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스폰서섹션]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관심’

제 2의 법정스님으로 불리는 성전스님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 세상을 한권의 책으로 담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무시했던 것, 가장 쉽지만 귀찮았던 것, 참 행복으로 가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이 책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자연만물이 삶의 의미와 행복의 재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손등을 스치는 바람에서, 하늘의 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풍경에서 어떻게 행복을 느끼는지 가슴 뭉클하게 이야기한다. 성전스님은 ‘신뢰’나 ‘배려’등 삶의 덕목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를 지탱해주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행복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서 성공한다’는 명구가 있다. 철학자들과 지성들은 행복하기 위한 다양한 논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참 행복의 원천임을 잔잔하게 설파한다. 후천적으로 획득한 이미지와 말이 아니라 마음의 풍족함이야말로 행복의 진정한 가치이며, 마음의 풍요로움은 오감으로 전해지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스님의 시선은 누구나 똑같이 바라보는 풍경도 무릎을 ‘탁’하고 칠 만큼의 감동을 자아낸다. 독자들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성전 스님이 전하는 특유의 시선과 만나는 행운을 맛보게 될 것이다.

더불어 성전스님은 제2의 법정스님으로 불릴 정도로 은근히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스님이다. 간결하고 깨끗한 문체로 독자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스님은 중앙일보 , 불교방송 , 교차로 , 불교신문 등에 시사적인 칼럼과 기고를 통해 인생의 여백을 돌아보게 하는 글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총 5부, 66편. 이전 책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스님의 시들도 아름다운 풍경사진과 함께 아름다운 지면을 장식한다.

■ 지은이 : 락쉬만 애츄탄(Lakshman Achuthan), 아너반 배너지(Anirvan Banerji)

‘미소 스님’이라는 애칭처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미소 전도사다. 그는 이 책에서 행복과 미소를 찾는 법을 잔잔하고 맛깔스럽게 이야기한다.

이미 신문 등의 언론매체에서는 성전 스님의 글쓰기를 법정 스님과 비교하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성전 스님은 태안사에서 출가했다. 월간 《해인》 편집장과 《선우도량》 편집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행복하게 미소 짓는 법》, 《빈손》,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등이 있다. 현재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의 진행을 맡고 있다.

■ 정가 : 9,500원

(조인스닷컴 Joins.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 파는 남자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절판


나는 지금까지 줄곧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살아왔다. 하지만 태평양의 한 작은 섬에 떨여져지내는 것보다 대도시에서 고립되어 있는 것이 더 슬프게 느껴진다.-.쪽

나는 오전 내내 다른 애들이 노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어도 전혀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그 애들이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재미있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대개 살아 있는 고양이나 카나리아 혹은 햄스터를 구경하길 좋아했다. 나도 물론 그게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주인공의 독특한 정신 세계를 엿볼수 있네요. 그런에 이런면 때문에 저는 왠지 사이코 살인마가 떠오르네요.ㅎㅎ-.쪽

나는 녹색 모자를 쓴 그 작은 남자를 꿈속에서 처음 보았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꿈에서 걸어 나와 평생 나를 이렇게 쫓아다니고 있다. 남자는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주인공과 항상 함께 하는 1미터의 남渼?주인공의 이야기의 근원이 되는 셈입니다.-.쪽

상상을 하는 것은 너무나 가벼워서 마치 살얼음판 위에서 춤을 추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수천 미터 깊이의 호수에 얼어붙은 얇은 얼음판 위에서 멋지게 피루엣을 돌았다. 얼음판 아래에는 항상 서늘하고 음침한 심연이 도사리고 있었다.

