가운데 독자들이 몰랐을 법한 것은 찾기 힘들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에 차이가 있다. 그 근거로 실제 심리학자들이 했던 각종 실험결과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온갖 ‘법칙’과 ‘효과’들로 설명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지혜를 과학적 근거로 포장해 믿을만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가까이 있을수록 사람들이 서로 친해지는 것’을 ‘근접성의 효과’라고 표현하고, 남들과 ‘뒷담화’를 해서 감정을 푸는 것을 ’정서적 환기효과’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표준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모델이 실제 독자들에게는 무척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루를 길게 쓰고, 주말을 활용해야 자기를 계발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걸 하기 어려워 포기할 뿐이다. 누구나 아는 것을 소수는 독하게 실천해 성공하지만, 대다수는 실천하지 못해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남는다.

지은이 이민규 교수는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차이가 실로 엄창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고 역설하고, 공감할 수 있게 격려하는 것이 장기이자 강점이다.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난 뒤 ‘나는 역시 안돼’라고 위축되는 독자들에게 “사흘마다 작심삼일을 계속하면 습관이 된다”(앞선 책 <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에서)며 변화를 유도하는 식이다. 이 책에서는 “99%를 이해하지만 한 가지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보다 1%밖에 이해하지 못해도 그걸 실천하는 사람이 원하는 곳에 더 먼저 도달한다”고 격려한다.

심리학책이 쏟아져나오는 요즘, 이 책이 그런 흐름에 충실히 따르면서도 이른바 ‘포지셔닝’에서 차별화한 것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심리학자가 쓴 책이면서도 심리학책이 아니라 자기계발서로 성격을 규정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성공의 1등 공신은 역시 잘 지은 제목. 이 교수의 전작을 따라 ‘1%’를 앞세워 브랜드화한 제목은 출판계에서 ‘120점짜리’로 평가받는다. 제목에서 다른 심리학책이 모두 ‘호감’ ‘매력’을 열쇳말로 내세우는 것과 달리 ‘끌림’, ‘끌리는 사람’이란 새로운 단어로 바꾼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비결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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