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1970∼1953)은 러시아를 모국어로 하는 작가로는 최초로 193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볼세비키 혁명이후 조국 러시아를 떠나서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부닌은 무국적자 신분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고국의 새로운 정권에 의해 철저히 버림받았지만, 노벨상 위원회는 부닌의 글쓰기에 퓨슈킨에서 시작하여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만개한 러시아의 전통적인 문학정신이 가장 잘 계승되어 있다고 수상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한때 고리키와도 절친했던 부닌의 문학세계는 그러나 이후에도 여전히 조국 러시아의 소비에트정권하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거부되었다. 가장 러시아의 혼을 잘 묘사한 작가가 조국에서 철저하게 외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부닌은 자신이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작가였으며, 어떠한 유파나 동인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죽기 전에 탈고한 자서전에서 기술하고 있다. 목가적인 러시아의 풍광이 자신의 문학적 스승이었으며 수많은 여행을 통해서 경험한 고국 러시아의 산천초목이 바로 자신의 문학적 원류라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 ‘아르세니예프의 생’(1928∼39)에서는 망명지를 전전하던 부닌이 아마도 더 이상 되돌아가지 못할 조국 러시아에서의 목가적 삶과 서정적 풍광에 대한 기억을 특유의 장인적 글쓰기로 재구성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알렉세이 아르세니예프가 작가 부닌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로 망명하여 러시아에서의 유년기와 첫사랑에 대해 회고하는 내용이다. ‘드넓은 공허한 대지, 그 어떤 장애나 한계도 없는 광활함만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저 오로지 들판과 하늘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던 드넓은 대지에서 태어난 어린 주인공이 도회지에서의 여러 경험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자각에 이르는 과정은 부닌 자신의 이야기일 듯싶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장차 앞날에 열려 있다’는 느낌이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내 젊은 능력과 웬만큼 잘생긴 얼굴, 타고난 좋은 체격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자유롭고 확신에 찬 행동과 가볍고 빠른 걸음걸이, 오르막을 달릴 때면 용감하고 능숙한 내 움직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내 젊은 순결함은 타고난 것이라 인식했고, 시를 읽을 때면 드러나는 내 뛰어난 감수성은 끊임없이 시인의 고결한 사명감에 대해, ‘시란 지상의 숭고한 꿈속에 자리한 신(神)’이라는 것에 대해, ‘예술은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계단’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 주었다.”(197쪽)

러시아 젊은이의 건강성과 문화적 자부심,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은 고국산천에 대한 정겨운 시선, 그리고 세계문학에 대한 섭렵의 과정을 거쳐서 여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첫사랑의 감정에 대한 젊은 주인공의 내면의 열정이 그녀의 집으로 이끌었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하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그해 봄 그녀가 폐렴에 걸려 귀향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는 사실을, 또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기게 한 것이 그녀의 뜻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이제 노년의 주인공은 그녀에 대한 사랑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얼마 전 나는 꿈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 없이 살아온 기나긴 나의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뿐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함께 인생을,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때의 그 나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이미 시들어가는 원숙한 아름다움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야위었고 상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어렴풋이 그녀를 보았지만, 그때만큼 누군가를 향한 커다란 사랑과 기쁨을 느꼈던 적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없었다.”(496쪽)

아름다운 조국 산하와 죽음이 갈라놓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과 회상은 가장 절정에 있었지만 몰락해야만 했던 제정 러시아의 정신에 대한 부질없는 향수와 동경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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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당신에게 물러 터졌다고 하는가, 아니면 너무 착해서 탈이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이책 ‘페페로니 전략’을 한번 펼쳐보시라. 우유부단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힘을 길러주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똑똑한 당신, 성실한 당신, 그런 당신이 왜 주눅들어 살고 스트레스에 치여 사는가. 저자 옌스 바이트너 박사는 그건 당신에게 ‘매운 맛’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함부르크 응용과학대학에서 교육학과 범죄심리학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이자 전문 경영트레이너다. 그는 공격성 전문가로서 20여년동안 인간안에 내재된 공격성을 규명해왔다.

