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미스테리 초특급 2
스티븐 킹 지음 / 명지사 / 1995년 8월
절판


회오리바람을 보고 있으니까 최면술에 걸려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머리 위에 왔을 때, 무서운 번개가 치면서 한 30초 동안은 모든 것이 네거 필름처럼 망막에 새겨졌다. 돌아다보았을 때 서북쪽 끝까지 내다보이는 큰 창문 앞에 아내와 아들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서운 환상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림의 유리가 깨지고, 조각난 칼날 같은 유리 조각이 아내의 어깨와 허리에, 그리고 아들의 얼굴과 목에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광경.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덮쳐올 운명을 상상하는 두려움이 바람 소리와 함께 나를 덮쳤다.
그런데 아내와 아들은 그대로 큰 창문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것이다.
(안개)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상상을 해서 불쾌한 감정만 같게 되는것 같아요.-.쪽

대화는 화기애애한 가운데에서 음울한 것으로 바뀌어 갔다. 젊어서 성공을 거둔 소설가들의 일을 화제로 삼고 있는 가운데, 마찬가지로 젊어서 성공을 거두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끓은 작가들의 이야기로 올겨졌기 때문이다.
(중략)
프레스는 성공한 작가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성공해씩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살했기 때문에 이름을 팔린 것이라고. -.쪽

자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쓿昰?공통된 착각이 있어요. 여러분은 아마도 이 방법이야말로 누가 하더라도 절대로 실패가 없는 방법으로, 약을 쓰거나 손목을 자르는 것보다 훨씬 확실한 자살 방법이라고 생각되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자신의 머리를 쐈어도 그 결과가 어떠헥 ㅗ디느냐 하는 것은 아무도 확실하게 예상할 수가 없는 거예요. 총알은 두골에 맞고 튀어나와 다른 인간을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두골의 둥그런 데서 미끄러져 반대쪽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르죠. 또는 뇌 속에 멈추고 당사자는 소겨잉 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죠. 어떤 인간은 38구경으로 자기 이마를 쏘아 병원에서 눈을 뜨는데, 다른 인간은 22구경을 써서 지옥에서 눈을 뜨게 되는 경우도 있죠.-.쪽

"테마는?" 소설가가 물었다.
"특별히 확인할 필요까지도 없었어요. 테마는 전체 문맥에 보기 좋게 들어가 있었으니까요."
"미쳐버린다는 거셍 대해서였습니까?"
"네. 그래요. 바로 그래요. 대학의 창작 클라스에서 처음 배우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숙지하는 일을 써라. 바로 이것인데, 레그 소프는 미쳐가는 것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었어요. 그 자신이 그것을 체험하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그 소설에 그만큼 감동했다는 것도 내 자신이 미쳐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랄요. 서브 타이틀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라고나 할까요. 20세기 문학의 포퓰러한 테마죠. 대작가이건 풋내기작가이건 한 번은 여기에다 도끼를 넣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레그의 소설은 좀 달랐어요. 아주 명랑하고 재미있는 소설이었죠. 나는 그런 소설을 읽은 일이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어요. 소프의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이 미쳐버리는 것이지만, 그 ㅣ쳐가는 과정이 말할 수 없이 재미있어요. 읽으면서 가끔 싱글싱글 웃거나 어떤 때는 큰 소리로 웃어버리는 장소가 두세군데나 있어요. 주인공이 뚱뚱한 여자에게 라임젤리의 과자를 던지는 장면 같은 것은 아주 걸작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쓰디쓴 웃음이에요. 웃고 난 다음 누가 듣지 않았는가 하고 가만히 두돌아보고 싶어집니다. 그 소설에 내포된 대체적인 긴장은 참으로 절품이에요.
읽는 사람은 웃으면 웃을수록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불안에 싸이게 되면 될수록 웃고 싶어진다. -.쪽

'가족의 방'처럼 리처드 자신이 꾸며 놓았지만 '자고의 방'과는 달리 혼자 쓸 생각이었다. 그와 결혼한 타인과 그녀가 낳은 다른 하나의 타인을 내쫓을 수 있는 유일한 방이었다.

