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규종 기자]
글을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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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갈라파고스 |
자크 브로스의 <식물의 역사와 신화 La Magie des Plantes>는 흥미로운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하다. 책은 '식물의 마술'과 '마술식물'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론격인 '식물의 마술'에서 지은이는 태초의 식물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한다. 거기서 그는 영역을 제한하지 않고 인간문명과 식물을 결합함으로써 독자의 시야를 확장한다.
두 번째 부분인 '마술식물'에서 브로스는 마흔 가지 식물을 독자에게 선보인다. 우리에게 친숙한 백합이나 연꽃, 인삼과 갈대, 차와 커피도 있으며 정향이나 서던우드,
벨라돈나풀과 디기탈리스, 페요테선인장과 마편초처럼 매우 생소한 식물도 소개된다. 하지만 길지 않은 각론에서도 그는 신화적이고 생태학적이며 역사적인 관점을 잠시도 놓치지 않는다.
동식물의 공통점을 찾아서"동물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식물의 번식을 제어하기 위하여 식물을 먹어치울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19쪽)동물과 식물을 대비하면서 지은이가 제시한 흥미로운 이론이다. 식물은 동물의 이런 공세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고 종족을 번식하는 여러 경로를 개척해 나간다. 이를테면 가시로 온몸을 덮는 식물이나 독을 내뿜는 식물 나아가 곤충과 같은 작은 동물을 섭생하는 식충식물에 이르기까지 식물의 저항과 반격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동물과 식물에 내재된 공통점이다. 브로스의 주장 가운데 두 가지만 생각해보자.
"얼핏 보기에 평행선처럼 진행되는 두 부류의 진화, 즉 식물과 동물의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한 가지 아주 의미심장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식물의 씨와 동물의 알이 지니는 기능적 유사성이 바로 그것인데, 이로 인하여 식물은 물을 근거로 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도약할 수 있었다."(30쪽)대척적인 생존방식을 보여주는 생명체로서 동물과 식물 모두에게 적용되는 알과 씨는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요람과 같은 구실을 한다. 그리하여 파충류는 알을 낳기 위하여 더 이상 습지로 돌아가지 않았고, 식물의 지배세력은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빠르게 전화되었다. 오늘날 500여 종만 남은 겉씨식물과 20만 종이 넘는 속씨식물을 고려하라!
"식물은 끓는 물에 새우를 집어넣을 때나 붉은 피가 보일 때 반응했다. 식물은 감정을 느낄 뿐 아니라, 감정을 기억하기까지 한다. 학자들은 식물에게도 기억능력이 있으며, 식물세포와 인간 신경체계 사이에는 정보 전달자로서 특별한 관련이 있다고 발표했다. 식물이 보이는 반응은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의 반응과 다르지 않다."(168~174쪽)이런 언표를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흥겨운 음악이나 고전음악을 틀어주면 곡물의 수확량이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훨씬 나아가 식물이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기억한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와 고양이처럼 화초가 반응을 보인다면 당신은 어떻게 베란다의 화분을 대할지, 곰곰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식물의 생존: 각박한 투쟁과 조화로운 상생거의 모든 식물은 한 자리에서 붙박이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동성에 기초한 동물과는 달리 식물 사이의 투쟁을 우리 육안으로 확인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크 브로스는 인간의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식물들의 그런 치열한 각축과 생존경쟁을 기술한다.
"식물계에서는 굉장한 공격이나 추격전, 격렬한 몸싸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는 식물 세계에도 암묵적인 투쟁과 경쟁은 언제나 존재한다. 숲을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숲은 조용한 침묵의 혈전장이며, 거대한 식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너무도 천천히 진행되어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58쪽)이런 투쟁의 결과 유칼리나무나 밤나무 혹은 호두나무 아래서는 아무것도 키울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공존하면서 상생과 번영을 구가하는 식물들도 있다. 이를테면 완두와 딸기는 감자와 잘 어울리며, 데이지와 양귀비는 밀의 생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감자는 토마토와는 상극이므로 이들을 같이 재배하면 커다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식물들이 보여주는 공존과 배제, 투쟁과 각축 이외에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에게 부여된 강렬한 생명력과 반짝이는 지혜다. 예컨대 영하 70도에서도 죽지 않는 식물도 있으며, 영상 80도에서도 살아남는 식물도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자라는 바오바브나무는 꽃가루받이에 박쥐를 이용하는 지혜를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나무의 특징: 강인한 생명력과 장구한 수명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식물의 세계는 여전히 수많은 수수께끼로 넘쳐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전체 식물 종은 80만종에 이르는데 고작 25만종 정도만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우주탐사에 나선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인간은 지구와 자신을 둘러싼 숱한 생명체에 대한 신비조차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 셈이다.
지은이는 식물의 생명력과 수명을 동물의 그것들과 비교하면서 식물의 우위를 설파한다.
"자작나무와 사시나무는 100년을 넘기기 어렵지만, 느릅나무는 400년까지도 살 수 있으며, 참나무와 너도밤나무는 500년을 너끈하게 견딘다. 보리수와 낙엽송은 천년을 넘게 살 수 있다. 세네갈에는 육천년 정도 되는 바오바브나무들이 살고 있다. 가장 나이 많은 나무는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프 섬에 사는 수령 팔천년 정도의 용혈수다."(81-83쪽)8000년 전에 살기 시작한 나무가 아직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은 짜릿한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장수하는 동물로 알려진 거북이라 해봐야 200살 정도가 고작인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 나무가 이미 3700살 정도 되었을 때 단군 할아버지께서 태백산 신단수 아래서 조선을 개국하셨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나무수염은 어떠한가!)