페페로니는 유럽에서 불리는 고추이름이다. 맵지 않고 달콤한 파프리카와 대비되는 톡 쏘는 매운 맛으로 유명한다. 저자는 조직내에서 더이상 맹탕이고 싶지 않다면 ‘페페로니 지수’를 높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페페로니 지수는 우리가 달콤하기만 한 맹탕 파프리카형 인간인지, 아니면 맵싸한 페페로니형 인간인지, 그도 아니면 무자비한 권력 뱀파이어인지 단계별로 알려주는 공격지수 테스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순간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고 입은 앙 다물어질 것이다. 페페로니 지수가 낮은 착한 사람들의 어깨를 사납게 흔들어 댈 것이다. 성실하지만 소심하고 때로는 남에게 이용당하며 분노를 안으로만 삭여온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을 향해 성큼 발걸음을 떼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한마디로 페페로니 전략은 이해할수 없는 강자들의 난폭함에 대한 예방주사이자 몸에는 좋지만 입에는 쓴 착한 사람들을 위한 탕약이다.

소심한 사람들을 비열한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는 이 책 페페로니 전략은 이처럼 공격성을 테마로 삼고 있다. 패배자가 되느니 공격자가 돼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사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조화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내가 낸 아이디어를 말재주만 뛰어난 동료가 가로채간 경험, 협상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이용만 당했다는 낭패감이 밀려온 경험….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은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기고 사람좋다는 말은 물러텨졌다는 말의 동의어이고 선하게 산다고 누가 상 주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장인들은 몸으로 깨닫고 있다.

저자가 페페로니 전략 전파자로 돌아선 것은 세계유수의 경영자들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폴크스바겐, BMW, 도이체 텔레콤 등의 경영자들이 저자에게 상담한 내용은 의아했다.

최고의 실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나 착해빠진 직장인들에게 투지와 의사관철 능력을 키워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공격성에 관해 수년간 연구해온 저자는 지나친 공격성 못지않게 부족한 공격성 또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닫고 마침내 페페로니 전략의 필요성에 눈떴다고 말한다.

기업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오늘날 직장은 경쟁이 불가피한 곳이고 관용이나 배려는 잘 꾸며진 수사학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대신 사내 갈등이 생길 것을 염려해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이나 조직의 이익을 포기해버리는 복지부동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강조한다.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매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결코 당신의 친절함을 유약함과 혼동하지 않는다. 공격성을 키워 당신의 의사를 관철시켜라. 그리고 이를 통해 선한 일을 하라. 이것이야말로 현대적 기준의 윤리이며 도덕이다.”

특히 여성 직장인들에게 페페로니 전략은 건강을 위해 꼭 먹어야 하는 일상의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 ‘남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 자신감 있는 모습은 좋지만 위압감을 주고 싶진 않아’, ‘다른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와 같은 말을 달고 사는 여성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착한 소녀들은 하늘로 올라가고 건강한 공격성을 갖춘 소녀들은 경영진의 세계로 입성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안그래도 강팍한 세상 너무 팍팍한가. 페페로니 전략은 건강한 공격성을 건설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일뿐 악의적이고 비열한 출세지향주의자가 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니체가 말했다. “연민은 세상의 고통을 증대 시킬 뿐”이라고. 이 책은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금세 이용해 먹기 좋은 바보로 전락해 버린다는 사실을 따끔하게 경고한다.

/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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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 똑같다. 사랑도 다 똑같다.’



그 뻔한 이야기를 빙빙 돌리고 이리저리 비틀어 해야 할 때가 있다. 사회적 금기와 관련해 그렇다. 고개 뻣뻣이 치켜들고 동성애자도 사람이고 근친상간도 사랑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미학적 안전판을 숨겨둔 문학 속에서도 대부분 작가들은 자기검열 탓에 변죽만 울렸다.

-“소재주의 극복 최초 작가”-

방현희씨(42)의 첫 단편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열림원)은 ‘붉은 이마 여자’ ‘연애의 재발견’ ‘녹색원숭이’ ‘13층, 수요일 오후 3시’ 등 수록작 10편 중 4편이 동성애 소재작이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씨는 “동성애를 어떠한 자의식 없이, 무심하게, 그저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한국 최초의 작가”라고 평했다. 표제작은 근친상간을 밑그림으로 깔아놓았다.

하지만 ‘최초’라는 어감이 주는 소재주의·생경함·미숙함 등 억지춘향의 흔적이 없다. 성적 소수자의 사랑을 일상적이고 천연덕스러우며 능수능란하게 녹여냈다. 작가가 다룬 동성애는 이성애의 ‘모든 것’과 똑같다. 작가가 시대를 선취했든, 우리 시대가 그런 작가의 출현을 가능케 했든 문제적 작품집이라 할 만하다.

“열기를 가누지 못하고 수소인 그는 필연적으로 맨 처음 맞닥뜨린 암소를 덮쳤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표제작에서 이 한 줄의 문장을 놓친다면 소설은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그 한 문장을 읽으면서 왜 엄마가 13년간 입을 다물었고, 아들이 늙은 엄마를 업고 다니며 말조심을 하는지 등 ‘사건의 재구성’이 가능해진다. 조금만 집중력을 잃어도 ‘엽기 소설’로 치부될 화두를 다룬 이유는 뭘까.