=>가족과의 단절이 드러나는 대목이네요-.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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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행복한 하루 - 포토명상, 길상사의 사계
이종승 글.사진 / 예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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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코스모스는 비가 싫은 모양입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에 코스모스는 이내 고개를 땅으로 돌렸습니다.
이런 꽃의 마음을 외면한 채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빗방울이 꽃잎에 매달려 있어 코스모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듯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을의 전령인 모습을 세상에 내놓은 지 겨우 보름 남짓인데 가을비에 잎을 떨어뜨려야 하는 코스모스의 처지가 왠지 불쌍해 보입니다.

꽃이 그렇듯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
이런 게 윤회가 아닐까요. 씨앗으로 있다가 잎을 내고 한때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가 어느새 져버리는 일이 반복되는…….
꽃 뒤에 아련히 뭉개져 있는 흰 배경은 '극락전極樂殿'입니다. 코스모스의 유한성에 비교되는, 영원히 받들어져야 할 것들이 있는 법당의 이름입니다.

햇살을 받아 화려의 극치에 있는 꽃을 찍지 않고, 비 오는 날 카메라를 들이댔던 이유는 다시 한번 유한성을 생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화면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아름다움입니다. 비애미悲愛美로 보일 수도 있고 자연미自然美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저 또한 멀리 있는 도道를 향해 가는 평범한 인간인 모양입니다.-.쪽

벌개미취

토요일 새벽 길상사를 찾은 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경내에 핀 벌개미취입니다.
아름다웠습니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가을을 느끼게 하는 벌개미취가 경내에 무리지어 피어 있으니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어떻게 찍을까 하루를 고민하다가 오후 늦게서야 비로소 벌개미취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찰나의 아름다움과 영원한 아름다움의 비교.
꽃은 물론 아름답지만 변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법당을 보고 꽃의 미감美感을 느끼기는 힘들지만 그곳에는 영원히 변치 않을 부처님의 진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벌개미취는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부처님이 계신 법당은 그대로였습니다.-.쪽

맞절

이 모습을 카메라 모니터에서 확인한 후 땅을 쳤습니다.
'조금 일찍 밥을 먹을걸……. 물을 먹지 말고 그냥 나올걸……. 주지스님과 보살님이 얘기할 때 빨리 계단을 내려와 자리를 잡을걸……. 왜 코스모스는 때맞춰 흔들려 할머니 얼굴을 가린 거야' 등등. 절호의 장면을 놓친 욕심쟁이의 한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살아났습니다.
기술적인 결함이 많았기에 버려졌지만 사진이 주는 뉘앙스가 아름답기 때문에 빛을 본 것입니다. 처음 이 사진을 본 후 핀트도 안 맞고 코스모스가 할머니의 얼굴을 가려서, 아쉽지만 포기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후 불과 1~2초밖에 보지 않았던 사진의 잔영이 자꾸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등이 불편해 보이는 늙은 보살님이 주지스님께 온몸을 던져 바치는 예禮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스님의 자애로운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불법승佛法僧 3보의 하나인 스님을 여든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극진히 공경 하는 모습에서 경전의 가르침을 넘어선 그 무엇을 봅니다. 사진에 드라마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감동을 주는 드라마가 아닐까요.

신문 사진에서 뉴스밸류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면 제가 찍는 길상사 사진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부처의 모습'이 최우선입니다.
저는 스님과 보살님의 맞절에서 부처의 아름다운 모습이 두 분을 통해 보여졌다고 느꼈습니다.-.쪽

돌절구 속의 단풍

대야만한 돌절구 안에 길상사의 단풍이 다 들어왔습니다.
둔하고 우직한 모습이라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돌절구는 안성맞춤으로 단풍을 담아냈습니다. 돌절구는 여름 내내 연뿌리를 품고 있다가 소담스런 연꽃을 피워내더니, 가을이 되자 이렇게 아름다운 만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에 비친 하늘과 단풍은 실제의 그것과 어울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길상사 단풍의 진가는 돌절구 속에 있었습니다.

돌절구는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냈습니다.
왼쪽에서 보면 범종각이 보이고 오른쪽에서 보면 설법전이 보이며 반대쪽에서 보면 극락전이 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면 돌절구 속의 낙엽 몇 개만을 보나 무릎을 꿇고 가까이 보면 '우리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 돌절구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을 보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돌절구의 제자리는 농가 한 켠임에 분명하나 세상을 담는 거울로서 절집에 있는 것도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쪽

비질하는 마음

그냥 마당을 쓰는 줄 알았습니다.
설마 마당에 '줄을 그릴 줄'은 몰랐습니다.
3백여 평 남짓 되는 길상사 경내를 스님은 40여 분에 걸쳐 조심스럽게 쓸었습니다.

