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한국인의 기질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를 키운 8할은 한국 사람들의 뜨거운 정이었다”

연세대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인요한 소장이 그의 열절한 한국사랑을 담은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생각의나무. 2006)에 실은 말이다.

키 190센티미터의 육중한 몸매. 파란 눈의 금발 사나이 인요한 소장의 입에서 질퍽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고 만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도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입니다”라고 말한다.

“나가 정(情) 빼면 뭐시 남겄소?”

그와 한국의 특별한 인연은 1895년에 시작된다. 호남 기독교 선교의 아버지라 이야기되는 유진 벨(배유지) 선교사가 그 해 제물포항에 도착한다. 목포를 중심으로 한 호남 선교 책임자로서 교육과 의료 사업에 힘쓴 유진 벨은 미국 조지아 주에서 온 청년 윌리엄 린튼(인돈)을 사위로 맞게 되는데, 그가 바로 인요한의 친할아버지였다. 윌리엄 린튼 역시 호남 지역을 근거로 48년 간 교육 선교 사업을 벌였는데, 전주와 군산, 대전 지역에 많은 중고등학교와 대학(한남대)을 설립했고, 자신의 네 아들은 모두 한국 땅에서 낳았다.

윌리엄 린튼의 셋째 아들이 인요한의 아버지 휴 린튼(인휴)이다. 검정 고무신을 즐겨 신어 ‘순천의 검정 고무신’이라 불렸던 그는 군산에서 태어나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 전라도와 경상도 도서 산간 지역에 600여 개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지금의 광양 제철소가 들어선 지역에 간척 사업을 벌여 땅 없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의 아내 로이스 린튼(인애자) 역시 한국에 만연했던 결핵 퇴치 사업을 위해 35년 동안이나 헌신적 삶을 살았다.

휴 린튼과 로이스 린튼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이 인요한.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곧 순천으로 옮겨져 어린 시절을 순천에서 보낸 인요한은 영어보다도 먼저 전라도 말을 배운 전라도 토박이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 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15년 째 일하고 있는 인요한. 나눔을 통해 기쁨을 얻는 핏줄을 속일 수 없어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남녘의 소외된 이웃들을 음지에서 함께하고 경제난과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북녘의 동포를 돕는 일에 힘쓰면서 그토록 오래된 린튼 가의 한국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단순하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영어보다도 먼저 한국말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전라도 땅에서 태어나셨다. 하지만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국적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미국사람일까? 그러기에는 뭔가 애매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두 나라 사이의 완전한 경계인이다. 그럼에도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내 정체성은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광주의 아픔을 함께하고, 북녘의 동포를 걱정하며 한국의 아픔과 질곡의 역사를 목격해왔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미국국적을 가진 전라도 사나이. 결국, 그가 자신을 키워 준 순천 땅, 순천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 뜨거운 정(情)을 온몸으로 겪으며 내린 결론은 자신의 정체성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정을 나누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낙천적이고, 삶에 대한 경건한 애착을 가졌던 한국 사람들이 왜 이리 각박해졌느냐고, 물질을 얻는 대신 순정한 마음을 잃은 것은 아니냐고 서글퍼하는 모습에서 그의 순수한 한국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북데일리 고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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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 이어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까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시킨 작가 공지영이 <작가의 방>(서해문집. 2006)의 저자 박래부씨와 나눈 인터뷰가 참, 재미있다.

공지영의 방을 훔쳐(?) 보기 위해 집에 들른 박래부씨는 집필용 책상 뒤에서 예수초상화와 성당사진이 글 쓰는 모습을 내려다보게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기를 받게 됩니까?”라고 물은 박래부씨에게 공지영은 “예, 받아요”라고 단호히 답했다. 이어 “글이 안 써지면 막 뭐라고 하죠. 하하”라며 너스레를 떨던 공지영. “뭐라고 한다”는 말은 ‘기도’를 의미하는 것. 그녀는 평일에도 성당을 찾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공지영의 집을 찾았던 시작장면도 재미있다.