-.쪽

나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항상 상상과 현실에 대한 기억이었다. '현실 기억'과 '상상 기억'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실제로 본 것과 머릿속으로 꾸며낸 것은 항상 구별할 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실제 사건과 꾸며낸 체험을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내 기억 속에는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과 머릿속으로 꾸며낸 것들을 저장하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내게는 하나의 공간밖에 없어서 실제로 지각한 인상들과 상상이 만들어낸 형상들은 방을 함께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 흉허물 없이 하나로 뒤섞여서 우리가 보통 '기억'이라 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끔씩 두 가지 범주를 혼동하기라도 한다면, 내 기억은 아마 갑자기 멈춰버릴 것이다. 사실 기억력이라는 말은 부정확한 용어다. 꿈에서 본 것인데도 내가 실제로 체험한 것으로 기억한다면 그건 내가 기억력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의식 속에서만 일어난 사건들을 내가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억력의 승리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쪽

영화나 연극을 보고 나면 나는 항상 어머니에게 이 작품에서는 어떤 점이 부족했고, 어떻게 만들어야 좀 더 좋아질 수 있는지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간혹 어떤 경우는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연극이 지루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나쁜 연극도 나름대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살아 이쓴 ㄴ사람이 등장하는 연극의 매력이기도 하다. 정말 형편없는 작품일 경우에도 꼭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풍부한 화젯거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어떤 연극에 대해 나쁘다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차라리 지루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쪽

아버지가 우리 집을 나가기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꿈결같이 희미한 몇 가지 인상들만 남아 있었다. 꿈속의 일은 이미 오래전에 기억에서 사라지더라도 꿈속의 분위기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나는 되도록 고통스럽고 매정한 일은 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능숙하게 잘 잊었던지 나중에는 대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그나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한 남자에 대한 비밀스러운 꿈들뿐이다. 키는 나와 비슷했지만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어른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 남자가 갑자기 우리 집에 나타났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바로 그날이었다.
나는 꿈의 나라에서 그 남자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작은 남자도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떠난 것인지 몰랐다. 아니면 원래 자기 집인 동화 속에서 쫓겨났을 수도 있었다.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는 그 남자가 두 세계 사이를 진자처럼 이리저리 오간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잠들면 그 남자도 꿈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스스로 물어보았다. 그렇더라도 전혀 놀랍지 않다. 어차피 나도 꿈의 세계를 방문하니까 말이다. 다만 이상한 것은 그 남자가 낮에도 우리 집을 으스대고 걸어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책의 마지막에 이 기억에 대해 주인공이 기억을 해내지만 그것이 상상인지 현실인지는 확신하지는 못합니다.-.쪽

그때 겨우 여덟 살이긴 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사랑의 터널을 지나는 것은 정말 고욕이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비좁은 차에 앉아 곳곳을 종이꽃들과 파스텔 색조로 치장한 터널 속에서 인공으로 녹음된 새소리를 듣는 것은 거의 괴기 영화 수준이었다. 아마 아버지도 말은 안 했지만 고역이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사라의 터널을 지나는 내내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팔로 감싸 안으며, 어때 페테르, 여기 아주 멋지지 않니? 같은 말이라고 할까봐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정작 아버지가 그럴 마음이 있으면서도 내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봐 그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사랑의 터널을 지나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낟.

=>사랑의 터널이라는 놀이기구의 이름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네요. 하지만 주인공이 여덟살이기에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주인공도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같이 탔다면 아마도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더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쪽

아버지에게 내가 아버지와 함께 여기 온 것을 불만스러워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놀이 공원을 나가기 직전에 빨간 호랑이 인형을 경품으로 받았다. 나는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계집애에게 인형을 줘버렸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무척 기특하게 여겼다. 내가 빨간 호랑이 인형 같은 걸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라서였다. 아마 어머니가 그런 내 행동을 보았더라면 어머니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쪽

