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 1947년 이스라엘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성서관련 문헌들과 기독교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문헌을 엮어 성서의 누락 부분을 복원한 <숨겨진 성서>(문학수첩. 2006 전3권)가 출간됐다.

<숨겨진 성서>는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굴된 52편의 고대 문헌과 이스라엘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를 통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당시 발굴된 경전들은 두루마리에 고대 히브리어나 이디오피아어, 아라메아어로 작성된 탓에 원문을 해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몇몇 전문가와 성직자들만의 전유물로 남아 있다가 20세기 후반에 와서 일반인들이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정리됐다.

<숨겨진 성서>가 지닌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인류사에 있어서 커다란 획을 그었던 기존 성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기원 전후의 유대교와 초대 그리스도교 상황을 상세히 파악하는 데 필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둘째는 <숨겨진 성서>가 지닌 아름다운 문체, 놀라운 상상력, 풍부한 설화로 인해 그 자체가 미학적, 문학적으로 가치 높은 예술작품으로 간주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지중해와 유럽의 미술과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1권에 실려 있는 아히카르 이야기는 고대 지혜 문학의 대표작으로 ‘이솝이야기’와 ‘천일야화’, ‘탈무드’ 등의 원전이 되었고, 명료하고 유머에 넘치는 공상으로 장식된 ‘하가다’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우주와 인간, 알파벳에 이르는 창조의 신화와 아담과 이브의 새로운 낙원까지 펼쳐보여 준다.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바오로 계시록과 베드로 계시록은 단테의 <신곡>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2권에는 성서에서 자세히 언급되지 않은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빛의 탄생’과 ‘기적의 아이’가 실려 있다.

기원 후 150년경에 씌어진 ‘토마스 복음’의 ‘기적의 아이’는 예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초대교회에서 수백 년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사야의 승천, 에스드라서 제2권이 들어 있는 3권은 탐험가 콜럼버스가 에스드라서의 몇 구절에 영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일화를 지닌 문헌으로도 유명하다.

[북데일리 고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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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축제의 퍼레이드 `브라보 아워 라이프`

# 1

여기, 잘 구겨진 다섯 청춘의 좀 쑤시는 일상이 있다.

고슈 가도 2차선 좁은 도로, 평온하다 못해 너무나 규칙적인 차의 간격은 이들의 일상과 닮아있다. 한번의 충돌이라도 있을 법 하건만, 그 마저도 당연한 거리에 의해 깨지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일상 다반사다. 충돌할 가능성 1% 없는 순도 100% 질서유지에,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도로 위를 헤맬지 모르는 내 한 켠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나도 그랬을지 모르지, 하며 책장을 피하듯 넘기는 나를 보며 그 안의 나를 발견한다. 한 번의 충돌도 스릴감도 없는 일상에 도무지 절박함은 살아있는 건지, `나는 너무도 지루해하지 않는가?` 하고 물으며, 접시에 코 박 듯 살아온 내 청춘이 너무 야속해, 속이 타다 못해 저려온다.

# 2

여기, 그리고 하나의 퍼레이드가 있다. 그들의 밀고 당기는 퍼레이드엔 돌고 도는 그들의 일상이 있다.

불철주야 옛 애인의 전화만을 기다리는 고토미가 있고, 하루가 한 세상인양 주구장창 술에 취해 슬픔을 잊는 미라이가 있다. 요스케는 절친한 선배의 애인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충동을 잊고, 나오키는 나 혹은 내 안의 또 다른 그 녀석과의 싸움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열여덟 `쓸모없는 젊음을 팔아치우는 중`인 사토루는 여기서 그들과 만난다.

그들 혹 나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쯤 와 있을까? 같은 소용돌이 속에 우리, 서로 묶여가는 것은 아닐까?

매일 같은 도로를 맴도는 요스케의 시선엔, 당장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춤이라도 출 듯 그의 주춤한 일상엔 긴장감과 초조함이 메마르질 않는다. 그러한 고민도 빛도, 어디 블랙홀 언저리로 사라진 지 오래, 그의 무엇에 대한 열정인지 상실인지는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신 외에 난 모든 의미를 잃었어요, 라고 보이지 않는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고토미에게는 보이지 않는 절막함이 내 안을 가로 안는다. 옛 애인의 전화를 기다리는 일 이외에, 그녀에게 모든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 듯 일상은 지쳐간다.