“집은 경기 분당의 현대적 고층 아파트였다. 아침 10시가 다소 이른 탓인지 초인종을 누르자

‘거기 그냥 놓고 가세요’라는 영문 모를 대답이 들렸다. 나중에 들으니, 그의 잦은 인터넷 책 구입습관에서 비롯된 실언이었다. 벨이 울리자 인터넷으로 주문된 책들이 배달된 줄 알고 문밖에 놓고 가라고 했던 것이다”

공지영은 인터넷서점의 단골 고객이라고 한다. ‘책은 나의 오락’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의 독서광이다. 아이들 등교를 도와 준 후 서재에서 원고를 쓰고 잘 안 써지면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이 책 저책을 빠른 속도로 읽다가 문득 필요한 책이 생각나면 인터넷을 검색해 주문하고 근처나 백화점으로 시장도 보러나가는 것이 공지영의 단조로운 생활이다.

책은 그녀의 단조로운 생활의 유일한 ‘오락’거리다. 그녀의 책읽기는 아주 일찍 시작됐는데 어릴 때 소년한국일보를 보고 한글을 깨우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 때는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를 온 가족이 함께 봤고 고우영의 만화 <일지매> <삼국지> <열국지> <수호지>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는 서울여중, 중앙여고 때 일기를 거의 매일 썼다. 시도 쓰고 소설도 써서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개인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고모집에 놀러갔을때 대학생인 사촌오빠가 <토지> 1권을 주며 읽어보라고 한 것이 문학에 빠지게 된 본격적인 계기였다. 그 후 박경리를 매우 좋아해 옛날 통속소설까지 다 읽는 팬이 되고 말았다.

“처음 <토지>를 읽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우리 딸은 그 책이 재미없다고 그래요. 충격을 받았는데, 우리만 해도 땅의 개념을 아는데 얘들은 모르고, 그래서 재미없다고 하는 거예요. 땅에 대한 개념이 엄청 바뀌었어요”

그가 박래부에게 한 말이다.

책에 소개된 그의 책장 내용을 ‘살짝’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학 때부터 못 버리고 갖고 다니는 사회과학 서적들. 마르크스 주의. 해방전후사 관련서적. 에리히 프롬 책들.

▲창비의 시선(詩選)과 희귀본, 현암사에서 나온 당시집(唐詩集). 박노해 시집. 종교서적 <가르멜의 산길><수도원산책>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추리소설과 여행서, 북하우스 출판사의 ‘추리소설 시리즈’.

김승옥 전집.

▲창비와 문지의 시집들. 릴케 시 전집. 토마스만의 책들. 이문열, 오정희, 김원일, 황석영의 책들. <가을에 온 여인>이 포함된 박경리 전집.

친구들을 만나러 가끔 서울 시내에 나가고 보통 때는 분당 집에서 글을 쓰고 아이들을 돌본다는 공지영. 근처에 시장 수준의 백화점이 있어 종종 가지만 장보기, 쌀, 아이들 옷, 시계 구입 등은 모두 인터넷으로 해결한다고. 예전에는 한 달에 책을 100만원어치나 사기도 했을 정도의 독서광.

“뭐가 궁금하면 우선 책을 사요. 애가 말을 안 듣는다 하면 교육에 관한 책을 사요. 요리를 해야겠다면 책부터 사서하고 싶은 거는 하고 요리 안 할 것은 그냥 넘어가고. 책을 버릴 때는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는데,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심해서 넣죠. 요즘은 교도소에도 갖다 주지요”

그녀의 왕성한 필력,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풍부한 감수성은 방대한 양의 독서에서 토해지는 미미한 부산물일 뿐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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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강지이 기자]
 
▲ 책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
ⓒ2006 솔
현대를 사는 인간들은 마치 '소비하고 버리는 일'에 열중하며 사는 듯 보인다. 대형 마트에 가 보면 대체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한지 짐수레 가득 물건을 싣고 구입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다. 이런 대열에 나도 빠지지 않고 줄을 서 있으니 가끔은 내 자신이 한심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구입한 것들을 보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껴 있으며 온갖 화학적 물질의 결합인 플라스틱류와 잘 먹지도 않으면서 묵혀 두다 썩어 버릴 음식들도 있다. 실컷 소비하고 나면 후회가 밀려들 때도 있다. '아니 별 필요도 없는 이런 걸 내가 왜 샀지?' 하고 말이다.