티볼리 놀이 공원 안에 있을 때부터 나는 벌써 해골바가지가 덜렁거리고, 유령과 괴물들이 등장하는 유령열차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굴 한가운데에는 진짜 사람을 세워놓을 작정이었다. 모자를 쓰고 외투를 입은 평범한 남자가 당근을 아작아작 씹어 먹고 있으면 효과 만점일 것 같았다. 나는 유령열차를 탄 승객들이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 놀라 날카롭게 비명을 질러대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어떤 상황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 유령보다 무서울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유령 열차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유령이란 순전히 상상의 산물이다. 만일 그런 상상의 세계 속에 현실적인 것이 불쑥 나타난다면, 상상의 존재가 현실에 나타나는 것만큼이나 오싹 소름이 끼칠 것이다.-.쪽

대나무 지팡이를 든 그 작은 남자를 처음으로 꿈의 세계 밖에서 보았을 때 나는 엄청나게 무서웠다. 하지만 곧 적응해나갔다. 갑자기 숲에서 요정이나 요물이 나오면 우리는 당연히 소스라치게 놀란다. 하지만 머지않아 거기에 적응해나가기 마련이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400달러가 든 지갑을 줍는 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런데 만일 꿈에서 깨어났는데 손에 그 돈지갑이 들려 있다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러면 이런 말로 자신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잠들어 있는 거야. 진짜로 깨어나야 돼!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잠들어 있지 않은 것이라면 깨어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이론은 이렇다. 대나무 지팡이를 든 그 작은 남자는 꿈의 세계 어디선가 잠을 자고 있으면서 현실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이라고. 티볼리 놀이 공원에 갔을 무렵 나는 벌써 그 남자보다 키가 약간 더 컸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1미터라고 불렀다. 키가 고작 1미터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쪽

하루는 내 방에 네 권 이상의 책을 한꺼번에 두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페테르, 한꺼번에 한 권 이상을 읽을 수 없어! 어머니는 가끔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무릇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여러 책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어떻게 서로 다르게 말하는지 비교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어머니는 '원전 비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었다..-.쪽

그리스어 성서 번역본, 즉 '세프투아긴타'만 보고 번역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세프투아긴타는 퍽 재미있는 이름이었다. 이 말은 원래 라틴어로 숫자 70을 뜻하는데, 유대 학자 70명이 70일 이내에 번역을 끝냈다고 해서 첫 그리스어 성서 번역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쪽

우리는 관련 학계에서 '단일 문화'라고 부르는 문화 속에서 살았다. 자존심이 있는 어린이들이라면 한결같이 <스톰파>를 비롯해서 <아그라로 가는 길>, <지붕의 카를손>, <꼬마 귀족> 등의 프로그램을 들었고, 밥시 쌍둥이와 낸시 드류 시리즈, 다섯 친구 시리즈를 읽었다. 우리는 레우리츠 욘손, 토르비에른 에그네르, 알프 프뢰위센, 안네 카트 베스틀뤼와 함께 자랐다. 그 밖에도 공통의 문화적 배경으로 기상학 연구소의 상세한 일기예보, 바닥을 기는 주식 시장, 노르웨이 라디오 방송국의 대스튜디오에서 방송되는 토요일 오락 프로그램, 또 <교통과 음악>, <디키 딕 딕킨스, 시카고의 공포>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 또래의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대가족인 셈이다.-.쪽

토요일 어린이 방송 시간이 되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50외레짜리 초코바 하나와 175밀리리터짜리 레모네이드를 사주었다. 거기다가 러시아 빵 한 봉지나 건포도 한 갑, 혹은 땅콩 한 봉지 가운데 하나를 덤으로 얹어주었다. 가끔 건포도와 땅콩을 함께 받는 날이면 우리는 둘을 섞어서 먹었다. 토요일의 군것질은 학교에서 나오는 아침 급식처럼 거의 항상 일정했다. 아침 급식을 먹을 때면 나는 주로 우유, 염소젖 치즈를 바른 딱딱한 빵, 간소시지와 철갑상어알과 들장미 열매 잼을 넣은 호밀 빵이 나왔다. 아침 급식을 먹을 때면 나는 다른 애들은 토요일 어린이 방송 시간에 군것질거리로 무엇을 먹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나 골라 물어보곤 했다. 다른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것을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부모들의 보이지 않는 공모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우리의 단일 문화가 우리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부모들은 군것질거리 대신 1크로네를 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잽싸게 구멍가게로 달려가 토요일의 간식을 직접 골랐다. 무엇을 고를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땅콩, 건포도, 러시아 빵 같은 것들보다는 훨씬 더 맛있는 간식들이 선택되었다. 1크로네면 10외레짜리 초콜릿을 열 개나 샀고, 10외레면 커다란 곰돌이 젤리 한 개, 감초 과자 두 개, 박하사탕 하나, 그리고 5외레짜리 초코볼 두 개나 딸기 사탕 네 개를 살 수 있었다. 또한 1크로네가 있으면 25외레짜리 초코바 하나와 주스 한 봉에다 초콜릿 두 개, 곰돌이 젤리 두 개, 박하사탕 하나를 살 수 있었다.

