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신간 ‘행복’(예담 펴냄/리즈 호가드 지음)은 영원한 숙제같은 ‘행복 찾기’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2005년 5월, 6명으로 구성된 BBC 행복위원회가 영국 런던에서 25마일 가량 떨어진 작은 도시 슬라우(Slough)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3개월에 걸쳐 실험한 내용과 각종 통계 등을 바탕으로 행복의 실천적 방법들을 심리학적 근거와 함께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행복위원들은 ‘행복의 기술’로 우선 친구를 사귀라고 조언한다. 우정이 행복에 이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75세의 한 지원자는 “행복이란 친구와 오래오래 살면서 함께 희로애락을 겪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행복위원회는 “70대 이상 노인 1,500명을 10년 동안 관찰한 결과 친구나 상담 상대가 있는 노인들의 수명이 훨씬 더 길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행복위원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복권 당첨자들에 관해 몇 권의 책을 발표한 H. 로이 카플란 박사는 “복권에 당첨된 후에도 계속 일을 한 사람들은 직장 내 동료들과의 관계가 나쁜 쪽으로 변했고, 일을 그만두고 호화로운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금세 외롭고 우울한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심리학자 에드 디너는 행복한 사람은 인생의 후반부에 소득 수준이 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책 ‘행복’은 결국 돈이 있다고 행복하지는 않지만, 행복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조언한다.

행복헌장 10계명
1. 운동을 하라 - 일주일에 3회, 30분씩이면 충분하다.

2. 좋았던 일을 떠올려보라 -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당신이 감사해야 할 일 다섯 가지를 생각하라.

3. 대화를 나누라 - 매주 온전히 한 시간은 배우자나 가장 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라.

4. 식물을 가꾸라 - 아주 작은 화분도 좋다. 죽이지만 말라.

5. TV 시청 시간을 반으로 줄이라

6. 미소를 지으라 -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라.

7. 친구에게 전화하라 -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구나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하라.

8. 하루에 한 번 유쾌하게 웃으라

9. 매일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하라 - 그리고 그 선물을 즐기는 시간을 가지라.

10. 매일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억 2500만유로 이적료의 사나이' 호나우지뉴 등 위대한 '발'이 그라운드에 그리는 예술작품 '월드컵'에 환호하고 있는 즈음 한편에선 위대한 화가의 '손'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2)의 그림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1907년作)이 1억 3500만달러(1천 3백억원)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회화 거래사상 최고가에 거래된 그림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등 눈부시도록 화려한 황금빛에 집착하며 1901년,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황금의 시기'를 누렸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대표작과 미완성작, 스케치 등 300여점이 수록된 책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펴낸곳/위즈덤하우스)가 출간됐다.

1901년부터 시작된 '황금의 시기'에 클림트는 관능적인 '팜므파탈'을 금빛 찬란하게 묘사해 예술가로서 자신의 전성기를 맞았고, 특히 이 당시 오스트리아 빈 사교계의 명사였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으로 절정기에 다다랐다.

책에서는 클림트가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1903년 당시의 습작 네 작품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화가의 내밀한 고민의 흔적을 짐작케 하는 동시에 완성된 작품의 아름다움을 보다 충실하게 감상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사실 한국에서 클림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키스>로 더 유명하다.

클림트를 소재로 최근 출간된 책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이 그림 역시 '황금의 시기' 대표작으로 한 남성으로부터 키스를 받는 여인의 몽환적이면서도 무관심한 듯한 표정이 오히려 그림을 묘한 아름다움에 가득차게 만든다.

또 책에는 '키스'와 관련된 클림트의 습작과 비슷한 화풍과 느낌을 갖게 하는 그림 '물뱀', 그리고 모티프가 된 듯 10여년전 그려진 에드바르트 뭉크의 '입맞춤'을 함께 실어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책에서 그의 '황금 시절'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책은 애초 화가로서 입지를 마련하게 한 클림트의 초기 역사주의 화풍과 상징주의-아르누보 사이의 '빈 분리파' 스타일을 그리던 시절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위대한 작품의 소재가 돼준 '여성'이라는 도발적 주제를 찾는 과정도 그려져 있다.