비질하는 모습을 예상했으나 전혀 다른 '줄긋기'가 시작되자 스님의 속내가 참 궁금했습니다. 이말 저말 여쭤보면서 스님의 속내를 가늠해 봤습니다. 왜 이렇게 그리는가에 대한 질문은 아니었고 좀 둘러서 물었습니다. 재미가 좀 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님은 비질을 멈추고 친절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스님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눈 쌓인 길을 걸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경험이 있지만 언제인지 가물가물해 대답이 좀 늦어지자 스님은 "그런 길은 함부로 가는 게 아닙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마음자리가 보이기 때문이지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눈길도 눈길이지만 스님의 비질이 '줄긋기'가 된 연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님의 줄긋기는 경내에 눈을 수북이 쌓이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지런한 저 줄이 바로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인 것입니다.
함부로 신발을 끌고 마당을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내 발자국이 너무도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이것뿐입니까. 밟을 때도 줄의 결을 따라 조심조심 밟아야 합니다. 보일 듯 말 듯한 발자국을 남기며 길상사 경내를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마음으로 걷는다면 한참 지나 절을 찾은 이들에게 혹 줄의 의미가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당에 그어진 비질이 남긴 줄의 의미를 알고 난후 길상사에 갈 때마다 마당을 보게 됩니다. 줄이 잘 보이면 왠지 제 마음도 환해집니다.
청소하는 스님의 모습을 찍으러 갔다가 더 깊은 겸손의 마음을 배우고 왔습니다.
꼭두새벽에도 한 번씩 일어나 길상사에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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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책 디자인이 눈길을 끌어 선택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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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브라운 신부 전집 2
G. K. 체스터튼 지음, 봉명화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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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신부를 처음 본 사람의 평이 평범하면 차라리 낫고, 못생기고 무능한 작은체구가 우스꽝스러운 신부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브라운 신부와 몇마디 대화를 나누면 그가 평범하지 않다는것을 느낄것입니다.

브라운 신부의 추리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추리 소설과는 약간 다른듯해요. 보통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탐정이나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실마리를 찾아 범인은 바로 "너"라는 극적인 반전을 노리는데 비해 부라운 신부에서는 우선 이야기속에 그는 그리 눈에 띄지 않아 정말 브라운 신부가 주인공이 맞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 브라운 신부의 입이 아닌 그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가 풀어가고, 결말에서는 범인을 확실히 잡기보다는 놓치기도 하고, 진실을 묻기도 하며 때론 법이 아닌 종교로써 범인들을 회개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쩔땐 추리소설이 아닌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브라운 신부를 통해 일상생활에 얼마든지 추리할수 있는 단서들이 많다는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브라운 신부님 이야기 속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대부분 죽더라구요. 왠지 종교적으로 아름다운 신부는 팜므파탈을 연상하게 만들어가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리소설을 리뷰로 적을때 스포일러가 될까봐 많이 신경쓰이더라구요. 되도록 범인을 밝히지 않고 상황과 제 느낌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통로에 있었던 사람

여러남자의 선망이 대상이 되는 여성 연극 배우가 살해당합니다. 여배우에게 구애를 했던 사람들은 그 당시 통로에서 봤던 사람을 범인으로 의심하는데, 각자가 본 인물의 모습이 다릅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브라운 신부가 즉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재판을 통해 범인을 밝히는 방식이 특이했습니다. 가끔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사물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게 하는것 같습니다.

산적들의 천국

산적이 나올 것 같은 산으로 은행가 가족들이 피크닉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산적을 만나는데...
브라운 신부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이 무척 어수선하게 느껴지지만, 그래서 재미있어요. 브라운 신부로 인해 한 연인이 탄생하게 되네요.  브라운 신부가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살짝 살짝 독자가 알도록 하는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라색 가발의 비밀

무서운 저주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한 귀족가문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려고 기자와 브라운 신부가 나섭니다.. 이번에도 브라운 신부가 아닌 기자의 눈으로 브라운 신부의 활약을 기사화 해서 묘사한답니다. 결국 브라운 신부로 인해 진실을 알아내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두려운 사람들로 인해 묻혀집니다.

