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윤곽의 정체는 제멋대로 모습을 바꾸어 마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여자 같았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짐승 같았다고 하고, 다른 또 한 사람은 악마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니...-.쪽
"내가 미래주의자라고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나? 내게 믿음이 있다면 그건 변화와 활발한 움직임과 그리고 매일 아침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에 대해서라네. 나는 그런 것들을 찾아서 맨체스터, 리버풀, 리즈, 헐, 허더스필드, 글래스고, 시카고, 그 어디든 활기에 찬 문명사회로 갈것이네." "오호라. 그러니까 진짜 산적들의 천국으로 가겠다는 거로군."-.쪽
한 하인이, 열쇠 구멍을 통해서 국왕과 백작의 대화를 엿들어 진실을 알게 되었네. 그런데 열쇠 구멍에 대고 있었던 귀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점점 커지더니 괴물의 귀처럼 되어버렸다는 걸세. 그가 엿들은 비밀은 그토록 무시무시한 것이었나보네. 그 하인은 영토와 금을 모아들여서 엑스무어 공작 집안의 시조가 되었는데... 이 지방의 할머니들은 그것을 '에어 집안 악마의 귀'라고 칭한다네.-.쪽
"자비를 베풀어 당신의 청을 거절하겠소. 만약 내가 나 혼자 짊어져야 했던 그 무겁고 끔찍한 짐을 조금이라도 당신들과 나누려 한다면 당신들은 내 발목에 매달려 더이상 알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을 것이오. 미지의 신의 제단에 쓰여진 것은 그 첫 글자 하나라도 읽으려 하지 마시오." "난 그 미지의 신을 알고 있습니다." 키 작은 신부는, 마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탑 같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 "그 이름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진정한 신은 육신을 지니고 우리들 가운데 계십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비밀은 사악한 것입니다. 사탄이 당신에게 무언가가 너무 무서운 것이라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거든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너무 끔찍하니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을 들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진실을 견뎌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견뎌내야 합니다. 간청하오니,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그 악몽과도 같은 저주의 비밀을 털어놓아주십시오."
(중략)
"이게 뭐야? 숨겨야 할 게 아무것도 없잖아. 보통 사람의 귀하고 똑같은데." "그렇습니다. 숨겨야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숨겨야 했던 것이지요."
(보라색 가발의 비밀)-.쪽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 그 사람과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까요?" "누군가를 죽이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소?"-.쪽
어떤 사소한 문제라 하더라도 자연의 큰 흐름에 비추어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초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꽃이 있긴 하나 대개의 꽃들은 그때쯤이면 시들어버리고 맙니다. 젖지 않은 조약돌이 있다고 해도 바다의 조수는 계속해서 밀려가고 밀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젖게 되어 있지요.-.쪽
책으로 말하자면, 방의 왼쪽 벽에 전집으로 된 영문학 고전들이 빽빽이 채워져 있었고, 오른쪽 벽에는 영국과 외국의 생리학자들의 저서가 꽂혀 있었다. 왼쪽의 책장에서 초서나 셸리의 시집 한 권을 빼내기라도 하면 앞니 하나가 빠진 사람을 보는 듯 불안해질 것 같았다. 그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책들을 모두 읽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책들은 오래된 교회의 독서대에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성경책을 보듯이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라이언 박사는 자신의 개인 서가를 공공도서관이나 되는 듯 장식하고 있었다. 서정시와 발라드가 가득 꽂혀 있는 책장에서 술과 담배가 놓인 탁자까지 뭔가 엄격하고 체계적인 분위기가 방 안을 둘러싸고 있었다 (글라스 씨는 어디에?)
=>책을 사랑한다면 절대 장식용으로 만들어서는 안돼요.-.쪽
제가 그 동전을 움켜쥐고 바다를 향해 내려갈 때, 귓가에선 저희 집안 문장에 새겨져 있는 늙은 은백색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시저의 독수리들이 요란하게 날개를 퍼덕이면서 날아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저를 쫒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쪽
"우리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신론이 악몽과도 같은 겁니다."
