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중 30년전 타짜를 만났다.50이 살짝 넘은 나이였는데 그의 부인은 아직도 이 사람의 정확한 직업을 모르고 있다.마누라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정도로 응달에서 응달로 전전한 인생이어서 내놓을 얘기들이 없다고 손을 젓는다.타짜들은 긴칼 대신 화투를 들고 승부하는 무사다.저 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매판 진검승부다.죽고 죽이기 30년.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후회, 후회, 후회뿐...'타짜들은 타고난다.'타짜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쪽
영화로 나왔기에 한번 보고 싶었어요.
나무를 제대로 보고싶으면 12월의 나무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보면 비로소 나무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봄, 여름에는 잎과 꽃에 가리고 가을에는 단풍에 가린다. 그러니까 나무의 참 모습은 12월에 보아야 한다. 조용히 해탈의 모습으로 서 있는 저 나무는 사실 커다란 불덩이다. 여름날 뜨거운 햇살을 나무줄기 속에 차곡차곡 쟁여 놓았다. 그 지순한 열정을 자신의 내면에 깊이 감추고 있는 것이다. 저기 나무 한 줄기를 베어내어 불을 붙여 보라. 그러면 나무 속에 있는 불덩이들이 소리치며 뛰쳐나올 것이다. 이것도 성자의 마음이다. 가슴속에 있는 뜨거운 열정을 조용히 삭이며 침묵 속에 자기를 성찰하는 것이다. 이 겨울 은총처럼 눈이라도 내리면 앙상한 가지 위엔 하얀 눈이 면사포처럼 덮일 테고 나무들은 순백의 아름다움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하겠지. 그러기에 새봄에는 아기 같은 새순이 트고 꽃이 피겠지. 밤의 한기가 뼛속으로 파고든다. 벤치에서 일어서며 문득 나도 저 비탈의 감나무가 되어 성자처럼 서 있고 싶다.-.쪽
마르케스가 1982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행한 연설 '남미의 고독'은 이렇게 이어진다. "제가 금년에 스웨덴 아카데미로부터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단지 문학적 표현양식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공할 현실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종이 위에 씌어진 현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매일 헤아릴 수 없이 죽어가는 우리의 매순간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또한 비참하지만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고 고갈되지 않는 창작의 샘물을 솟구치게 하며, 이런 창조적 샘물을 지닌 콜롬비아 사람은 행운을 지닌 사람들임을 지적하고자 합니다."-.쪽
네루다의 집을 찾아다녔던 칠레의 여정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특히 80년대에 전투적인 저항시인의 사표로 떠받들어지던 이름이었지요. 현지에서 네루다의 자취를 돌아본 연후에는 그 이미지가 조금 바뀐 게 사실입니다. 그는 우선 질투가 날 정도로 행복하게 살다간 시인이었습니다. 비록 망명시절은 거쳤다 하나 외교관 생활을 하며 이국의 풍취를 한껏 만끽했고, 원없이 사랑도 했으며,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 열사흘 만에 친구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뒤를 따라 모든 칠레인들과 세계 문학인들의 애도 속에 천수를 다 누리고 '맞춤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벨문학상>도 받았고, 어디를 가나 그의 시에 환호하는 군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집필실이자 마지막 거처였던 이슬라네그라는 낭만의 극치더군요.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집에서 그는 섬세한 시인답게 햇빛이 드나드는 창문들을 정교하게 설계했고,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물건들로 실내를 장식해 놓았습니다. 이처럼 근사한 집은 산티아고에도 있었고 발파라이소에도 가장 경관이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더군요. 발파라이소에서 우연히 만난 전직 해군장교 한 사람은 "네루다는 사회주의를 이용해 사치를 누린 사람"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그리 신뢰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는 미국이 도와주지 않고 피노체트가 집권하지 않았더라면 칠레의 혼돈은 더 극심해졌을 것이라는 왜곡된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요.-.쪽
