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 문화인 '사물놀이'에 관한 이야기예요.

어린이 서적이지만 그래서 더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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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 서양인이 본 한국인 800년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지음, 김정연 외 옮김 / 청년사 / 2001년 6월
절판


개인이나 집단은 항상 변화의 과정에 있다. 생명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 속에서도 한 개인의 일생이나 한 집단의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요소를 관찰할 수 있다. 나는 너 그리고 그밖의 모든 사람과 다르고, 한국은 일본 그리고 그밖의 모든 나라들과 다르다.
개인적 차원에서든 아니면 집단적 차원에서든 다른 모든 개인 혹은 다른 모든 집단과 차별할 수 있는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의 변하지 않는 유일한 특징을 정체성이라 부른다. 내가 단순한 물건이나 자동기계가 아닌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임을 의식하고, 한국이 단순한 지리적 단위나 인간집단에 그치지 않고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위와 같은 개인적 혹은 국가적 차이, 즉 정체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이나 집단에게 정체성 확립과 보존의 중요성은 자명하다.-.쪽

정체성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개인이나 집단의 변하지 않는 특징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고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개인의 경우는 그의 일생을 통해서, 그리고 집단의 경우는 그것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행동의 패턴에서이다. 그리고 그 패턴은 그 행동에 전제된 목적, 더 나아가서는 그 목적형성의 배경에 있는 세계관, 즉 물리적,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 문학적 속성으로서만 규정할 수 있다. 개인이나 집단은 각자 이런 뜻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명한 사실로 전제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개인의 경우 시간이 가면서 의식만이 아니라 생물학적, 경제적, 환경적, 문화적 차원에서, 그리고 집단의 경우 기술적, 문화적, 경제적 특히 국제정치적, 군사적 차원에서 격변에 부딪히게 되어 정체성이 흔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의 경우 사춘기, 사십대, 노년기 혹은 뜻하지 않은 질병, 가정의 파탄 등으로 몇 차례 '정체성의 위기'를 거치게 되며, 집단의 경우 내부적 혁명, 전쟁, 외부적 침략, 식민지화 등에 의한 국가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의 위기로 진통이 불가피하게 생긴다. -.쪽

지난 800년 동안 지리적으로 먼 극동에 있는 타자로서의 한국을 보는 눈이 어떻게 변해왔던가. 그 시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프랑스와 한국이 각기 자신이 어떤 존재였으며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아는 데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이런 두 가지 점만으로도 불레스텍스 교수의 이 연구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프랑스의 한국관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의 분석과 비판을 통해서 좀더 올바른 한국관, 즉 한국의 정체성의 가능한 시각과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결 더 커진다.

첫째, 불레스텍스 교수에 의하면, 프랑스가 본 '한국성'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것은 800년 동안 줄곧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한국 자체가 아니라 상상력의 산물로서 이미지에 의해 형성된 한국에 대한 클리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한국관에 대한 대부분의 자료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흐름(중세의 동양발견, 18세기의 유토피아적 신화, 19세기의 소설적 글쓰기의 영향, 인류학적 접근 등)과 당시의 글쓰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프랑스가 본 한국은 체계적 연구에 기초한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체험이나 이해보다는 간헐적 문학적 상상과 느낌에 의존한 이미지이며, "조용한 아침의 나라"나 "은둔의 왕국" 등의 중세의 문학적 이미지들은 프랑스가 한국을 보는 클리셰로 남아, 오늘의 한국이 중세는 물론 18세기, 19세기, 20세기 중반에 비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변했는데도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로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식이 다소 불가피하게 이념이라는 편견에 의해 구성된 허구, 즉 왜곡일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프랑스의 한국에 대한 클리셰에서 "오랫동안 정복자이고 식민통치자였던 프랑스의 우월성"이라는 이념이 숨어 있음을 강조하는 저자는, 프랑스의 한국관에 편견이 반영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이 자료들은 오늘날까지도 한국과 서구의 어려운 만남에 대한 귀중한 자료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타인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쓰고 생각하고 꿈꾸게 하는 역할을 하며, '프랑스에서의 한국의 이미지는 프랑스에게 아시아를 다시 쓰고 생각할 꿈을 꾸게 했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쪽

둘째, 불레스텍스 교수는 현대의 한국성, 즉 현대 한국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는, 이 책에 이어 쓰게 될 '한국에서 타자에 비추어 형성된 한국성' 즉 한국의 정체성의 개념을 연구한 다음, 그의 최종적 결론이 내려질 마지막 세 번째의 책에서 극히 복잡성을 갖고 있는 '현대의 한국성' 즉 한국의 정체성은 단 하나의 타자가 아니라 밖과 안의 이중의 타자(중국, 일본과 서양이라는 밖의 타자와 남과 북 두 당사자가 투사하는 각기 다른 자기 자신이라는 내부의 타자)에 비추어, 문화적 정체성만은 국민주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주장할 계획임을 선언한다.
-.쪽

