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그것만은 들어주지 않았다. 난 말이란 것이 사람의 마음을 사납게도 하지만 한없이 나약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쪽
범죄율이 세계에서 제일 낮은 나라 중의 하나가 일본이야. '옴진리교의 독가스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일본의 안전을 부러워했지. 일본은 범죄 검거율이 70%가 넘어. 선진국의 대표적인 도시인 뉴욕, 런던, 파리가 고작 20% 수준인데 말야. 일본은 범죄율 역시 뉴욕의 200분의 1, 런던과 파리의 30분의 1 수준이지. 하지만 일본의 범죄는 독특하게도 한번 사건이 터졌다 하면 엽기적인 사건이 대부분이야. 대표적인 예로 1989년에 있었던 미야자끼사건을 들 수 있지. 소심하고 겁쟁이였던 미야자끼 쯔또무라는 사람이 4살부터 7살까지의 여자아이 4명을 연속적으로 유괴해 살해했어. 그런데 이 미친놈은 아이를 죽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해한 애의 유골을 집에 보내고, 살해 장면을 비디오로 남기거나, 살해한 애의 해골에다 무슨 흔적을 새기는 등 온갖 엽기적인 행동으로 일본열도를 공포로 몰아넣었지. 이렇듯 일본에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인 살인 행각이 많은 편이야. 이 외에 일본 범죄의 특징 중 하나로 무동기 범죄를 들 수 있지. 길을 걸어가는데 길거리에서 아무 이유 없이 칼로 푹 찌른다던가,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을 뒤에서 밀어 버리는 식의 무동기 범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지. 일본 사람들은 이처럼 기괴한 범죄자들을 '토리마'라고 부르는데 '토리마'란 길거리에서 해를 끼치는 마물이라는 뜻이래. 마물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는 감히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는 의미겠지. 무동기 범죄는 선진국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어. 정신병리학자들은 그 원인 중의 하나로 꽉 짜여진 현대 사회를 들고 있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잘 짜여진 통제 구조 속에서 살다 보니 개인의 본능이 출구를 잃고 뒤틀리다가 엉뚱하게 분출되어 나타나는 결과라는 거야. -.쪽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민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데, 일본인은 속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 보니 무동기 범죄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내가 마쓰다 다까히로를 일본이 낳은 기형아라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야. 개인의 삶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사고 방식… 일본의 비극은 마쓰다의 범죄가, 집단으로부터 버림받은 정신적 기형아들이 지금까지 벌여 왔고 앞으로도 벌일, 무수한 복수극 중의 한 편에 불과하다는데 있는 거야."-.쪽
이번 편에는 3가지 중단편을 모은 책이랍니다. 역시나 저자와 이름이 같은 유일한이 주인공이 되어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 책을 읽을때가 한밤중이었는데, 책을 덮고나서 거실의 불을 끄고 안방에 가는 그 짧은 순간 어찌나 등줄기가 오싹하던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둘둘 말았답니다^^;; 물론 대낮에 이 글을 읽었다면 또 다른 감정을 느꼈겠지만, 역시 공포소설은 한밤중에 읽는것이 제격인것 같아요.
암튼... 침대에 누워 잠깐동안 천장에 떠다니는 스티커의 악령이 생각나기도 하고, 원한에 사로잡힌 귀신도 생각나서 한동안 섬뜻했었습니다. 어쩜 더 무서웠던 이유는 3편의 이야기가 실제로 결코 없을것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주위에서 일어날수 있는 점 같습니다.
스티커 사진 자신이 과외를 했던 아이의 이상한 전화를 한통 받은 일한은 학생에게서 귀신이 찍힌 스티커 사진을 보여줍니다. 한눈에 사진에 찍힌 소녀가 이상하다고 알아보는 일한을 보면서 오히려 딸의 이야기를 친구의 죽음으로만 돌리려는 어머니의 무관심이 속상하더군요. 일반인들도 느끼는 공포를 가장 가까운 어머니가 못 느끼니 말이지요. 결국 학생은 자살하고 일한은 스티커 사진기를 태웁니다. 하지만 사진기를 태웠다고해서 모든 공포가 끝나는것은 아니지요.