방씨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어려운 관계를 말하기 위한 전략”이라면서 “가장 밀착된 관계가 사랑이기 때문에 그런 사랑에 집착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집은 사회적으로 ‘비정상’이라고 치부되는 사람들의 무시되기 일쑤인 진실을 다룬 셈이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이상한 사람들’의 사랑이지만 (정상적이라는) 당신들의 사랑과 다를 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사랑한 걸 설마 후회하겠어요?”(‘말해줘, 미란’ 마지막 문장)

그랬더니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는 작품들이 모이게 됐다.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가부장제의 집을 가출했다면 방현희 소설은 가족, 낭만적 사랑 등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금기의 전면적 부정으로까지 치닫는 형국이다.

등장 인물들은 우리 현실을 잣대로 들이대자면 거의 무중력 공간의 인간들이다. 그들에게 가족은 진즉 해체됐으며, 단 한 사람만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낭만적 사랑은 허위에 불과하다. 주인공들이 실연 후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끝난다. 이른바 ‘교환 가능한 사랑’을 내세우는 것이다.

방씨는 사랑에 관한 한 사회생물학 이론에 기대는 듯하다. 그는 “사랑은 자기 욕망”이라고 정의하면서 “관계에서 손해를 보거나 고통을 받는 것도 결국은 자기 결핍을 채우기 위한 대가”라고 했다. 그는 또 “사랑은 둘 사이에 동일하고도 고양된 감정에서 성립한다”면서 “그렇게 밀착된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상대방을 침해 또는 방해하게 마련이어서 결국 고통 받으며 서로를 벗어나려고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상한 사람들’의 진실 다뤄-

방씨는 전북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1986~94년 경찰병원에 근무했다. ‘동서문학’ 신인상(2001)과 ‘문학·판’ 장편소설상(2002)을 타며 등단했다. 그는 신생아실 근무 때 “단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사춘기 이후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소위 ‘비정상’ 아기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작가의 말’에 “내게 비정상인은 정상인이 되고 정상인은 비정상인이 된다. 그러므로 내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적어놓았다.

〈글 김중식·사진 남호진기자 uy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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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세상을 떠난 사진가 김영갑의 파노라마 사진을 묶어 펴낸 사진집 <김영갑 1957~2005>.
ⓒ2006 다빈치
제주를 사랑했던 사진가 김영갑,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에 그가 돌아왔다. <김영갑 1957~2005>, 그의 파노라마 작품을 담은 사진집으로 태어난 것이다.

처음 사진가 김영갑의 사진을 본 것은 2003년이었다. 파노라마 사진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때, 지인이 김영갑씨의 홈페이지를 소개했다.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빛과 제주의 풍광이 녹아있는 그의 사진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그리고 2004년 초 그의 사진에세이 <그섬에 살고 있었네(이하 ><그섬에)>를 읽었다.

'그래, 적어도 사진을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탁탁 막혔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사진가 김영갑은 병이 깊어 더 이상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때가 루게릭 병을 앓기 시작한지 5년째였다.

ⓒ2006 김영갑
늘 사진만 생각하며 늘 혼자 지내던 이방인

그리고 2005년 5월 29일 그는 사랑했던 제주의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아 두모악 갤러리에 남겨두고 제주의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육지것'이었으나 진정 제주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이방인이었다. <그섬에>에는 그의 가슴앓이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 무료함을 달래려면 시간과 돈이 든다. 금전적으로 궁색한 나는 혼자 지내며 사진만을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돈이 절약되는 것들만 찾아서 한다. 사진찍는 사람에게는 사진만 생각하는 것이 돈을 절약하는 길이다.

돈이 없고 시간이 많은 나는 늘 사진만 생각한다. 필름을 사고 나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고 보니 늘 혼자 지내는 처지다. 그래서 가끔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섬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고 어떤 이는 저희들 하고만 어울린다고 손가락질 한다."


<그섬에>에는 그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궁핍했는지 설명하는 글이 자주 나온다. 필름을 사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하루 종일 제주의 시린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카메라를 메고 오름에 올라 셔터를 눌렀다.

▲ 2005년 가을, 두모악 갤러리를 찾아 액자에 담긴 그의 모습을 흑백필름에 담았다.
ⓒ2006 조경국
그렇게 사랑했지만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끈질기고 가혹했던 사진작업에 볕이 들 무렵 덜컥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신의 심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형벌을 떠안았던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는 제주의 풍경을 생생하게 두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근육은 소멸해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한 컷 필름 속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텐데 그것을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은 사진가에겐 최악의 형벌이었으리라.