또 자율적인 도전 정신과 과감한 창작성을 발휘할 수 있는 초상화와 풍경화를 중심으로 '알레고리 장식 기법'을 활용, 예술적 기호를 통해 자연과 예술의 힘 '여성적 에로스'를 표현하는 클림트의 모습도 나타난다.

"아주 간단한 편지를 쓸 때 조차 두려움으로 배멀미를 할 것처럼 떨려 사람들이 그림으로든 글로든 내 자화상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고백했던 클림트.

그러나 클림트의 말처럼 "아쉬워 할 것은 없다."

"화가로서의 나를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으면 될 일이다"

노컷뉴스 홍석재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종광 ‘낙서문학사’ 자본과 문학의 불륜에 ‘풍자메스’



“시는 시화호처럼 썩었고, 소설은 폭격 맞은 산처럼 황폐해졌고, 수필은 문학이기를 포기했고, 희곡은 연극의 노예가 되었고, 평론은 출판사의 애인이 되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파산 선고 같다. 이는 곧 출간될 김종광씨(35)의 새 소설집 ‘낙서문학사’(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낙서문학사 창시자편’에 나오는 말. 낙서문학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유사풀’이란 사람의 발언이다.

이어지는 단편 ‘낙서문학사 발흥자편’과 더불어 작가는 2015년쯤 소위 본격문학을 제치고 문학의 왕좌에 오를 낙서문학의 전사(前史)를 앞당겨 쓰고 있는 것이다. 두 편의 연작소설은 가상 풍자소설 형식으로 쓴 현 단계 문학사회학이라 할 만하다.

작가가 작금의 문학 현실에 대해 반어법과 신랄한 풍자의 메스를 들이대는 이유는 작가·재생산·수용을 둘러싼 모든 게 돈과 권력, 협잡과 공모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어느 판이나 그렇겠지만 문학판도 이전투구란 말요.”(‘낙서문학사 발흥자편’)

예컨대 유사풀은 25살에 요절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신화화되고 낙서문학을 살려낸다. 기존 문단에 대한 환멸 또는 기존 문학사에 대한 전복의 의지로 가득찬 그는 등단·데뷔를 ‘자격증 획득’이라 비꼰다.

낙서문학사의 발흥자인 ‘성철호’는 “가난한 놈들의 전유물인 문학”의 현실 속에서 “거절할 수 없는 원고료” 때문에 낙서문학에 입문한다. 낙서문학 전문지는 사재기를 통해 잡지를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언론은 낙서문학을 ‘까는’ 방식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대신해준다. 작품 고유의 ‘그 무엇’보다 문학을 둘러싼 관리와 조작이 문학의 무게를 재는 저울로 기능한다는 비판으로 읽힌다.

소설 속의 영민한 낙서문학 창시자·발흥자는 그런 문학 제도를 역이용해서 신격화된다. “일제시대 작가들을 공부하면서 갖고 있던 심각한 의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작품들이 별로 안좋은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다들 유명하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수 있었을까. 왜 그런지 알겠더군요. 처음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시발자였기 때문에.”(‘낙서문학사 발흥자편’)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최혜실씨는 ‘해설’에서 “문학적 상상력만은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아야 한다는 작가의 진중한 전언”이라고 적었다. 그의 ‘낙서문학사’ 연작은 적어도 낙서가 아닌 문학만큼은 미적 생산의 특수성, 근원적 자율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반어법의 작품이라는 풀이다.

작품의 메시지는 문학 현실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인 것 같다. 낙서문학이 장차 문학의 왕좌 자리를 차지해도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사이비 문학에 불과하므로 모름지기 이 시대의 작가라면 더더욱 ‘소설적인 그 무엇’에 헌신해야 한다는 자기다짐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는 소설만 써서 먹고 사는 ‘프로 소설가’이자 ‘소설 전사(戰士)’이다.

그렇다면 각 작품들의 ‘발화중심의 다중서사 미학’은 문학사에 대한 그의 도전처럼 여겨진다. 수록작 대부분은 여러 관계자들의 ‘증언’ 형식을 빌려 중심인물의 일대기·행적·풍경의 단면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그 화자(話者)들의 수다는 중심인물의 전모를 재구성한다기보다 오히려 해체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평론가 최씨는 “개인이 어쩔 수 없이 구성된 권력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다양한 가치평가적 악센트를 통해 언어적 의사소통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도, 전위를 통해 진정한 윤리를 꿈꾸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라고 밝혔다.