마치 세계를 잃은 양 헤매는 미라이는 술에 몸을 맡긴 채 가슴 한 켠에 어두운 굴뚝을 안고 사는 이들의 슬픔과 상실을 맴돈다. 언젠간, 그리 되겠지. 그녀의 소원대로 모든 버리고 베트남이든 어디든 자신의 자아 찾기를 위해 헤맬 날들이. 그럼 그녀의 빈 상처는 좀 데워질까.

외부에 대한 아무 경계 없이 무단 폭격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을 긁어대는 나오키에게는 변태적인 감정보다 그 안의 뜨거운 무엇에 대해 속절없이 허무해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나타날 것 같은 사토루에겐 빈 주머니만큼이나 삶이 남루할 뿐이다.

눈물이 치솟아 오를 것 같은 그의 삶에 유일한 일상은 낯선 이의 빈 집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치 그들과 공존하는 것처럼, 마치 그의 일상인 듯 소유해버리는 시간이 그에게 남기는 건 또 다른 낯선 곳으로의 방황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도 다른 이들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만들어 주는 곳이 있다. 그들이 있다.

그들의 사이에 낀 듯 안 낀 듯, 알듯 모를 듯 사토루가 그들의 주위를 둘러싼다. 빈 고리를 탄탄한 철심 고리로 메우고, 빈 고막에 빈 가슴에 소리를 쳐댄다. 알 듯 모를 듯 그 끈이 그들을 에워싼다.

어느새 그들의 퍼레이드는 점차 얽히고설켜 누군가와의 적당하고 안일한 간격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 충돌조차 멋 적은 듯 슬쩍 눈 감아 주는 그들의 가벼운 듯 강하게 얽힌 더부살이는 내 안의 깊은 공간을 만든다.

존재감을 잃어 보이는 그들 사이에, 그들 없는 일상은 빈 방일 뿐이다. 일상을 기댈, 그리움을 기댈, 아픔을 기댈 곳 없는, 정작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다행히 그 누구도 존재감을 잃은 이들은 없어 보인다, 서로의 존재를 헤매일 뿐이지!

그도 길을 헤맬 땐 돌아봐 줄 이가 있고, 그 끈을 아무렇지 않듯 당연하게 받쳐 줄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다니, 이 얼마나 가슴 터질 듯한 뜨거움인가.

고마워요, 당신들!

# 3

순간 무모하리만치 중독 된 그들의 퍼레이드에 함께 부대껴 있다보니, 새삼스러워지는 새 삶이다.

불현듯 그들의 퍼레이드에 끼고 싶은 충동이, 가슴에 방망이 치듯 치솟아 오른다. 그리곤 다리가 부서져라 달려가 몸이 부서지도록 그들을 껴안고 싶다. 그 퍼레이드에 오색빛깔을 띈 무지개가 번쩍하고 튀어 나오더니,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만큼 빛나는 햇살이 내 앞에 다가온다.

그래, 뭐 인생 별거 있어! 가슴이 느끼는 데로 느끼고, 가끔 머리는 르메르 해협 빙각 안에나 처박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지껄여 버린다.

`일상의 찌꺼기 같은 격식도 모두 집어치워버리고, 나이브하게 사는 거지` 내 안의 그 녀석이 몇 번이고 집어삼킨 말을 꺼낸다.

그래, 인생엔 가끔의 부딪힘이 있어야 불러야 할 애니카도 있지 않겠는가. 인생은 퍼레이드처럼 하나의 축제이니까!

내 인생 모두에게 브라보다!

#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퍼레이드> (은행나무. 2005)에 대한 북데일리 시민기자의 북리뷰입니다.

