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맥주, 와인, 커피, 홍차, 증류주, 코카콜라. 6종류 음료수를 열쇳말로 잡아 역사의 중요한 대목을 짚었다. 수렵·채집에서 농경 생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맥주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삶에 뿌리내린다. 맥주를 나눠 마시며 사람들은 공동체의 끈을 조였고 그 자취는 현재 잔을 부딪는 문화에도 남아있다.

와인은 지중해 문명을 상징한다. 그리스인은 와인에 물을 섞어 마시며 정치와 철학을 이야기했고 자신들처럼 마시지 않은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했다. 로마 제국의 번영을 따라 와인은 세력을 넓혀갔다.

와인이나 맥주에 비해 럼·브랜디 등 증류주는 보관과 운반이 쉬웠고 무역선에선 빠지지 않는 음료가 됐다. 노예 무역의 매개체였던 증류주는 흑인의 눈물인 동시에 초기 미국의 경제적 바탕을 마련해준 선물이었다. 지은이는 홍차에서 제국주의를, 코카콜라에서 신자유주의의 욕망을 건져 올린다. 커피에는 근대 유럽의 지성인 문화가 담겨 있다. 보조 식품쯤으로 취급됐던 음료로 역사를 구분하는 시도는 신선하나 서술은 고교 교과서처럼 평이하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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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찰서여, 안녕>의 작가 김종광(35)씨가 새 소설집 <낙서문학사>(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표제작에 해당하는 두 편의 연작을 포함해 아홉 개의 단편이 묶였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김종광씨의 소설은 김유정·채만식에서 이문구·성석제로 이어지는 ‘이야기 소설’의 계보에 속한다. 소설이란 무릇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지만, 굳이 ‘이야기 소설’이라 특화하는 것은 해학과 풍자를 도구 삼아 세태와 인간의 이모저모를 재미지게 요리하는 유형의 소설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특히 고향을 무대로 펼쳐지는 김종광씨의 어떤 소설들은 의뭉스러운 웃음 속에 슬픔과 분노를 숨긴 데에서 동향 선배인 이문구를 떠올리게도 한다.

<경찰서여, 안녕>과 <모내기 블루스>에 이은 세 번째 소설집이 되는 <낙서문학사>에서 김종광씨의 해학과 풍자는 한층 날이 서 있어 보인다. 표제작인 <낙서문학사 창시자편>과 <낙서문학사 발흥자편>에서부터 그러한데, 이 두 작품이 문학의 본질과 작가라는 존재, 출판시장의 문제 등 작가 자신과 무관할 수 없는 민감한 대목을 겨냥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두 소설은 ‘낙서’가 문학의 핵심 장르로 부상한 2030년 무렵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각기 낙서문학을 창시한 ‘유사풀’과 그 발흥자인 ‘성철호’의 평전을 쓰려는 작가가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 그들에 관한 증언을 채록하는 형식을 취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문학의 중심 장르로 부상하는 낙서가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는 알기 어렵다. ‘낙서’라는 보통명사의 사전적 의미에서 유추해 보는 수밖에는 없다. 소설 속에서 확실한 것은, 기존의 문학 장르를 나름대로 섭렵하고 시로써 신춘문예를 통과한 유사풀이 “사악한 시, 추잡한 소설, 역겨운 수필”을 운운하며 그것들과 구분되는 어떤 것으로서 낙서를 주창했다는 사실이다.

의뭉스러운 웃음 속 슬픔과 분노

유사풀의 요절 이후 낙서문학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는데, 재벌 3세 출신 시인 성철호의 ‘장난’이 개입한 결과임이 드러난다. 엄청난 액수의 상금을 내걸고 낙서문학상을 제정했으며 독자들에게 막대한 양의 도서상품권을 뿌리면서 낙서문학 동인지를 사도록 했던 것이다. 한동안 ‘돈지랄’를 하다가 제풀에 싫증이 나서 문학판을 떠난 성철호의 일갈은 그런데 묘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한테 돈으로 문학했다고 욕하는 새끼들, 그 새끼들은 대체 얼마나 깨끗했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개나 소나 다 돈 보고 문학하던데, 왜 우리만 보고 지랄들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