=>주인공의 세심한 시각이 여기서도 발휘되네요.-.쪽

나는 월트 디즈니에게 보낼 재미있는 도널드 이야기들을 많이 지어냈지만 실제로 보낸 적은 없었다.
노르웨이 라디오 방송국을 위해 생각해두었던 제안들도 보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야 당연히 내 제안을 받아들이겟지만,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상세한 부분까지 다 알고 있는 것들을 어린이 방송에서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토록 멋진 아이디어들을 나 혼자 간직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소극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 없이도 텔레비전 방송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보면 말이다.-.쪽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 새로운 것이 생기면 처음에는 당연히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한 호기심은 저절로 누그러든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는 텔레비전 채널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쪽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수백 가지 이야기를 담은 메모들이 생겨났다. 또한 동화와 소설, 희곡과 시나리오의 초안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손을 대서 작품으로 만들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무한한 생각들 가운데 어떻게 단 하나를 선택해서 소설로 만들 수 있겠는가?
나는 결코 소설을 쓸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나는 메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내 생각에서 멀어져갔다. 처음 떠오른 착상보다 더 새롭고, 종종 더 나은 생각들이 밀려오고 또 밀려왔기 때문이다. 소설가란 장시간, 때로는 몇년씩, 하나의 서건에만 집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너무 일방적이고, 너무 편향적이고, 너무 현실 도피적인 일이었다.-.쪽

에른스트 윙거의 말이 떠오른다. 전쟁 중에 쓴 그의 일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생각이 우리의 머리에서 미꾸라지처럼 날쌔게 빠져나가더라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이 생각은 낚시 바늘에서 풀려나 물속 깊숙이 사라졌다가 어느 날 다시 튼실한 몸으로 떠오를 물고기와 같다... 만일 우리가 반대로 이 물고기를 육지로 끌어올려 내장을 꺼낸 뒤 플라스틱 통에 던져버린다면 그 물고기에게 더 이상 발전이란 있을 수가 없다. 소설 착상도 마찬가지다. 만일 소설 착상들을 적당히 괜찮은 형식 속에서 가공한 뒤 종이에 옮겨 출판까지 했다면 그 착상의 발전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 어쩌면 우리네 문화적 삶은 너무 많이 잡기만 할 뿐 놓아주는 데는 너무 인색한지도 모른다.-.쪽

한 번만 연극을 함께 보고, 한 번만 저녁을 함께 먹고, 한 번만 같이 잘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항상 네댓 번 이상 만난 뒤가 문제였다. 이건 역설이었다. 대체로 내 집에서 하룻밤만 보낸 여자애들은 내가 제공하는 것들에 만족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떠들어대지도 않았다. 생판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지낸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만남의 횟수가 두 자리 수에 접근할수록 여자애들은 불평이 늘고, 친구들에게 떠벌려대기 시작했으며, 언젠가는 함께 자는 횟수가 세 자리, 네 자리 수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쪽