책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은 이런 나의 삶을 반성하게 하는 '심플 라이프(Simple Life)'에 관한 내용이다. 일본의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로 살면서 승승장구했던 저자는 비싼 브랜드의 화장품과 하이힐, 계절별로 바뀌는 많은 옷들에 묻혀 살던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는 아주 작은 집에서 최소한의 물품과 먹거리만을 가지고 사는 심플 라이프를 지향하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바꾸게 된 계기는 바로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면서부터이다. 일본도 물론 아시아의 일부이지만 과거 검소하고 소박하던 생활 방식을 잃은 지 오래이다. 하지만 인도나 태국과 같은 나라들은 아직까지도 '최소한의 먹거리와 입을 거리'만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여행 중엔 티셔츠 두어 장으로 버틴다. 흰색 티셔츠는 점점 노래져 가고, 어깨 부분이 닳아간다. 새 티셔츠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것은 여행 중 즐거운 이벤트. 하지만 새 것을 구입하기 전엔 닳아 해진 티셔츠를 찢어버리고 앞쪽에 대는 길(앞길)은 소품을 싸는 보자기로 쓴다. 등 쪽은 청바지나 바지에 패치로 붙이거나 가늘게 찢은 세 개의 조각을 엮어 끈으로 쓰며, 비교적 깨끗한 소매 부분은 행주 대용으로 쓴다.

쇼와 초기 무렵까지 모든 일본인들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던 '마지막까지 물건을 사랑하며 끝까지 사용하는 지혜'. 고도 성장기의 소비 예찬 시대에 자랐던 우리는 그런 지혜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이렇게 훌쩍 커버렸다. 새 것을 사기 전에 기존 것을 끝까지 사용하고 처분한다."


소비 지향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저자의 이 말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무조건 사들이고 버리는 일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옛사람들의 아끼고 절약하는 모습이 궁색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물건을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얘기처럼 '사고 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저자는 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일본에서 고생 끝에 손에 넣었던 물건들 대부분이 사실 '없어도 괜찮다'는 물건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쇼핑 카트 속에 담긴 물건들을 한 번 생각해 보자. 개중에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입하게 되는 것들이 간간이 끼어 있다.

지금까지 당연하고 불가피하게 여겨졌던 것들 중엔 분명 없어도 되는 것들이 있다. 지나치게 풍족한 생활은 우리의 신경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무엇이 필요하고 또 불필요한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저자 또한 그런 20대를 보내왔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그 삶을 버리기가 왜 그리 어려웠을까 반문한다.

"회의 땐 이 정장, 구두는 이걸로 신어야 해."

"오늘 밤 저녁 식사는 프랑스 요리. 반드시 그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해."

"미용실은 여기, 화장품은 이 브랜드로 해야 해."

"일 주일에 한 번은 피부 관리실에 가야 해."

'-로 해야 해'라는 말에는 얼마나 많은 구속이 담겨 있을까.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소비하면서 이렇게 자기 자신을 구속하고 살아간다. 저자는 아시아 여행을 통해 이런 것들이 하나도 쓸모 없는 허영과 허세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줄이는 삶'을 실천했다. 그 삶의 모습은 '천조각을 활용하기'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재미있는 특징은 바로 카피라이터인 저자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직접 그린 간결한 펜 그림들은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매우 귀엽다. 저자 나름의 삶의 철학은 소박하고 단순한 문체로 전달된다. 하지만 그 속에 고개를 끄덕일만한 좋은 내용이 많다.

"돈이 필요해. 부자가 되고 싶어. 그런 기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여러 물건을 사 모으고, 차를 소유해 오면서 풍요로워진 우리 일본인들.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풍요롭다고 할 수 있는 걸까? 풍요로움 끝에 반드시 행복이 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시아의 친구들에게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렇다. 돈과 차와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풍요로움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상징은 절대 아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지니고 있으면 몸이 편리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다. 행복은 적게 소유하는 삶 속에도 깃든다는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새겨 본다.

/강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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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보낸 '납량소설 냉탕'으로의 초대장

[오마이뉴스 유성호 기자]
 
ⓒ2006 황금가지
안개 속에 축축하고 끈적이는 긴장이 있다. 팽팽하게 고조되는 공포는 한순간 선홍빛으로 폭발한다. 사방은 붉게 물들고 역한 피비린내가 풍긴다. 안개 속에 무언가 있다.