‘낙서문학사’ 연작은 두 편에서 더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 어조는 다른 작품들로도 확산된다. 허균이 건국했다는 나라 ‘율려’로 단체여행을 떠난 일행의 여행 소감을 입말투로 들려주는 <율려 탐방기>, 역시 율려를 무대로 매춘부들의 폭동이 내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신문기사 식으로 중계한 <절멸의 날>, 2020년께를 배경 삼아 한 기업의 구조조정과 패망 과정을 추적한 <쇠북공기전 망징패조편>, ‘조싼’이라는 이름의 엽기 폐기물 반입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여론과 행동의 추이를 그린 <조싼은 헤맨다> 등에서 두루 그러하다.

“경제 어렵다는 새끼들이 개나 소나 해외 나가냐고.”

<율려 탐방기>의 끝부분에서 한 등장인물이 욕설 섞어 내뱉는 말에 어쩐지 뜨끔해지지 않을 이가 있을까. 굳이 휴가나 방학철을 기다릴 것도 없이 언제나 성황을 이루는 인천공항의 인파들, 그리고 해외의 주요 여행지마다 발에 차이듯 걸거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생각해 보라.

‘배설’에 가까운 풍자는 정제돼야

‘언론군의 엽기 폐기물’이라는 조싼을 가리켜 “좀비보다 비열하고 드라큘라보다 잔인하고 야차보다 끔찍한 해악 덩어리”(<조싼은 헤맨다>)라 규정하거나, “언론권력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카멜레온”(<절멸의 날>)이라고 설파할 때, 권력과 유해 폐기물로 변질된 언론에 대한 작가의 분노는 생생하게 전해진다.

한편, 작가 스스로 “월드컵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전 세계인에게 바치는 서정시”라 설명하는 <절멸의 날>은 지금과 같은 ‘월드컵지절’에 특히 흥미롭게 읽힌다. 축구와 섹스를 결합시킴으로써 자국민을 통솔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나라 율려에서 매춘부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축구경기가 중단된다. 당국은 군대를 출동시켜 폭동을 진압하고 실권자인 축구국장은 국민들에게 호소한다: “이제 우리는 국민의 열성과 힘을 모아 다시, 축구로, 축구로 나아가야겠습니다.” 그러나 ‘실존 클리토리스’ 팀과 ‘허무 페니스’ 팀 사이의 축구 재개전은 매춘부가 주도하는 혁명을 불러오고 나아가 율려국 전체가 극심한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이 미친 나라에 살면서 어떻게 안 미칠 수 있겠나?” 소설 말미에 나오는 노인의 반문은 스포츠와 섹스에 미쳐 돌아가는 듯한 세태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음이다.

대상이 문학이든 언론권력이든 스포츠 광풍이든 김종광 소설의 풍자는 거침이 없는 만큼 통쾌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근본적이고 진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비판이라기보다는 배설에 가까운 풍자는 적은 고사하고 우리편을 설득하고 부추기는 데에도 한계를 지니기 십상이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냉정해져야 한다는 철칙은 소설에서도 어김이 없다. 그런 점에서 소설집 <낙서문학사> 속의 풍자는 좀 더 정제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소설집의 주조를 이루는 거친 풍자와는 구분되는 작품이 <김씨네 푸닥거리 약사>와 <낭만 삼겹살>이다. 두 작품 모두 작가의 고향과 그곳 어른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특히 <낭만 삼겹살>은 반생을 탄광 노동자로 일한 끝에 진폐증에 걸려 죽어가는 주인공 ‘황낭만’의 마지막 나날을 따뜻한 슬픔으로 껴안고 있어 인상적이다. 작가가 날선 풍자로 치닫느라 놓친 자신의 미덕을 이 작품은 의연히 간직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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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2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설이나 냉소가 풍자라고 착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풍자다운 풍자는 따스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역겨운 수필,, 이 글귀가 저를 찌릅니다..^^

보슬비 2006-06-2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읽은 단편집 중에 '낙서문학사'만 읽어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그 단편을 떼어 다시 출간했네요.
 