먹는 자와 먹히는 자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이지요. 바로 식인에 관한 소재이니깐요. 사건은 일본에서 일어난 일로 일한은 직접 관여한 일이 아닌 그냥 지켜보는 자로 이야기합니다. 악령에 사로잡혀 12명을 살해하고 자신과 그의 인질 그리고 그가 기르고 있던 개에서 식인을 합니다. 솔직히 이번편은 악령의 존재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사악한 본성이 나타나는것 같아 섬?하더군요. 결국 살인자에게 붙잡혔던 인질 역시 살인자처럼 식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다는 암시를 주며 끝을 맺네요.방황하는 악령 군부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이야기예요. 종종 군대전설이라고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었는데, 아마도 갇히고 억압된 공간에서 나타날수 있는 상황이라고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이번편은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임에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더군요. 권력과 명예로 인한 욕심이 화를 부른 사건입니다.
1을 재미있게 읽어서 계속 읽어볼까해요.
"그럼, 조앤너, 만일 내가 재산을 몽땅 잃어버린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인연을 끊겠구나." 리넷이 조앤너의 말을 끊고 물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솔직히 말해서 그래. 나의 친구는 성공한 사람들뿐이니까. 농담이 아니야. 잘 들어. 모두들 입 밖에 내지 않을 뿐이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로는 빈털터리가 된 친구 성격이 비뚤어질까봐 더 이상 사귀기 어렵겠다는 핑계를 대지. 그리고 잠시 동정해 주는 게 전부야." "너는 정말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구나, 조앤너." "나는 단지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돈이 좋을 뿐이야."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어." "물론, 그렇겠지. 또 굳이 그럴 필요도 없잖아. 1년에 네 번이나 저 정중하신 중년 신사 분으로부터 쓰고도 넘칠 만한 돈을 꼬박꼬박 받고 있으니까."-.쪽
"네, 우리는 친구였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그 여자는 당신을 믿고 있었지요." "네. 물론이죠." 리넷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잠시 망설이고 있었으나, 포아로가 더 이상 말을 계속할 것 같지 않자 먼저 말을 꺼냈다. "물론 재클린에게는 안된 일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일은 흔히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런 일은 흔히 있지요. 그런데 부인은 영국 국교파(國敎派)이시지요?" "네." 리넷은 좀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럼, 교회에서 목사의 성서낭독을 들으신 적이 있으시겠군요. 다윗 왕 시절 이야기인가요? 양과 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와 새끼 암양 한 마리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한 마리밖에 없는 새끼 양을 빼앗아 버렸지요. 그와 똑같은 일이 일어난 셈입니다, 부인."-.쪽
"아가씨, 나는 당신 편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죽은 자는 이제 그만 묻어버리십시오." 재클린은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건 무슨 뜻이지요?" "지나간 일은 그만 단념하라는 말입니다. 미래로 눈을 돌리는 겁니다. 이미 끝난 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망한다고 해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리넷이 아주 좋아하겠죠." "지금 나는 리넷 부인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신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신은 괴롭겠지요. 그러나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짓은 그 괴로움을 오래 끌게 할 뿐입니다." 재클린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나는 오히려 즐겁게 여겨질 때마저 있는걸요." "그것이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아가씨." 재클린의 시선이 재빨리 위로 올라갔다. "당신은 이해심이 없는 분은 아니세요. 친절하게 대해 주신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은 젊고 현명하고 앞날 또한 밝습니다." 재클린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모르세요. 알려고 하지도 않죠. 사이먼은 나의 모든 것이었어요." "사랑이 전부는 아니랍니다, 아가씨.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젊을 때뿐입니다." -.쪽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소박한 마음을 잃기 쉽다. 그래서 남을 위한 작은 배려를 잘 행하지도 않지만, 설사 그런 배려를 받아도 고마운 줄 모른다. 무슨 큰 배려를 받아야 비로소 고마운 줄 안다. 큰 배려는 일상적일 수 없지만, 작은 배려는 일상적일 수 있다. 그런 점을 안다면 작은 배려를 할 줄 모르고, 그에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것은 결국 사랑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불행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쪽
되도록 논쟁을 피하되, 논쟁할 경우에는 그 결과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가집시다 가장 좋은 것은 논쟁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논쟁을 전혀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살다보면 불가피하게 타인과 논쟁해야 할 일도 생긴다. 그러나 논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논쟁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면 내용적으로는, 논쟁에 이겼다고 해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으며, 논쟁에 졌다고 해서 나의 의견이 전부 틀렸다는 자괴감을 갖지도 않게 될 것이다. 또한 태도의 측면에서는, 논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기고만장하지도 않고, 논쟁에서 졌다고 해서 모욕감을 갖지도 않게 될 것이다. 나아가 다른 사람이 내 편을 들어주었다 해서 나의 의견이 객관적으로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우기지 않고, 상대의 편을 들어주었다 해서 나의 의견이 객관적으로 그르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쪽