그러나 실체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왜 인간을 공격하는지. 다만 그런 것을 알아챌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긴박함과 고립만 있을 뿐.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에 들어있는 단편 '안개'의 공포는 제목만큼이나 뚜렷하지 않다. 개념의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준다.

마감 시간이 코앞인데 기사가 써지지 않을 때의 조급함은 기자에겐 하나의 공포다. 이런 것들이 붉은 피와 섞이면 극한의 공포로 증폭되는 것처럼 킹은 일상에 숨어있는 공포를 교묘히 들쑤신다.

'안개'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괴물들 역시 산발적이고 다양한 공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요소다. 빨판이 있는 촉수괴물, 크기가 70~130cm 정도 되고 마디가 둘인 집파리 모양의 분홍 괴물, 분홍 괴물을 잡아먹기도 하는 알비노 괴물, 거미 괴물….

이들이 안개 속에 파묻혀 온 이유는 불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괴물들은 인정사정없이 닥치는 대로 인간을 살육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실체를 모르는 불확실한 공포 묘사 탁월

스티븐 킹은 이러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에서 냉정과 광기를 절묘하게 끄집어낸다. 인간의 냉정과 광기는 공포를 부정하는 자기부정 형태란 점에서 같다. 그러나 그 둘은 인간에게 목숨을 건 선택을 강요한다.

또 다른 중단편 '원숭이'에서는 끊임없이 주인공의 동선을 쫓으면서 불행을 예고하는, 심벌즈 치는 원숭이 인형의 집요함을 등골 서늘하게 묘사하고 있다.

상상해 보라. 오래전 버렸던 것이 주위에서 맴돌며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을.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원숭이 인형이 겹쳐진다. 마치 한 녀석이 소설과 영화를 넘나들고 있는 듯.

스티븐 킹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다. 공포 소설의 대가며 그의 작품은 33개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뿌려졌다.

그동안 3억3000만권이 출간됐다고 하니 지구촌 가정 스무 집에 한 집 꼴로 있는 셈이다. 글쓰기로 연간 1000억원 이상 벌어들이는 밀리언셀러 작가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걸어 다니는 기업'이다.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도 크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 <샤이닝> 등 대박을 터뜨린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안개' 역시 <쇼생크 탈출>을 연출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영화로 기획하는 중이라니 팬은 물론 영화 마니아들에겐 희소식이다.

이번 단편집에는 두 편의 시를 포함해 스무 편의 단편이 실렸다. 모두 그의 전성기 작품으로 채워져 킹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역자의 설명이다.

킹의 글은 단편임에도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짧은 글도 영화로 쉽게 만들어진다.

'안개', '원숭이', '토드 부인의 지름길', '뗏목', '노나', '고무 탄환의 발라드' 등은 단편이지만 사건의 처음과 끝을 묘사한 완전한 줄거리가 존재한다.

또 시간이 복합적으로 배열돼 있어 장편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짧지만 짜릿한 전율을 전달하는 작품들이다.

스티븐 킹은 누구?

스티븐킹홈페이지
1947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형이 발행하던 동네 신문에 기사를 쓰면서부터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알린 작품은 1974년 스물 여섯 살의 나이로 출간한 <캐리>. 이때부터 지난 20여년간 텔레비전물을 포함한 5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현대 최고의 공포 소설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 3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권 이상이 팔린 초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미국 <포브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존 그리샴, 마이클 크라이튼, 톰 클랜시 등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1996년에는 오 헨리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에서 미국 문단에 탁월한 공로를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공로상을 받는 등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또 하나의 재미, 작가 후기

킹은 말한다. 단편 소설의 배경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의 배경은 학자들이나 독서광들과 분석가의 몫이다.

킹에게는 배경보다 이야기가 생산되는 '동기'가 더 중요하다. 킹은 책 말미에 작품이 생산된 배경을 친절히 설명했다.

'토드 부인의 지름길'은 지름길 찾는 데 미친 아내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글은 여성잡지 세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두 곳은 여자가 서서 소변보는 장면을 문제 삼았고 한 곳은 주인공이 너무 늙어서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퇴짜를 놓았다.

킹은 이들 세 곳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한마디로 실망감을 나타냈다. 작가의 속내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재미난 부분이다.