파이자 게네 지음, 김민정 옮김, 문학동네, 264쪽, 8500원

"방리외(파리 교외 빈민가)의 프랑수아즈 사강". 2004년 알제리 이민 2세대 소녀인 파이자 게네(사진)가 '내일은 키프키프'를 발표했을 때 프랑스 문단은 이렇게 무서운 신예를 주목했다. 당시 열아홉살이었던 게네는 고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쓴 원고가 우연히 출판사 눈에 띄어 출간 두 달 만에 3만부가 팔리는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키프키프'는 아랍어로 '사랑하다, 행복하다'는 뜻. 주인공 소녀 도리아는 제목처럼 현실의 절망 속에서도 내일의 행복을 키워간다.

모로코 이민 2세인 도리아는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단둘이 파리 변두리 영세민용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빠가 엄마를 떠난 이유는 아들을 낳기 위해서. 사회복지사들은 도리아의 집을 밥 먹듯 드나들며 도리아를 문제아 취급한다. 도리아는 학교 공부에 취미가 없다는 이유로 심리 치료까지 받게 된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인 하무디 오빠는 감옥살이를 하고 난 뒤 계속 건달 신세다. 도리아의 말마따나 "개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책은 자칫 우울할 수 있는 주제에 발랄하고 감각적으로 살을 붙여나간다. 어른들과 사회의 위선을 직시하는 10대 소녀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 등을 옮긴 번역자가 최대한 입말에 가깝게 애쓴 번역 덕도 상당하다. 이런 식이다. "운명이란 참 개똥 같다. 왜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니까. 뭘 하든 항상 날 엿먹인단 말이지.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빠가 우릴 버리고 떠난 건 저 어딘가에 이미 적혀 있는 일이라고. (…) 그러니까 우리는 그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배우들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시나리오 작가께서 글재주라곤 털끝만큼도 없다는 사실이다. 쓰려면 좀 멋지게 쓸 것이지."

또 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가난한 이들의 성경이었다면 요즘은 TV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나보다." 작가는 세계화가 심화되면 80%의 하류층이 TV와 싸구려 대중소설 같은 '티티테인먼트'에 몰두하게 될 것이라는 한스 피터 마르틴의 '세계화의 덫'이라도 읽은 걸까.

지난해 파리 교외의 이민자 폭동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톨레랑스(관용)'를 내세우지만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온존하는 사회의 단면도 소녀의 날카로운 눈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무디 오빠는 어렵게 일자리를 얻지만 재고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해고당하고 만다. "오빠는 흑갈색 고수머리에 거무스레한 피부를 지니고 있다. 부리부리한 두 눈은 밀크커피 색깔이고…. 오빠는 이런 것들 때문에 자기가 도둑놈이라는 누명을 쓰게 됐다고 믿고 있다." 문장마다 스며나오는 리얼리티의 무게감은 이 성장소설을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게 한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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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누가 조직적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붉은 물결을 만들어 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축제, 이보다 더 신명나는 판이 어디 있을까.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굴레 같은 일상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난다. 축제는 억압된 본성을 표출하고 금기를 벗어던지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몸짓이다.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는 유럽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축제를 돌아봤다. 고유한 색깔을 간직한 10개 유럽 축제를 찾아 풀어 쓴 여행 에세이다. 해마다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를 끌어 모으는 유럽 축제의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지은이 김규원씨는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연구원. 프랑스 유학 중 유럽의 축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대부터 붉은 빛깔은 종교 제사와 민속 축제의 기본 색상이다. 현대화된 스페인 축제에도 붉은빛이 선연하다. 산 페르민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투우. 희생용 황소가 벌이는 투혼, 심장에서 쏟아지는 피는 투우가 펼치는 붉은 유희다. 불꽃이 쉴 새 없이 터지는 발렌시아 축제, 붉은 토마토를 던지고 뭉개는 토마토 축제도 고대의 광기를 유지한 스페인 문화의 붉은 축제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위스의 바젤 카니발은 푸른빛이다. 바젤 카니발은 푸르고 시린 라인강에서 춥고 아름다운 축제를 시작한다. “검푸른 대기에 남색의 라인강, 점차 밝아오는 푸른 안개, 그 사이로 빛나는 등불의 행렬, 악대의 피리와 작은 북소리까지 합쳐지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바젤의 카니발 아침은 뼈가 저리도록 아리고 춥지만, 이렇듯 고요함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파란빛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스위스 바젤 카니발 / 프랑스 됭게르크 축제


프랑스의 아비뇽 축제와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는 ‘이란성 쌍둥이’다. 두 축제 모두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검게 그을린 땅에서 싹을 피우는 소나무처럼 태어났다. 같은 해에 태어난 공연 축제들이다. 두 축제의 색상을 굳이 구분하자면 아비뇽 축제는 초록, 에든버러 축제는 청록이다.

