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윤덕기자]

제목만 봐서는 코믹한 생활동화 같은데, 아니다. 아빠의 부재가 삶의 불균형으로 이어져 있는 두 남자 아이가 서로 친구가 되어 소통하면서 희망의 출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중에 ‘찐찐군’이란 별명을 얻는 기영이는 컴퓨터 게임도 싫고, 단 것도 싫은, 그저 밤 10시까지 도서관 열람실을 배회하는 열두 살 소년이다. 여행작가인 아빠는 몇 해씩 집을 떠나 있고, 미용사인 엄마는 일에만 매달려 산다. 뇌성마비 장애아인 ‘두빵두’ 찬울이도 외롭긴 마찬가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멋지게 서 있는 숫자 ‘1·7·11’을 좋아하는 아이다.

‘도서관 인연’으로 만난 둘은 서로에게서 새로운 세상을 배운다. “걸을 수 없는 것보다 자기 손목으로 책장을 넘길 수 없는 게 더 슬픈 일”이라는 찬울이의 말에 고개 숙이는 기영이. 찬울이의 발이 되어 도서관을 오가느라 외로움을 잊은 기영이의 모습이 예쁘고 신통하다. 참, ‘찐찐군’과 ‘두빵두’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배경이 짐작 가시는지. 느리지만 섬세한 문장 속에 따뜻한 유머가 듬뿍 배어있는 작품이다. 제2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일보 글·사진=김윤덕기자]

알리바바의 동굴에서 막 걸어 나온 듯, 온 몸을 개나리색 차도르로 휘감은 여인! 이란의 동화작가이며 출판인인 화리데 칼라바리(58·사진)는 2004년에 이어 2006년에도 볼로냐 어린이국제도서전에서 ‘라가치 뉴 호라이즌 상’을 거머쥠으로써 세계 아동문학계에 중동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의 라가치상 수상작 1차분이 ‘생각하는 크레파스’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번역·완간됐다. 칼라바리 자신을 비롯해 이란의 젊은 동화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시리즈엔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삶의 서늘한 지혜가 보석처럼 박혀 있다. 웃음의 중요성(닐루화르의 미소), 느림의 미학(행복한 거북), 있는 그대로 자신의 소중함(안경쟁이와 모자쟁이)을 조근조근 일깨우는가 하면, 친한 친구로부터도 배신 당할 수 있다는 사실(어둠의 귀신), 허황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살던 이웃까지 희생시키는 인간 군상(사닥다리), 서로 다르지만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할 운명이 있음을 일러주는 동화(초록색 바지와 보라색 윗도리) 등 인생의 서글프고도 섬뜩한 교훈을 동시에 들려준다.



볼로냐에서 만난 칼라바리는 “틀에 박히고 입에 발린, 그저 재미있기만 한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진 않기 때문”이란다. 최근 세계 어린이 책 계에 불고 있는 중동 바람에 대해서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인류의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됐으니까요. 오리엔탈리즘으로의 회귀는 인류의 당연한 본능입니다.” 이란 동화에 이슬람의 비중은 어느 정도냐고 묻자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우리는 종교가 아닌 ‘선(Good Thing)’을 믿습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이 선사했던 따뜻한 느낌이라면 이해될까요? 이란 사람들은 지금도 가족간의 우애와 사랑을 중요시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1700년 전 이란에는 어린이 책이 있었습니다. 고대문화를 비롯한 1만1000년의 역사는 우리에겐 퍼 올리고 퍼 올려도 메마르지 않는 마법의 샘물입니다.”

(글·사진=김윤덕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아일보]

◇ 위험한 열정 질투/데이비드 버스 지음·이상원 옮김/360쪽·1만2000원·추수밭

남자의 정자(精子)는 생김새가 똑같지는 않다. 대부분은 원추형 머리에 힘차게 움직이는 꼬리를 갖고 있다. 이른바 ‘마크 스피츠’형. 마치 수영 선수처럼 난자를 향해 날쌔게 헤엄쳐 간다.

돌돌 말린 꼬리를 가진 것도 있다. 이것들은 난자에 이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여성의 생식기 안에 두 남자에게서 나온 정자들이 섞여 있으면 ‘뿌리가 다른’ 정자를 껴안고 순식간에 함께 죽어 버린다. 정자 세계의 ‘가미카제’다.

남성들은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 여성의 생식기 내에서 오랫동안 전투를 벌여 왔다. ‘정자 전쟁’은 두 남자의 정액이 같은 시기에 여성의 생식기에 머물러 왔음을 고발(?)하는 진화론적인 증거다.

여성들이 본래부터 ‘1부 1처제’의 순결한 본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남성들이 이렇게까지 고투를 벌일 필요가 있었을까?

여성의 질 벽에는 남성의 정자를 저장했다가 며칠 후에 난자를 향해 내보내는 수백 개의 작은 주머니가 있다. 여성은 남자의 정자를 길게는 7일까지 저장한다. 왜? 더 멋진 남성에게서 더 좋은 유전자를 얻기 위해서다. 최근 실험 결과에 따르면 단지 셔츠 냄새만으로도 유혹하고 싶은 이상형을 가려낼 수 있는 게 여성들이다.