[북데일리 이주연 시민기자]white_you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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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자기답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상당히 하류적일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다”고요? 그것 역시 비슷한 징후입니다. 일본의 사회 칼럼니스트인 미우라 아츠시(三浦展)의 책 ‘하류사회- 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을 권해 드립니다. 저자는 일본의 현대사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최근 들어 새로운 하류 계층이 등장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단괴 주니어’로 불리는 세대(1971~74년생)가 중심을 이루는 젊은 층이 하류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하류란 단순히 저소득 계층을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생활능력, 노동의욕, 학습의욕, 소비의욕 같은, 한마디로 인생에 대한 의욕이 낮은 자들을 뜻합니다. 느릿느릿 걷고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지요. 대형 서점에 ‘비소설류’ 라고 분류돼 있는 곳을 찾아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책들이 바로 그런 삶을 추천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나온 웨인 다이어의 베스트셀러 ‘행복한 이기주의자’란 책은 어떠세요? 이 책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는 선언을 주입합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가슴에 손을 대고 스스로 물어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 답니다.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고 격려하고 있는 책들 말입니다.

달콤하시지요? 대부분의 실용적 인생 지침서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그 책들이 우리를 위로하기 때문일 겁니다. 심지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라는 데서 가슴 한 켠이 따뜻해져 오는 책들도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독자에게 울림을 주기 위해서는 사회의 트렌드와 역트렌드(counter-trend)를 절묘하게 섞어야 합니다. 온종일 핑핑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역트렌드는 “게으름 좀 피워봐. 별 탈 없을 거야. 너답게 살아”하는 속삭임입니다. 문제는 그 속삭임이 이제는 주류 트렌드가 됐기 때문에, ‘하류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왠지 더 신선하게 들린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실용적인 논쟁점은 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보수적인 제도로 편입되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 입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살 것인지, 아니면 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엄격한 자기규제 하에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느 쪽이세요?

너무 개성만 추구하지 마십시오. ‘개성’이란 말은 유효기간이 만료됐는지도 모릅니다. 상류는 여성적이고, 하류는 개성적입니다. 하류는 쇼핑을 좋아하고, 상류는 쇼핑할 시간도 없습니다. ‘하류형 5P’에 둘러싸여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컴퓨터(PC), 페이저(Pager·휴대폰), 플레이스테이션(비디오게임), 페트병, 포테이토칩.

계층 상승을 포기한 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자기다움으로 알고 즐기는, 카니발화하는 인생도 바로 하류라고 합니다. 꼭 2년 전 빌 게이츠가 마운티 휘트니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었던 10가지 인생충고를 기억하십니까.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몰개성한) 바보한테 잘 보여라. 사회에 나온 다음에는 아마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ki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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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화잡지, 만화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데뷔하는 작가들이 부쩍 늘고 있다. 펜과 종이가 아닌 컴퓨터와 타블렛으로 작업하는 작가도 많다.

인터넷 만화가의 경우 인기와 비인기의 차이는 리플과 조회 수로 판단된다. 만화를 올리고 나서도 이 후의 반응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 작업 후에도 시원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 네티즌들의 반응이 어떤지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인터넷 만화가들의 현실이다. 조회 수란 방송으로 따지면 시청률과 같은 것이다.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의 수모를 겪듯이 인터넷 만화 역시 그렇다.

17명의 만화가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생활 보고서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부키. 2006)에 실린 작가 박수인씨의 “독자인 척 위장하고 ‘너무 웃겨요! 진짜 재밌다!’라는 리플을 단 적도 있다“는 말은 왠지 모를 씁쓸함 마저 느끼게 만든다.

“악평을 읽은 날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는 고필헌 씨의 말은 또 어떠한가. 그는 교열, 인쇄 등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작가가 그리는 동시에 원스톱으로 수많은 독자가 보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고 말한다.

“일전에 잘 아는 온라인 만화가 한 명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신경성 위염과 위궤양을 앓아 오던 친구였다. 그는 평소 네티즌들의 악플에 민감했다. 익명을 무기 삼아 ‘그것도 그림이냐.’ ‘내가 발로 그려도 그것보다는 낫겠다.’는 식의 무차별 비난을 가하는 네티즌들의 글은 때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흉기로 변한다. 그러나 나는 차츰 내 자신을 단련시켰다. 악플은 곧 사람들의 관심이라는 증거고 악플이 사라지면 관심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한 해석이다”

심혈을 기울여 한 땀 한 땀 그려 넣은 작품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악플들.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만화가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제는 악플을 자양분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그의 다부진 각오 역시 씁쓸하게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만화가 이두호씨는 “만화는 손이 아닌 궁둥이로 그린다” 고 말했다.