(시저의 얼굴)-.쪽
"자아, 그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까요? 이 사건에는 적어도 세 사람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자살은 한 사람이면 되고, 살인은 두 사람이면 되지만,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려면 적어도 세 사람은 필요하거든요." "왜지?" "왜냐고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람, 협박당하는 사람, 또 비밀을 듣고 놀라게 될 사람, 그렇게 세 사람은 있어야지요." 플랑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신부는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논리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네. 이론상으로는 세 사람이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으로도 충분해." "어떻게요?" 플랑보가 물었다. "비밀을 듣게 될 사람과 협박하는 사람이 동일인인 경우도 있으니까. 가령 어떤 부인이 금주주의자 행세를 하며 술집에 드나드는 남편에게 마치 다른 사람인 양 편지를 써서 아내에게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할 수도 있지 않겠나? 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노름을 하지 말라고 해놓고 교묘하게 변장하여 아들 뒤를 밟은 다음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겠다고 협박할 수도 있을 테고. 친구, 이번 사건에선 말야……." "설마! 신부님이 생각하시는 게……." 플랑보가 외쳤다.
(시저의 얼굴)-.쪽
인간의 유체가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지요.-.쪽
지문은 칼날 중간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누구의 지문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도대체 왜 칼날의 중간 부분을 잡았을까요? 그 칼은 길이가 꽤 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을 찌를 때에 유리한 칼이지요. 대부분의 경우 적과의 싸움에서는 장검이 유리해요. 한 사람의 적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적을 제외하고요?" 부인은 신부의 말을 되풀이하여 물었다. "장검보다 단검을 이용해야 더 쉽게 찌를 수 있는 적은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알아요. 자기 자신이지요." 긴 침묵이 흐른 뒤에 신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럼, 제 추리가 맞나 보군요. 클로드 챔피언 경은 자살하였습니까?" "네, 그래요. 전 그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했어요." 부인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말했다. "그가 죽은 것은…… 부인을 사랑했기 때문인가요?"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부인의 얼굴을 스쳤다. 그것은 신부가 예상했던, 연민이나 후회, 부끄러움 따위와는 거리가 먼 표정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거침없이 말했다. "경은 저에게는 아무 감정이 없었어요. 다만 제 남편을 증오했을 뿐이지요." "왜지요?" 먼 하늘?바라보던 신부가 부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가 남편을 증오한 것은…… 왜냐하면…… 아, 너무도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아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말씀해보세요." 브라운 신부는 침착하게 부인의 말을 기다렸다. "내 남편이 그를 증오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브라운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부에게는 소설 속에 나오는, 혹은 실제의 탐정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일부러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지 않았다.
(존 불노이의 기이한 범죄)-.쪽
자비를 빌어도 소용 없을 것이다. 그대는 자유의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후엔 한 올의 머리칼이 칼처럼 그대를 벨 것이요, 한 번의 호흡이 독사처럼 그대를 물 것이며, 어디에서고 흉기가 나와 그대를 덮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몇번이고 거듭하여 죽음을 당할 것이니라.-.쪽
흰 족제비 털을 가진 늑대들, 왕관을 쓴 까마귀들과 제왕들, 이들이 벌레처럼 무수히 많으나 삼형제는 이들을 제압하리라.-.쪽
"난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것을 좋아하니까요."-.쪽
기계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어떤 면에서는 정말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계를 작동시키는 또 다른 기계는 실수를 하지요.-.쪽
"그 심리측정법은 미국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검증한 것이라던데요." "과학자들은 왜 그렇게 감상적인지 모르겠어! 미국 과학자들이 특히 더 심해. 미국인들 아니면 도대체 누가 심장박동으로 뭔가를 알아내겠다는 생각을 하겠나? 그 사람들은 여자가 얼굴을 조금만 붉혀도, 자기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사내들과 다를 게 없는 감상주의자들이야. 하비가 발견했던 혈액순환을 응용한 것인가 본데 정말이지 쓰레기 같은 생각이지." 신부가 격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맥박의 반응을 정확하게 지적해낸다고 하던데요." 플랑보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 "정확하게 지적한다는 것에 맹점이 있는 걸세. 막대기 한쪽 끝이 어딘가를 가리킬 때 그 막대기의 반대쪽 끝은 늘 정반대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우리가 어느 쪽 끝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가게 되는 방향은 정반대로 달라져버리는 거지. 나는 그 심리측정법을 실제로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네. 그 이후로 그것을 믿지 않게 되었지." (기계의 실수)-.쪽
"모든 것을 틀리게 말하려면 속속들이 모르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네. 거짓말을 할 경우엔 어쩌다 자기도 모르게 거짓이 아닌 것을 말하게 되는 수도 있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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