그는 그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땐 필름을 사기 위해 끼니를 건너뛰어야 할 정도로 궁핍했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나아지자 병을 얻었다.

 
▲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 펴냈던 사진에세이 <그섬에 내가 있었네>. 대중에게 사진가 김영갑의 존재를 알린 책이었으나 당시 그는 카메라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악화되어 있었다.
ⓒ2006 휴먼앤북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신이 그에게 형벌을 내린 것은 아마 그가 순교자의 길을 자청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신은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쥐어짜는 예술가를 가만 두지 않는 모양이다. <그섬에> 말미에 안성수 교수는 이렇게 썼다.

"'사진을 찍다가 순교하겠다, 여한 없이 사진을 찍다가 웃으며 죽고 싶다'던 그가 5년째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다. …(중략)…돈도, 명예도, 가족도, 결혼도, 자기의 육신까지도 내팽개친 채 사진만을 꿈꾸며 살아온 그의 삶은 투철한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현란한 유혹의 길을 살면서도 그는 자기 예술을 위해 가난한 순교자의 길을 자청했다."

<김영갑 1957~2005>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제주에 홀린 그의 생전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름의 억새밭 속에서 제주의 바람을 필름에 담기 위해 삼각대에 카메라를 받쳐두고 느린 셔터를 누르는 그의 모습. 바짓가랑이에 잔뜩 이슬을 묻히고 푸른 보리밭 사이를 카메라를 들고 누비는 그의 모습. 한라산 너머로 붉게 넘어가는 황혼을 파인더로 바라보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반추하며 눈물 훔쳤을 그의 모습.

"이 땅에 그런 사진가가 있었다"

비록 생전에 그가 <그섬에>를 펴내긴 했지만, 그것은 '사진집'이 아닌 '사진에세이'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진집'을 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진집을 넘기면서도 그의 존재가 아쉽다.

사진집 첫머리에 실려 있는 사진평론가 진동선씨의 글 중에서 '작가는 죽어서 평가받는다는 미술사의 오랜 진리'라는 문장이 가슴에 박힌다. 진동선씨의 글이다.

"이 땅에 그런 사진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적 관점에서 말하고 싶다. 사후 일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되는 사진집의 의의는 그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아니 작가는 생의 존재 이유를 작품집에서 찾는다. 이 사진집이 김영갑이라는 사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 그가 걸어온 지난 20년 사진 세계를 바라보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잃어버린 그의 절반의 행복을 되찾아주는 일이거니와 작가는 죽어서 평가받는다는 미술사의 오랜 진리를 복원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집 말미에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 그의 모습이 담겨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매, 꽉 다문 입술…. 시퍼렇게 날이 선 고독한 사진가의 모습이다.

다시 사진집의 첫머리로 넘어간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야윈 얼굴이 담겨있다. 모든 욕심을 바람에 실어날리고 있는 듯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사진 작업을 하지 못한 5년 동안 가장 선명하게 떠올랐다던 '둔지봉'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06 김영갑
그는 제주의 바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집엔 제주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바람, 들판, 오름, 구름…. 그의 사진 속에 담긴 제주는 '변덕'스럽고, '오묘'하고, '아름'답고, '황홀'하다. 그는 아마 제주를 잊지 못해 바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1년, 다시 한 번 진정한 사진가였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진집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그의 '사진론'을 옮겨본다.

"사진을 계속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살아있음에 끝없이 감사할 것입니다. 나의 사진 속에는 비틀거리며 흘려보낸 내 젊음의 흔적들이 비늘처럼 붙어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좌절, 분노…. 내 사진은 내 삶과 영혼의 기록입니다."

그 섬에 그는 흙으로, 풀로, 바람으로 돌아왔네
사진집 '작가소개'를 통해 봄 사진가 김영갑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여 년 동안 사진가 김영갑은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 곳에 매혹되어 1985년부터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밥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그는 창고에 쌓여 곰팡이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해 갤러리를 마련하려고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하고 초석을 다졌다. 그 무렵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없이 허리에 통증이 온 것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 만들기에 열중했다. 이렇게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투병 생활을 한 지 6년 만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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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선택한 책입니다.

물론 엄마의 99%의 노력으로 자식을 완성한다고 하지만 엄마 자신은 자신에 대해 99%의 목표를 세워봤는지, 그리고 아이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닌지 묻고 싶게하는 제목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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