자연 속을 거니는 동안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곤 했다. 이제 뭔가가 끝나고 곧 새로운 것이 시작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존경은 받지만 익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바로 이때 현실 기억과 상상 기억을 구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상상의 세계에서 체험한 것들을 마치 진짜 현실에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간직해두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잇었다. 그에 비해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은 한결 모호했다.-.쪽

어떤 이야기들은 최소한 두 번 이상씩 되풀이해서 이야기해야 했다. 마리아가 그 이야기들을 외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매번 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처음 것과 다르다 싶으면 즉시 끼어들어 내 이야기의 프롬프터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녀는 내가 왜 내 이야기를 그녀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설명해주었다. 내게는 원래 즉흥적으로 짜내는 한 가지 기술 밖에 없다고.

=> 결국 주인공의 기술때문에 서커스단장과 딸의 이야기는 계속 변형이 되는데 그 점이 더 비극적인것 같습니다.-.쪽

나는 한 여자에게 아이를 갖게 함으로써 진짜 남자가 되었다. 물론 온전히 내 아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는 왜 마리아에게 아이를 갖게 해주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나로서는 전혀 손해 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리아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다. 이 일로 인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나는 마리아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쪽

나는 언젠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사후에 모든 것이 들통 나는게 두렵지 않느냐고.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때가 되면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텐데 뭐가 문제냐고 대답했다. 뻔뻔스럽지만 일반적인 대답이었다. 사후의 명예란 포스트 모던적인 문명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은 일종의 장터다. 우리는 이 장터의 개장 시간 너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쪽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물었다. 대체 우리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 말대로 자신들의 명예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물론 아니죠. 하지만 실망스럽군요. 제 말을 그 정도로밖에 이해하지 못하시다니. 거미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거미의 손아귀에 꽉 붙들려 있습니다.
그제야 머릿속이 번쩍하며 루이지의 말이 이해되었다. 순간적으로 그런 말뜻조차 이해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내가 말했다.
맞습니다. 거미가 진실로 경계해야 할 사람은 수치를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들이죠.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신의 치부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그걸 보고 즐거워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고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시장은 없었죠.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젠 일본인들도 더 이상 할복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정말 타락한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수치스러움을 즐깁니다. 게다가 언론들까지 나서서 그런 수치스러운 짓거리들을 1면 톱으로 보도하면서 그 주인공들을 유명하게 만들어주죠. 그래요, 루이지. 아주 올바른 지적이었소.
(중략)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수를. 그런 파렴치한 인간들을 계산에 넣지 않은 건 실수엿다. 그것도 치명적인 실수였다!-.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돌베개 / 2002년 11월
구판절판


녀는 두 손을 모아 빌고 있습니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비는 당신의 어린양을 하늘은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회하는 손은 아름답지요. 간절히 마주 닿은 두 손만 왜곡되지 않은 채 정상적으로 빚어진 건 하나의 계시입니다. 육체는 비록 망가졌으나 영혼은 온전할 수 있고, 아무런 흠 없는 완전무결한 육신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인간을 하느님은 더 사랑하신다고 말하려는 듯이…… 여성성이 거세된 대신, 날개를 잃은 대신 그녀는 불멸을 얻었지요. 종교적 주제를 넘어 간곡한 휴머니즘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입니다.
만일 그녀가 그리스의 여신처럼 완벽했다면 우리는 전율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매끈한 대리석의 표면 밑으로 들어가 감춰진 그녀 영혼의 보물을 파낼 생각을 미처 못 했을 겁니다. 마치 텔레비전 뉴스를 진행하는 잘생긴 여자 아나운서의 얼굴을 보느라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듯이. 예술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표현하고 감상하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지요.

<도나텔로의 막달라의 마리아에 대한 평>

=>정말 가장 충격적인 느낌을 준 조각이었어요. 파괴의 미학을 보여주는..-.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에 관한 글은 언제 읽어도 좋은것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책을 선택하는 이유는...

제목 / 디자인 / 작가 / 리뷰평 / 출판사등이 있다.

이 책은 책 제목과 디자인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