지상에는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허공에는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 떠 있다. 봄날의 산들바람이 다사롭게 귀밑을 간질이며 스쳐간다. 서울은 삭풍의 계절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지구 반대편의 산티아고는 바야흐로 화창한 봄이다. 코밑을 파고드는 진한 향기에 깜짝 놀라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가로에 늘어선 아카시아나무들이 눈부신 흰 꽃들을 가득 매달고 있다. 어디에서도 이 도시를 뒤덮었던 참혹한 죽음의 흔적들은 찾을 수 없다. 역사는 언제나 과거시제 속으로 몸을 숨기는 대상이고, 그 실체를 찾아헤매는 술래들은 지상의 현재형 장애물들에 현혹돼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날이 저물기 십상이다. 이 아름다운 산티아고에 비가 내렸다. 대통령궁이 군부의 쿠데타로 폭격당했고, 하루아침에 수천 명의 인사들이 끌려가 행방불명자가 돼버렸다. 그 '행불자'들 대부분은 혹독한 고문 속에 죽어갔거나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 후일 그 참담한 상황을 기록한 영화의 타이틀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Rain on Santiago>는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제목이 아니라 쿠데타 발생 소식을 전국의 동지들에게 타전하는 암호였다. 발파라이소 항에 미군의 군함이 들어왔다는 긴급 전화를 받고 다급하게 곳곳의 동지들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 영화 들머리에 나온다. "Rain on Santiago!" -.쪽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혁명을 거치지 않고 남미에서 최초로 선거에 의한 합법적인 사회주의자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부터 그 비극은 시작됐다. 미국은 칠레가 제2의 쿠바가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막후 채널을 동원해 태업과 파업을 조장했고, 칠레인들은 생필품조차 구하기 어려워 동분서주했다. 온건한 방법으로는 정권을 탈취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우익과 군부가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무력을 동원했던 것이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기관총과 탱크에다 폭격기까지 동원한 무자비한 공격 앞에 아옌데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칠레의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의 첫 소설이자 그녀의 출세작이었던 『영혼의 집』은 이처럼 비극적인 칠레의 역사를 4대에 걸친 한 가계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녹여낸 작품이다.-.쪽
산티아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마포초 강을 건넌다. 한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이 좁은 개울 같은 강이지만, 이곳 또한 쿠데타 당시 시체들이 즐비하게 쌓였던 현장이다. 시체들 위로 파리들이 들끓고 신문지 조각들이 날아다녔다. 안데스 산맥에서 내려온 물이 붉은 황토색으로 물들어 무심하게 흘러간다.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벌어진 일주일 동안 3만여 명의 칠레 시민이 학살당했다. 그후 피노체트 집권기간 동안 사망자 3천여 명, 실종 1천여 명, 고문 불구자 10만 명, 국외추방 100만여 명에 이른다. 『영혼의 집』에 등장하는 마지막 여주인공 '알바'는 자신의 가계와 칠레의 역사에 소용돌이쳤던 비극의 연쇄고리를 이렇게 매듭짓는다. "나는 복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복수가 똑같은 잔혹 행위의 바로 다른 한 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무시무시한 연결고리를 부수어야만 한다. 내 과업은 삶이며 내 임무는 증오심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투사가 되어 지하로 숨어든 내 사랑 '미구엘'을 기다리면서, 내 옆에 놓여 있는 할아버지의 시체를 묻으면서, 더 나은 시간들을 기대하면서, 새 생명을 뱃속에 키우면서, 이렇게 그 모든 이야기들을 노트에 기록해나갈 것이다."-.쪽
카사블랑카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저에게도 그 도시 이름이 주는 낭만적인 느낌이 강하게 각인돼 있었지요. 생각했던 것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오래된 도시의 고풍스런 이슬람 양식의 건물들이 아름답더군요. 해안쪽 풍경은 다소 쓸쓸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시의 건물들이 대부분 하얀색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카사블랑카'라는 이름 자체가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이더군요. 저를 태우고 다니던 운전수는 늙은 회교신자였는데, 기도 시간이 되면 아무데서나 차를 멈축고 성지 쪽을 향해 소지하고 다니던 양탄자를 바닥에 깔아놓고 절을 올린 뒤 기도를 하더군요. 독실한 신심이 경건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종교의 덫에 걸려 보다 활발하고 진취적인 삶을 방기하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야 한다'는 고전적인 에피그램이 오늘의 시점에도 통할까요? 패배에 대한 변명으로 여겨지지 않을까요? 하지만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겠지요.-.쪽
문학과 함께하는 기행이라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드네요.
아직도 읽지 않은 책과 모르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