킹의 공포는 밀도가 높다. 단편이란 형태를 취해서이기도 하지만 빠른 글쓰기가 밀도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얼음같이 서늘한 생각이 녹지 않을 만큼의 시간 안에 작품을 생산해 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단편은 장편을 탈고하고 쉬어가는 의미로 며칠 만에 쓰는 글이라는 말도 있다. 대단한 필력이다.

세계적인 작가인 만큼 팬들도 많다. 국내에도 팬클럽이 있고 그를 위한 홈페이지도 만들어져 있는 등 공포소설 마니아들에겐 신화 같은 존재다. 이들과 함께 올 여름엔 킹이 초대한 냉탕으로 한번 빠져보는 게 어떨까.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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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06-06-2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활동하시는 '연년생아빠'님의 리뷰랍니다. ^^
 

[오마이뉴스 원일형 기자]
 
ⓒ2006 평사리
"풍자냐, 자살이냐."

꽤 오래 전에 읽었던 어느 시인의 글귀다. 억눌린 스프링일수록 탄력 계수가 높아지듯 현실의 벽이 높아질수록 벽을 부수려는 힘 또한 커지니, 풍자도 그런 힘의 하나이리라.

사실 나는 요즘 웃을 일이 별로 없다. 먹고살기 힘든데다 어디 하나 정이 갈 곳 없는 세상사. 웃음을 찾기 힘든 거야 인지상정일 테고, 말장난만 일삼는 허섭스레기 같은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오히려 허탈할 뿐이다. 정말 신명하는 탈놀이 한 판이 그리워지는 나날이다.

누군가 그랬듯이 본디 풍자는 있는 자의 것이 아니라 '없는 자'의 것이다. 고관대작의 것이 아니라 장삼이사의 것이다. 그래서 풍자는 바로 우리의 것이며, 우리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요즘 풍자를 찾기 힘들다. 냉소 어린 패러독스는 언뜻언뜻 보이지만 가슴을 뻥 뚫어주는 풍자는 만나기 어렵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주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사실 명색이 글쟁이과를 전공했던 나조차 보도 듣도 못했던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란 책이 바로 그것이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동화작가가 아니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가 18세기 가식덩어리인 대영제국에게 통쾌한 한방을 먹이는 풍자소설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스위프트가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란 장르 모호한 글을 남겼다는 것을 나는 정말 몰랐다.

솔직히 이 책은 언뜻 보면 뭐 별로 색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하인' 이야기인가 하는 느낌도 가질 수 있으며, 우리와 처지나 조건이 다른 하인의 풍자가 '또 뭐 그리 우리를 시원하게 해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18세기의 하인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오늘의 월급쟁이를 대치해서 글을 읽는 순간,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얕고 가벼웠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 바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다.

하는 일이야 조금 다를 수 있어도 경제 외적 강제에서 벗어나 '주인님'에게 경제적으로 묶여있다는 점에서는 당시의 하인과 오늘의 월급쟁이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현대판 '하인'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책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의 하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의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보자.

"주인의 모든 재산이 자신의 고유 업무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그 일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음을 윗사람에게 확신시켜주는 것이 잘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첩경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이다.

기사 분량의 제한으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에 실린 스위프트의 촌철살인과 같은 풍자를 좀 더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18세기의 하인으로 등치시키고 읽는다면 오랫동안 잊었던 풍자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풍자는 칡뿌리와 같아서 처음 씹을 때 느끼는 쌉쌀한 맛도 놓치기 힘든 맛이면서, 씹으면 씹을수록 흘러나오는 달큰한 맛은 우리를 더 달뜨게 한다.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또한 그러하다. 읽은 내용을 곱씹고, 우울할 때 혹은 짜증날 때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맛이 우러나오니, 역시 스위프트의 풍자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스토리로 연결되는 소설이 아니니 아무 때나 아무 곳을 펼쳐 읽어도 근엄한 '주인님'을 우려먹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을 읽는 한 가지 팁 : 스위프트가 찌르는 풍자의 칼끝이 어디로 향한 것인가를 찾을 수 있다면 책 말미에 나오는 번역자의 '작품해설'을 씹는 맛도 꽤 쏠쏠하다.

/원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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