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빛 하늘말나리는 꽃뿐만 아니라 수레바퀴처럼 빙 둘러 난 잎도 참 예뻐요 다른 나리꽃은 땅을 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 피어요 수마치 무언가 간절히 소원을 비는것 같아요.-.쪽
남자아이는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아이는 팔을 날개처럼 양쪽으로 벌리고 타기도 했고, 한동안은 다리를 양 옆으로 벌린 채 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보다는 더 빠를 수 없는 빠르기로 쌩쌩 달리기도 했다. 감색과 흰색이 섞인 모자의 방울이 함께 달랑거렸다. 그런데 미르는 그 아이가 하나도 신나거나 즐거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이 그래서일까?' 이 세상 무엇이든 눈이 먼저 보는 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눈이 먼저 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마음이었다. '내 기분이 즐거울 때였으면 저 아이도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보였을까?' 남자아이는 몇 바퀴 더 돌다가 갑자기 교문 밖으로 휙 빠져 나갔다. 미르는 왠지 혼자 남겨진 것처럼 여겨졌다-.쪽
나는 미르에게 임시 반장-새로 반장을 뽑을 때까지 5학년 때 반장이었던 내가 임시 반장이 되었다-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앞에서 직접 말하는 아이는 없어도 지금 내가 베푸는 친절만 가지고도 다른 애들은 분명 내가 미르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느니, 빌붙는다느니, 입방아를 찧어 대고 있을 것이다. 요즘 미르 주위를 맴돌다 친해지는데 실패한 몇몇 여자애들은 미르를 건방지고 잘난 척하는 재수 없는 아이라고 떠들어 대고들 있었다. 그 애들에게 미르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따 먹을 수 없는 포도 같은 건 아닐까? 여우가 포도를 따 먹으려다 닿지 않자, '저건 분명 신 포도일 거야.' 하면서 돌아가는 이야기 말이다. 소희는 미르에게서 혼자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희 역시 미르를 건방지고 잘난 척하는 재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해하기로 했다. 그 애가 보여 준 것이 아니었다 해도 혼자만의 얼굴을 본 사람이 가져야 하는 아주 작은 예의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남의 일기장을 훔쳐 봐 놓곤 남들에게 그 내용을 떠들고 다니는 짓이나 다를 것이 없다.-.쪽
어른들은 마음 속의 아픔을 어떻게 다스릴까? 궁금하다. 바우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사흘이 멀다 하고 바우 엄마 산소에 간다. 철철이 들에 피는 꽃을 한 아름씩 꺾어 들고서. 할머니는 돌아가신 바우 엄마에게 아직도 정이 남아서 그런 거라고 하신다. 그럼 이혼한 건 싫어서 헤어진 거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나는 소장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달리는 모습을 보면, 어떤 힘든 일에도 꺾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처럼 멋있어 보인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할머니는 사람 사는 길에는 높고 험한 산도 있고 깊은 물도 있다고 하셨다. 그런 길을 지나가 봐야지만 평평하고 넓은 길을 고마워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책에서 '상처 입은 조개만이 진주를 키울 수 있다.'는 구절을 읽었다. 조개 속의 상처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진주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을 조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마음 속에 진주를 키우기로 했다. 사실 나는 진짜 진주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인어공주의 금관에 장식하는 아름다운 보석이라고 상상하기로 했다. 아름다운 진주를 마음 속에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부자가 된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이제 어떤 상처도 겁나지 않는다.-.쪽
행복이란 내가 가진 욕심이나 자리를 최소한으로 줄여 가야 얻는 것인가 보다. 아무런 욕심도 바람도 없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서도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신은 어떤 것도 그냥 주거나 가져가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이 그걸 깨닫지 못할 뿐이지.-.쪽
나는 그 애가 부러웠다. 그 애가 자기 아빠를 용서할 수 없는 건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재혼했다는 엄마한테 그리움이나 원망, 그 어느 것도 없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미르를 보니까 그리움이나 원망은 동전의 앞과 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우를 봐도 그렇다. 바우를 자라게 하는 건 바우가 추억하는 그 애의 엄마인 것 같다. 할머니도 훗날 추억으로 남아 날 돌봐 주실까?-.쪽
리뷰평과 제목이 좋아서 언젠가 한번 읽고 싶었던 책인데, 지금에야 읽게 되었네요.