좋은 만화를 그리는 데에는 사람의 감정이나 경험, 또 그것이 빚어내는 생각과 행동, 말투 등 디테일한 요소들이 꼭 필요하므로, 게으르면 ‘만화장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은 몇몇 인기 작가를 제외하고는 초판 인세가 수입의 전부인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만화가는 경제적으로 그리 좋은 형편이 아니라는 점도 피력한다. 그런 이유로 만화가 지망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경제적인 안정 사이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기도 한다고 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런 와중에도 만화가가 되기 위해 간직해야 할 불변의 덕목, 변치 말아야 할 가치라는 것이 있을까.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을 꼽는 건 어렵지만,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최첨단 디지털 시대라도 만화를 그린다는 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그 어디에선가 뿜어져 나오는 아날로그적 신호가 필요한 ‘창조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나예리 작가의 이 말은 만화가 지망생들이 깊이 새겨들어 기억해 두어야 할 소중한 충언이다.

강경효 작가는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 주고 싶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출판사에 원고 들고 가보라고. 거절당하고 깨지다 보면 좋은 기회가 생길 거라고. 지금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길이 열려고 빛이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만화를 사랑해 주는 독자의 한마디에 피로를 잊고, 자신 또한 만화 마니아인 진짜 ‘만화장이’ 들이 털어놓는 솔직담백한 이야기. 만화가 지망생, 만화마니아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읽을거리가 아닐 수 없다.

[북데일리 고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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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던 볼테르톨스토이,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벤야민츠바이크, 미쳐서 죽은 모파상, 죽음조차 문학으로 형상화하고 싶어 했던 안톤 체호프릴케, 죽을 때에야 난생 처음 행복을 느낀 데팡 부인과 도로시 파커 등. 하나 같이 죽음에 대해 독특한 태도를 갖고 있었고 특별하게 살다 특별하게 죽은 이들이다.

2003년 메디치 상 수상작, 아름답고 지적인 에세이 <죽음을 그리다>(아고라. 2006)의 는 몽테뉴, 괴테, 칸트 등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활동했던 사상가와 문호 23명의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며 죽음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책은, 죽음 앞에 숙연해 질 수 있는 자, 죽음을 대면할 수 있는 자 만이 삶 앞에 의연해 질 수 있다고 말하며 몽테뉴의 “죽는 법을 아는 사람이 사는 법도 안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저자 미셸 슈나이더는 문인들의 유언, 그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 그들이 작품 속에서 죽음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종합해 그들의 죽음의 순간을 재구성해낸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이들의 죽음을 미화시키거나 영웅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들의 죽음은 지독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처량한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비참한 느낌’마저 준다.

이는 인간적인 문인들의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의 사상과 문학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으로 보여 진다.

사상가 볼테르를 묘사한 대목에서 그러한 책의 의도는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던 볼테르는 계속해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언제나 놀라워했다고 한다.

그는 여든셋까지 살았는데 1778년 5월 30일, 희곡 ‘이렌’의 공연을 위해 파리에 갔다가 죽었다. 사망 원인은 전립선암, 요독증, 피로, 그리고 아편 과다복용. 나이가 너무 많은 것도 사망 원인 중 하나였다.

볼테르는 늘 늙음을 ‘죽음의 어머니’라고 부르곤 했으며, “살다가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 허약해 살 가망이 없었던 볼테르.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세례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볼테르는 “제 임종의 순간을 잠시 미루고 여러분께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살아있으면 여러분에게 제 해골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무덤가에서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죽음은 치아 사이로 들어오죠. 그런데 이제 저는 이가 다 빠지고 없어요. 저는 살해된 채 태어난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죽음과 생명, 탄생과 생을 하나의 선으로 잇고 동일시한 사상가의 짤막한 말 한마디가 많은 것을 생각 하게 만든다.

누구에게든 삶이 소중하듯, 죽음 또한 그러하리라.

“의사들이 정해준 대로 죽고 싶지 않아요. 난 자유롭게 죽고 싶소”

자유롭게 죽고 싶다던 릴케의 말을 옮겨 적고 보니, 여름감기 앞에 골골거리는 쇠약한 육신의 변변치 못함이 사뭇, 부끄러워진다. 유한한 삶 안에서 제 몸 뚱이 하나 건사하지 못해 자유를 박탈당하는 삶이, 오늘따라 왜이리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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