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에 태어나 선비의 아내로 살다가 일본의 침략으로 주권이 위태로워지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여성. 안사람 의병대를 조직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 됐고 ‘안사람 의병가’ ‘왜놈 대장 보아라’ 등의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고 ‘노학당’을 건립해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하는 등 평생, 독립운동에 몸 바쳤던 여성.
이는 1860년(철종11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희순((1860∼1935)의 업적이다.
푸른숲 역사 인물 이야기 시리즈 두 번째 권으로 출간된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푸른숲. 2006)에는 ‘덜’ 알려진 윤희순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는 조선 선비의 아내예요. 부모님이 어려운 길을 가시면 자식도 따라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책에 따르면 16살 때 류홍석의 장남 류제운과 결혼한 윤희순은 넉넉지 못한 살림에서도 꼿꼿하게 선비의 길을 걷고 있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공부 때문에 남편과 시아버지는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어느 집 부럽지 않게 행복한 가정이었다.
1895년 일제가 조선의 국모를 살해하고 단발령을 내리는 등 노골적인 침략 야욕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라의 장래가 불안해지자 뜻있는 사람들은 의병활동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자 모였고 윤희순에게 정신적 지주와 같았던 시아버지 류홍석 역시 대열에 합류했다.
시아버지와 함께 나라 구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던 그녀는 집안을 지켜야 한다는 가족들의 만류로 뜻을 접게 되지만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내 의병대를 지원하기 시작한다.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한 일로 여겨지던 숲을 구워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안사람 의병가’ ‘병정의 노래’ 등을 보급하며 의병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남정네들 하는 일에 우리가 왜 나서?” 라고 되묻는 여성들에게 “나라가 없으면 집안도 없는 것이고 자손도 없는 것입니다”라고 단호히 대답했던 그녀.
의병들이 화력부족으로 점차 힘든 국면으로 내몰리게 되자 부녀자들을 동원해 군자금을 모아 의병활동을 지원하고 쇠와 구리를 구입해 탄약을 만들며 항일 투쟁 전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1910년 일제가 나라를 점령한 이듬해 윤희순의 가족은 만주로 망명했다. 그녀는 중국 인민들에게 일제의 위협을 알리고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함께 반일 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했으며 부녀자들로 구성된 전투 부대를 만들어 훈련했다. ‘노학당’을 만들어 애국인사를 키워냈고 아들 돈상과 함께 조선독립단을 조직해 무장 투쟁을 계획하기도 했다.
20년간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적과 압박에도 꿋꿋하게 독립운동을 펼쳐오던 윤희순은 1935년 아들 돈상이 일제의 고문 끝에 죽는 1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의 동지이기도 했던 시아버지 류홍석, 남편, 아들의 곁으로 간 것이다. 당시 나이 76세. 승리의 노래 ‘안사람 의병가’를 중얼거리며 마지막 잠자리에 들었다고 알려진 윤희순.
책은 ‘책 속의 책, 노래는 힘이 세다’ 편을 실어 윤희순이 노래로 힘을 얻고, 그 힘을 전파했던 것처럼 어린이들로 하여금 노래의 참뜻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2권을 마친 ‘푸른숲 역사 인물 이야기’는 여성, 기술자, 예술가, 특수 전문직, 사회 운동가 등의 기록을 찾아 각기 다른 영역에서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간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의미 깊은 시리즈로 자유, 사랑, 평화, 평등과 같은 현재적 가치를 위해 살아간 정의로운 인물들을 소개한다.
[북데일리 고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