지은이는 이 밖에 황금색의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장터 축제(독일), 노란색의 됭케르크 축제(프랑스), 오렌지색의 뱅슈 카니발(벨기에) 등을 소개한다. 지은이가 직접 찍은 사진과 자료 사진은 축제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한다.

이보연 기자 bya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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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기자 =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에르네스토 사바토(1911∼)는 라틴아메리카 작가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아르헨티나의 대표 작가다.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훌리오 코르타사르와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삼총사'로 불린다.

물리학 박사 출신인 그는 1947년 유네스코에서 2개월 동안 일한 뒤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 '터널'(이룸 펴냄)을 구상했다. 이 작품은 알베르 카뮈, 토마스 만 등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걸작으로 꼽힌다.

"내가 바로 마리아 이리바르네를 죽인 화가 후안 파블로 카스텔이라고만 말하면 충분할 것이다." 작품은 이렇게 38세 화가 카스텔이 자신의 연인을 살해한 범죄사건의 범인임을 스스로 밝히면서 시작된다.

소설은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던 단 1명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카스텔의 시각에서 1인칭 시점으로 계속된다.

절대 고속 속에서 누군가와의 소통을 간절히 원했던 카스텔은 자신이 전시회에 출품한 '모성'이라는 제목의 그림 앞에 한참 머물러 있던 낯선 여성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카스텔의 그림 속 작은 원경(遠景)을 그녀가 이해하는 것 같아서였다. 작은 창문 너머로 쓸쓸한 해변에서 한 여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원경은 처절하고 절대적인 고독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몇달 간 우울한 상태에서 그녀만 생각하던 카스텔은 우연히 거리에서 이 여성을 보고 만남을 이어간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시각장애인을 남편으로 둔 주부였다.

한달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리아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된 카스텔은 어느날 마리아의 언동이 모두 작위적인 것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고 그녀를 사촌 시동생 헌터의 정부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카스텔에게 유일한 구원이었던 마리아와의 소통은 그를 더 깊은 대화 단절과 고독 속으로 가라앉게 했다.

카스텔은 마리아의 침실로 찾아가 그녀의 가슴에 칼을 꽂고, 그녀의 남편에게 마리아가 헌터의 정부였다고 말하지만 남편은 "바보는 바로 당신이오! 마리아는 나의 정부이기도 하고, 다른 많은 남자들의 정부이기도 하단 말이오"라고 소리친다.

글을 번역한 조구호 배재대 스페인어ㆍ중남미학과 교수는 "단 한 가지 전망밖에 보이지 않는 어둡고 폐쇄된 지하관 '터널'은 카스텔이 세상과 고립된 존재임을 암시한다"며 "고독하고 절망적인 삶을 세상과 화해시켜줄 수 있는 희망의 상징인 마리아를 살해한 것은 구제할 수 없는 고독에 갇혀 버렸다는 공포와 절망감"이라고 말한다.

또한 장기간 독재자들의 횡포에 숨 막히는 순간을 살아가던 아르헨티나 민중의 억압적 상황이 출구 없는 터널에 비유된다고도 설명한다.

사바토는 1983년 아르헨티나의 국가실종자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돼 1976년부터 이어진 혹독한 군부독재 정권의 잔학상을 폭로한 보고서를 제출, 초판 40만 부가 하룻밤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작품은 집요한 자기해명을 시도하면서 소외와 고독을 초월한 참다운 공동체 구축을 지향하고 전통적 가치의 붕괴와 물질이 지배하는 현대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전위예술운동과 좌익운동에도 참가한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다가 초현실주의 화가로도 변신했다.

288쪽. 9천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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