작품집은 ‘율려 탐방기’ ‘낭만 삼겹살’ ‘김씨네 푸닥거리 약사’ ‘단란주점 스타크래프트’ ‘절멸의 날’ ‘쇠북공기전 망징패조편’ ‘조싼은 헤맨다’로 이어지면서 ‘김종광 상표’의 발랄한 상상력과 걸쭉한 입담을 뽐낸다. ‘경찰서여 안녕’ ‘71년생 다인이’ ‘모내기 블루스’에 이은 그의 네번째 작품집으로 이야기의 힘, 웃음을 빚어내는 풍자가 여전하다.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아일보]

방현희(42) 씨가 첫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열림원)을 냈다. 방 씨는 계간 ‘문학·판’ 제1회 장편 공모 당선자로 이름을 알린 소설가다. 책에 묶인 10편의 단편은 일반 독자들이 대하기 편치 않다. 동성애, 근친상간, 편집증 등 ‘병적인’ 소재들이 대부분이다. 사회적 금기를 다룬 소설은 적지 않지만, 이런 소재를 집중적으로 다룬 작품집은 드물다.

소설집의 많은 내용은 작가가 전북대 간호학과에 다니면서 정신병동에서 실습할 때 얻은 경험과 맞닿아 있다. “내게 비정상인은 정상인이 되고 정상인은 비정상인이 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표제작 ‘바빌론 특급우편’은 편집증, 그것도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집요한 사랑을 다뤘다. 13년 동안 아들의 등에 업혀 인근 야산을 산책한 어머니는, 죽어서도 아들의 등짝에 달라붙어 있는 듯하다. ‘거죽까지 석회질이지 싶은 발가락이 차갑게 얼어’ 있지만, 어머니의 손은 ‘칡넝쿨이라도 되어 팔을 타고 경동맥까지 기어오르는’ 것 같다. 이런 섬뜩한 표현을 통해 방 씨가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이면이다. 작가는 많은 소설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표현된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 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작품집에서 작가가 몰두하는 ‘비정상적 정상인’은 동성애자다. 남성 디자이너와 남성 모델 간의 사랑과 질투를 다룬 ‘연애의 재발견’ 등 단편 4편이 동성애를 다뤘다. 작가는 사회학적 해석이나 무조건적 설득을 내세우려 하지 않고 평범한 사랑처럼 담담하게 묘사한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이 다르지 않은 세상에서 동성애든 이성애든 사랑은 결국 다 같은 모습이 아니냐고, 작가는 소설을 통해 반문한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기이한 세상의 모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 주몽 상, 하권중 상권표지
ⓒ2006 늘봄
우리의 역사를 뿌리째 흔드는 중국의 어처구니 없는 야욕 '동북공정'. 이에 대한 분노와 충격은 고구려를 집중 조명, 고구려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계승 발전하자는 건강한 목소리를 내게 하는 시발점이 된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최근 몇 년 동안 고구려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왔고 고구려 건국과정을 다룬 MBC 드라마 <주몽>의 인기 또한 높다. 드라마의 힘인지,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주몽에 대한 여러 갈래의 책들이 나와서 주몽을 만나기가 쉬워졌다. 알로써 타임캡슐 속에 조용히 잠자고 있던 주몽이 환생하여 21세기를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는 듯하다.

박혁문 역사소설 <주몽>을 읽고자 했던 것은 순전히 드라마 때문. 일주일에 두 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감질나게 만나던 주몽을 남보다 먼저, 더 가까이서 만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뿔싸! 박혁문의 역사소설 <주몽>은 나의 이런 욕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하필 이 책을 택하다니!

드라마 <주몽>과 소설 <주몽> 사이에서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에 앞서 10년 동안 자료수집과 현장답사를 수십 차례 하였다며 '정설'임을 주장한다. 그랬음에도 소설이 그다지 명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드라마의 특성 때문일까? 드라마를 보기 전에 이 소설을 먼저 만났다면 삼국지를 읽을 때처럼 재미있었을까? 아마 나처럼 드라마를 통하여 주몽을 만나던 사람들은 두 권짜리 이 역사소설이 다소 따분하고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주몽과 이미 기록되어 있는 고구려 탄생이란 주제 하나를 두고 이야기의 갈래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이야기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지만 주몽의 탄생부터 전혀 다른 주몽이라니!