"1920년에 벌목된 세쿼이아는 높이 133미터, 밑동지름 36미터, 그러니까 나무둘레가 114미터에 이르며, 부피는 2,800 세제곱미터에 무게는 2,000톤에 이르렀다고 한다. 반면에 현존하는 지구 최대동물은 흰긴수염고래로 몸길이 33미터에 무게는 130톤에 불과하다. 육상동물 가운데 최대인 아프리카 코끼리는 키가 4미터에 무게는 7톤이다."(85-86쪽)지은이는 양자의 이런 엄청난 규모와 생명력의 차이를 에너지 소모에서 찾고 있다. 다시 말해 식물이 동물에 비해 훨씬 더 경제적인 기능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은 자기가 뿌리내리고 있는 토양에서 직접 양분을 획득하며, 번식을 위하여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곡식재배와 인간문명: 문명의 발생과 인간의 진보 혹은 행복<식물의 역사와 신화>는 비단 식물일반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기록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서책은 식물을 둘러싼 문명 개관서적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우리의 일상과 결부되어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신석기시대 이후에 발생했다고 알려져 온 농업혁명과 결부된 서책 부분은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과 비판적 안목이 특히 돋보인다.
자크 브로스는 신석기의 농업혁명이 기원전 8천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는 세간의 통념을 반박한다. 나아가 그는 경작지로서 밭보다 관상정원이 먼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구석기시대가 기원전 1만 5천년 무렵 끝나고, 신석기 농업혁명이 기원전 8천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농업혁명은 느닷없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 사이 존재하는 중석기 7천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된 경작시도에 토대를 둔 것이다. 결론적으로 농업의 터전인 밭보다 과수원과 채원, 관상정원이 먼저 등장했다."(132-133쪽)그는 인간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일년생 식물, 예컨대 보리와 밀의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재배는 신석기시대가 아니라
중석기시대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그리고 밭이 관상정원 보다 앞섰다고 짐작하는 것은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오류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예술가적인 기질 혹은 종교적인 심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곡식재배를 문명의 발생과 진척과 결부시키면서 논의의 지평을 확대한다.
"잉여생산물은 인간 에너지의 비축을 뜻한다. 양식을 저장함으로써 인간은 농업생산에 써야 할 에너지를 다른 일에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직업의 세분화, 전문화 및 사회계층이 생겨났다. 양식저장고, 즉 창고가 들어선 장소 주변에 시장이 생겨났고, 도시가 형성되었다. 결국 인간은 현재에서 미래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155쪽)재배된 곡식의 잉여분이 축적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과거의 충실한 되풀이로서 수용되어왔던 현재를 미래와 연결시켰다고 그는 주장한다. 혁신의 일상화가 발생하면서 인간은 문자의 발명과 상거래, 문명과 전쟁이라고 하는 역사와 정면으로 대면하게 되었다는 것이 자크 브로스의 송곳 같은 논조다. 과거에서 미래로 뛰어드는 인간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역사의 개념과 만났고, 역사에서 다시 진보라는 개념이 도출되었다.
"역사와 더불어 진보의 개념이 생겨났으니 진보 없는 역사는 없고, 역사 없는 진보도 있을 수 없다. 모든 진보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때로는 엄청나게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그런데 진보와 행복은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왜냐면 진보는 현재 갖지 못한 것을 원하며, 행복은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158쪽)
역사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행복으로 진화하는 자크 브로스의 사유전개는 탁월하다. 그는 진보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대답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지만, 정확한 문제제기를 통하여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는 양진영의 근원적인 출발점을 제시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는 모순적인 명제.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아니면 앞으로 행복할 것인가?
각론에 대하여: 마흔 가지 식물에 대한 정보와 문명사적 접근
<식물의 역사와 신화>를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내용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두 가지 사실만 소개한다.
"1803년 프랑스 화학자 드론은 양귀비의 유효성분을 추출하였고, 몇 년 후 약제사 제르튀르너는 그 아누데 강한 알칼리로이드 성분을 분리하고 모르핀이라 명명하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몽상의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모르페우스는 잠의 신 힙노스의 아들이며, 힙노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형제지간이다."(192쪽)
강력한 마취제 모르핀의 발견으로 19세기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모르핀은 외과수술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렸으나 그것은 아편보다 훨씬 심각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르핀보다 더 강력한 효능을 지닌 물질이 모르핀에서 만들어졌다. 모르핀 중독을 치료하는 영웅적인 치료제 '헤로인'이 등장한 것이다. 아편에서 모르핀을 거쳐 헤로인으로! 해결 불가능한 모순을 지은이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진보'에서 읽어내고 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고 담배는 성인이 되었음을 뜻하는 가장 일반적인 표지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지은이는 담배에서 거세공포와 성적환상을 포착한다.
"정신 분석가들은 담배가 거세공포를 덜어준다고 말한다. 왜냐면 한 개비를 피우고 나면 금방 꼿꼿한 담배에 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담배는 무의식에 작용하는데, 거세공포와 연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백한 성적환상은 어머니의 젖가슴에 대한 환상이다. 언젠가는 포기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는 어머니의 젖가슴 말이다."(222-223쪽)
풍부한 정보와 다채로운 지식의 보고로 다가오는 자크 브로스의 <식물의 역사와 신화>는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하게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한 식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협애한 식물학 내지는 식물에 대한 밋밋한 정보에 멈추지 않고, 우리를 인간문명과 신화, 역사로까지 인도하면서 책 읽는 기쁨을 배가한다.
/김규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