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은행나무/2005)에 관한 단상
# 1
여기, 잘 구겨진 다섯 청춘의 좀 쑤시는 일상이 있다.
고슈 가도 2차선 좁은 도로, 평온하다 못해 너무나 규칙적인 차의 간격은 이들의 일상과 닮아있다. 한번의 충돌이라도 있을 법 하건만, 그 마저도 당연한 거리에 의해 깨지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일상다반사이다. 충돌할 가능성 1% 없는 순도 100% 질서유지에,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도로 위를 헤맬지 모르는 내 한 켠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나도 그랬을지 모르지, 하며 책장을 피하 듯 넘기는 나를 보며 그 안의 나를 발견한다. 한 번의 충돌도 스릴감도 없는 일상에 도무지 절박함은 살아있는 건지, `나는 너무도 지루해하지 않는가?` 하고 물으며, 접시에 코 박 듯 살아온 내 청춘이 너무 야속해, 속이 타다 못해 저려온다.
# 2
여기, 그리고 하나의 퍼레이드가 있다. 그들의 밀고 당기는 퍼레이드엔 돌고 도는 그들의 일상이 있다.
불철주야 옛 애인의 전화만을 기다리는 고토미가 있고, 하루가 한 세상인양 주구장창 술에 취해 슬픔을 잊는 미라이가 있다. 요스케는 절친한 선배의 애인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충동을 잊고, 나오키는 나 혹은 내 안의 또 다른 그 녀석과의 싸움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열여덟 `쓸모없는 젊음을 팔아치우는 중`인 사토루는 여기서 그들과 만난다.
그들 혹 나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쯤 와 있을까? 같은 소용돌이 속에 우리, 서로 묶여가는 것은 아닐까?
매일 같은 도로를 맴도는 요스케의 시선엔, 당장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춤이라도 출 듯 그의 주춤한 일상엔 긴장감과 초조함이 메마르질 않는다. 그러한 고민도 빛도, 어디 블랙홀 언저리로 사라진 지 오래, 그의 무엇에 대한 열정인지 상실인지는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신 외에 난 모든 의미를 잃었어요, 라고 보이지 않는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고토미에게는 보이지 않는 절막함이 내 안을 가로 안는다. 옛 애인의 전화를 기다리는 일 이외에, 그녀에게 모든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 듯 일상은 지쳐간다.
마치, 세계를 잃은 양 헤매는 미라이는 술에 몸을 맡긴 채 가슴 한 켠에 어두운 굴뚝을 안고 사는 이들의 슬픔과 상실을 맴돈다. 언젠간, 그리 되겠지. 그녀의 소원대로 모든 버리고 베트남이든 어디든 자신의 자아 찾기를 위해 헤맬 날들이. 그럼 그녀의 빈 상처는 좀 데워질까?
외부에 대한 아무 경계 없이 무단 폭격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을 긁어대는 나오키에게는 변태적인 감정보다 그 안의 뜨거운 무엇에 대해 속절없이 허무해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나타날 것 같은 사토루에겐 빈 주머니만큼이나 삶이 남루할 뿐이다.
눈물이 치솟아 오를 것 같은 그의 삶에 유일한 일상은 낯선 이의 빈 집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치 그들과 공존하는 것처럼, 마치 그의 일상인 듯 소유해버리는 시간이 그에게 남기는 건 또 다른 낯선 곳으로의 방황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도 다른 이들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만들어 주는 곳이 있다. 그들이 있다.
그들의 사이에 낀 듯 안 낀 듯, 알듯 모를 듯 사토루가 그들의 주위를 둘러싼다. 빈 고리를 탄탄한 철심 고리로 메우고, 빈 고막에 빈 가슴에 소리를 쳐댄다. 알 듯 모를 듯 그 끈이 그들을 에워싼다.
어느새 그들의 퍼레이드는 점차 얽히고설켜 누군가와의 적당하고 안일한 간격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 충돌조차 멋 적은 듯 슬쩍 눈 감아 주는 그들의 가벼운 듯 강하게 얽힌 더부살이는 내 안의 깊은 공간을 만든다.
존재감을 잃어 보이는 그들 사이에, 그들 없는 일상은 빈 방일 뿐이다. 일상을 기댈, 그리움을 기댈, 아픔을 기댈 곳 없는, 정작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다행이 그 누구도 존재감을 잃은 이들은 없어 보인다, 서로의 존재를 헤매일 뿐이지!
그도 길을 헤맬 땐 돌아봐줄 이가 있고, 그 끈을 아무렇지 않듯 당연하게 받쳐줄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다니, 이 얼마나 가슴 터질 듯한 뜨거움인가!
고마워요, 당신들!
# 3
순간 무모하리만치 중독 된 그들의 퍼레이드에 함께 부대껴 있다보니, 새삼스러워지는 새 삶이다.
불현듯 그들의 퍼레이드에 끼고 싶은 충동이, 가슴에 방망이 치듯 치솟아 오른다. 그리곤 다리가 부서져라 달려가 몸이 부서지도록 그들을 껴안고 싶다. 그 퍼레이드에 오색빛깔을 띈 무지개가 번쩍하고 튀어 나오더니,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만큼 빛나는 햇살이 내 앞에 다가온다.
그래, 뭐 인생 별거 있어! 가슴이 느끼는 데로 느끼고, 가끔 머리는 르메르 해협 빙각 안에나 처박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지껄여 버린다.
`일상의 찌꺼기 같은 격식도 모두 집어치워버리고, 나이브하게 사는 거지` 내 안의 그 녀석이 몇 번이고 집어삼킨 말을 꺼낸다.
그래, 인생엔 가끔의 부딪힘이 있어야 불러야 할 애니카도 있지 않겠는가. 인생은 퍼레이드처럼 하나의 축제이니까!
내 인생 모두에게 브라보다!
[북데일리 이주연 시민기자]white_you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