드라마든 소설이든 가련한 것은 오직 유화뿐. 드라마에서는 매혹적인 카리스마요, 권력의 약자인 해모수는 이 소설에선 너무 완벽하고 당당하여 범접조차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택한 것이오. 내가 하려는 일은 하늘이 하는 일이고 나는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속세를 떠날 것이오. 속세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내 핏줄을 남기려 하오. 당신을 통해서, 그 아이와 그 후손을 통해 단군 조선을 다시 부활시킬 것이오. 잃었던 사해의 영토를 다시 찾고 백성도 다시 찾을 것이오. 이는 하늘이 나와 당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이오. - 책 속에서

드라마와 달라 혼란스럽지만, 재밌는 소설

드라마에서 많은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해모수와 유화의 끊어질 듯 간신히 이어지던 로맨스는 온데간데 없고, 계획적으로 유화를 납치하여 주몽을 얻는 해모수만 있다. 게다가 며칠 동안 함께 나눈 정분도 매몰차게 끊어내는 해모수는 유화가 금와왕의 첩으로 가게 둔다. 머잖아 금와왕의 품속에서 낳을 자신의 아이는 금와왕의 뒤를 이어 부여국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추모, 즉 주몽은 돌도 되기 전에 정적에 의해 유화 몰래 에서 내쳐진다.

주몽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면서 해모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듯하지만, 이십대의 단단한 청년으로 키워내는 보이지 않는 손은 아무래도 해모수, 저자는 일찌감치 이것을 들켜버려 긴장감은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또한 금와왕의 적자 대소를 누르고 후계자로 낙점 받지만, 예린과의 신방에서 언제까지 꿈을 꾸고 싶어 하는 주몽. 알에서 태어난 주몽이었는데? 해모수의 계획대로 태어나 성장한 주몽?

이런 주몽이 어떻게 고구려를 건국하게 되는 걸까? 주몽과 소서노는 어떤 운명으로 이어져 로맨스를 엮어갈 것인가? 주몽을 잇는 유리태자와 비류, 온조는 어떤 갈림길에서 한반도의 운명과 연결되어질까? 주몽과 대소왕자의 견제 등이 드라마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어서 자칫 혼란스럽지만 비교하면서 읽다보면 꽤 재미있다.

그런데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는 전혀 다른 주몽을 두고 정작 혼란스럽다. 학교에서 배운 알속에서 태어난 주몽(어쨌거나 지금의 학생들도 이렇게 배우고 있는…). 드라마 주몽과 박혁문 역사소설 주몽 중 누가 진짜 주몽일까? 우리는 어떤 주몽을 만나야 하는 걸까?

우리가 만나야 할 주몽은 어디에?

재사 : "정치하는 사람에게 선악 판단의 기준은 백성입니다. 백성이 이익을 보면 선이요, 그렇지 않으면 악입니다. 임금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백성이 무엇을 원하는가? 하늘의 뜻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힘든 것입니다."

주몽 : "하늘과 백성이 임금의 선악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 책 속에서


ⓒ2006 박현문
1권 부록으로 '예맥조선강역도'를 실었는데 이 지도가 없었다면 주몽에 대해 더 혼란스러울 뻔했다. 당시 우리 조상들이 누볐던 광활한 영토,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주어진 땅이란 겨우 한반도, 그마저도 반절뿐. 우리가 주몽을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저자가 주몽에 거는 순수한 의도는 '선악판단의 기준은 백성'의 정치관을 가진 가슴 따뜻한 위정자요.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광활한 영토를 누비던 진취적이고 원대한 그 포부를 21세기의 우리들이 이어가는 것, 이어가자는 것 아닐까?

드라마 <주몽>이 달리는 말 위에서 드넓은 만주벌판을 스치듯 보고 있다면, 소설 <주몽>은 목표를 향하여 정신없이 달리는 틈틈이 한 번씩 말을 세워두고 광활한 만주의 바람을 흠뻑 들어 마시는 듯하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당시의 생활풍습 등을 소설에서는 충분히 만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마다 참고한 자료를 보충해주고 있어서 역사를 알고자 한다면 드라마보다 소설이 훨씬 낫겠다 싶다.