극동에서 두 개의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서 두 번에 걸친 몽골의 침략, 임진왜란 등의 혼란과 아픔을 겪었고, 20세기초에는 일본에 의해서 주권을 강탈당한 후 35년 동안이나 한국 문화, 즉 한국 고유성의 말살정책에 짓밟혔음에도 한국은 반만년 동안 지켜온 자신의 민족적 단일성과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잃지 않고 발전시켜 왔다. 또한 지난 1950∼1953년 동안의 비참한 내전과 그후부터 오늘날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완전히 충돌하는 두 개의 국가체제로 양분되어 옴에도, 남북을 막론하고 한국인의 민족적 의식과 자존심은 어느 민족보다도 강하다. 이러한 한국의 심성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민족적 자아의식에서도 확인되고, 그러한 의식은 사회 일반에서만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두드러지게 노출되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적인 본질' '한국성'에 대한 강한 의식, 탐구 토론, 반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외국인만 만나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이나 중국 혹은 서양과 비교해서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등을 묻고 있는 우리의 태도로 입증할 수 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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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 서양인이 본 한국인 800년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지음, 김정연 외 옮김 / 청년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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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링이 들려주는 열 가지 신비로운 이야기
루디야드 키플링 지음, 헬렌 워드 그림, 홍연미 옮김 / 청솔 / 2004년 1월
품절


"등에 이런 혹을 달고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어요?"
사막의 신령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습니다.
"그 혹은 네가 빈둥거리면서 흘려보낸 사흘을 보충하기 위해서 만든 거야. 너는 이제 그 혹 덕분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흘 동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러니까 앞으로 영원히 내가 널 위해서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는 말은 못할 게다. 어서 사막을 떠나 세 마리의 동물을 찾아가거라. 말과 개와 황소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예절 바르게 행동하거라!"
그렇게 해서 낙타는 등에 혹을 달고 다니는 혹부리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낙타는 쭈욱 혹을 등에 달고 다니게 되었답니다. (그 혹이 지금 우리가 보는 낙타의 혹이랍니다.)
그러나 낙타는 태초에 자신이 빈둥거리면서 흘려보낸 사흘을 결코 만회할 수 없었으며, 여전히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답니다.-.쪽

"아빠, 아빠와 제가 함께
진짜 탐험을 계속하는 거예요.
차를 마실 시간이 되기 전까지!"-.쪽

테구마이 부족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네
그걸 만든 그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네.
뻐꾸기가 우는 메로우 다운에는
침묵과 뜨거운 태양만이 남아 있다네.

그러나 믿음의 세월이 다시 돌아오고
사랑을 회복한 마음들이 다시 노래를 부를 때
타피가 어린 고사리 위를 깡총깡총 뛰어서 오네.
다시 찾아온 봄을 이끌고

타피의 이마엔 고사리 잎으로 만든 화관
머리엔 황금빛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네.
타피의 두 눈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머리 위의 하늘보다 더 푸르다네.

뒤축 없는 신발을 신고 사슴가죽 외투를 걸치고
거침없이, 자유롭고 씩씩하게 타피는 뛰어오네.
타피가 젖은 나무로 피워올린 작은 모닥불 연기는
아빠에게 자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기 위한 것.

멀리, 아주 멀리 뒤처졌기 때문에
타피는 소리를 질러서 아빠를 부를 수가 없었네.
그래서 테구마이가 찾아왔다네.
사랑스러운 어린 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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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링이 들려주는 열 가지 신비로운 이야기
루디야드 키플링 지음, 헬렌 워드 그림, 홍연미 옮김 / 청솔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어렸을 적에  '코끼리 코는 왜 길까?'를 읽고 참 재미있는 동화다... 생각했었는데, 바로 이 동화가 '정글북'의 저자인 키플링의 동화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

자신의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창작했다는 동화는 결국 다 완성하기도 전에 급성폐렴으로 딸이 죽었다고 합니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동화라 그런지 더 애뜻하게 다가오는것 같아요.

어린시절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무척 많은것 같습니다. 커가면서 그 호기심이 점점 줄어들며 자신이 그런 호기심을 가졌는지도 잊은채 아이들이 궁금해서 물어오는 질문에 귀찮아 할때도 있는것 같아요.

이 동화는 아이들이 동물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재미있게 동화로 설명한 책이랍니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이야기지만 꼭 아이들에게 사실만을 이야기해야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는것 같아요. 과학적 사실은 아이가 커카면서 배우게 되는것이고, 때론 이런 동화야말로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데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저도 어릴적 '코끼리 코는 왜 길까?'를 읽으면서 이 동화가 사실이라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무척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인지 크면서도 그 이야기가 제 머리속에 남았었는데 이렇게 다 커서 이 동화를 다시 만나게 되니 더 기쁘네요.

키플링의 동화는 동물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재미있게 설명할뿐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다가 혹이 생긴 낙타를 통해 근면함을 먹이에 대한 욕심을 부리다 결국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물고기들만 먹게되는 고래를 통해 여러가지 교훈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제게 아이가 있었다면, 제 무릎에 앉히고 읽혀주고 싶은 동화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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