『관윤자』에 이런 말이 있다. "두 사람이 겨루는 궁술시합에서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가를 볼 수는 있다. 두 사람이 장기를 둘 때, 한쪽이 지고 다른 쪽이 이기는 것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도(道)에 있어서 만나면 아무것도 표시되는 것이 없으며, 기술의 우열도 없고, 승패도 없다." 논쟁도 마찬가지다. 승패는 있을 수 있지만, 큰 범주에서 보면 옳고 그름은 사라진다. 논쟁을 통해 시비를 명쾌하게 가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현명함보다는 무지에 가깝다.-.쪽
차이의 관점에서 검토할 때, 만일 크게 생각하는 판단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크다고 간주한다면, 만물 중 크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작게 여기는 판단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작다고 간주한다면, 만물 중 작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천지가 쌀 한 톨만큼 작다는 것을 알 때, 그리고 털끝이 언덕이나 산만큼 크다는 것을 알 때, 차이의 정도가 보일 것이다. 업적의 관점에서 검토할 때, 만일 있다고 생각하는 판단기준에 따라 모두 있다고 간주한다면, 만물 중 업적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없다고 생각하는 판단기준에 따라 모두 없다고 간주한다면, 만물 중 업적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동과 서가 서로 반대이지만 상대방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면, 업적의 몫은 결정될 것이다. 성향의 관점에서 검토할 때, 만일 옳다고 생각하는 판단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만물 중 옳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만일 틀렸다고 생각하는 판단기준에 따라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만물 중 틀리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성왕(聖王) 요(堯)와 폭군 걸(桀)이 모두 자기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때, 성향의 배후에 있는 의지가 보일 것이다. -.쪽
우리는 본 것을 토대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인식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사건은 일생에 몇 번 있을 따름이며,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미 결정된 고정관념에 따라 세계를 해석한다. 세계는 고정관념에 맞추어 눈에 보인다. 자신이 세계를 긍정적으로 보고자 한다면 세계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계를 부정적으로 보고자 하면 세계는 부정적으로 보인다. 당신이 세계를 기계적 세계관에 의해서 보고자 하면, 세계는 기꺼이 그 증거가 되는 것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세계를 생태적 세계관에 의해 보고자 하면, 세계는 그에 대한 증거도 내놓을 것이다. 그런 과정은 단지 이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과정은 감성도 수반한다. 그 때문에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은 "어떤 사건이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경우, 거기에는 일종의 친밀감이 생긴다. 그럴 때 우리는 그와 운행을 같이하고 있는 듯이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느낌은 사건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어떤 사람을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는 경우에도 고정관념이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은 늘 있다. 우리가 늘 자기 생각에 대해 회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쪽
잠시 서두름을 멈추고, 작은 고요와 느림을 즐겨봅시다 무엇보다 속도는 '비실존(non-existence)'을 만들어낸다. 빠른 이동은 '경험'이 거세된 여행을 만들어낸다. 빠른 속도는 상대방과 차분히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와 시간을 앗아간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지고 홀로 고립된다. 휴대전화, 전자메일 등 의사소통수단의 발달은 겉보기에는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직접적인 대면을 통한 친교와 충분한 정서적 교감의 기회를 앗아간다. 의사소통수단이 발달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의사소통장애로 고통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으로도 문명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빠른 속도가 여유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빠른 속도는 사색과 휴식을 방해하여 사람들을 침착하지 못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며 극단적으로 만드는 환경이 되고 있다. 그에 따라 중용과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생활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노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쪽
어떤 운명을 믿고자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인간 의지의 동력이 된다. 의지가 있으면 그 운명이 실현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실현된 가능성은 그 운명에 대한 증거로 여겨진다. 또한 그 증거는 그의 믿음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인간이 의식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은 매우 미묘한 함의를 가진다. 그 때문에 믿음은 의지를 낳는다. 믿음은 매우 논리적인 예상에 합당한 결과도 낳지만, 매우 비논리적인 예언에 합당한 결과도 낳을 수 있다. 운명은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믿음'이다. 운명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운명도 없다. 운명은 주체의 개입을 통해서만 실현되기 때문이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운명과 자유는 각자 서로를 기약해준다"고 말했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으면 자유의 몫은 없어진다. 반면 정해진 운명이 없다고 믿으면 자유의 몫은 무한대가 된다. 그러나 양극단은 모두 현실적이지 못하다. 주어진 운명이 있더라도 자유의 몫은 남아 있게 마련이며, 자유가 있더라도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어느 것에 더욱 비중을 두느냐 하는 태도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 또한 사실이라 하겠다.-.쪽