김부식이 아닌 묘청적 가치관으로서 이 전환기를 대처해야 한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우리 민족의 뿌리인 '고구려'적 가치관을 되찾아야 한다. 절대강자인 중국에 맞서려 했던 대무신왕, 태조대왕, 광개토대왕 그리고 을지문덕연개소문...그들의 뿌리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과 미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라는 강대국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 - 서문 중에서

왜곡된 역사는 하루라도 빨리 바로 잡아야

덩치 큰 중국에 맞서 싸우는 것은 타산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하는 김부식에 반대하는 묘청. 묘청은 중국에 맞서 싸우면 충분한 승산이 있음을 조목조목 따지며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과 도전적인 정책을 계승하자고 주장하다가 끝내 김부식에게 제거 당한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과 묘청의 난의 묘청'. 이제는 우리가 이들에게 21세기와 우리의 미래를 제대로 물어야 할 때이다.

알에서 태어난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을 동화처럼 만났던 우리 아이들은 요즘에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면서 혼란스러워 한다. 주몽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교과서에서 배웠지 싶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배웠다고 했다. 주몽이나 박혁거세를 언제까지 알과 함께 묻혀둘 것인가 묻고 싶다. 바로 잡아야 할 역사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포장해주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왜곡은 아닐지.

사학자들이 알속에(알과 함께) 꼭꼭 묻어두었던 주몽을,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노한 뜻있는 사람들의 소신과 열정으로 이미 꺼내놓았다. 이것을 토대로 좀 더 충분한 연구를 하여 제대로 된 주몽을 우리 아이들 곁에 돌려줄 날은 언제일까? 세계를 무대삼아 진취적으로 뻗어나갈 고구려의 후손이자 21세기의 주몽 아닌가! 역사소설 <주몽>에서 우리가 뻗어가야 할 미래를 보았다.

"누가 주몽을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는가?"

"누가 주몽을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는가? 알(卵)은 새의 알이 아니라 아리수의 아리였다면 어떨까? 우리 역사학자들은 주몽뿐만 아니라 박혁거세, 김수로 등의 난생설화(卵生說話)를 너무나 쉽게 알에서 태어난 전설로 치부해버리고 말았다. '난(卵)'이란 '뜻'이 아니라 '아리'의 향찰문자 차음(借音)일뿐이다.

'아리'란 아리수(한강)의 아리, 아리랑의 아리 모두 '큰' 주술적 입버릇인 '오 주여'의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주몽은 단군의 적통 후손인 '아리'씨의 해씨로, 혁거세는 박씨, 수로는 김씨성을 가진 단군의 후손, 즉 모두들 제사장의 의미를 지닌 제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난생설화를 벗겨내고 보면 우리의 고대사는 신화의 영역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가야의 시조 김수로는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이를 우리는 난생신화라 부른다. 사람이 알에서 태어날 리는 없다. 진시황, 공자, 소크라테스보다 후세에 살았던 실존인물인 이들을 언제까지나 신화적 존재로 내버려 둘 것인가? 그 상징적 의미를 풀어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저자 박혁문


저자 박혁문은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 젊은 시절 내내 종교와 역사, 동양철학의 세계에 빠져 지냈다. 광해군의 억울한 사연과 우리 방계 민족의 여진족의 역사를 알리고 싶어 1999년 소설<팔기군(전3권)>을 발표했다. 또한 당 고종에 의해 난폭한 장수로 폄하된 연개소문을 많은 자료와 현장을 답사하여 우리 민족의 최고 영웅 연개소문을 그린 <연개소문(전 6권)>을 발표하여 동북아 공정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10여 년간의 자료수집과 수십 차례의 현장답사를 통하여 빛을 보게 된 소설 <주몽>.

저자는 현재 신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만주지역 답사 길잡이를 하고 있다. 저자가 처음부터 만주지역 답사여행을 이끈 것은 아니다. 필요성에 의해 여러 번 답사를 하게 되고 주변에서 작가의 전문성을 인정하면서 답사를 이끌게 된 것.

당시 우리의 조상들이 누비던 만주벌판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기원전 2세기 무렵의 <고조선 강역도>와 <예맥조선강역도>는 저자 박혁문이 직접 그린 것으로 수십 차례의 현장답사와 충분한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자료가 거의 없는 당시를 잘 알 수 있는 훌륭한 지도다. / 김현자


/김현자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