앞 장이 좀 지루하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책에서 사람들이 말만 하고 행동은 하나도 안 할 때는 늘 지루한 법인데. 하지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머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뭔가 사건이 일어날 때다. 실생활에서도 그런 때가 가장 신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다른 날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러분은 내가 '이리하여 그 슬픈 날들이 천천히 지나갔다'라든지 '한해 한해가 그 고달픈 길을 따라 흘러갔다' 아니면 '시간이 지나갔다' 같은 말을 하는 걸 절대 못 들을거다. 그런 말은 멍청한 소리니까. 당연히 시간은 지니간다. 내가 그렇게 말하든 안 하든 간에. -22쪽
그 아주머니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특히 어른)을 좋아한다. 그런 어른은 극히 드물다.-177쪽
어느 한 사람을 두고 '억척스럽다'라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한테 조금 못되게 하더라도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삶이 '억척'인 것이다. 억척스러운 세월이 흘러 자신의 삶을 남한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그 세월에 담담해져 있음이리라. 하지만 아직도 그것이 진행중일 때는 나이든 노인의 얼굴에서 그 평온함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전라도 고흥 땅에 사는 금산댁 할머니가 한숨처럼 내뱉는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은 노인네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는다.-.쪽
시아버니 호랑새요 / 시어머니 꾸중새요 / 동서 하나 할림새요 / 시누 하나 뾰족새요 / 시아지비 뾰중새요 / 남편 하나 미련새요 / 자식 하난 우는새요 / 나 하나만 썩는샐세 며느리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이 노래처럼, 우리의 할매, 어매들이 견뎌온 시집살이가 맵기는 매웠던 모양이다. 된바람 피할 곳 없는 서해바다 위도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라 하여 이름 매겨진 '깊은금'에 살고 있는 올해 예순여섯의 정씨가 아흔다섯의 시어머니 심씨와 '앙당앙당' 살 부비며 사는 모습을 보면, 그의 시집살이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던 듯싶다.-.쪽
밥을 먹어도 나 혼자요 잠을 자도 나 혼자요 쓸쓸헌 초가집이 빈 방안에 이부자리 펼쳐놓고 원앙금침 잔물베개 머리맡에 내려놓고 샛별 같은 놋요강은 발짓 닿음에 들여놓고 앉었으니 우리 낭군 오시나 누웠으니 잠이 오나 졸졸 흐르는 도랑물에 한들한들 버드나무 밑에서 머리만 남실남실 오실려거든 대낮에 버젓이나 오시지요 버드나무 밑에서 머리만 남실남실 하네요 영감 없이 사느라 내가 지은 노래예요. 먹고살기 힘들어서 생각에 없다가도 일허다가 잠시라도 쉴라면 영감 생각이 나요. 그럴 때 불렀어요.-.쪽
밥 달라고 할 적에 그렇게 갈 줄은 몰랐지 몇천 년이나 살을라고 집을 또 호젓해서 지어놓고 알뜰허게 사랑에 별의별 짐 다해놓고 그렇게 갈 줄을 나는 몰랐네요 내가 장에 간대믄 늘 돈을 주어 나를 친구들이랑 사잡수고 와요 내가 왜 알뜰히 고물 팔아 내가 왜 팔아서 친구끼리 먹나 술 안 먹구 담배 안 먹구 허는 사람 벌은 돈을 음료수를 사다줘야지 내가 사왔지 이렇게 갈 줄을 나는 몰랐어요 읍에 간 내가 불 땐 방에서 텔레비전 보고 앉았지요 갔다오니까는 이삿짐을 꽁꽁 매싸놓네 내가 이럴 줄 알았드라면 쌈이나 한번 헐걸 쌈 한번 안 허고 천년만년 살 줄 알았지 이렇게 가는 줄 가서 안 오는 줄 알았음 이렇게 한번 불러줄 걸 갔다가 그만 떠나갔네-.쪽
정말 모자랄것 같네요. 188페이지는 너무 적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