징의 신

플랑보와 브라운 신부는 철지난 행락지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낡은 신당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거든을 미연에 막으려던 신부는 총알 세례를 받을 뻔합니다. 부두교에 대한 에피소드예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한곳으로 쏠리면 다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습성에 대해서 나옵니다. 밀실살인사건이 아닌 공개된 장소가 더 위험하다는 경고를 하지요.

글라스 씨는 어디에?

범죄학자이자 성격장애 박사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브라운 박사. 이번 사건은 박사가 너무 잘 추리해서 브라운 신부의 할일이 없어지나 걱정했는데....  그러면 무척 아쉽겠죠? 이 에피소드를 다 읽고 나면 제목을 이해하실수 있을거예요.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밝고 가볍습니다.

시저의 얼굴

고대 로마 동전 수집에 열을 올리는 아버지와 오빠. 아버지는 그래서 자신에게 전 재산을 오빠에게 로마 동전을 유산으로 남겨줍니다. 동정에 대한 오빠의 열정을 알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연인과 닮은 동전을 훔쳐 그녀의 연인에게 줍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되고... 브라운 신부와 플랑보는 그런 그녀를 도와줍니다. 어느정도 범인의 정체에 대해 감이 잡히는 에피소드였어요.

존 불노이의 기이한 범죄

질투심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에피소드예요.


크레이 중령의 샐러드

한밤의 총성과 사라져버린 양념통과 은식기들... 그리고 인도에 있었던 중령의 이상한 행동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미치광이로 몰아가지만 브라운 신부만은 잠자코 주변을 계속 살핍니다. 중령으로 부터 듣게되는 인도에서의 무시무시한 이교도의 경험...  브라운 신부외에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

풀리지 않고 전설로 내려오는 '오토공의 한개의 총알과 두개의 구멍' 에 대한 옛날 이야기만을 듣고 브라운 신부가 추리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 놀랍습니다. 사실 그게 정말 맞는 답일지는 죽은 사람만이 알겠지요? ^^

펜드라곤 가문의 몰락

브라운신부가 컨디션이 별로 않좋지만 플랑보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펜쇼경의 요트놀이에 참석하게 됩니다. 펜드라곤 제독은 자신의 가문에서 내려오는 저주를 믿지 않으려하지요. 브라운 신부의 활약이 눈부신 에피소드입니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욕심과 탐욕, 질투등이 얼마나 많은 범죄들을 만들어내는지를 볼수 있네요.

기계의 실수

기계의 맹신에 불신하는 브라운 신부의 20년전의 이야기입니다. 죄수가 간수를 살해하고 탈출하고 교도관이 죄수를 붙잡습니다. 그리고 맥박의 변화만으로 죄수의 죄에 확신을 갖지요. 신랄한 반전이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허쉬 박사의 결투

독일의 스파이로 오해 받는 프랑스인 허쉬 박사. 그가 정말 스파이인지, 아님 스파이가 아닌지... 실제는 그게 더 중요한것이 아닌것 같네요. 진상이 밝혀지지만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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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찰스다윈 자서전
찰스 다윈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30분에 읽는 시리즈로 찰스 다윈에 대해서 호감이 생겨서 좀 더 그에 대해서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어요. 200년전의 인물의 자서전을 읽는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생각해보니 최근 인물의 자서전을 읽은적은 있지만, 옛 인물의 자서전을 읽은 기억이 까마득하더군요. (있었나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자신의 자서전이다보니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이 개입되어 객관적으로 그를 평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그의 생각을 함께 나눌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윈은 기독교 역사상의 획을 긋는 하나의 학설을 발표한 학자입니다. '종의 기원'은 기독교의 존립을 흔드는 학설이니깐요. 하지만 그 역시 신앙심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비글호의 항해하게 되면서 그의 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되고, 환경에 의해 변화되는 종들을 경험하고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체계화 시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학설이 당시 기독교 사상에 물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자신의 이론에 받침이 되줄 증거들을 오랜시간을 들여 수집하고 실험했습니다.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끈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장점은 바로 그 비글호의 항해 일지를 다룬거랍니다. 빼놓지 않고 꼼꼼히 살펴보는것도 이 책의 재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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