‘엄마인 건 확실하지만, 아빠는 글쎄?(Mama’s baby, papa’s maybe)’란 말은 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고대의 남성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암컷의 몸’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는 탓에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 전달을 100% 장담할 수 없었던 거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의 질투는 사랑하는 여인이 부정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맞서기 위한 진화적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인간의 두 가지 위험한 열정, 외도의 욕망과 질투의 감정에 대해 진화심리학의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세계 각국에서 실시한 실험과 설문조사를 통해 이 매혹적이면서도 끔찍한 감정들이 인간의 짝짓기 전략에 개입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파헤친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성적 배신과 이에 맞선 ‘질투의 전략’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진화의 정글을 탐험하며 “우리 안의 길들여지지 않은 악마를 너무 모질게만 대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면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질투하지 않는 사람은 질투심 많은 경쟁자에게 밀려 진화에서 도태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이 되지 못했다. 질투란 곧 적응이며, 생존과 생식이라는 진화의 가느다란 병목을 통과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렇게 진화한 질투는 첫 번째 방어책으로 경계를, 최후의 방어책으로 폭력을 유발한다. 양날을 가진 방어 메커니즘인 셈이다. 질투가 극단적으로 흐르면 살인을 부른다. 미국 내 전체 살인 사건의 13%는 배우자 살인이고, 그 주된 원인은 질투이다.

하지만 질투는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위기에 닥친 애정 관계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그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미묘한 신호를 포착해 냄으로써 진짜로 닥칠 배신에 대처하도록 해 준다. 배우자의 성적 무관심은 단지 과로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점잖은 척 이 ‘내적 속삭임’을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의부증이나 의처증으로 정신 상담을 받은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결국 ‘외도하는 배우자’에게서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원제 ‘The Dangerous Passion’(2000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아일보]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청전 스님/360쪽·1만3500원·지영사

저자인 청전 스님은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수행하고 있는 한국인 스님이다. 그는 송광사로 출가한 이후 10여 년간 참선수행을 하면서도 의문점을 풀지 못해 동남아 불교국가들을 돌며 수행하다가 1987년 8월 달라이 라마를 만난 뒤 20년째 보좌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은 청전 스님이 달라이 라마와 함께하면서 체험하고 느꼈던 일과 개인적으로 히말라야 설산들, 인도 네팔 티베트 등 불교성지를 순례한 기록을 모아 놓은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모든 것을 앗아간 중국인들에게도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티베트 무장단체에 무장 투쟁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일, 히말라야 산행 중 큰 동굴 안의 호수 가운데 있는 흰 탑을 몇몇 스님이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외우며 도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감격했던 이야기, 라다크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할 때 한국에서 가져간 영양제 위장약 항생제 등이 너무 잘 들어 ‘명의(名醫)’ 소리를 들었던 일 등 다양한 경험담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진면모를 접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동아일보에 올해 4월부터 5회에 걸쳐 연재된 ‘내가 본 달라이 라마’의 내용과 이 연재에서 못다 한 다양한 체험담이 함께 실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아일보]

◇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이사야 벌린 지음·박동천 옮김/668쪽·2만8000원·아카넷

영국의 지성사학자 이사야 벌린(1909∼1997)의 진면목은 같은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1892∼1982)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카는 케임브리지 출신으로 러시아혁명을 높이 산 진보적 역사학자였다. 반면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러시아혁명을 목격한 벌린은 옥스퍼드 출신으로 혁명에 기반한 전체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전통적 자유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카를 마르크스의 평전을 냈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학계에서는 사회주의에 경도된 카의 평전보다는 자유주의자였던 벌린의 평전을 더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카의 영향이 압도적이지만 2000년대 들어 벌린의 저서가 잇따라 번역되면서 그의 만만치 않은 내공에 감탄하는 이가 늘고 있다.

이 책은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이라는 제목으로 1968년 출간된 것을 그의 사후인 2002년 대폭 보완해 새롭게 출간한 것이다. 벌린은 이 책에서 20세기 초반 사회주의의 거센 광풍 아래 부르주아 사상이라고 비판 받은 자유주의가 얼마나 심오하고 진취적 사상인가를 펼쳐 보인다.

네 편의 논문 중 ‘역사적 불가피성’은 인류의 역사가 필연적이라는 결정론적 사고와 역사 속에서 개인의 선택을 도덕적으로 찬양·비난하는 윤리적 행위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역사에서 개인의 선택을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 격하시킨 카의 역사관을 교조적 유물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벌린이 역사의 필연성을 부인하거나 영웅사관을 옹호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자유주의는 이런 모순을 깊숙이 파고드는 회의주의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두 개념’은 일체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적극적 자유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자유주의의 진취성은 진리는 하나라는 교조주의와 그 진리를 전유(專有)하려는 전체주의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확인된다. 벌린의 이런 관점으로 인해 이 책은 다원주의의 고전으로도 꼽힌다. 이 개정판에는 ‘자유에 관한 다섯 번째 논문’이 될 뻔했다가 시한에 쫓겨 빠진 ‘희망과 공포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그가 12세 때 소설 형식으로 러시아혁명의 모순을 다룬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와 ‘냉전의 설계자’라 불린 미국 외교정책의 브레인 조지 케넌에게 보낸 서한 등이 수록돼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